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4

art_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SUH Yongsun)





'응집'이 아닌 '파편화'되는 느낌.

복잡한 세상의 여러 장면들, 그리고 그 복잡한 세상의 여러 장면들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섰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하는 흐름을 읽을 것인가?'
'세상이 변하는 흐름을 읽지 않을 것인가?'

이어폰.
언제부턴가 눈에 계속 들어오는 것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 각자의 귀에 다양한 색의 '이어폰'이 꽂혀 있는 장면. 이 장면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와 동시에 지하철 안의 풍경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는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왠지 모르게 각 개인들이 '파편화'되는 듯한 느낌...

이것이 어떤 실체인지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품 중 '생각중<In Thinking>'이라는 큰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핬다. 엄숙한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침 전시장에 서용선 작가께서 앉아 계셨다. 하지만,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물어볼 게 딱히 없어서... 아쉬운 게 있다면 '작품 잘 보고있습니다'라는 작은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는 점.




2015-04-18

미술관 옆 인문학2-박홍순 지음





여전히 고민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예술"과 "통찰, 직관"에는 어떤 관계가 숨어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나름의 실마리를 잡아낼 때까지 아마도 '예술'에 관심을 계속 가져야할 것 같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 속에서 숙고하는 과정 자체가 실마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답은 없지만, 그 답에 가기위한 여정자체가 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런지...

최근 어느 모임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을 받았다.
"~통찰과 직관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세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간에, 통찰과 직관에 관심이 있다면 제일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인간을 중심으로 파생된 인문, 사회, 철학, 역사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다지 큰 울림을 느끼지 못한 표정을 보였다. 관념적으로 '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그것이 행동에 옮겨지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해보였고, 예술이 내포한 가치를 크게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저 지금하고 있는 일을 잘하다보면 '통찰'과 '직관'이 생길 수 있다면서 '통찰'보다는 '지금하고 있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개인적으로 나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이 바탕을 이루고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본질'의 맨 밑에서 단순히 하는 일에 충실한다고 하여 '통찰'과 '직관'이 길러질까? 많은 고민을 하게된다.

두렵다.
내 삶이 익숙해지는 게 두렵고, 내가 끊임없이 내 삶을 혁신하지 않고 안정을 추구할까 두렵다. 불안할 땐 안정을 취하고 싶고, 다시 안정을 취하게되면 이상하게 불안해지고 싶은 게 인간의 감정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 같다.

하루에도 수 많은 TEXT들이 내 눈 앞을 지나간다. 그 것들이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하게된다.

<<미술관 옆 인문학2>>는 1권의 감흥을 뛰어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읽을만 했다. 간혹 책에서 소개되는 인물이 했던 말과 작가의 말이 어느 부분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아 이해하는데, 조금은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책에서 다룬 주제들은 튼실한 알곡이었다.

1.인간이란 무엇인가?
2. 성찰의 시간
3. 사랑과 성
4.역사와의 대화

각각의 주제들을 통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독서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더해지다보니 더러 책 읽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다.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읽어가다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게 됐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루는...

어쨌든, '예술'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예정이다.


2015-03-22

art 결혼 계약_호가스 (1743~1745)


결혼 계약_호가스 (1743~1745)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유행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연작 중 한 작품이며 혼인하기 전에 계약서를 쓰려고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 연작 그림의 마지막은 불행으로 마무리 된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또 다시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에서도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이런 불행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 없이 누군가는 경고했지만, 그 경고를 망각했고, 결국엔 고통을 겪은 뒤에야 그 경고가 기억나는게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혼인제도,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를 더욱 느끼게 된다. 첨부한 글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꼭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들 뿐만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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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 옆 인문학2>>-박홍순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잔인성은 육체적인 것에서 부터 정신적 고문, 무관심, 단순한 소유욕 및 사디즘에까지 걸쳐 있으며,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대부분이라기보다 진정으로 사랑을 베푸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임을 믿어야만 한다."~

~부부 관계에서 나타나는 억압, 자시에 대한 억압의 꼭짓점에는 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강제도 남성 권력의 굴절된 모습니다. 가정에서 여성이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육아와 가사 때문에 잃어버린 자신을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해서 회복하려는 모습인 것이다.~

~결혼의 파행적 모습과 가족 내의 억압이 상당 부분 경제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엥겔스의 지적은 경청할만하다. "일부일처제가 생겨난 것은 비교적 거대한 부가 한 남자의 수중에 집적된 결과이며, 또한 부를 바로 그 남자의 자식에게 상속시키려는 욕구의 결과였다.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여자의 일부일처제였지 남자의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다....~

~여성이 강제된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여러가지 장애물이 기다린다.~~특히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막막해하며 이래저래 남편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경제적 예속이 현실의 인격적 예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수 천 년에 걸쳐 가부장제 틀 속에서 형성된 온갖 사회적 규범과 문화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이 인격적 자립의 소중한 출발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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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치과 과잉 진료 수법 피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기사.

