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09

아이에게 불행을 전달하는 부모들.

아이에게 불행을 전달하는 부모들...
미디어에 비춰지는 (아이를 불행으로 내몬)부모들에게  비난의 손가락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볼 내용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이런 불행들이 대중의 눈에 보이고서야 깨닫는 것일까?
과연 이런 불행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것일까?

어쩌면 이 문제들에는 '사랑'과 '애증'이 뒤범벅되어, 인간을 궁지로 몰고가는 원천적인 이유가 내재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니고서야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처음부터 온기없이 대할 것인가?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에게 불행을 전달한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 불행을 전달 받은 게 아닐까?
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식에게 범행을 저지른 부모들이 거의 대부분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들도 피해자라고....' 맞다. 그들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건 불행이 대물림 되는 동안 어느 누구도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려는 목숨을 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눈에 아이의 불행이 목도 되는 순간에야 깨닫는...

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되는 부모와 자식의 어두운 이면들이 과연 지금 일어나는 시대적 현상일까? 개인적으로 '아니요'라고 답하고 싶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지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서 어두운 감정들은 깊게 포진하고 있다. 꼭 누군가의 죽음이 목격되어야만 거기에 큰 문제가 있을까? 마트에서 축구화가 사고 싶다는 아들에게 큰소리치는 아버지에겐 이런 어둠이 내재된 게 아니란 말인가? 내가 볼 땐 도진개진이다.

아이는 이 나라의 꽃이다.
함부로 해선 안되는 존재다.

사소하고 나약해 보였던 아이들에게 전달했던 작은 어둠들이 몇 백년 쌓이고 쌓여 지금 더 큰 어둠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매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영영 인간이 해결하지 못할 숙제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노파심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인간 삶의 모습은 일단 '특별함'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그런 소재들이 보여지는 것이다. 평범한 한 가정의 모습이 미디어에 비춰진다하여 그것을 볼 시청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뭐, 자신들이 사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미디어에 비춰지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2016-02-08

book_은밀한 갤러리-도널드 톰슨 지음


[원제] The $12 Million Stuffed Shark: The Curious Economics of Contemporary Art
- by Don Thompson




미술작품들이 거래되는 시장(Market)에서 작품의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 중에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면 그 또한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경제학의 공급자와 수요자, 즉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와 그 작품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 한 책이다. 하지만, 이미 미술품 거래시장(Market)에 깊게 들어와 자리를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이 책이 외면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터득하게된다.

참으로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투자대상인 '기업'의 미래현금흐름, 즉, 그 기업의 성장가능성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미술작품의 가격을 형성하는 바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닥을 잡을 수가 없다. 물론,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에도 버블이 생기는 것을 보면 주식시장이나 미술품 거래시장이나 그다지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어떻게든 가격을 높이거나 유지시키려는 세력과 그러한 문화적 고정관념을 유지시키려는 힘들이 공존한다. 여기에 인간의 욕망을 뛰어넘는 '탐욕'이 더해지면서 흔히 '수요공급에 따른 균형'이라는 인간의 합리적사고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되고 만다. 그런 이유에서 오히려 경제는 논리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곳에는 인간의 '본성'이 아주 깊은 자리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합리와 불합리가 공존하는 미술품 거래시장에서도 오랜시간을 살아 숨쉴수 있는 요소는 단연 '혁신'이었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이 담긴 작품'들은 혼란한 시대에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연단에 올라 시상식을 하고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초기에 수 많은 비판을 받다가 시간이 흐른뒤 그 가치들이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인상파 작품들의 화폐적 가치가 '본질'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예술가들이 왜 예술을 하는 것일까?'...돈을 벌기 위해서?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필요한 돈이 점점 커져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돈을 벌기위해 예술을 한다면 그 예술가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예술의 본질은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추구하려는 '자유'....자유가 밑바탕을 이루면서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모든 걸 뿜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그 과정들... 그 과정들 자체가 인간에게 보상을 주는 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자유 속에서 인간이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그 감정들을 캔버스에 표현해는 그 과정이 예술가에게는 축복이 아닐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미술작품들도 자본주의 질서를 외면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예술은 끈질기게 '본질'을 지켜내야할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 많은 갤러리들, 그 갤러리 벽에 걸려있는 여러 미술작품들...과연 100년 뒤에도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의 자본주의는 100년 뒤 후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평가될까? 나는 지금 삶의 본질을 잘 인지하며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오히려 책을 읽으며 수 많은 고민들이 더 떠올랐다. 이것도 어쩌면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받아들여야하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물품인데, 백화점이라는 의리의리한 공간에 전시된 물품과 동네슈퍼마켓에 진열되어 판매되는 물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은 그 물품자체의 본연적 가치를 소비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물품 자체가 아닌그 물품을 호위하는 주변의 화려한 색을 소비하는 존재인가? 책을 보는 초반에는 '미술품 투자'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 생각에 또 다른 의문을 던지게 됐다. 나 또한 망각했던 미디어의 모순된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에...

