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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art_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초현실주의라하면 보통 서양의 관점에서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집트 초현실주의'라는 제목에 이끌려 관람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초현실주의 작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이집트가 1차,2차 세계대전을 겪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이집트 예술가들이 느낀 내용이 화폭에 담겨졌기 때문.

해학과 풍자보단, 어둡고 아픈 내용들을 그림에 많이 담았다. 전쟁이 가져온 아픈 상처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슨트도 하던데, 개인적으로 수동적으로 주입되는 정보는 지양하는 편이라 혼자 관람하고 혼자 생각했다.(이건 각 개인의 취향 문제이니 편하실 대로 관람하시면 됩니다.)

한 달정도 예술을 등한시 했는데. 다시금 예술(ART)의 중요성에대해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참조: 사진출처]
국립현대미술관(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170313000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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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5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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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_데이비스 라샤펠 전(DAVID LACHAPELLE)






지인의 추천으로 혼자가서 관람한 전시였는데.
괜찮았다.
작가의 사진작품이 어떤 CG없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다보니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하다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그게 사회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인간의 본능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것을 예술로 승화하는 건 대안이 될순 없을까?
(그냥 혼자 생각해본 내용)

19세 미만 관람불가 구역이 있는데,
그 중 한 작품에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하반신은 남성의 모습을 한 인간이 있었다. 한 동안 사진 앞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혼자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중요한 섹션을 하마터면 못볼 뻔 했다. 전시를 모두 감상했다 생각하고 전시회장을 나오는 길에 지인에게 전화했더니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작품들이 있다고 하서 재입장하여 재관람했다.)

작가의 일관성있는 철학이 인상깊었다.


[사진출처: 아라모던아트뮤지엄(Are Modern Art Museum)
http://www.aramuseum.org/home/?c=6%2F43&ckattemp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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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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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art_조던 매터(Jordan Matter)사진전







예술/조던 매터 사진전

'찰나'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매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in 안국역 근처 '사비나 미술관')

지인 댓글:
C:이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사진인듯.ㅋ
J:책도 보긴 했는데, 대충 훑어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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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8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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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2

art_은행잎을 바라보며.





은행잎이 떨어진건 중력 때문일까? 
아니면 나뭇가지가 놓아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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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1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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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_스릴미(Thrill me)

뮤지컬/스릴미Thrill me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랑이란 이름하에 그것이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이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비참함으로 몰고가는지를 그려낸 듯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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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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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art_북한산 백운대를 등반하다가.





북한산 백운대를 등반하며...
최근 '중국회화사'를 좀 공부한 뒤여서인지 중국의 산수화에서 봤던 느낌이 실제 풍경에서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이런걸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감동'이라 부르나보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 풍경.

[2013년 3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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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때 북한산을 오르다가 무의식적으로 촬영했던 사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냥 한 순간만을 내 눈에 담기 아까운 풍경이었다고나 할까.
책에서 봤던 장면과 비슷한 '자연'을 직접 봤을 때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어 좋았었다.


art_아이가 자라는 속도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약27개월된 어느 아이의 뒷모습.

[2013년3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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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이 사진을 찍을 때의 감정이 스물스물 느껴진다.

여러개의 시선.
사진을 찍는 나의 시선.
동물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나와 아이를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
이 모든 시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아이의 엉덩이에서 기저귀의 윤곽이 보인다.
팔짱을 끼고, 난간에 기댄 아이의 등에 새겨진 옷 주름은
무언지 모를 힘을 느끼게 해준다.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2016-11-26

art_에코시스템: 질바비에(Gilles Barbier)

 
전시기간: 2016.04.13.-2016.07.31./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나의 눈에 비춰지는 작가의 작품이 신선했기 때문일까?
시간내서 관람을 하려다 마침 지인을 미술관 근처에서 볼 일이 생겨 잠시 미술관에 들렸었다. 30분정도 작품을 보다가 30분으론 안 될 것 같아 일단 지인을 만나고 며칠이 흐른 뒤, 다시 미술관을 찾았다.
 
