2015-01-31

book_ 미술관 옆 인문학1- 박홍순 지음





미술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또한 미술과 인문학을 융합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문학과 통섭되는 힘을 조금 느낄 수 있다. 다만, 내용의 깊이가 깊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한 곳만 깊게 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1권을 읽은 후 마지막 2권까지 읽고 있는 중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렇다할 결과물을 얻진 못했지만, 끊임없이 예술(Art)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가 좀더 범위를 넓혀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 철학과 역사 등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여러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가끔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렇다고 예술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느낌이 들어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세요'라는 말로 끝맺음 하곤 했다.

바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대인들은 느끼는 것(feeling)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심각히 고민이 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이성을 만났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망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과 해야할 일들을 해야하는 '여유 없는 삶'에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느끼고자하는 자율성에 대한 욕망은이 묻혀버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나는 무엇을 지금 느끼고 있는가?
나는 진정 살아있는 것인가?
수 많은 물음과 고뇌 속에서 인간은 삶의 희열을 느끼는 게 아닐까?...하지만, 갈수록 인간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예술가의 광기를 느끼고 공감하는 게 지금 당장은 내게 어떤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삶의 이치는 바로 당장 무언가가 맺혀지는 것보다 수 많은 시간동안 보이지 않게 쌓여온 노력의 결실이 인간의 역사를 변화 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래서 여전히 나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예술'을 강조한다.

특히나 이 글을 읽는 시골에 계신 청소년이나 학부모님이 계시다면, '예술'에 대해 한 번 깊이 고민해보시길 추천한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만으론 다가오는 미래를 제대로 대비할 수 없을 것이기에...특히 지방과 시골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학교 공부도 어느 정도는 충실히 해야겠지만,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2015-01-25

취업난 [就業難]

만성은 얼마 전 한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만성에게 수 많은 삶의 성찰과 좌충우돌이 함께 했다. 학창시절부터 만성은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각기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그 삶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들이 만성을 사색하게 했다. 왜?에서 시작된 고민들은 점차적으로 그 범위를 넓혀 예술, 철학, 사회, 역사, 문학, 과학 등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만성은 현재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고, 앞으로 만성이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됐다.

'한 번 밖에 없는 내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어느 회사 지원서의 논술주제는 만성에게 지금까지 고민했던 주제들을 응집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만성은 그 응집된 힘을 더 갈고 닦았다. '이젠 지금껏 해온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시기가 왔다'라고 생각한 만성은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직접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수직적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구조, 그리고 인간의 본질일 수 있는 '자율'을 추구하는 기업, 물론 '자율'에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율'은 좋아하지만, '자율'에 반드시 필요한 '책임'은 감당하기 힘든 나머지 궁극적으로 '자율'을 추구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만성의 도전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몇몇 기업들이 구호로 회사의 좋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막상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볼 때는 기업들이 내세우던 구호와는 다르게 그 사람의 스펙에 우선 순위를 두고 보는 경향이 많음을 느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하고 새로운 미래의 패러다임을 준비해야할 스타트업 기업조차도 사람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본질을 상당부분 놓치고 있다고 만성은 생각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던 내용이 그냥 스쳐지나가게할 말이 아님을 만성은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정부분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으로 작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만성이 추구하려는 삶의 본질을 꼭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직접 행동에 옮기기 까지는 어느 정도의 고난과 고민이 필요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재능과 스펙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원서에는 본질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삶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실천해왔는지를 담아내자!'
만성이 지원서에 대학교 이름을 적지 않다가 적절하게 사회와 타협한 부분은 대학교 이름을 적지않고 '대학교 졸업'과 '졸업학과'만을 적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직책과 관련한 업무에 대한 부분을 지원서의 앞쪽에 배치했고, 만성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려했던 삶의 성찰과정들을 일단 지원서의 중간이나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성은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라는 말을 새삼깨닫게 됐다. 만성이 생각하는 궁극의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서 극복해야할 것들이 더 많이 보였기에...

만성이 지원서에 본질적으로 담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삶의 성찰'과 그 과정에서 찾고자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이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분명 시대의 흐름을 앞서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성은 '자율'과 '자유'에 그만큼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지난 시간 삶을 성찰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조금이라도 느껴봤기 때문에 앞으로 만성에게 주어진 삶에서 더 많은 '자유'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지인은 만성의 지원서를 보고, "만성아 너 큰일 났다. 니가 지원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모르나본데...이렇게 쓰면 안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만성은 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내용을 지원서에 담았다. 물론 불안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대부분 가지 않는 길을 혼자서 간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 이런 도전을 해볼 것인가? 청춘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힘은 어쩌면 '모험'과 '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만성은 그 '모험'을 계속했다.

실패가 만성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어준 것일까? 면접에서도 만성은 회사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만성은 생각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이 물음이 만성에게 삶을 보는 통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를 살아도 깨어있는 삶, 그리고 그 하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삶...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루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삶...

결국 벼랑 끝에서 만성은 자신의 생각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열매를 맺게 된다. 삶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자신의 삶을 즐기려는 사람, 직원간에 직책이 높고 낮음을 떠나 서로 배려하는 회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여전히 이 회사는 실험중이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만성은 이 회사에서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여 만성과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려고 한다.

만성이 추구하려던 삶을 살 수 있게 회사가 선물해 줬으니, 그 회사와 성장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만성이 추구하려는 궁극의 꿈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삶'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기에...

취업난이라는 뉴스가 여러 미디어를 타고 대중에게 전달된다. 대중은 그 소식을 듣고 불안에 휩싸여 더욱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혈안이 된다. 과연 그것이 미래의 패러다임일까? 어쩌면 미래는 '불안정에 대한 내성'을 기른 사람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불과 몇백년 전과는 다르게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한 곳만 바라보면서 전력질주한다. 사방에 기회들이 널려있는데, 한 곳으로 몰려들어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장면을 보이고 있다. 그 기회들을 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역사는 '위기'와 '기회'라는 두 바퀴를 수레에 달고 여전히 진행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통찰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위기론이 세상을 불안의 늪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결국 기회는 그 기회를 볼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거머쥐는 것인지도...

'고민하는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2015-01-01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너무 생각이 많다"

지인들에게 종종 듣는 소리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하니? 그냥 편하게 살아"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한 때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하는 걸 잠시 쉬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멈추려 할 때마다, 습관 때문이었는지. 내 영혼이 죽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 보다는 '왜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하는 생각들이 파편화되면 그 생각에는 의미가 담기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하는 생각이 응집되는 순간 그 생각에는 가치가 담기게 된다. 결국 이런 과정은 인간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한시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생각(think)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파편화된 생각이 아니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깊게 파고들어 생각하는 습관이 앞으로의 패러다임에 매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깊게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상당히 재미있다. 또한 생각한 것들을 직접 체험을 통해 더 깊게 깨달아가는 과정이 심장을 더 생기있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주변의 청소년들에게도 학교 공부 뿐만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지 못하여 아쉽다. 정말 아쉽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이 좀더 혁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최근 들어, '고민하는 힘'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경험하고 있다. 얼마나 깊게 생각하여 이치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다양한 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생각한다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기회'와 '위기'가 수레바퀴의 양쪽에서 함께 했다는 것을 두고 본다면, 현재 우리가 느끼는 위기에는 기회가 함께하는지도 모른다. 이 '기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기회를 찾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인지도...

끊임없이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고민하는 힘'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여정 그 자체가 즐거움이자 보상일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과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의 패러다임이 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