언젠가 시장은 본연의 모습을 찾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예술의 '본질'을 담은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015-12-27

book_ Sophie's World 소피의 세계 -Jostein Gaarder 요슈타인 가이더 지음


Author: Jostein Gaarder
Original title: Sofies verden



언젠가 가까운 지인께서 내게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다.
" '철학을 공부한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철학에 관심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초반에는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인지 이해를 제대로 못했다. 그런데 지인의 설명을 들어보니 '공부하다'보다는 '관심있다'로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됐다. 그 만큼 나 자신이 알고있고, 또 알고 있는 것을 실제 생활에서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철학을 공부한다'라는 것은 상당히 넓은 영역을 지칭한다. 그와 대비되게 '철학에 관심이 있다'는 학문으로서 철학을 '공부를 한다'라기 보다는 현실세계와 관련있는 부분을 철학의 영역에서 찾고 배우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단순한 말장난이될 수도 있겠지만, 지인의 조언 덕분에 '철학을 공부한다'와 '철학에 관심이 있다'라는 문장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본인이 철학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있고, 알고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철학을 공부하기보다는 현실세계를 경험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동반자의 역할을 하는 관계가 나에게는 맞았다. 철학에서 다루는 현학적 내용들을 가지고 술자리에 앉아 어떤 철학자가 무슨 말을 했다며 토론하는 것보다는 내가 현재 겪고있고 고민하는 내용들을 철학이 옆에서 조언해주는 관계가 더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의 삶과 함께하지 못하는 철학이 과연 철학으로서의 가치를 얼마나 함양하고 있을지에대해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험문제에 답을 달기위해 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철학에 접근한 본질적 목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학...
철학이라는 단어가 위압감을 주어 감히 다가기도 힘든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군중이 만들어 놓은 불안심리에 편승해 다가가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인연의 경로를 타고 필요에 의해 철학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학창시절, 체계적이진 않았지만,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했다. 그 생각이 줄기를 치고 계속이어져 다른 어떤 것과의 연관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할때 쾌감을 느꼈었다. 파편화된 이 생각들을 어떻게 하면 정리하고 본질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만난 것이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한 순간에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기 보다는 수 많은 고민의 세월이 쌓여 '철학'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철학과 관련해 많은 책을 읽고 배웠던 것은 아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큰 개념에서 소개한 책들을 몇권 읽었을 뿐이다. 그 경험이 어쩌면 지금도 철학에 대해 계속된 관심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을 보고 한 동안 응시했던 경험이있다. '이 사물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이 물체는 어떤 용도로 사용될까?' 등등에 대한 고민을 했다. 사물의 용도를 정해놓으면 그 사물은 그 용도로만 사용되지만, 그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게되면 그 사물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틀(Frame)을 깼기 때문에... 철학은 이런 이치로 인간의 삶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낯설게 해주는 힘이 바로 철학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측면에서 철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해주며, 익숙한 것들을 새롭고 낯설게 볼수 있는 관점을 선물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면 더욱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철학과 사랑은 서로 공생할 수 있을까?
문득 든 생각이다. 단순하게 조금은 차가운 느낌을 품고 있는 철학이 과연 '사랑'과는 어떤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관점을 대입해보면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끊임없이 익숙하지 않은 감정으로 만날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는 모순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어느 순간 익숙해졌을 때 철학은 냉정하게 상대방과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별보다는 그냥 같이 사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철학은 이 점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삶을 이야기하며 차갑게도 이별을 선택하게 한 인간의 살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을 외면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몇몇 책들을 읽은 후 이 책을 읽었다. 여전히 쉽지 않게 읽혔다. 각 시대의 상황과 철학자들을 가볍게 소개하는 내용들이었지만, 가볍게 읽히진 않았다. 어쩌면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바탕으로 철학을 소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게 익숙하지 않은 점도 더러 있었다. 소설이 진행될 수록 점점 자주 바뀌는 시점 때문에 조금은 복잡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도 봤던 기억이 있다.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책이 더 나을 것이다.

