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6

book_서양미술사-이은기,김미정 지음





(본인이 그동안 읽었던) 미술사를 다룬 몇몇 책들은 단순히 '시대적 흐름'에 따라 미술작품들의 변화하는 흐름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책은 좀더 흥미롭게도 미술작품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 그리고 각 시대의 '인간의 사고적 관점'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서술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그 이유가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의 관점을 어느 정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시대순으로 나열된 미술사 책보다는 이해하기가 용이했다. (책 크기와 무게 때문에 휴대하면서 읽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참고] 책의 첫머리에 '저자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이 책의 내용이 미술 실기 전공자들에게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 창작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환기시키고, 인문 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인간의 사고와 시각이미지의 밀접한 관계를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그냥 그림이 좋아 작품을 보고자 하는 애호가들에게는 작품에 대해 좀더 면밀히 접근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미지(Image)란 무엇일까?... 요즘 고민중인 주제이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대표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미디어는 어떤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어쩌면 우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의 관점을 아무런 비판없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내가 보는 세상이 마치 온전히 내가 느끼는 관점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이미지와 상징물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동굴벽화에 남겨진 이미지, 그리고 대표적으로 중세시대엔 종교적 권위를 내포한 여러 이미지들이 생산되었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이미지를 생산해내던 예술가들은 예술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적 관점보다는 자신에게 자금을 공급해주는 이의 관점을 화폭에 담아내는 데 더 치중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어떤 예술가는 끊임없이 '혁신'과 '변화'를 캔버스에 담아내려고 노력했고, 그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점점 누군가에게 종속되기 보단 한 개인이 자유로운 위치에서 느끼는 관점을 바탕으로 캔버스에 표현해내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론 지금의 자본주의에 속해있는 예술가들의 경우, 우리 눈에 보이는 주종관계가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엄염히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에 의해 자신의 주체적 관점보다는 돈의 힘에의해 붓터치가 조종당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된다.

현재 생산되는 예술작품들 중에서 100년의 세월을 이겨낼 작품은 과연 몇개나 될 것인가?
결국 예술의 본질은 인간을 향할 것이고, 그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있어야만 긴 세월의 흐름을 뛰어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서양미술사를 접하시려는 분들에게도 이 책은 어려움 없이 읽힐 것 같다.


2016-06-11

book_어떻게 살 것 인가- 유시민 지음





죽음에 대해서…
그것이 자연의 법칙에 의한 것이든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든,
‘죽음’에 대해 직면하는 순간 우리들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간의 나약한 어느 지점 때문에 ‘죽음’에 직면 했다가도 어느 순간 ‘죽음’을 망각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성에 젖은 삶을 살게된다. 삶의 주체성에서 벗어나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그냥 살아가게 된다.

손주, 손녀로 보이는 아이와 걸어가는 노인을 응시한다.
‘저 노인도 젊었을 때가 있었겠지?…’
지금 이 순간 나도 늙고 있는데, 늙는 만큼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을까?
내일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 했을 때 나는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을 하지 않으면 심신은 편하다. 존재가 가벼워지고 군중에 묻혀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다. 하지만, 이런 안정감도 잠시뿐이다. 가끔씩 느끼는 고독을 직면하는 순간순간 마다 언젠가 나도 혼자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슬금슬금 심장에 노크를 한다.
그러나 고민을 하게 되면 심신은 힘들어지고, 나의 존재까지도 점점 무거워지면서 불안정과 불균형 속으로 빠져든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그 고민의 바탕에서 행동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단순하고 맹목적인 희망보다는 현실의 냉혹한 면도 저자는 독자에게 보여준다.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내가 무엇을 할때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찾아야한다. 사회가 주입한 행복방정식이 아닌 오직 내가 오감과 육감으로 느꼈을 때 즐거운 일을 찾아야한다. 설령 내 선택이 틀렸더라도 그런 시행착오가 쌓이면서 결국은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저자가 정치계에 두 발을 담근 경험이 있기에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정치가 국민의 삶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친다. 현재 시점에서는 ‘정치와 연결된 경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그렇다고 모두가 정치계에 몸 담을 순 없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선거를 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국민을 대신하여 여러 정책활동을 수행한다. 가장 본질은 그나마 내가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선거’라는 제도가 있다는 점이다. 선거(투표) 이후는 각 개인의 판단에 따라 참여도의 비중을 달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먼 미래를 계획하려는 것도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내일 내가 어찌될지도 모르는 게 인간의 삶인데, 어찌 내가 10년뒤 내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 속에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들이 어쩌면 삶이 내게준 선물이자 열매가 아닐까싶다. 그렇다고 삶을 계획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의 그림은 그리되 그 그림을 너무 구체화하는데 애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복잡한 걸 아우르기 위해선 수많은 복잡함을 거쳐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어떤 목표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순하고 추상적인 '삶의 본질'을 잡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인간다운 삶을 위해 경제적 활동을 통해 얻은 적당한 경제력이 있어야한다.
나는 얼마의 돈이 있으면 내 삶을 행복하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까?
많을 수록 좋다라는 답변은 이미 돈의 노예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끔씩 생각이 날 때마다 연습장을 꺼내 숫자들을 적어본다. 일을 안하고 이자수익만으로 살기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하지?