총2번 미술관에 방문하여 작품을 관람했다.
청소년관람불가인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민했다. '인간'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작가가 얼마나 고뇌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쉽게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엔 전시가 종료되었음)
  
 
 








2015-06-08

art_Mark Rothko 마크 로스코 전





누군가의 추천으로 관람을 하긴했는데, 2시간 넘게 작품들에 몰입하려고 노력했으나,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좀 당황했다. 몇년 전부터 예술art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여러 배경지식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들은 쉽게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소개하는 안내글에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지만, 내 경우엔 눈물까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작품에 깊게 몰입하지 않았거나 요즘 내가 감각을 잃고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당황을 넘어 충격이 컸다. 삶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대중의 감각에 나를 맞추는 것도 지양해야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작품에선 내면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이상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 느낌을 무엇이라 표현하기 애매하다. 선의 경계에서 각각의 색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움직이는 미묘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언지도 잘 모르겠다. 상당히 혼란스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언제 한국에 올지 모르는 작품이니 시간내서 한 번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15-05-04

art_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SUH Yongsun)





'응집'이 아닌 '파편화'되는 느낌.

복잡한 세상의 여러 장면들, 그리고 그 복잡한 세상의 여러 장면들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섰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하는 흐름을 읽을 것인가?'
'세상이 변하는 흐름을 읽지 않을 것인가?'

이어폰.
언제부턴가 눈에 계속 들어오는 것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 각자의 귀에 다양한 색의 '이어폰'이 꽂혀 있는 장면. 이 장면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와 동시에 지하철 안의 풍경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는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왠지 모르게 각 개인들이 '파편화'되는 듯한 느낌...

이것이 어떤 실체인지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품 중 '생각중<In Thinking>'이라는 큰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핬다. 엄숙한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침 전시장에 서용선 작가께서 앉아 계셨다. 하지만,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물어볼 게 딱히 없어서... 아쉬운 게 있다면 '작품 잘 보고있습니다'라는 작은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는 점.




2015-03-22

art 결혼 계약_호가스 (1743~1745)


결혼 계약_호가스 (1743~1745)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유행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연작 중 한 작품이며 혼인하기 전에 계약서를 쓰려고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 연작 그림의 마지막은 불행으로 마무리 된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또 다시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에서도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이런 불행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 없이 누군가는 경고했지만, 그 경고를 망각했고, 결국엔 고통을 겪은 뒤에야 그 경고가 기억나는게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혼인제도,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를 더욱 느끼게 된다. 첨부한 글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꼭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들 뿐만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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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 옆 인문학2>>-박홍순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잔인성은 육체적인 것에서 부터 정신적 고문, 무관심, 단순한 소유욕 및 사디즘에까지 걸쳐 있으며,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대부분이라기보다 진정으로 사랑을 베푸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임을 믿어야만 한다."~

~부부 관계에서 나타나는 억압, 자시에 대한 억압의 꼭짓점에는 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강제도 남성 권력의 굴절된 모습니다. 가정에서 여성이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육아와 가사 때문에 잃어버린 자신을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해서 회복하려는 모습인 것이다.~

~결혼의 파행적 모습과 가족 내의 억압이 상당 부분 경제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엥겔스의 지적은 경청할만하다. "일부일처제가 생겨난 것은 비교적 거대한 부가 한 남자의 수중에 집적된 결과이며, 또한 부를 바로 그 남자의 자식에게 상속시키려는 욕구의 결과였다.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여자의 일부일처제였지 남자의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다....~

~여성이 강제된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여러가지 장애물이 기다린다.~~특히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막막해하며 이래저래 남편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경제적 예속이 현실의 인격적 예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수 천 년에 걸쳐 가부장제 틀 속에서 형성된 온갖 사회적 규범과 문화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이 인격적 자립의 소중한 출발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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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4

classic_ THE FOUR SEASONS 사계- Antonio Vivaldi 비발디 (1678~1741)







과거, 학창 시절에 시험을 볼 때마다 시험 도입부에서 반복적으로 들리던 선율이 있었다. 바로 비발디의 '사계'라는 작품 중에서 나오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은 바로 그 부분만 반복적으로 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문맥의 흐름에서 그 선율을 들었느지에 따라 같은 리듬이어도 다른 감정을 몰고오지 않을까?