앞으로는 '생각하는 사람'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반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외우고 그것을 답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시골에 있는 어느 작은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매우 간곡히 정독하기를 말씀드리고 싶다. 더 크게 생각하고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철학을 어렵게 보지말고, 일단 다가가 철학에게 말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2015-10-26

book_ZERO to ONE 제로 투 원-Peter Thiel 피터 틸





스타트업(Start Up)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과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물론 미국 스타트업의 문화와 환경이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스타트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보며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해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혁신'을 위해 독자들 스스로가 '생각(Think)'하기를 당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스타트업들은 아마도 '혁신'과는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경쟁이 왜 상극인가?' 그리고 '긍정적 독점'의 의미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난 뒤, 저자의 이력을 보다가 '철학'을 전공한 부분이 눈에 의미심장하게 들어왔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철학을 바탕으로한 '생각하는 힘'이 영향을 주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들이 왜 '인문'이 중요한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기를 이 책이 넌지시 일러주려했던 것은 아닐까?
 
실패에도 두 종류가 있다. 실패를 통해 도약할 수 있는 실패와 어떤 도약도 기대되지 않는 의미없는 실패가 그것이다. 스타트업이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지금의 시기에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스타트업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 단순히 취업이 잘 안되는 지금의 상황을 외면하기 위한 스타트업의 탄생은 어쩌면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사숙고되지 않은 사업 아이디어는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를 설명하기 가장 안성맞춤인 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기초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말 눈물을 머금고 혁신을 단행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대로 어찌되었든 버텨볼까? 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택은 자유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정당하게 짊어져야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 많은 스타트업들 중에서 과연 10년 뒤, 20년 뒤에도 튼튼하게 성장할 곳은 얼마나 될 것인가? 스타트업이 단순히 사회적 현상을 타고 일어나는 뜬구름 잡는 현상은 아닐것이다. 물론 그러한 환경이 새옹지마격으로 긍정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본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이는 이 글을 쓰는 본인이 어느 스타트업에서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웃음으로 응수하신 어떤 분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드리고자하는 저의가 깔려있기도 하다. 그래도 분명 좋은 스타트업들이 어딘가에서는 튼튼하게 성장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지금 우리에겐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은 혁신'들이 모여 '큰 혁신'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기도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에서는 '불명확한 낙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런 계획(Plan)없는 미래에 대한 낙관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아마 조금 남은 희망은 '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 조차도 계획하고 노력하는 이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라고 말한다. 미래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개척하고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저자는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말콤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나온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빌게이츠, 스티브잡스가 성공한 이유를 <<아웃라이어>>에서는 두 사람들이 태어나 성장했던 여러 사회적 환경과 기회들에 가중치를 두고 있는데, 피터 틸은 그보다 두 사람들이 계획하고 노력한 것에 가중치를 더 두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우연(운)'들이 모여 '필연'을 탄생 시킨 것은 아닐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황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좀더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어쩌면 저자(피터 틸)가 태어난 환경, 그리고 저자의 부모님들에 대해 알아보면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자신이 상당한 기회를 거머쥐고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한 의미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 자신도 모를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과거에 본인은 '자유'에 대한 영감에 아주 잠시나마 근접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상과 현실에서의 분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가?
나의 오감과 육감이 깨어있는가?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배우고 있는가?
나는 '행복'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위의 생각의 바탕에서 행동하며 고민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그래도 그냥 웃는다.