고정관념들.. 그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산다는 것..
고정관념을 깼는지는 모르지만, 그 틀에 갇혀 사는 삶은 이미 너무 깊게 경험해봤다.
학창시절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짜여진 시간과 장소에서 나는 사회가 시키는 삶을 매우, 참으로 성실하게 수행했다. 내가 이것을 왜 하는지 누군가에게 묻진 못했지만, 학창시절 자투리시간에 읽던 신문과 시사주간지 그리고 동양철학을 통해 어렴풋한 ‘불협화음’의 느낌을 받았다. 쉽게 그 ‘불협화음의 느낌’을 응시하고 행동하진 못했다. 애써 핑계를 대면 ‘시간Time’이 없었다는 점..그 당시는 고민이 사치인 시기였다.

그 ‘불협화음’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우연과 필연의 결합체였을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내게 시간이 주어졌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힘 된 시기가 있었다. 전적인 내 의지도 아니었으며, 그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 뿐이었는데, 지금 와서보니 그 때가 진정 내가 자유로웠던 시기였고, 내 삶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행복에 대해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시기였다. 그 시기가 있었기에 이 책의 제목을 보는것만으로도 심장의 울림을 느끼며 읽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았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무엇을 느꼈으며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저자와 내가 같은 삶을 살진 않았겠지만, 어찌보면 인간이라는 본질은 크게 다름이 없음을 생각해볼 때 그가 삶을 통해 느꼈을 그 감정들이 다른 독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부분은 각자의 다양성에 맡기면 될 것이고…굳이 정치에 대해서 길게 언급하고 싶진 않다. 정치에서의 개혁과 혁신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우선은 나 자신의 삶의 혁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016-04-13

Life_가족이냐 직장이냐 묻는다면...

회사 회식자리에서 형보(가명)의 직장 상사가 말했다.

 "~가족들보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 후 이어진 상사의 말에서는 가족들보다는 직장 동료들과의 '끈끈함(?)'에 더 시선을 모아야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형보의 생각은 어땠을까? 형보는 상사의 사소할 수 있는 그 말들에서 뭔가의 가벼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 가벼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해야했다.

내가 본질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이 세상에서 숨쉬며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는 무엇일까?

이분법 논리로는 '가족'과 '회사'에서 선택을 하라는 의미인데, 참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선택지라고 형보는 생각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아마도 형보는 '가족'을 선택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맨 처음 형보라는 한 인간의 존재에서 시작된 삶이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그 가족이 바탕이 되어 사회에서 직업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놓고 봤을 때 가정이라는 바탕이 약해지게 되면 직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고 이는 회사의 수익에도 작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개인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미약하겠지만, 회사에 소속된 전체 직원들의 영향이 합해진다면 그 영향은 작은 것을 넘어 위협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형보는 생각했다.

그래서 형보는 상사의 생각이 자신과 다름을 인정했고, 그 다름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판단되어야하는 것이라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더 깊게 고민해야함을 깨닫게 되었다.

가화만사성....
이 말이 지겹도록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화만사성을 행하기가 그토록 힘들다는 반증이 아닐까?

