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Life_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

상당히 가슴에 울림을 주는 글이다.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아내로부터 인정을 받는 남편'...
삶의 본질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것이 쉽지 않으니 가정을 하나의 수도원으로 비유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만큼 '가화만사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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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는 남편은 드물다.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더불어 온전한 인격속에서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하게 받아 들이고, 손과 발이 닳을 때까지 노동으로 밥을 벌어 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다가 마치 하나의 낡은 의복이 불에 타 사라지듯이 감사하는 생활속에서 생을 마감 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현인 것이다.
그렇게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야 말로 하나의 엄격한 수도원인 셈이다.
그 가정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은 이미 종신서원을 약속한 수도자들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수도원에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며 사랑을 수양하고 있다.~



[출처: <<산중일기>>- 최인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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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_ 서로 다른 예수의 모습

[그림출처: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지음]




이 두 그림은 16세기 후반(1500년 후반)에 그려졌었다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이 두개의 그림은 너무나도 반대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수의 숭고함이 다른 하나는 조금 무서우면서도 어쩌면 예수를 비꼬는 듯한...

헌데, 좀 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왜 이런 그림들이 그려졌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하나(숭고한 예수)는 신자들이 기도하는 제단에서 사용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거친듯한 예수의 모습,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내용)는 철저하게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예수의 삶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독실한 신자가 성경을 철저히 독해한 뒤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있다.

어쩌면 이 두 그림은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Story_ 내가 못 배워서

언젠가 K와 이야기를 하다가  기억 속에 너무나 뿌리 깊게 각인돼 버린, 한 마디...

"내가 못 배워서"

K가 살아온 삶은 충분히 가치있었다. 다만, K에게 '삶에 대한 지혜'는 있었으나, 지식(knowledge)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K는 글씨를 완벽히 아는 것 같진 않았다. 글자를 보면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의 짧은 배움을 가리기위한 행동인 듯 했다.

지식(knowledge)이 먼저일까? 지혜(wisdom)가 먼저일까?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에 끼치고 있는 영향들을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예전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유학생 시절에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해준 이야기입니다. 교수님이 가르친 학생중 우수한 학생들이 10년 뒤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사해보니 거의 다 감옥에 가 있었다고~"

언젠가 벌어졌던, 00대학교 학생이 자신의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 하는 사건, 일반인은 만져 보지도 못할 거액의 돈을 탈세하는 사건, 특히나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융범죄 등등(미국과 같은 나라는 금융범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한다. 예를 들면 징역100년 처럼). 어쩌면 모범을 보여야할 사람들이 낮에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멋진 행진을하고 밤이되어 어두워지면 페르소나를 벗고 새벽 이슬을 맞으며 어딘가를 거닐고 다니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사회에서 말하는 높은 지위를 가지신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J라는 분이 있었다. 간접적으로 지켜본 J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감동적이었다. J를 지켜보며 '우선 인간이 먼저 돼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육조혜능이라는 스님이 글을 모르셨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물론 글을 알았다면, 많은 불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타인에게 모르는 글자를 묻는 수고를 덜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H에게 조언을 했던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관련된)조언이 H에게 듣기 좋은 조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H가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조언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그리 긍정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H의 대답을 듣고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특히 H가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 태도에서 실망했었다).

솔직히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쟁하기도 바쁜데, 무슨 소리하냐며... 그런데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그 고민거리들을 미루면 미룰수록 삶의 방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고민을 계속 미루다 나이가 꽤 들었을 때 그 고민과 직면하게되면 엄청 괴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OECD국가 중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을 주목해야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상당한 악조건 속에 살고 있음을 직면해야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품고 있다.


2014-04-17

Lateness Life 지각인생- 손석희 Suk hee Sohn


예전에 어렵게 검색을 통해 손석희씨가 말한 내용을 찾았었다.
과거 그의 말들과 지금 그의 행동과 생각에 얼마만큼의 비슷한 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경험을 통해 그가 배운 삶에 대한 지혜는 유심히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좀 늦은 인생이라고 해도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런 삶의 태도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큰 열매를 맺는 게 아닐까? 이젠 지나치게 타인과 내 삶을 비교하며 살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해 살아낼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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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said By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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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 사랑할 수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 김정한

사랑할 수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


                                          - 김정한-


사랑에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습니다
그리워할 수 있을 때 후회 없이 그리워하십시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랑이 다가왔을 때 주저 없이 잡으십시오
망설이다가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찾기 전에 떠나갑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에는 목적도 없습니다
그저 사랑할 뿐입니다
사랑이 당신을 태워 어디에 내려놓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전혀 다른 두 가슴이 만나 하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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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주변을 보면서 든 생각...
"사랑이 하고 싶습니까?"
"혼인이 하고 싶습니까?"

대부분 이 질문을 하게 되면 '둘 다'라고 대답을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에 그 대답이 가볍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이 '혼인'을 하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혼인을 학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더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하는지도 모른다.

사랑...
사랑에는 정말 큰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에 꽃을 활짝 피우는 사랑...