언젠가 지인분의 자녀들에게 익숙히 들었을 만한 '사계'의 일정 부분을 들려줬다. "어!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요."라며 아이들이 일제히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하며 집중했다. 반복적으로 들었던 음에서는 친숙함을 보이던 아이들은 그 이후에 나오는 익숙치 않은 음을 들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린 대부분 (이렇게 익숙한) 여기까지만 듣죠. 그 이후까지도 들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지 않을까요?"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아이들의 눈망울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으로 비발디 '사계'를 모두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은 여전히 뇌리를 자극한다. 몇번을 반복해 들어도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이 느껴졌었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아 가끔 대중가요에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고전으로 돌아오게 되는 듯하다. 인간의 본질적인 그 무엇을 건드리기 때문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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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레코드만 꼽아 보아도 화자노(로마 합주단, 1954년 녹음), 이 무지찌(F.아요/1959년 녹음), 매리너(성 마틴 아카데미, A. 러브데이/1970년 녹음), 라 쁘띠트 방드(S.쿠이켄/1979년 녹음), 그리고 카알 뮌힝거(슈투트가르트 실내 관현악단, 1951녹음)의 연주가 있다.~"

-출처: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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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AYO(펠릭스 아요)가 연주한 음반을 구입했었다. 음반을 구입했을 당시에는 비발디 사계에서 '겨울'을 연주한 부분이 좋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여름'이 더 듣기에 정겹다. 


[참고]
Vivaldi: Four seasons- I MUSICI

(Spring)
http://youtu.be/YRxB7ssENEk

(Summer)
http://youtu.be/9DWqyUsmxVE

(Autumn)
http://youtu.be/iWeLSSIIDds

(Winter)
http://youtu.be/vZ6BJfz1kow


2014-05-10

art_ Yue Minjun 위에민쥔(岳敏君, 1962년 중국 출생)의 작품

위에민쥔 (岳敏君 큰산악,민첩할민,임금군; Yue Minjun /1962년 중국 출생)


그의 작품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작품을 보는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크게 웃는 남성 또는 남성들이 작품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웃음 뒤에는 왠지모르게 서글픔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남성은 크게 웃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쉽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진 않았다. 대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상처들이 환하게 웃음지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써 웃음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온갖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두 주먹을 불끈쥐고 웃으려는 처절한 외침과도 같을테니...그래도 웃지 않으면 무얼하리오. 작품 속에서나마 웃는 사람을 보면서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작가가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작품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이끌렸던 것 같다. 어려웠던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해낸 작가의 그 마음 속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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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가난해서 굶어 죽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다 죽는 것이 세상에 속지 않고 내 인생을 살다가는 방법입니다."-위에민쥔-

~위에민쥔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부모가 바라는 대로 톈진 공장의 전기공이 되어 20일씩 선박 위에서 교대 근무 생활을 했다. 그때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했다. 유일한 위안이라곤 배 안에서 잡식성 독서를 하다 잠시 육지로 나가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결국 석유 캐는 노동 현장에 재배치되어 혹사당하는 현실을 박차고 나와 남들이 졸업할 나이에 허베이 사범대학 유화과에 입학했다. 입학 전 다양한 체험을 한 그는 자유롭게 회화의 형식을 실험하며 철학, 미학, 역사책을 탐독했다. 졸업 후 철저히 자기 삶을 일궈 가는 의지와 신념이 있기에 독창적인 화가로 우뚝 섰다.~


출처: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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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위키백과(한글)
http://ko.wikipedia.org/wiki/%EC%9B%A8%EB%AF%BC%EC%A5%94

위키백과(영문)
http://en.wikipedia.org/wiki/Yue_Minjun



2014-05-07

art_ Andy Warhol, the Greatest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과거에 작성한 글 수정)

과거 리움미술관에서 이미 앤디워홀의 작품을 만났었다. 실크스크린기법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작품을 찍어낼 수 있는 상업성이 짙게 묻어나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 당시 예술에 조예(造詣)가 깊지 않아 뭐라 말해야할지 쉽지 않았다. 하드웨어 적인 부분은 고정된 틀을 유지하면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즉, 색(色)의 여러가지 혼합과 조합으로 똑같은 형태에서도 다른 느낌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받기는 했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아이폰(iPhone)과도 일맥상통함을 느꼈다.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인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려는 상업성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앤디워홀의 작품도 이런 시장의 수요를 이미 간파한 게 아닐까? 그를 폄훼하는 의견들은 상업성 적인 측면을 지적 하겠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욕구를 간파하는 것도 예술가의 의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에 그러한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을 예술에도 적용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예술은 시대를 따라가야할까? 시대에 앞서가야 할까?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앤디워홀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실크스크린기법을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크스크린기법을 자세하게 설명한 코너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 쪽 벽면에 4단계로 구분하여 간단하게 설명한 그림만 있을 뿐이었다. 작품의 제작기법이 예술가의 의도가 표현되는 부수적인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그 부수적인 부분에도 작가의 의도가 묻어날 터인데, 너무나 결과물인 작품에만 치중했던 것은 아닐런지.... 전시회장도 2-3층으로 넉넉하던데, 한 쪽에 동영상으로 실크스크린기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관람을 하진 못했다.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께는 평일 오전을 추천해 드리고 싶다. 도슨트 시간도 확인하시고 가면 작품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art_ Picasso and modern Art 피카소와 모던아트