book_생각의 지도-리처드 니스벳 지음


원제: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Richard E. Nisbett-



내가 사회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타인이 바라보는 관점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단순하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측면은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 어느 누군가는 안다는 의미이기때문에 그리 큰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예상하지도 못한 부문에서의 관점차이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보다는 큰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부류를 크게 동양인과 서양인으로 나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르며, 그 다름이 어디에서 귀인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설문을 통해 논증해나가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의 철학이 어디서부터 출발하게 되었고, 그 출발점의 다름이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원인들이 나의 생각(Think)에 영향을 미칠까?
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아마도 생각의 관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환경'은 흔히 우리가 '문화(Culture)'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단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크게 동양인의 경우 공동체에서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다보니, 한 개인으로서의 인격체보다는 소속된 사회에서의 조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서양인의 경우 인간관계에서의 조화보다는 한 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각기 다양한 개인들간의 이해를 위해 서로 토론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소속된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동양은 대게 농경문화가 주축을 이룬다. 특히 중국문명의 경우 농경문화를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서로 협업해야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그러다보니, 개인간의 다름에 대해 서로 토의하기보다는 서로의 융합을 위해 나와 다른 타인과 충돌을 일으키기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는 쪽으로 기운다. 동시에 이런 농경문화는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유리하다. 하지만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의 경우는 해안까지 연결되는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농업보다는 사냥, 수렵, 목축, 그리고 무역에 적합했다. 그리스의 이런 환경은 농경만큼의 협업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공동체의 응집보다는 한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은 개인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논쟁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대 중국인과 고대 그리스인이 상이한 형이상학적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인들은 주변 환경과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인 반면 그리스인들은 사물 자체에 주의를 돌렸기 때문이다.~"     [본문 P193 중에서]

전체적 맥락을 보려했던 동양의 관점,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보려고 했던 서양의 관점.
전체를 보려는 동양의 관점은 어떤 사회적 현상을 바라볼 때 결과에 대한 원인을 1가지로 단정짓지 않는다. 같은 결과이지만 각기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같은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의 관점은 원인과 결과의 명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결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할 때 상황적 이유보다는 사람과 사물 자체의 특성(본성) 때문에 결과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이점은 동양적 관점의 도움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이 책의 저자 또한 동양적 사고의 특성과 서양적 사고의 특성이 서로 조화를 이룰 필요하가 있음을 주장한다. 종합적이면서도 전체적 맥락을 보려는 동양적 사고와 분석적이면서도 사물의 본질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서양의 사고가 조화를 이룬다면 인류의 역사는 더욱 진보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문화와 환경이 인간의 생각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도 모르는 순간 내가 소속된 환경에 의해 내 생각이 지배 당하고 있다는 경각심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순간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나의 진정한 '자유의지'에 의한 생각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회적 영향과 군중심리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를 구분해내기 보다는 '인간' 본연에 대해 고민하고 또 '인간'을 알아가는 촉매제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6-03-27

book_핀테크 전쟁-브렛 킹 지음

 
 
 
원제: Breaking Banks-Brett King
 
 
 
돈의 추상성...
이 추상성과 스마트폰(Smart Phone), 이것을 연결하는 인터넷(Internet),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의 개념인 플랫폼(Platform) 또는 소셜네트워크(SNS; Social Network)의 조화가 금융의 역사에서 대혁신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 책은  '금융'과 '기술'의 조화가 앞으로 어떤 혁명을 가지고 올지 궁금한 이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나 금융업에 몸 담고 계신 분들에게 어쩌면 이 책 뿐만아니라 핀테크 관련 책들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현물로써의 돈(Money)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즉, 숫자로 표현되는 돈의 액수로 '현물의 돈'이 대체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제의 패러다임도 단순한 '현물로써의 돈'이 아니라 카드결제 및 인터넷뱅킹 등을 통한 결제의 패러다임으로 옮겨왔다. 여기에 스마트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등의 발전은 이러한 금융거래의 총제적인 과정에 대혁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은행의 수익구조는 가장 본질적으로 '예대마진', 즉, 고객의 돈을 받아서 그 돈이 필요한 고객에게 빌려주는 과정에서의 '이자율 차이'에서 오는 수익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은행을 통해 거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수수료'도 은행의 수익구조에 어느 정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수익구조를 고수할 경우 은행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금융기술의 발달로 '예대마진'에서 지켜온 수익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며, 은행을 통한 각종 거래에서 오는 수수료 또한 여러 금융기술의 발달로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의 수익구조도 큰 변화를 준비해야할 시기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거래하는 은행의 ATM기를 이용하러 갔다가 키오스크(KIOSK)라는 기기를 발견했다. 이 기기의 간략한 개념은 '무인정보단말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기를 통해 공휴일 정해진 시간에 화상통화를 통해 은행직원과 소통할 수 있고, 카드발급도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 이외에도 여러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지점'을 방문하여 은행직원과 상담하는 상황은 점차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즉, 은행 지점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며, 그것을 '혁신적인 금융기술'들이 대체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내용이었다.
 
