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1

book_ Zorba the Greek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어 원제: 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이 고민의 주제는 인간의 전반적인 삶을 통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닌 오직 나의 내면에서 끓어오른 열정이 기본이 되어야한다. 그 열정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나의 깊은 내면을 직면해야할 필연성이 생긴다. 이는 나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초석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책은 그러한 삶의 고민의 과정에서 읽었을 때, 비로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눈에 보이는 제스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자신들의 내면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를(feeling) 자각할 수 있어야만 책의 글자들이 영혼이 되어 우리의 심장에 자유를 선물해 줄 것이다. 그만큼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 것이다. 정말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문화를 형성하고, 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정한 일반적인 도덕 또는 규범을 알고 있어야한다. 이런 사회구조의 틀이 인간의 순수한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자유'에 대해 세상에 외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주의자' 또는 '망상가'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를 외친 사람만이 현재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인식하여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나의 자유를 방해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열정을 각자의 내면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그런면에서 어쩌면 자유는 목표했던 '자유'라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여정 그 차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과연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물질적 자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궁극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일 것이고, 더 나아가 물질과 정신의 균형잡힌 자유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육체와 정신의 자유라고 바꿔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등한시하고 정신에만 몰입하면서 삶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섹스는 즐겁고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왜 억압되어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는 것이 되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삶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깊은 고민을 얼마만큼 했으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종교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어쩌면 잘 읽히지 않거나 그냥 읽힐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무언가에 얽매인 상태에서 책의 글을 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길 권하고 싶다. 얽매인 그것으로 인해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고자하는 진의가 오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인간의 삶이 보이지 않을까... 영화로도 만들어졌기에 영화도 봤는데,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잘 표현했다.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다시 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왜 고전(classic)이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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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문 중에서...]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성서에서 〈오늘 빛이 났도다〉라고 했더라면 사람들의 가슴은 그렇게 뛰지는 않았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 사상은 성스러워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세계를 정복할 리도 없었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의 사상은 한갓 정상적인 물리적 현상으로밖에는 기술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상상력(즉 우리의 영혼)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죽음의 겨울에서 태어난 빛은 아기가 되고 아기는 하느님이 되면서 20세기 동안 우리들의 영혼은 그 젖줄을 빨게 되었을 터였다.~

~조르바가 나를 돌아보았다.
「…두목, 당신은 믿으시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말? 믿어서 믿는 거요, 아니면 공연히 그래 보는 거요?」
「조르바, 그건 어려운 문젠데요. 믿는다고도 할 수 없고 안 믿는다고도 할 수 없겠는걸요. 당신은 어때요?」
「나도 믿는다고는 할 수 없겠어요. 죽을 때까지 그럴 겁니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나는 감동했다는 듯이 몸을 떨거나 웃어서 믿는 척했지요. 나이 들어 턱에 수염이 날 때쯤엔 그런 이야기를 무시했고 비웃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지금, 나이를 먹은 지금… 나이 먹으면 대가리가 물렁물렁해지는 걸까요, 두목.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믿기 시작했어요. 사람이란 참 요상한 거야!」~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예술이란 사실은 마법의 주문…. 예술은 우리의 오장 육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살인적인 힘을 충동질한다. 필사적으로 살인과 파괴와 증오와 타락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술은 달콤한 노래로 다시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다.~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지구의 네 가지 얼굴, 생자필멸(生者必滅), 이 모든 사실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조여 왔다. 해오라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여자가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서요?」
「아! 그거 풀렸어요.」 조르바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여자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다. 품질이 좀 떨어질 뿐이지요. 여자란 지갑을 보면 돌아 버립니다. 착 달라붙어 자유고 뭐고, 옜다 모르겠다, 모조리 남자에게 주어 버립니다. 왜? 마음 한구석에서 지갑이 반짝거리니까요.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에이, 이따위 이야기는 집어치웁시다.」~