어느 누구 말대로, "특히 '교육자'와 '의사'는 돈을 보고 직업을 선택하면 안됩니다."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상당히 깊은 삶의 통찰을 지닌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지나친 자본주의는 의료계에까지 광풍을 몰고 왔다. 인술이 아니라, 돈을 보고 진료를 하는 병원들도 많아졌으니... 물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려고 의사하는 건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사에 소개된 치과의사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예전에 어떤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차라리 돈이 없는 게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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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people/newsview?newsid=20141201131208920 >

Tip '양심치과' 강창용 원장이 직접 밝힌
과잉 진료 수법 피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1. 진단을 받을 때는 세 군데 이상의 치과를 방문해 반드시 검진만 하러 왔다고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한다.

2. 충치가 있는 치아의 위치, 치료 방법 등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수첩에 메모한다.

3. ②의 과정에서 각각의 병원마다 충치 개수나 치료 방법이 다르다면 다시 검진한다. 대학 병원이나 믿을 만한 지인의 소개,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양심적이라고 평가받는 치과에서 검진받고 비교해 진료를 결정한다.

4. 치료비가 많이 나왔다면 치아에 맞는 보험치료를 알아보거나, 치료가 급한 치아부터 치료를 요구한다. 치과의사에게 여러 부분으로 나눠 시기를 달리한 치료 계획을 부탁하면 진료비 부담을 덜고 과잉 진료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5. 치과 선택시 단순히 환자가 많은 병원이라거나 진료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많다는 것은 과잉 진료를 통해 환자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진료비가 저렴한 것은 미끼 상품일 수도 있다. 환자를 유인해 박리다매 혹은 위임 진료(치료를 간호사나 기공사가 하는)하는 치과일 수 있으니 그런 치과에 갔다면 검진은 받되 치료 시작은 다른 치과와 비교 후 신중히 결정한다.

6. 치과의사가 다 똑같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환자를 영리 목적으로만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치과에 갔는데 마치 물건을 파는 백화점이나 시장에 온 느낌이 든다면 과감히 그 치과를 나오는 편이 나을 것이다.

7. 좋은 치과는 치과 실장이나 코디네이터가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며, 당일에 선납하면 할인해준다는 등의 핑계로 당일 치료를 강권하지 않는다.

8. 2, 3년에 1회는 정기적으로 치과 진료를 받는데도 갑자기 6개 이상의 충치가 있다고 한다면 과잉 진료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9. 방사선 사진 촬영 후 기존의 모든 수복물(크라운, 인레이 등) 밑에 충치가 있다고 단정 짓는 병원은 위험하다. 사실 크라운 등은 뜯어봐야 정확한 충치 유무를 알 수 있다.

10. 임플란트, 교정 등이 저렴하다는 광고를 보고 환자가 찾아가면 검사해보니 충치가 많다고 진단, 과잉 진료를 해 비싼 진료비가 나오도록 유인하는 병원은 주의한다.

11. 치아가 시려서 치과에 갔다가 충치가 많다고 해서 과잉 진료를 당하는 환자가 많다. 치아가 시리거나 아프다고 해서 모두 충치인 것은 아니다. 심한 양치질 때문에 치아 뿌리가 파였거나, 산도가 낮은 귤과 오렌지류, 콜라, 이온음료 혹은 뜨거운 음식 섭취시에도 시릴 수 있다. 잇몸 관리 부족, 스트레스 등 치아는 다양한 이유로 아플 수 있다. 시리면 무조건 치아가 썩었을 것이라는 오해만 버려도 과잉 진료를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12. 환자가 많은 치과, 중심 상권의 대형 치과, 지인의 소개로 간 치과는 믿을 만하며, 과잉 진료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조건 믿지 말라. 위의 사항들을 적용해보고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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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Poetry 아버지 -조진희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 무심결에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다시금 글자 하나 하나를 응시하며 그곳에 담긴 깊은 의미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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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조진희-


무심한 거리 한복판에
그루터기가 주저앉아 있다.

그동안 속으로 삼켰던 눈물은
그렇게 나이테가 되었나

그 잔잔한 파장이
나의 가슴속에
툭, 하고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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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

어느 오후, 따스한 햇살을 온 몸에 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가?'
종종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잠자고 있던 오감과 육감들이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 든다.

