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C는 S에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더욱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도 '부모님의 뒷모습'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S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채 C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C는 S가 이야기 듣는 태도에 감동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S님께 제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어느 두 가정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가정은 부모님이 서로를 아껴주고, 위기가 왔을 때는 서로 힘이 되어 지혜롭게 위기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고, 다른 한 가정은 부모가 매번 다투고,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이미 답은 나와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을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S는 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처음에 말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죠"
C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생각에는 상당한 착오가 있어요. '어린시절에 행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나중에도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지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계속 불행하게 살거나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그러니 이것을 안다면,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과거에 행복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수 백배, 수천 배의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흔히 우리는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미 우리 삶이 행복하다면 굳이 "행복하세요"라고 입이 닳도록 반복할 필요가 없을텐데, 현실에서 실현이 어려우니 구호화되어 반복적으로 외치고만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 채 더 많은 노력도 없이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했던 사람이 해야할 노력과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해야할 노력에 엄연히 큰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를일이다. 불행했던 사람은 어쩌면 "행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노력하기 앞서서 가야할 길이 상당히 멀고 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고 먼 여정을 떠나는 것과 그걸 모른 채 좌충우돌하는 것과는 상당히 큰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낼 것 같다.
점점 S는 우리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C의 구체적인 설명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은 어땠는지 생각해봤다. S의 남편은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밖에 나가 돈만 버는데 집중한 게 아니라 집에와 남는 시간이 있을 때면 아이들을 돌봐줬고, 아이들 기저귀도 손수 갈아주었던 사람이었다. 그 때는 이런 남편의 행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몰랐는데, C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S는 남편에 대해 애뜻한 감정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소설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린 아들과 산책을 할 때, 아들은 저만치에 혼자 떨어져 걷고 아내와만 손을 잡고 걸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난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거의 확언하건데, 이 아이는 잘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어느 강연에서 말한 적도 있는데, 이 분의 이 말에도 상당한 통찰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이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라고 말한 것만 보아도 이 연사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큰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것은 논리적으로 수치화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간과한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보면, 욕설을 너무 지나치게 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욕설 뿐만아니라 매사 불평과 불만 그리고 냉소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개인적으로 이는 그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그 사람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욕설을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의 영향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를 보며 부모는 "왜 그리 욕을 하니?"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만난 어느 초등학생이 이런 말을했던 적이 있다. "제 친구는 너무 욕을 많이해요." "그럼 너는 그 친구처럼 욕을 안해?"라고 물으니 녀석의 대답에 얼음이 됐다. "욕이요? 별로요. 왜 욕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물었다. "너 부모님이 서로 싸우실 때 욕 안하시니?" 이에 대한 녀석의 대답은 더 대단했다. "부모님 안 싸우시는데요. 그리고 욕을 하시는 적을 본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놓치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으신지...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부모님"이 되는 건 쉬운 게 아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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