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6

photo 손녀와 할머니 A granddaughter and A grandmother


Date taking a picture: 2009.11.16.
Title: A granddaughter and A grandmother(I guess)

I know that the East has Filial Piety. Filial Piety is called "Hyo. 효. 孝" in East.
I know the West does not have "Hyo. 효. 孝".
I took a this picture naturally.
The appearance of their BACK is very beautiful.



멀리보이는 두 명의 여인은 나이 차가 적어도 50년은 되어 보였다.
(손 잡고 오르막을 오르는 여인 두 명을 가리킴)

내가 추측하건데 손녀와 할머니?
모든 것을 떠나서 모습 자체가 좋아 보였다.

할머니 손을 꼭 쥐고서 오르막 길을 오르는 어여쁜 아가씨.

그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book 내 아이가 만날 미래-정지훈 지음






교육(education)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님, 교육자,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지면서 교육의 방식과 패러다임에도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흐름을 잘 읽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변하고 난 다음에 그 변화를 따라가서는 미래가 긍정적일 순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교육(education)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흐름을 읽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개인 위주의 학습방법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각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거기에 아이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 그렇게 해주지 못한다면 한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교육시스템이 변화하길 열망하기 보다는 개인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서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게 두렵고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좀더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다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타인이 옆에서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도 정작 본인이 깨어있지 못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학생 본인이 깨어있어야하며, 그 학생과 함께 호흡하는 부모님도 깨어있어야지 않을까?

지금의 교육시스템 속에 빠져서 과거로 퇴행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함께 걸어나갈 것인가? 각자가 선택하고 행동해야할 몫인 것 같다. 최근 지인 중 어느 학부모님께 이 책을 추천해드렸다. 지인께서는 책을 반정도 읽으시면서 내게 하소연을 하셨다. 책의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게 주내용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느껴버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육방식의 틀을 깨버리는 내용들이 많았을 것이고,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사례들이 등장했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힘들어도 직면하시면서 긴호흡으로 천천히 읽어나가시라고 조언해드렸다. 덪붙여 '교육(Education)이라 함은 가장 첫번째가 그 아이의 인성'이라는 것도 강조해드렸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놓치고 있는 내용이 아닐런지...

진정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2014-02-14

book 윤미네 집-전몽각 지음(photo book)





아버지가 딸이 태어나서 혼인하는 26년동안의 모습을 사진으로 엮은 사진집이다. 이 아버지는 세상에 없지만 딸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사진 속에 아로 새겨져있다. 책 뒷장의 사진 해설을 읽으며 다시 사진을 보니 아버지의 그 마음 이루 해아릴 길이 없다(사진을 먼저 본 다음에  사진이 해설된 글을 읽게되면 더 큰 울림을 느낄 것 같다). 잔잔히 내 가슴을 울리는 사진집이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중요하다.

하지만, 이 사진집에서 보여지는 가정의 모습은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라는 점에 맹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으신 전몽각씨는 당시 교수로서 어느 정도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계셨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게된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못살던 사람들의 가정은 어떠했을까?' 어쩌면 이 부분은 미디어가 보여주기를 꺼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어둠을 머금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 아닐런지... <윤미네 집>은 중산층 아래에서 허우적대는 가정의 구성원들에게는 너무 먼 이상향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상당히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당장 자신의 가정이 어떠한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가급적 그것을 빨리 깨닫고 나쁜 습관을 고쳐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깨닫는 게 늦으면 늦을 수록 불행은 악순환으로 연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Difference of Happy Family and Unhappy Family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Anna Karenina> written by Leo Tolstoy.

This sentence is first sentence of <Anna Karenina> written by Leo Tolstoy.

Someone said; "Happy families are more likely to be happy, unhappy people are more likely to be unhappy. So! In order to be happy, unhappy people need a lot of effort than happy people.

We haven't often heard this words in everyday life. Instead of, we often hear "Be Happy"
Is it really correct?

"Slogan is a reflection of the Complex"
I think that this word mean 'unhappy people to become happy people is very difficult'.
So, Could we know this WISDOM first? and Would we try to be happy?