결국, 어느 은행이 지금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결을 읽고 변화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손안의 컴퓨터를 통해 '초개인'들에게 소통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에서 개인과 은행의 관계는 각기 다양해야하며, 고객이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서비스를 적절한 시간에 제공할 수 있는 은행의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은행의 마케팅 분야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고객의 소비욕구를 자극하여 소비만능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고객의 재정상태를 관리하고 적절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가치(Value)'를 만들 수 있는 기업들이 선두에 설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할 단어는 '가치'와 '고객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정보들이 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객을 적당히 속이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 소비욕망을 부채질 하기 보다는 그 욕망에 적절한 이유를 대면서 조절해 줄 수 있는 금융기업들이 미래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프로바둑기사)의 대국을 보았다. 이는 인류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오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였다. 오직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하는 게 지금이라고 생각된다. 미래에는 알파고와 같은 기술이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많은 인력을 대체할 것이다. 정해진 데이터, 그 데이터를 분석하여 각 개인에게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여기에 그것을 적절히 컨트롤하고 의사결정해야하는 인력에 대한 수요는 거의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더 느끼게 된 것은 돈은 점점 더 추상화될 것이고, 그 추상화와 금융기술의 발달로 결제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며 이는 인류 역사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한다는 사실이다. 각국의 화폐에 정치적 이념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금융환경이 만들어 질지는 모르지만, 아마 지금의 상황과는 현격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미래는 우리 곁에 와 있고, 이것을 볼 수 있는 통찰을 가지고 준비하는 자만이 앞서갈 수 있는 게 지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2016-03-20

book_의사가 여기 있다 Doctor is present-김현정 지음




전반적인 이 책의 구성은 저자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전작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와 <<의사는 사라질 직업인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확실하진 않는데, 이 책은 저자가 신문사에 기고한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어떻게 보면 이미 출간한 2권의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내용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저자가 의료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다양한 상황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전작과 차별화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이미 의료시장까지 진출해버렸는지도 모를 지금...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의료시스템을 인간이 이해하고 슬기롭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전달해주는 느낌이다. 얼마 전 어느 의사분을 만나 이야기하면서도 요즘 의사들의 고민이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판단으로 환자가 수술을 하게되었을 때 몇백, 몇천 만원이 자신에게 돌아오는데, 정작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전만 작성해주면 몇 만원의 돈이 의사에게 들어오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는 돈을 많이 벌려고 의사의 길을 택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신호라고 판단된다. 의료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할 목적지에 대해 정말 심각히 고민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의사들 본인들은 수술을 가급적 받지 않고 치료를 하려고 한다...그런데 왜 환자들에게는 수술을 그렇게 쉽게 권하는 것일까? *물론 충분히 고민하고 권하시는 좋은 의사분들도 많이 계시다. 하지만, 인술을 펼쳐야할 의료가 눈 앞의 돈만 보고 환자를 등한시 한다는 것은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이 뭔가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이 문제점을 인류가 빨리 인지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서 의사선생님을 만나야한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0차의료' 즉, 평소의 식습관 및 운동 등 자신의 심신건강 위해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는지가 우선이다. 단순히 의사의 소견과 약만 믿고 우리 몸을 혹사시키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몸을 더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개인 각자가 해야할 일들이 있는 것이지 그것까지 의료에 모두 맡기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장면이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저자의 노고에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인술로 잘 치료해 줄수 있는 좋은 의사선생님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02-21

movie_The Danish Girl 데니쉬 걸





정체성.
한 없이 자유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하는...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한 번 밖에 없는 내 삶의 소중함. 이 무게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성정체성 뿐만아니라 인생의 여러 것들에 대해 더 심도 있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가 매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지만, 그 고통이 어쩌면 자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생각이 현실에서 실행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겉은 남자인데
속이 여자이고
겉은 여자인데
속이 남자이다...

단어가 이상하다.
남자, 여자
두 단어로 인간을 구분짓는다는 게 이상하다.
그냥
"인간"이라고 불러야할지도...

내가 보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냥 인간을...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2016-02-09

아이에게 불행을 전달하는 부모들.

아이에게 불행을 전달하는 부모들...
미디어에 비춰지는 (아이를 불행으로 내몬)부모들에게  비난의 손가락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볼 내용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이런 불행들이 대중의 눈에 보이고서야 깨닫는 것일까?
과연 이런 불행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것일까?