관성의 힘에 의해 사회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노력일 수도 있고,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위한 고민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궁극의 목적은 아마도 '삶에 대한 본질'을 찾기위함이 더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
식사를 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근처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어느 철학자가 인터뷰하는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겨울의 차가움을 뚫고 저 멀리 하늘에서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다. 온 몸으로 햇살의 기운을 받는 그 순간...10분정도를 공원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이 아늑함...
온 몸으로 햇살의 기운을 받은 내 감각은 살아 숨쉬며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 순간 만큼은 오롯이 깨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느낄 수 있다는 것(feeling)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하기도 한다.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자.
매일 순간 순간이 다르게 보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 한다.


2015-02-16

작은 힘은 곧 큰 힘이된다.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씩 나오던 물방울이 긴 밤동안 모여 가득 물이 고인다. 인간의 삶에도 이런 비슷한 이치가 숨어있지 않을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성공이라는 열매의 결과물보다 어쩌면 그 열매를 맺기 까지의 과정에서 흘린 땀방울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노력의 과정이 '일상'이고, 그 '일상'들이 모이고 응집되어 큰 열매로 변모하는 것. 어쩌면 물방울들이 모여 가득 고인 물의 집합체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 방울의 물방울'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사는 삶에서 '일상'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각종 기념일도 어찌보면 하루 24시간 똑같은데, 유독 그날은 뭔가 특별한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1년 365일 중 '일상'이 차지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관점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삶을 살아내야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는가?
지금 나는 느끼고 있느가?
내가 내일 죽더라도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할 것인가?
내가 100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할것인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고민하고 사색하는 과정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살아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고난을 겪으며 고통스럽다면 이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안정과 안락은 오히려 '죽음'과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물방울들을 응집시킬 것인가?
그리고 그 물방울들은 내 삶의 본질을 담아내고 있는 것인가?
끊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고민 끝에 답이 없더라도 고민하는 그 과정이 큰 보람이자 선물일 수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기쁨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고 뭔가를 깨우치고 있다는 기쁨.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이상이 있기에 현실을 더 정확히 직시하게되고,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딛고 일어서야할 것들이 더 명확하게 보이는 이치... 역시 철학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그 무엇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위기 속에서도, 힘든 와중에도 삶의 본질을 고민하고 그렇게 살기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15-01-31

book_ 미술관 옆 인문학1- 박홍순 지음





미술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또한 미술과 인문학을 융합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문학과 통섭되는 힘을 조금 느낄 수 있다. 다만, 내용의 깊이가 깊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한 곳만 깊게 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1권을 읽은 후 마지막 2권까지 읽고 있는 중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렇다할 결과물을 얻진 못했지만, 끊임없이 예술(Art)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가 좀더 범위를 넓혀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 철학과 역사 등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여러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가끔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렇다고 예술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느낌이 들어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세요'라는 말로 끝맺음 하곤 했다.

바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대인들은 느끼는 것(feeling)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심각히 고민이 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이성을 만났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망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과 해야할 일들을 해야하는 '여유 없는 삶'에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느끼고자하는 자율성에 대한 욕망은이 묻혀버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나는 무엇을 지금 느끼고 있는가?
나는 진정 살아있는 것인가?
수 많은 물음과 고뇌 속에서 인간은 삶의 희열을 느끼는 게 아닐까?...하지만, 갈수록 인간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예술가의 광기를 느끼고 공감하는 게 지금 당장은 내게 어떤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삶의 이치는 바로 당장 무언가가 맺혀지는 것보다 수 많은 시간동안 보이지 않게 쌓여온 노력의 결실이 인간의 역사를 변화 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래서 여전히 나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예술'을 강조한다.

특히나 이 글을 읽는 시골에 계신 청소년이나 학부모님이 계시다면, '예술'에 대해 한 번 깊이 고민해보시길 추천한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만으론 다가오는 미래를 제대로 대비할 수 없을 것이기에...특히 지방과 시골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학교 공부도 어느 정도는 충실히 해야겠지만,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2015-01-25

취업난 [就業難]

만성은 얼마 전 한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만성에게 수 많은 삶의 성찰과 좌충우돌이 함께 했다. 학창시절부터 만성은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각기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그 삶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들이 만성을 사색하게 했다. 왜?에서 시작된 고민들은 점차적으로 그 범위를 넓혀 예술, 철학, 사회, 역사, 문학, 과학 등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만성은 현재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고, 앞으로 만성이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됐다.