Need a long-term vision in order to be happy.


book 재무관리-김종길 지음






개인적으로 <재무관리>라는 책을 통해 삶의 태도(attitude)에 대해 배웠다. 물론 경제에 대해 좀더 심도있게 배우기도 했다. 특히 파생상품(Derivative Product)관련해서.

약1100페이지, 대충보거나 건너뛴 주제들을 빼면 약1000페이지를 공부했다. <재무관리>를 공부하다 문득 떠오른 게 옛날 학생 때 수학교재로 썼던 '수학정석'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학원에서 선수학습을 하였기에 정석을 쉽게 봤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이때 과감히 결단을 내리게된다. '일단 교과서 문제나 제대로 풀어보자!' 다행히 교과서를 마스터하게되니정석 책을 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때, 그만큼 기본(basic)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혼자서 학습하던 습관이 <재무관리>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혼자 학습하면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태도attitude를 만들어갔기 때문에. 물론 태도와 결과 모두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결과보다 태도attitude와 과정process 에 주목하고 싶다. 지나치게 결과에 치중한 나머지 과정이 등한시 되면서 여러 방면에서 문제들이 양산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1페이지가 넘어가면 언젠가 이 책의 마지막장을 본다. 하지만 오늘 1페이지도 안 넘긴다면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태도attitude는 미래에도 내게 계속 영향을 미친다'

이 생각을 하며 결국 마지막장을 넘겼고, 그 순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감정을 느꼈던 이유는, 이미 공부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상을 느꼈기 때문에 마지막장을 덮으며 그냥 미소를 한 번 지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께는 강의와 함께 공부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강의를 들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겐 어렵기도 하고 상당히 많은 수식과 논리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강의를 통해 수월하게 공부를 하셨으면 한다. 큰 숲을 보는데, 강의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한 강의의 경우, 쉽게 잘 설명해주신다.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학지식만 있다면 저자의 강의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나 자신의 노력에도 미소를 보낸다.


2014-02-11

book 비트코인Bitcoin-김진화 지음






세계의 경제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필명을 쓰는 사람(들)에 의해 비트코인(Bitcoin)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계의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를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위가 의미하는 바는, 소위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1%사람들의 탐욕이 99%의 사람들을 착취하는 불공평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배경에서 Bitcoin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면 비트코인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의문인 것은 '왜 Bitcoin의 창시자인 Satoshi Nakamoto는 모습을 드러내 놓지 않는가?'이다.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익명으로 존재하는 것 때문에 Bitcoin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Bitcoin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사회게 긍정적인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단순히 투자(투기)적 관점에서 집중하려는 사람들로 크게 양분되는 것 같다. 이는 아직은 Bitcoin이 안정궤도에 오르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은행Bank은 고객들의 예금을 받으면서 고객에게 일정한 이자수익을 주고, 고객에게 예금 받은 돈으로 다른 고객에게 대출이자를 받으면서 생기는 차익을 통해 운영된다. 이는 은행Bank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며 의무였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임무에 은행이 과연 충실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사건으로 나타난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을 살펴보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은행Bank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중앙집중적으로 운영되는 수직적 구조의 견제자로 비트코인Bitcoin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은 P2P방식의 수평적 구조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여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 점에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충돌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내 예금에서 내 돈을 빼쓰는데, 왜 수수료를 내야하지?' 물론 ATM기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에 대한 수수료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수수료가 높게 책정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 비트코인Bitcoin이 들어오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수수료 경쟁이 붙게 될 것이고, 은행들은 수수료를 내려야만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직접 Bitcoin을 사용해보면서 느낀 점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탐구정신만 있다면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일단은 어르신들이 가상화폐(Virtual Currency)의 개념을 이해하시기 힘드실 것이고, Bitcoin으로 거래하는 일련의 과정에 숙련되기에 왠만큼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편리한 점이 있다면,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느 단체에 기부를 하는 과정에서 내 정보가 노출되지 않았으며, 상당히 빠른 시간동안에 기부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카드결제를 시도했다가 2-3번 그 과정을 반복해보신 분들은 Bitcoin의 신속성에 조금은 놀라실 것이다. 최근에는 어느 카페에가서 차tea를 마시면서 Bitcoin을 통해 결제를 해봤다. 상당히 빨랐고 유용했다. 다만 결제하는 과정에서의 미흡한 점도 있었다. 매장에서는 원화단위로 QR코드를 생성하여 그 QR코드를 읽어 결제를 하는 방식인데, Bitcoin가격이 어느 가격에서 환산된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미흡했고, 결제자의 스마트폰에도 원화단위로 환산된 금액이 동기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애플Apple은 Bitcoin과 관련된 앱App을 모두 지웠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내막은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Bitcoin이 안드로이드Android 스마트폰에서만 서비스된다는 점이 불편할 것 같다. ios(통합,폐쇄형)vsAndroin(개방형)의 본질적 차이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지만, 모든 스마트폰 운영체제에서 Bitcoin이 사용된다면 비트코인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Bitcoin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와 경제가 상당히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점을 상기해봤을 때, 현재 정치권에서 Bitcoin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부분도 여전히 미지수이다. 어떤 나라는 비트코인을 공식화폐로 인정했지만, 화폐인정을 거부한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2014-02-05

