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1

story_ Yeild seat to the mother 엄마에게 자리 양보해라

여유가 준 선물인까? 아니면 불필요한 오지랖과 망상일까?
언제부턴가 인간의 삶 속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심지어 사소한 것들 마저도 놓치지 않고 응시하게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중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보게되는 여러 장면들에서 인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한 무리의 가족이 지하철에 탑승하는 걸 보게됐다. 부모님과 자녀 2명으로 기억된다. 때마침 좌석이 한 개 비어있었다. 그걸 본 아이는 재빨리 걸어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버지로 보이는 분 께서 "엄마에게 자리 양보해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그대로 계속 앉아서 갔다.

이와 비슷한 상황인데,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게된 경우도 있었다.
부모님과 자녀1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이 때도 때마침 좌석이 1개가 비어있었다. 이 때 아버지가 자녀에게 "여기 앉아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위에 소개한 두 상황은 얼핏보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상황을 응시하게 되면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먼 미래에는 상당히 다른 상황들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해보이는 두 상황은 엄연히 큰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한 번 생각해보자.
아버지가 자녀에게 "엄마에게 양보해라"라고 말했던 가정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녀들보다 더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버지가 어머니 대신 자녀에게 자리에 앉게한 가정은 아버지가 어머니보다는 자녀를 더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가정을 이룬 부부가 아닐까? 그 부부가 서로 사랑을 해서 아이들이 태어났을 것이고...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공든 탑은 언제라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부부의 사랑이 더 우선시 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앞모습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그늘 아래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의 가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더 행복하게 자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아이는 냉혹하게도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 혹여라도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만 그토록 바라던 행복의 문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한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웠으면 여전히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말들이 여전히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행복"이라는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앞모습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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