'한 번 밖에 없는 내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어느 회사 지원서의 논술주제는 만성에게 지금까지 고민했던 주제들을 응집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만성은 그 응집된 힘을 더 갈고 닦았다. '이젠 지금껏 해온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시기가 왔다'라고 생각한 만성은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직접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수직적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구조, 그리고 인간의 본질일 수 있는 '자율'을 추구하는 기업, 물론 '자율'에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율'은 좋아하지만, '자율'에 반드시 필요한 '책임'은 감당하기 힘든 나머지 궁극적으로 '자율'을 추구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만성의 도전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몇몇 기업들이 구호로 회사의 좋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막상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볼 때는 기업들이 내세우던 구호와는 다르게 그 사람의 스펙에 우선 순위를 두고 보는 경향이 많음을 느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하고 새로운 미래의 패러다임을 준비해야할 스타트업 기업조차도 사람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본질을 상당부분 놓치고 있다고 만성은 생각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던 내용이 그냥 스쳐지나가게할 말이 아님을 만성은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정부분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으로 작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만성이 추구하려는 삶의 본질을 꼭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직접 행동에 옮기기 까지는 어느 정도의 고난과 고민이 필요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재능과 스펙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원서에는 본질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삶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실천해왔는지를 담아내자!'
만성이 지원서에 대학교 이름을 적지 않다가 적절하게 사회와 타협한 부분은 대학교 이름을 적지않고 '대학교 졸업'과 '졸업학과'만을 적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직책과 관련한 업무에 대한 부분을 지원서의 앞쪽에 배치했고, 만성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려했던 삶의 성찰과정들을 일단 지원서의 중간이나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성은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라는 말을 새삼깨닫게 됐다. 만성이 생각하는 궁극의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서 극복해야할 것들이 더 많이 보였기에...

만성이 지원서에 본질적으로 담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삶의 성찰'과 그 과정에서 찾고자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이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분명 시대의 흐름을 앞서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성은 '자율'과 '자유'에 그만큼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지난 시간 삶을 성찰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조금이라도 느껴봤기 때문에 앞으로 만성에게 주어진 삶에서 더 많은 '자유'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지인은 만성의 지원서를 보고, "만성아 너 큰일 났다. 니가 지원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모르나본데...이렇게 쓰면 안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만성은 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내용을 지원서에 담았다. 물론 불안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대부분 가지 않는 길을 혼자서 간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 이런 도전을 해볼 것인가? 청춘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힘은 어쩌면 '모험'과 '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만성은 그 '모험'을 계속했다.

실패가 만성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어준 것일까? 면접에서도 만성은 회사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만성은 생각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이 물음이 만성에게 삶을 보는 통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를 살아도 깨어있는 삶, 그리고 그 하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삶...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루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삶...

결국 벼랑 끝에서 만성은 자신의 생각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열매를 맺게 된다. 삶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자신의 삶을 즐기려는 사람, 직원간에 직책이 높고 낮음을 떠나 서로 배려하는 회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여전히 이 회사는 실험중이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만성은 이 회사에서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여 만성과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려고 한다.

만성이 추구하려던 삶을 살 수 있게 회사가 선물해 줬으니, 그 회사와 성장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만성이 추구하려는 궁극의 꿈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삶'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기에...

취업난이라는 뉴스가 여러 미디어를 타고 대중에게 전달된다. 대중은 그 소식을 듣고 불안에 휩싸여 더욱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혈안이 된다. 과연 그것이 미래의 패러다임일까? 어쩌면 미래는 '불안정에 대한 내성'을 기른 사람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불과 몇백년 전과는 다르게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한 곳만 바라보면서 전력질주한다. 사방에 기회들이 널려있는데, 한 곳으로 몰려들어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장면을 보이고 있다. 그 기회들을 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역사는 '위기'와 '기회'라는 두 바퀴를 수레에 달고 여전히 진행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통찰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위기론이 세상을 불안의 늪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결국 기회는 그 기회를 볼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거머쥐는 것인지도...

'고민하는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2015-01-01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너무 생각이 많다"

지인들에게 종종 듣는 소리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하니? 그냥 편하게 살아"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한 때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하는 걸 잠시 쉬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멈추려 할 때마다, 습관 때문이었는지. 내 영혼이 죽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 보다는 '왜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하는 생각들이 파편화되면 그 생각에는 의미가 담기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하는 생각이 응집되는 순간 그 생각에는 가치가 담기게 된다. 결국 이런 과정은 인간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한시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생각(think)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파편화된 생각이 아니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깊게 파고들어 생각하는 습관이 앞으로의 패러다임에 매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깊게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상당히 재미있다. 또한 생각한 것들을 직접 체험을 통해 더 깊게 깨달아가는 과정이 심장을 더 생기있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주변의 청소년들에게도 학교 공부 뿐만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지 못하여 아쉽다. 정말 아쉽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이 좀더 혁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최근 들어, '고민하는 힘'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경험하고 있다. 얼마나 깊게 생각하여 이치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다양한 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생각한다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기회'와 '위기'가 수레바퀴의 양쪽에서 함께 했다는 것을 두고 본다면, 현재 우리가 느끼는 위기에는 기회가 함께하는지도 모른다. 이 '기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기회를 찾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인지도...

끊임없이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고민하는 힘'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여정 그 자체가 즐거움이자 보상일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과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의 패러다임이 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