documentary_ History of Sex 성의 역사

성의역사 History of Sex(히스토리채널 방영)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기본 욕구일 수 있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 무대 뒤로 밀려버린 느낌이 든다. 식욕이야 우리가 매일 무언가를 먹어야만 활동을 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는 충족되어진다. 수면욕의 경우도 물론 야근이 군데군데 포진하고 있기에 옛날보다는 피로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충족된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했던 섹스sex라는 영역에서는 인간이 제대로된 길을 개척해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이 다큐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섹스에 대한 욕구가 극에 달해서일까?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체재'의 개념에 걸맞게 섹스에 대한 욕구가 그나마 자유롭게 충족되는 부분이 식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선지 요즘 여러 미디어에서는 먹는 장면들이 많이 보여지며, 그걸 보면서 대중은 대리만족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건 섹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의 반증인도 모른다.

학창시절 들었음직한 '인간vs동물'이라는 주제에서 인간이 가진 '이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동물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이라는 것. 이를 바탕으로 동물들의 성생활이 너무 무분별하다는 이유로 인간은 너무 본능에 이끌려 섹스하는 걸 절제해야한다는 논리가 튀어나오게 된다. 하지만 과연 동물들의 성생활이 난잡한지에 대해서는 동물들에게 답을 듣지 않고선 인간 스스로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짝짓기 기간에만 섹스를 합니다."라고 어느 누군가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간과 동물 각각의 성생활 중 어느쪽이 더 낫다고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개인적인 관점을 피력해보자면, 현재 인간들의 성생활,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성에 대한 문화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본다. 상당히 어둠 속을 향해 질주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인간이 느끼는 섹스욕구는 '본능'에 의한 것인가? '이성'에 의한 것인가?
인간이 짝짓기 기간에만 섹스를 하거나, 또는 인간이 짝짓기 기간이 아님에도 섹스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것에 대해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깊게 고민해볼 문장이 떠오른다.


'금기될수록 그 욕망은 깊어진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핍이 자연스러운 결핍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핍이라면, 그로 인해 내가 주체적으로 내 욕망을 느끼고 표출하는 게 아니라면?...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성욕도 이와 비슷한 이치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성의 역사(History of Sex)에 대해 살펴보면서, '금기'라는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중세가 기독교적 윤리가 막강하게 자리매김한 이면에서는 성직자 등 여러 방면에서 문란한 성생활이 일어난 것을 보면 이 '금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욕망'이 수면위로 드러남을 알 수 있었다. 문명의 발달로 법과 제도, 종교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성욕에 간섭하게 되면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지나갈 수 있는 문제들을 더 큰 문제로 만들어 버린게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여러 상황들을 바탕으로한 고민들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 인간이 성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인지에 대한 이치를 깨닫고 어떻게 그것을 조절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해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좀 다르게 '문명사회'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아름다운 이성을 보게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성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그것도 성욕을 자극하는 모습의 여성을 보게되었을 때 긴장하는 것은 그 뒤에 섹스에 대한 욕구가 숨어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섹스에 대한 욕망이 사회적 기준에서 오해받거나 비판 받지 않기 위한 여러 방법에 의해 표현되는 건 아닌지...매혹적인 얼굴, 거기에 가슴과 성기가 가려진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런지...남녀불문하고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