2014-04-16

안숙선 명창

안숙선 명창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던 내용을 메모해 둔 게 있어 옮겨 적는다. 소리를 하기 앞서 '인격'을 우선시 했던 그녀의 스승의 가르침이 여전히 기억에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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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타고난 재능과 열심히 해서 소리를 잘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인성이 잘못돼 있으면 그건 예술이 순수하지 못하고 관객이 아마 싫증을 낼거다. 왜냐하면 관객은 순수하고 진실된 예술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예술인이기 전에 먼저 인격을 갖춰라 하는 선생님(김소희 명창)말씀을 제가 후진들에게도 그대로 하게되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기다리면 행복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이게 있어요. 그 속에 우리 인간사가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참고 기다려야지 그걸 못 참아 버리면 결국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에요?~"


[출처: 안숙선 명창의 어느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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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이유로 생활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흐트러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사회적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예술인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보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 자신의 삶에서 철저하게 원칙을 세우고, 올바른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내 몸과 마음이 올바르고 맑아야 타인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킬 수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예전에 어느 예술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바탕'이 제대로 다져진 뒤에라야 멋진 창조물이 탄생하는 것 같다.


2014-04-15

movie_ PARIS (2008 film)





과거에 어떤 분이 이 영화를 언급했었다. 메모를 해뒀다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봤다.
잔잔하다...그리고 애잔하다...인간의 삶이...

삶의 본질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건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라는 조금은 두려운 고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바로 이런 고민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에서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큰 울림은 없었다. 그냥 잔잔하고, 애잔한 마음이 조금 조금씩 들었다. 어쩌면 극적인 상황을 설정한 게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로 들었을 때는 영화처럼 기구한 삶이 실제 내 삶에 펼쳐졌을 때의 당혹감을 느끼고 싶진 않다. 언제든 내 삶에서도 영화에서처럼 비극과 희극이 교차되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살아내야할 필요성을 더욱 깨닫는다.


book 자기혁명- 박경철 지음





이 책은 결코 빠르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을 고려해가며 충분히 생각하며 읽어야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글로도 표현해내지 못한 그것을 알기위해서라도 이 책은 깊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좋을 것 같다.

책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대략 이렇다나 자신을 뛰어넘는 다는 것에 대해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행복에 대해새로이 다가올 패러다임에 대해가치관에 대해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자신의 삶을 혁신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부분부터 직면해야 할까?

현재 각자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오로지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에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라고 언젠가 누군가 말했었다. 이 말에는 인간의 삶을 직면하게하는 통찰이 숨어있다. 그렇다. 우리가 하는 생각과 삶의 방식들은 거의 대부분이 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부모로부터의 가치있고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무의식 중에 대물림된 부정적인 것들은 매우 많이 유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각자가 싫어하는 부모님의 생각과 행동들을 무의식 중에 자신들도 모르게 습득해버렸을 수도 있다는 자각. 바로 여기에서부터 '자기혁신'이 시작되어야하지 않을까? 그 후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는 각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면 될 것 같다. 다만, 명심해야할 것은 그 과정이 매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점들을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현재를 기준으로 각자의 삶에서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고민한다고 해도 어릴 적부터 각 개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주입된 영향들을 혁신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직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 단 한 분이라도 이 말에 느낀 바가 있으시다면 부모님과 직면하여 '자기혁신'에 정진했으면 좋겠다. 또 다시 당부드리지만,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어릴적 불행한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 계속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높고, 어릴적 행복하게 삶을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더욱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라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대부분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말에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적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한 사람들보다 수 천배, 수 만배, 수 억배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단시간에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진일보하는 마음으로 '자기혁명'을 위해 노력하는 게 어떨런지...

책을 추천해 드린 지인들께서 책이 좀 어렵다고 했지만, 그래도 읽어보세요. 뭔가 얻으시는 게 있을 거예요라고 말씀 드렸었다물론 저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은 그냥 다른 것이지 틀린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시_ 뼈저린 외로움- 이외수

뼈저린 외로움


외로움을 겁내지 말라.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의 뼈저린 외로움은 물리칠 방도가 없으리니.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 비록 그대가 마침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놈은 한평생 그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으리라.


- 이외수의《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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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이 없으면 산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외로움에 뼈가 시립니다.
너무도 춥고 아리지만 그 외로움 때문에 그리움과
사랑을 배우고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 때문에 예술이 탄생되고
둘도 없는 걸작품이 태어납니다.
외로움을 겁내지 마십시오.



[출처: <고도원의 아침편지>중에서...- Email을 통해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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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만남은 가급적 피하고,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나의 내면에 직면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외로움이 극에 치달을 때, 누군가 나를 찾아주면 그냥 그 사람이 고맙고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어둠과 밝음처럼 외로움이 있기에 반가움과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습관적으로 타인을 만나고, 습관적으로 타인과 이야기하고...그런 습관화된 것들로부터 안정감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그 깊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값싼 면죄부(免罪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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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을 가다 걸인에게 동전을 던지고, 방송에서 소개되는 사연을 들으며 ARS로 1,2천 원을 보내면서 뿌듯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깊은 곳에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과 휴머니티가 숨어 있음에 만족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스스로에게 값싼 면죄부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출처: <<시골의사 아름다운 동행1>>- 박경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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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마음에 얼마 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공감하는 마음을 자본주의가 대표하는 돈money이 아닌 다른 형태로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을까? 세상의 빠쁨에 휩쓸려 타인을 돕는 것도 '해야할 일' 목록에 적어두고 아무런 감정없이 얼마의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주면서 느껴지는 편안함... 갑자기 숙연해진다. 진정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그 아픔을 나는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