어쩌면 이 문제들에는 '사랑'과 '애증'이 뒤범벅되어, 인간을 궁지로 몰고가는 원천적인 이유가 내재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니고서야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처음부터 온기없이 대할 것인가?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에게 불행을 전달한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 불행을 전달 받은 게 아닐까?
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식에게 범행을 저지른 부모들이 거의 대부분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들도 피해자라고....' 맞다. 그들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건 불행이 대물림 되는 동안 어느 누구도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려는 목숨을 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눈에 아이의 불행이 목도 되는 순간에야 깨닫는...

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되는 부모와 자식의 어두운 이면들이 과연 지금 일어나는 시대적 현상일까? 개인적으로 '아니요'라고 답하고 싶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지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서 어두운 감정들은 깊게 포진하고 있다. 꼭 누군가의 죽음이 목격되어야만 거기에 큰 문제가 있을까? 마트에서 축구화가 사고 싶다는 아들에게 큰소리치는 아버지에겐 이런 어둠이 내재된 게 아니란 말인가? 내가 볼 땐 도진개진이다.

아이는 이 나라의 꽃이다.
함부로 해선 안되는 존재다.

사소하고 나약해 보였던 아이들에게 전달했던 작은 어둠들이 몇 백년 쌓이고 쌓여 지금 더 큰 어둠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매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영영 인간이 해결하지 못할 숙제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노파심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인간 삶의 모습은 일단 '특별함'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그런 소재들이 보여지는 것이다. 평범한 한 가정의 모습이 미디어에 비춰진다하여 그것을 볼 시청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뭐, 자신들이 사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미디어에 비춰지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2016-02-08

book_은밀한 갤러리-도널드 톰슨 지음


[원제] The $12 Million Stuffed Shark: The Curious Economics of Contemporary Art
- by Don Thompson




미술작품들이 거래되는 시장(Market)에서 작품의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 중에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면 그 또한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경제학의 공급자와 수요자, 즉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와 그 작품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 한 책이다. 하지만, 이미 미술품 거래시장(Market)에 깊게 들어와 자리를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이 책이 외면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터득하게된다.

참으로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투자대상인 '기업'의 미래현금흐름, 즉, 그 기업의 성장가능성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미술작품의 가격을 형성하는 바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닥을 잡을 수가 없다. 물론,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에도 버블이 생기는 것을 보면 주식시장이나 미술품 거래시장이나 그다지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어떻게든 가격을 높이거나 유지시키려는 세력과 그러한 문화적 고정관념을 유지시키려는 힘들이 공존한다. 여기에 인간의 욕망을 뛰어넘는 '탐욕'이 더해지면서 흔히 '수요공급에 따른 균형'이라는 인간의 합리적사고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되고 만다. 그런 이유에서 오히려 경제는 논리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곳에는 인간의 '본성'이 아주 깊은 자리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합리와 불합리가 공존하는 미술품 거래시장에서도 오랜시간을 살아 숨쉴수 있는 요소는 단연 '혁신'이었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이 담긴 작품'들은 혼란한 시대에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연단에 올라 시상식을 하고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초기에 수 많은 비판을 받다가 시간이 흐른뒤 그 가치들이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인상파 작품들의 화폐적 가치가 '본질'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예술가들이 왜 예술을 하는 것일까?'...돈을 벌기 위해서?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필요한 돈이 점점 커져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돈을 벌기위해 예술을 한다면 그 예술가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예술의 본질은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추구하려는 '자유'....자유가 밑바탕을 이루면서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모든 걸 뿜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그 과정들... 그 과정들 자체가 인간에게 보상을 주는 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자유 속에서 인간이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그 감정들을 캔버스에 표현해는 그 과정이 예술가에게는 축복이 아닐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미술작품들도 자본주의 질서를 외면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예술은 끈질기게 '본질'을 지켜내야할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 많은 갤러리들, 그 갤러리 벽에 걸려있는 여러 미술작품들...과연 100년 뒤에도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의 자본주의는 100년 뒤 후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평가될까? 나는 지금 삶의 본질을 잘 인지하며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오히려 책을 읽으며 수 많은 고민들이 더 떠올랐다. 이것도 어쩌면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받아들여야하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물품인데, 백화점이라는 의리의리한 공간에 전시된 물품과 동네슈퍼마켓에 진열되어 판매되는 물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은 그 물품자체의 본연적 가치를 소비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물품 자체가 아닌그 물품을 호위하는 주변의 화려한 색을 소비하는 존재인가? 책을 보는 초반에는 '미술품 투자'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 생각에 또 다른 의문을 던지게 됐다. 나 또한 망각했던 미디어의 모순된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에...

