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 d'Adèle
Blue Is the Warmest Color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야기의 주내용이 동성애(레즈비언)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본질은 아닌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정체성"..."자기성찰"..."자기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소녀는 자신과는 어쩌면 다른 소녀를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토해내려고 애쓴다. 토해내려는 것이 무언지도 제대로 모른채 이 소녀는 방황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이 소녀의 방황에 대해 소녀에게만 책임을 묻기가 난감하다. 어쩌면 이 소녀의 방황은 너무 오랜 세월동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큰 이유일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녀(아델)는 '사랑'에서도 미숙함을 보이게 된다. 물론, 소녀의 나이가 극중에서 어린 것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소녀는 '외로움'과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 했다. 그래서 소녀는 몹시도 혼란스러워했는지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이 소녀는 방황하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하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은 혁신하기 힘들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엠마는 자신의 작품을 유명한 갤러리에 전시하게된다. 이미 남남이 되어버린 아델은 엠마의 전시회에 찾아온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아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엠마와의 추억에 의지한 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엠마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아델은 그런 엠마에 의지한 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으로서 만나 서로 사랑하길 엠마는 원했지만, 아델은 그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 그리고 사회가 만든 틀을 깨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되어 혁신한다는 건 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러함에도 끊임없는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해서 늦을 수도 있지만, 인생을 장기적 안목에서 봤을 때 더 오래 더 멀리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혁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자신의 기억에는 거의 없는 어릴적 가정환경을 직면하는 것이 아닐런지...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숙고해야지 않을런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영향은 더욱 발전 시키고, 부정적인 영향은 최선을 다해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로부터 경제적,육체적으로 독립 했다고 진정 독립했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와는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부모의 그림자는 자식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동성애(레즈비언)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인데 의미있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