이성을 볼때 성욕을 더욱 자극하는 건, 결국 가고자하는 종착점인 섹스라는 역에서 서로가 서로의 나체를 보게되는 상상이 아닐까? 서로의 성기를 보고자하는 욕망이 화려한 옷으로 가려져있기에 인간은 더 큰 성욕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건 아닐까?

섹스하는 그 순간의 느낌은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큰 다름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름을 만들어내는 건 각자가 다양한 인격체라는 "다양함"에서 느껴지는 야성적욕망 아닐까? 남자가 한 여자와의 섹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혼인이라는 제도의 '금기'와 다양한 여자와의 잠자리에 대한 '금기'에 대한 반항이 아닐까? (참 생각할 수록 내용이 복잡해진다)

지금까지 쓴 내용에 대해 나도 아직 제대로된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 여전히 섹스SEX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성의 역사>다큐 덕분에 인간의 섹스에 대한 역사를 알게되면서 내가 살고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할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청사진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도덕적으로 포장되어 또 다시 문명속에서 재 생산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무분별한 성생활은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성욕에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른 여러 역사를 보았을 때 인간의 욕심, 탐욕은 끝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욕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욕의 승화.
예술가의 욕망이 예술작품으로 표현되 듯, 인간이 느끼는 성욕을 무엇으로 재탄생 시킬 수는 없는걸까? 내가 느끼는 성욕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온전히 느끼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증가되는 성욕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연인사이에 서로의 솔직한 성적욕망에 대한 생각들이 소통돼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역사적으로 여성은 상당히 약자의 입장에서 많은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에 여성 본인이 느끼는 성욕이나 에로티즘적 감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그만큼 여성은 사회적 규제에 의해 성sex에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닌 여성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의미다. 여성도 인간이기에 섹스에 대한 욕구가 있을 것이다. 그 성욕이 여성 본인에게 제대로 인지되지 못하기에 안타까운 상황인지도 모른다.

다큐를 보면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의 성욕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헌데 그 기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좀 놀랐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여성이 과거 여성들의 역사에서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는지 알면 알수록 남성들은 힘들어지지 않을까? 물론 이런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지 않을테지만...남성들은 이미 기득권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성들을 위한 배려가 그리 크진 않을 것이다. 힘들수도 있지만 여성 각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에게도 변화하는데 한계점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이미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는 입장이기에...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섹스SEX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그냥 동물적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로 생각없이 행동하지 말고, 충분히 '성의 역사'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토론해보라고...어쩌면 이건 기성세대의 일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가 해주지 못하면 각자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어쩌면 이 글들이 여러분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다만 꼭 고민해보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으신 건 돈을 주고 성욕을 즐기거나, 무분별하게 섹스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도 다 그래'라는 이유로 본인의 행동에 대한 타탕성을 쉽게부여하진 마셨으면 한다. 내 주위의 지인 몇명과도 섹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도 다 그래'라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타당화 시켰다. 이런 현상은 충동적 행동이 먼저있고나서 그것들을 끼워 맞추려다보니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행동에 비판을 하고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을 바탕으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을 바탕으로 본능적 욕구에도 충실하면 좋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붉은 집에 들어가 새벽의 찬이슬을 맞으며 집을 향에 허탈한 발걸음을 옮긴 적이 없어서 생각이 복잡해 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섹스sex에 대해선 탐구하고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4-02-04