2015-10-21

Life_ A sparrow knocked out 참새가 기절했다.

교차로 사각지대에 서있는 볼록거울에서 "툭!"하고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난 곳을 보니 1차선 도로 중앙에 새 한마리가 떨어져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죽었나보다...... 
그런데 새의 주검을 보는 것도 모자라 다음에 일어날 처참한 광경을 또 지켜봐야하나?'

새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안 봐도 될 장면을 봐야만 하는 한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더 강했기에 들었던 생각으로 기억된다. 새가 삶을 마감한 건 어쩔 수 없는데, 다음에 몰려올 자동차들의 타이어에 새의 주검이 처참히 눌려지는 광경을 직면하고 싶었다.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직면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
새의 시체를 바라보는 도중 2-3대의 차가 새를 차의 중앙에 두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으악! 그냥 어떤 차라도 좋으니 마무리 지어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때쯤 또 한 대의 차가 새를 차의 중앙에 두고 지나갔다.

'어차피 저 새는 죽었어. 빈대떡이 될거야. 처참히 삶을 도로에서 마감할거야...'

이 생각을 할 때쯤,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장면이 보였다.
'어! 어!! 새의 시체가 움직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두 발을 도로에 딛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고 제정신을 찾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새는 한 동안 자신이 쓰러져있던 곳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동안 차가 한대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참 긴 시간을 고민했던 것 같다. '저 녀석을 살려야하나?' 밍기적 거리면서 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자세히 보니 참새였다. 참새를 인도쪽 화단에 올려줬다.
참새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그냥 니가 쓰러진 걸 봤고, 니가 두 발을 딛고 일어서서 도와준 것 뿐이야 참새야.
여기서 중요한 건, 참새가 "스스로 일어섰다는 것"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내 행동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일맥상통한 것 같다. 일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내밀만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다. 결국 한 인간의 삶은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열망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쩌면 지금 쓰는 이 글은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냥 아무런 고민과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면 아마도 참새 친구는 도로에서 어찌되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2015-09-30

book_ David and Goliath(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골리앗(David and Goliath: Underdogs, Misfits, and the Art of Battling Giants)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 놓여있는 위기상황을 단순히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재도약하는 계기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 책이 안내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긍정성에는 몇가지 전제가 우선해야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과 좋으면 더욱 기쁠 것이고 나쁘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욱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장애물을 만났을 때 단순히 기도를 한다고 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직면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인간지옥을 연상케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작은희망을 가슴에 품어야하는 이유는 인류의 역사는 그 '작은희망'의 따뜻함에서 '큰 희망'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통념'에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과옥조처럼 믿어왔던 고정관념들이 깨짐과 동시에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한 성공방정식에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정확히 직면할 수 있는 힘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타인이 살아온 삶의 과정이 아니라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내가 처한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소개된 '난독증'의 경우 책을 읽는데, 매우 어렵다는 위기상황이 주어지게된다. 보통 일반인에 비해 차이가 날 정도로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면, 이 경우에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이다. 예를들면 글자를 많이 읽어야하는 일들을 지양해야하며, 글자가 아닌 다른 것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고독'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일반적인 타인과 다른 길을 묵묵히 가야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졌고, 알고 있었던 삶의 방식을 깨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개척해야한다. 이런 힘든 과정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삶의 긍정성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과정을 묵묵히 수행한 사람들에게는 밝고 새로운 삶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돈이 너무 없는 것과 돈이 너무 많은 것은 어떻게 보면 양극단의 차이나는 삶을 살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양극단에 너무 치우친 바람에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불행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 돈이 너무 없으면 기본적인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돈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책에서 소개된 '뒤집힌 U자형 곡선'이라는 내용처럼 다양한 위기상황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긍정적 결핍'이 결여된 상태의 '너무 풍족한 상태'는 오히려 무엇인가를 열망하고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조건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의 어두운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권위'를 가진 분들이 그들이 가진 힘(Power)을 이용하여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힘을 행사'하기 이전에 갖춰야할 덕목이 있다. 그 힘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 바로 그것이다. 권위를 가진 사람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적절한 힘이 행사되는 것에는 여러 대중의 동의가 따르기 때문에 행사되는 힘이 대중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힘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부재한 상태에서 강압적인 형태로 대중을 밀어부치는 경우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는 리더를 어느 국민이 믿고 따르겠는가? 마치 부모님으로서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지 않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강압적으로 효를 강요하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대중이 리더에게 준 힘(Power)은 그것을 함부로 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깊게 헤아려 잘 사용해야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기본적인 사항마저도 잊어버리신 많은 분들이 기득권의 자리에서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유, 사랑, 행복...
 