(과거 작성한 글 수정)

대략 20세기 전반기와 중반기에 탄생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100여점 이상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서인지 빠른 시간 안에 볼 수는 없었다. 평일 오후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차분히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평일 이른 오전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면에서 아침 시간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도슨트(그림해설)를 대신하여 오디오 해설을 들을까 생각도 했으나, 습관상 처음 작품을 대할 때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기 위해서 아무런 도움없이 감상했었다. 2시간30여분이 걸려서야 작품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고, 그 후 일정이 있어서 해설은 듣지 않았다.

'아는만큼 보인다'
이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돌았다. 서양미술사의 20세기 관련된 부분을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갔으면 좀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도통 뭐가 뭔지 복잡함만 가득 안고서 미술관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단순하고 무식한 건지 몇몇 누드작품 앞에 서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만 탐한 게 전부였던 것 같다. 당분간은 미술관 대신 책을 통해 이론을 정리해둬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다시 예술에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예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다짐을 했건만, 어렵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손을 놓았기 때문에... 예술의 세계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만큼의 땀과 노력이 있어야 내것이 되는 듯 하다.


2014-05-06

performance_ DRUMCAT 드럼캣





(과거에 작성한 글 수정)

여러가지 드럼을 이용한 연주가 심금을 울리게 해주는데, 저절로 흥이났었다. 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열정이 넘치는 퍼포먼스에 동화되어 열심히 박수치다가 손바닥이 시뻘겋게 되었다는...


 "두구두구 두구두구!"

관객들의 호응 덕택인지 앵콜 공연까지 보여주셨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공연에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서 춤도 췄는데, 엉겁결에 일어나 리듬에 몸을 맡기기도 했었다.

아쉬운게 있었다면 공연시간이 1시간20분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조금 더 공연시간을 늘린다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05-04

art_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Caspar David Friedrich 프리드리히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German: Der Wanderer über dem Nebelmeer)
Artist:Caspar David Friedrich
Year: 1818
Type: Oil-on-canvas
Dimensions: 98.4 cm × 74.8 cm (37.3 in × 29.4 in)
Location: Kunsthalle Hamburg, Hamburg, Germany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서 인간 삶의 본질을 볼 수 있었다. 그냥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 그림이 그려졌던 역사적 시대에 인간은 어떤 고뇌와 어떤 삶을 살아내야 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의 이 그림은 '뒷모습' 때문에 시선이 끌렸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남성이 높은 산에 올라 산 아래를 흐르는 안개를 응시하는 장면. 이상하게도 이 남성의 '뒷모습'에서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산을 올라오면서 흘린 땀과 여러 고뇌들을 잠시 내려 놓고 산 아래를 응시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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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을 통해서는 '독일 낭만주의 미술'에 대해 알수 있다. 1800년대의 독일은 30년전쟁(종교전쟁)으로인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등등의 영역에서 뒤쳐진 상태였고, 이에 대해 독일인들은 열등감이 상당히 강했다고 한다.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독일의 예술가들은 게르만족의 신화 등을 이용해서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이런 독일 예술가들의 노력이 독일 낭만주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독일 낭만주의는 문학과의 친밀도가 높았기 때문에 미술의 독자적인 흐름이 느리게 형성되었다고 한다.독일 낭만주의 미술은 독일 특유의 음울한 정서와 광폭한 자연을 주 소재로 삼아 초월적인 관념의 세계를 드러냈다.~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는 독일 낭만주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경외심이 생기는 신비스런 자연과 그 앞에 선 인간을 연결시킨 작품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어린 시절 동생이 익사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 가족의 죽음을 빈번하게 겪어야 했던 프리드리히는 개인적 성향 자체가 내향적이며 고독을 즐겼다. 그는 거대하고 관념적인 자연 풍경을 통해 내면의 적막과 음울함, 환상을 표현했다.~

[참고자료: <<서양미술사 강의>>- 채효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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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art_ The Raft of the Medusa 메두사의 뗏목-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French: Le Radeau de la Méduse(English: The Raft of the Medusa)
Artist: Théodore Géricault
Year: 1818–1819
Type: Oil on canvas
Dimensions: 491 cm × 716 cm (193.3 in × 282.3 in)
Location: Louvre, Paris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인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변했을지 모르지만, 인간 자체는 거의 변한 게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 한 폭의 그림.