~조르바는 껄껄 웃었다.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때 조르바가 고개를 들더니 감정을 밖으로 내쏟았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그는 이런 말로 쏟아 내었다.
「두목!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부정, 부정, 부정입니다! 나는 이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암, 나 조르바, 벌레 같은 놈, 굼벵이 같은 놈이지만 어림없고말고! 왜 젊은것은 죽고 늙은것들은 살아야 하나요? 왜 어린것들이 죽습니까! 아들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이름이 디미트리였지요) 나는 이걸 세 살 때 잃었습니다. 그래요… 나는 이 생각만 하면 절대로, 절대로 하느님을 용서할 수 없어요, 아시겠어요? 내 죽는 날 하느님이 내 앞에 광대뼈를 내밀면, 그리고 그 작자가 진짜 하느님이라면, 부끄러운 꼴 좀 볼 거예요. 그래요. 하느님은 이 조르바, 이 굼벵이 같은 놈의 눈앞에 나타난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동안 죽어 가는 여자는 베개 밑을 뒤지며 무엇인가 미친 듯이 찾고 있었다.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는지 여자는 트렁크에서 흰 뼈로 만든 십자가를 꺼내어 베개 밑에 넣어 두었던 모양이었다. 십자가는 오랫동안 부인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으로 몇 년 동안이나 다 떨어진 슈미즈, 벨벳, 그리고 누더기 같은 옷가지와 함께 트렁크 밑에 들어 있던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결정적인 병에 걸렸을 때만 듣는 약이라는 듯이, 먹고 마시며 사랑하며 재미를 볼 동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약이라는 듯이 여자는 그리스도를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

 ~「두목,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따사로운 밤공기 속에서 그윽하면서도 진지했다. 「…만물은 각기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떨렸다.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나는 가장 단순한 질문,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받은 셈이었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모르신다!」 조르바의 둥근 눈이 놀라움으로 열리면서 소리쳤다. 내가 춤출 줄 모른다고 고백했을 때와 표정이 똑같았다. 그는 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책에 쓰인 건 인간의 혼미(昏迷)에 관한 겁니다. 조르바, 인간의 혼미야말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있답니다.」
「인간의 혼미 좋아하시네.」 그가 실망했는지 발을 구르며 내뱉듯이 말했다. ~

~조르바의 침묵 때문에, 영원한 것이지만 필경은 역시 하릴없을 터인 질문이 다시 한 번 내 내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한 번 내 가슴은 고뇌로 가득했다.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얼마 후 그는 말을 계속했다.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뼈다귀에 가죽을 입힌 이 조르바 말입니다)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늙은것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자, 유식한 양반, 이 이야기는 하고 넘어갑시다.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진짜 여자에게는… 잘 들어 두시오,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건강하시오, 두목! 행운의 신은 눈이 멀었다고들 그럽디다.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무작정 사람들에게 달려간다나…. 그걸 맞은 사람을 우리는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요. 에라 모르겠다, 행운이란 게 무슨 빌어먹을 놈의 것인지! 우리는 행운 같은 거 별로 바라지 않죠, 두목? 어때요?」
「바라지 않지요. 조르바, 건강하고 봅시다….」~

~「나,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조르바의 필사적인 애정에 당황하고 말았다.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

~「…두목, 주무실 시간이군요. 칸디아행 배를 잡으려면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잘 자시오!」
「졸리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우리가 함께 지내는 마지막 밤이니까.」
「그러니 후딱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뒤집으며 소리쳤다. 「…맺고 끊는 데가 있어야지요. 남자가 담배와 술과 노름을 끊을 때처럼. 그리스 영웅. 그러니까 팔리카리처럼 말이오.
우리 아버지가 진짜 팔리카리였습니다.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 양반이 숨만 쉬어도 날아가 버려요. 그 양반 팔꿈치에도 못 미칩니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 입에 늘 오르내리는 고대 그리스 사람과 비슷했지요. 손을 잡으면 부서지도록 잡아 버립니다. 나는 이렇게 두런두런 이야기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울부짖지 않으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양반 입에서 사람 말 같은 말이 나올 때는 드물었지요.
악덕이란 악덕은 두루 갖춘 이 양반도 자를 때는 칼로 베듯이 잘라 버립니다. 한 가지 예를 들지요. 이 양반은 담배를 굴뚝같이 피워 댔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밭을 갈러 들로 나갔어요. 나가서 밭둑에 기대고 일 시작하기 전에 한 대 피울 요량으로 담배를 찾는답시고 쌈지를 찾으러 혁대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는데, 어럽쇼, 쌈지를 꺼내고 보니 비어 있더란 말입니다. 집에서 나오면서 담배 집어넣는 걸 깜빡 잊어버린 거지요.
 이 양반은 불같이 화를 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을로 내달았지요. 아시겠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이성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이래서 나는 늘 사람이란 참 묘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양반은 걸음을 멈추었대요. 부끄러워진 거예요. 쌈지를 꺼내어 이로 갈가리 물어 찢고 땅바닥에 팽개친 다음 침을 팍 뱉었다나. 〈더럽다, 더러워! 이 더러운 놈의 화냥것!〉 이랬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담배를 입술에 대지 않았어요.
두목, 진짜 사내란 건 이런 게 아닐까요, 잘 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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