 

2015-09-24

라식수술 및 라섹수술을 하기 전에 깊이 고민해볼 내용들.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기에 참고만 하시면 좋을 듯 싶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듯하다.

시력보정 수술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시력을 좋게하기 위해 사람들이 라식과 라섹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에, 그리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에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시력을 좋게하는 수술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시력을 좋게하는 수술을 하고 안하고는 한 개인의 자유일 수 있지만, 여러 정보들을 취합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고민하고 수술을 결정하는 분들이 얼마나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주변에서 라식수술이나 라섹수술을 하신 분들에게 잘 알아보고 심사숙고한 뒤 진행하셨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개인적으로 실망적인 답변들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눈EYE이라고요...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눈EYE이라고요'

지나친 불행에 대한 불안감도 인간이 삶을 영위한는데 독이 될수도 있지만, 적절한 수준의 불행에 대한 불안감은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내일이라도 불의의 사고로 내가 세상을 떠날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소중한 눈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경우에는 '보고 있음'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전기가 차단되어 온 집안이 껌껌한 미로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나에게 '볼 수 있음'이라는 선물을 선사한 눈의 소중함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관상학에서도 인간의 관상을 볼 때 눈에 상당히 높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너무나도 간단한 척도가 있다.
안과 의사선생님께서 안경을 쓰고 계시면서 수술을 권하는지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더 확실한 건 만약 그 안과 의사선생님의 자녀분들이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면 될 듯하다. 단 한분이라도 안경을 계속 착용하고 계시다면 이에 대해서는 각자 고민하고 판단하시면 될듯하다.

양심이 있는 의사선생님들이 더 많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movie_오피스OFFICE





자주 놀랄만한 장면과 공포감이 느껴지는 영화이지만 이 시대의 직장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현실의 어두운 장면들만을 보여줘서일까?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그다지 많은 관객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 '작은희망'이라도 영화에 담아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은희망'마저도 없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작은희망'마저도 없는 삶의 벼랑 끝에 섰음을 직면해야만 삶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온몸에 차가운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침잠하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그 아픔이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덕분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각각의 개인들은 그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상당히 많은 의미들을 전달해 준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본 영화중 괜찮은 영화중 한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사회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중에든, 무의식중에든 의식해야만한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개인이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나를 바라보는 타자들과 내가 '경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서로 엮여있다면 자유롭기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중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하는 경쟁구조 속에서는 서로를 응원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는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시대가 과거의 수직적구조와 중앙집중적구조에서 '수평적구조'와 '분산형구조'로 전환된다면 이야기는 다라지게 된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고 나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된다면 변화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무엇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경쟁하기 앞서 한 개인은 이 세계에서 소중한 생명이자 인격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된다.
우린 제대론된 '진정한 의미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서로 상생하는 경쟁에 대해 고민해봐야할 듯하다.


2015-09-22

디젤차 VS 가솔린차 (경제성과 관련한 선택에 관하여)

*과거에 생각했던 내용을 서술한 것이기에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참고만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과거에 국내, 국외의 여러 자동차들을 검색하고 모델명들을 알아가면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 있었다. '디젤차'와 '가솔린차' 사이에서 대중이 하는 선택의 양상들에 대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현재의 경우에도 경기침체의 여파때문인지 '디젤차'의 출시 소식들을 곳곳에서 듣게 된다. 왜 '디젤차'를 사람들이 원할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크게 '연료비용'과 '디젤차 특유의 힘'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힘보다는 '연료비용'에 좀더 집중해서 서술하려고 한다.