배가 좌초되자 승객들을 '임시로 만든 뗏목'에 놔둔채 선장과 선원이 도망갔다는 내용...이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일이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승객을 놔두고 떠난 선장과 선원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무대 뒤, 어둠에 가리워져 모습을 잘 알 수 없는 그 분들 모두에게 이 그림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이유는 뭘까?

이 그림에서는 임시로 만든 뗏목이라도 등장하지만, 세월호 사고에선 배에 있던 구명벌(구명뗏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게 너무 많았다. 충분히 사고 대응만 잘했다면 더 많은 소중한 인명을 구해낼 수 있었는데...그래서 인재(人災)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너무나도 많은, 소중한 생명들을 잃었다.
더군다나 그 생명들은 대부분 고등학생들로서 한창 자신들 인생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다시금 떠오르는 인간의 역사에서 말해주는 중요한 이야기...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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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아프리카 세네갈로 프랑스 이민자들을 싣고 항해 중이던 메두사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배가 좌초되자 149명의 승객들을 임시로 만든 뗏목에 타게 하고는 도망쳐 버립니다. 결국 승객들은 12일 동안 물과 식량도 없이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며 비참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구조되었을 때 생존자는 겨우 15명이었습니다. 당시의 무능한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고 합니다.~~이 그림에서 제리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승객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었습니다. 쓰러져 있거나 안간힘을 다해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들의 모습은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처절하고 사실적입니다. 제리코의 이러한 생생한 묘사와 비판적 태도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이 사건이 갖는 심각성을 충격적으로 환기시켰습니다.~


출처:<<서양미술사 강의>>-채효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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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
French: Le Radeau de la Méduse(English: The Raft of the Medusa)
Artist: Théodore Géricault
Year: 1818–1819
Type: Oil on canvas
Dimensions: 491 cm × 716 cm (193.3 in × 282.3 in)
Location: Louvre, Paris




<Detail>
French: Le Radeau de la Méduse(English: The Raft of the Medusa)
Artist: Théodore Géricault
Year: 1818–1819
Type: Oil on canvas
Dimensions: 491 cm × 716 cm (193.3 in × 282.3 in)
Location: Louvre, Paris


2014-04-28

Photo Exhibition_ STEVE McCURRY 스티브 맥커리






몇년 전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사진전에 다녀온 뒤 썼던 글이 남아있었다.
첨부한 사진은 네셔널지오그래픽에 표지로 실렸던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라는 제목의 사진이라고 한다. 사진전 안내 책자의 표지에 실렸던 사진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땐, '소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너무 순수해 보인다'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그 눈동자를 계속 응시할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이 사진이 홍보되던 당시 '성난 눈동자'라는 단어를 써 알려져서인지, 성난 고양이의 눈망울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소녀의 눈동자를 보면 볼 수록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캔버스에 붓터치로 그린 그림들은 그래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사진전을 제대로 접해본 게 아마도 이 사진전이었던 것 같다. 이 사진전의 사진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사진 하나하나에 작가의 여러 감정들이 교차되어 나타났다. 사진을 보고나니 너무 진지해져서 좀 힘들기도 했다.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감정이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2014-04-23

art_ Against the Sculptural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





(과거에 작성한 글을 현재 관점에서 재수정)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지인을 통해 예술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그림들을 주로 감상하다가 예술의 다른 영역에도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각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캔버스가 2차원의 예술세계라면 조각은 3차원의 풍부한 입체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돌덩어리에서 새로운 예술작품을 탄생 시켰다는 이야기에서 조각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조각작품들에서는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들이 들었다. 그림이 2차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명암과 원근법 등의 기술을 사용했다면, 조각은 실제 눈 앞에 실물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전시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마도 아래 첨부한 작품인 것 같다( 아직까지도 저장되어 있는 걸 보니).
척박한 돌틈 사이에서 새싹이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또 틀을 깨고 나오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으로도 느껴진다.
이런 저런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지금 봐도 느낌은 새롭다.



[ 류제형 JeHyeong RYU/ Breath 1/FRP,WOOD,자동차도료/58x65x82cm/2008 ]

[사진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