언젠가 시장은 본연의 모습을 찾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예술의 '본질'을 담은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015-12-27

book_ Sophie's World 소피의 세계 -Jostein Gaarder 요슈타인 가이더 지음


Author: Jostein Gaarder
Original title: Sofies verden



언젠가 가까운 지인께서 내게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다.
" '철학을 공부한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철학에 관심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초반에는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인지 이해를 제대로 못했다. 그런데 지인의 설명을 들어보니 '공부하다'보다는 '관심있다'로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됐다. 그 만큼 나 자신이 알고있고, 또 알고 있는 것을 실제 생활에서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철학을 공부한다'라는 것은 상당히 넓은 영역을 지칭한다. 그와 대비되게 '철학에 관심이 있다'는 학문으로서 철학을 '공부를 한다'라기 보다는 현실세계와 관련있는 부분을 철학의 영역에서 찾고 배우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단순한 말장난이될 수도 있겠지만, 지인의 조언 덕분에 '철학을 공부한다'와 '철학에 관심이 있다'라는 문장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본인이 철학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있고, 알고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철학을 공부하기보다는 현실세계를 경험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동반자의 역할을 하는 관계가 나에게는 맞았다. 철학에서 다루는 현학적 내용들을 가지고 술자리에 앉아 어떤 철학자가 무슨 말을 했다며 토론하는 것보다는 내가 현재 겪고있고 고민하는 내용들을 철학이 옆에서 조언해주는 관계가 더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의 삶과 함께하지 못하는 철학이 과연 철학으로서의 가치를 얼마나 함양하고 있을지에대해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험문제에 답을 달기위해 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철학에 접근한 본질적 목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학...
철학이라는 단어가 위압감을 주어 감히 다가기도 힘든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군중이 만들어 놓은 불안심리에 편승해 다가가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인연의 경로를 타고 필요에 의해 철학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학창시절, 체계적이진 않았지만,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했다. 그 생각이 줄기를 치고 계속이어져 다른 어떤 것과의 연관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할때 쾌감을 느꼈었다. 파편화된 이 생각들을 어떻게 하면 정리하고 본질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만난 것이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한 순간에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기 보다는 수 많은 고민의 세월이 쌓여 '철학'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철학과 관련해 많은 책을 읽고 배웠던 것은 아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큰 개념에서 소개한 책들을 몇권 읽었을 뿐이다. 그 경험이 어쩌면 지금도 철학에 대해 계속된 관심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을 보고 한 동안 응시했던 경험이있다. '이 사물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이 물체는 어떤 용도로 사용될까?' 등등에 대한 고민을 했다. 사물의 용도를 정해놓으면 그 사물은 그 용도로만 사용되지만, 그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게되면 그 사물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틀(Frame)을 깼기 때문에... 철학은 이런 이치로 인간의 삶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낯설게 해주는 힘이 바로 철학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측면에서 철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해주며, 익숙한 것들을 새롭고 낯설게 볼수 있는 관점을 선물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면 더욱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철학과 사랑은 서로 공생할 수 있을까?
문득 든 생각이다. 단순하게 조금은 차가운 느낌을 품고 있는 철학이 과연 '사랑'과는 어떤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관점을 대입해보면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끊임없이 익숙하지 않은 감정으로 만날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는 모순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어느 순간 익숙해졌을 때 철학은 냉정하게 상대방과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별보다는 그냥 같이 사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철학은 이 점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삶을 이야기하며 차갑게도 이별을 선택하게 한 인간의 살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을 외면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몇몇 책들을 읽은 후 이 책을 읽었다. 여전히 쉽지 않게 읽혔다. 각 시대의 상황과 철학자들을 가볍게 소개하는 내용들이었지만, 가볍게 읽히진 않았다. 어쩌면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바탕으로 철학을 소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게 익숙하지 않은 점도 더러 있었다. 소설이 진행될 수록 점점 자주 바뀌는 시점 때문에 조금은 복잡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도 봤던 기억이 있다.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책이 더 나을 것이다.

앞으로는 '생각하는 사람'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반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외우고 그것을 답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시골에 있는 어느 작은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매우 간곡히 정독하기를 말씀드리고 싶다. 더 크게 생각하고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철학을 어렵게 보지말고, 일단 다가가 철학에게 말을 걸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