비교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같은 모델의 비슷한 옵션을 가지고 있는 차량의 가격을 비교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가솔린엔진'에 비해 '디젤엔진'이 약2,000,000원이 더 높았다. 그렇다면, '연료비용'에 중점을 두고 디젤자동차를 구매했다면 미리 선불로 2,000,000원을 지불한뒤 주기적으로 주입하는 '디젤연료'에서 미리 지불한 2,000,000원의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평균적으로 디젤연료가 가솔린연료보다 200원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럼 대략적으로 디젤차를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손익분기점(BEP)을 뛰어넘는데 걸리는 운행거리는 어떻게 될까? 

그래서 어느 자동차시승기를 하던 PD는 "디젤차의 연료효율에 중점을 두고 차를 구매하시는 것이라면 장거리운행 또는 자주 자동차를 이용하시는 분들에게 좋을 듯합니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2,000,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보통 자동차 값이 몇천만원하다보니 200만원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2,000,000원만 뚝 떼어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만원짜리 책을 사면 200권을 살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천원짜리 단팥빵을 2,000개 살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단순히 주유소에서 몇리터 주유를 하고 영수증에 찍힌 각 연료의 가격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차를 이용하는 용도 및 패턴을 고민하고 차량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모델의 차량인데 엔진만 디젤로 고른 소비자의 경우에는 이미 디젤엔진의 효율과 관련된 비용을 지불한 뒤 몇년에 걸쳐 그 혜택을 받는다는 걸 상기하면 좋을 듯하다.

물론, 기술이 발달하여 디젤엔진과 가솔린엔진의 가격차이가 좁혀진다면 위의 이야기는 다시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알려드린다.

2015-09-14

book_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커넥팅랩 지음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에 대해 간략하게 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사물인터넷(IoT)의 개념과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사물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할 법과 규범, 그리고 기술적인 한계점까지도 서술돼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사물인터넷에 대해 알고자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책이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에 대해 좀더 개론적이면서 체계적인 이해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사물인터넷'의 세상으로의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적당한 조언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가장 이해하기 쉽게 사물인터넷의 의미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다'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면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들의 영역은 어디서부터 우선적으로 시작될까? 또한 '사물인터넷(IoT)이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철학은 무엇일까?... 등등 여러 고민들을 책을 읽는 과정에서 하게됐다. 특히, 사물인터넷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철학'에 대해 많이 사색했다. 단순히 사물들이 인터넷에 연결됨으로써 인간의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을 넘어서서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결(Connect)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힘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내가 타인과 손을 잡고 있는 연결의 의미를 확장하여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연결이 가지고 있는 힘은 중앙집중적시스템이 분산형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개인과 개인이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는 아무래도 중앙에서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이 전체를 운영하기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한 스마트폰 등의 혁신적인 연결의 매개체들이 등장함으로써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힘들이 서서히 분산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플렛폼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할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분산형네트워크가 인류의 삶에 널리 퍼지기 위해 어떤 인프라가 조성되어야할까?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제러미 러프킨이 소개한 3가지의 인프라를 예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제러미 러프킨이 사물인터넷에서 중요한 3가지 인프라로 소개한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이다. 이미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은 우리의 삶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운송 인터넷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물류와 관련한 효율화 과정이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에너지 인터넷'이라는 부문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지형적 특징도 고려해야겠지만, '에너지 인터넷' 부문에서의 미래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명확히 말하기 곤란하다. 어쩌면 사물인터넷, 그리고 분산형 패러다임으로 가기위해서는 '에너지' 부문이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힘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물들을 많은데, 그것들을 작동하는 힘이 과거의 패러다임에 속해있는 화석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반쪽짜리 사물인터넷 시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재생에너지'에 대한 고민과 실행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어수선하게 느껴졌던 점도 있었다. 사물인터넷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사례들을 서술한 부분에서 더욱 복잡함이 느껴졌다. 이는 아마도 사물인터넷이 궁극적으로 내포한 본질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함을 일러주는 실마리인 것 같다. 사물인터넷으로 인해 달라질 시각적 효과들에 앞서 궁극적으로 사물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실행을 꾸준히 해나가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