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6

think_ the Idealist is the Realist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현재 우리는 "빠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빠름"의 문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생각(think)할 시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은 생각(think)한다는 것일텐데, 언제부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안타까운 건 생각할 여유가 있는 분들께서 그다지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생각하는(thinking) 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들이 많은 것 같다. 상상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는 생각의 주제들에 대해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주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 "원래 세상은 그런거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해버리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상당히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졌고, 그 고민의 깊이 또한 깊어졌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직면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인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 아닌 경우에는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나보다. 그냥 현재 사회의 틀(frame)을 깨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안주하는 경우들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떤 추상적인 실체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개념화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간단한 단어(word)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주의자가 설정한 목표(target)로 인해 이상주의자는 비로소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가 된다. 비록, 그 목표가 허황된 목표일지라도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현실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삶의 이상도 없이 주어진 사회시스템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려는 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능을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설정한 삶의 목표, 그리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내가 직면하고 뛰어 넘어야할 고난들... 그냥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인문학 체력 덕분인지 그냥 살고싶지는 않았다. 미래에 어떤 열매를 맺게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이 따뜻하게 요동치는 삶이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전히 그 다짐들을 어떤 일이 있어도 실천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깨닫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쉽다. 하지만 잡초와 돌덩이가 무성한 곳을 길로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강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내 열정이 향하는 목표가 제대로된 목표인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고민하여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민도 필요하다. 여전히 고민의 연속이고, 여전히 고독감 속에서 직면하는 것들은 익숙하지 않아 불안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들에 대한 생동감이 한 인간의 굳어져 있던 심장에 온기를 선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이 하는 방법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름(difference)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마치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절대 지혜를 얻을 수 없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현실주의자(Realist)라는 말보다는 이상주의자(Idealist)가 여전히 듣기에 좋다. 남은 뭐라할지 모르지만, 이상주의자라는 말에는 현실주의자가 온전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단, 이상주의자가 그 이상을 실현해내기 위해 실천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필요할 것임은 당연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