강의_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강신주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아니, 모든 분께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강의가 본인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모호함을 실제로 구체화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자본주의'가 '사랑'의 영역을 상당범위 침범하고 있는 현시대 속에서 어떻게 "사랑"을 지켜나갈지에 대한 지혜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강의는 상당히 감당하기 힘드실 수도 있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돌직구를 날리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이 강의를 보신뒤 현재의 이성과 싸울 수도, 그러다 헤어질 수도 있다.  혼인을 하신 분이라면 이혼도 할 수 있는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그만큼 강력하며, 진정한 사랑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측면은, 지금껏 깨닫지 못한 "사랑"에 대해 깨닫게 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으며, 자본주의가 "사랑"을 갉아 먹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이 상황을 잘 넘어갈지에 대한 준비운동을 하실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는 점이다..

강의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연사의 말을 옮겨보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면서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반드시 전제가 돼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공감하면서도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혼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사랑엔 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우는 이치인 듯하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 물건을 사는 순간 그 물건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는 이치처럼.

물론, 강의 내용중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연사는 이혼에 대해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는 점. 개인적인 생각에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의 이혼의 경우, 정말 상당히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위해 이혼하는 것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성인이 아닌)아이가 있는 상태에서의 이혼은 먼 훗날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연을 들으며 아쉬웠던 점은 연사가 "진정한 사랑"을 하시면서 강연을 했다면 더욱 청중을 공감 시킬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이 강연자도 과거 '혼인'이라는 제도에 들어가셨다가 다시 나온 경험이 있으셨다. 어쩌면 그런 고난을 겪은 다음에 연사가 느낀 바를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더욱 청중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섹스(Sex)에 대한 연사의 생각과 나의 생각도 좀 다른 점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이 강의는 특히나 여성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미묘하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이제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크게 들려옴을 느낀다. 이젠 남자들이 요리도 배우고, 여러 집안 일을 도우는 날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 많은 남자가 육아도 더욱 분담하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p.s. 강연 검색방법
"아트앤 스터디" 검색 후 "강신주" 또는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로 검색. http://www.artnstudy.com/  

2014-02-03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June 14,2005)


[출처]
http://news.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a prepared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delivered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한 결정 중에 가장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저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그다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방의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콜라병을 반납해서 5센트씩 모았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걸 좋아했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제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제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저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냐구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성인이 되어 제가 초점을 맞춰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저는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몇 달 동안 저는 무엇을 할지 몰랐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 저는 데이비드 팩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훌륭한 관계들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동안 해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몇 십 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죠.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니까요.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너무나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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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에 상당히 의미있는 연설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더 기억하려고 하는 "Have the courage to follow my heart and intuition"...

퇴직연금(확정급여형DB vs 확정기여형DC)

확정급여형
(DB; Defined Benefit)
영문표기 그대로 "내가 받을 수익(금액)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사용인(종업원)이 받을 금액은 고정돼 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미래에 정해진 금액을 종업원에게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이것은 회사에게 책임이 많이 가중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회사가 투자 등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여 종업원에게 고정된 금액을 지급해야하기 때문이죠.


확정기여형
(DC; Defined Contribution)
확정급여형(DB)이 종업원 입장에서 받을 금액이 고정(Fix)되어 있는 것이라면 확정기여형(DC)은 회사가 투자회사(ex: 미래에셋, 한국투자증권 등) 에 지급하는 금액이 고정(Fix)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말은 회사에게 돈을 받은 금융투자회사가 얼마만큼의 투자수익을 내느냐에 따라 종업원이 미래에 받을 퇴직연금이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확정급여형(DB)에 비해 어느 정도의 위험Risk이 내재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으로는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으로 미래 시점에 확정급여형(DB)보다 더 큰 수익을 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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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
장기적 관점에서(장기근속이 전제)우리나라의 경제가 호황을 맞을 것이라 긍정하시는 분이시라면 확정기여형(DC)이 적당하겠고, 그래도 안정적인 금액을 받고 싶으시다면 위험이 거의 없는 확정급여형DB이 적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