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30

Uber Review 우버 이용후기





Uber is a venture-funded startup and transportation network company based in San Francisco, California, that makes mobile apps that connect passengers with drivers of vehicles for hire and ridesharing services.
[Reference: http://en.wikipedia.org/wiki/Uber_(company) ]


UBER는 간단하게 말해서 Transportation(운송)에서의 새로운 서비스라고 말할 수 있다.
UBER서비스는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운송수단과 그 운송수단을 이용할 사람을 연결해주는 연결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각 나라마다의 법률과 문화 등 여러가지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이 힘들의 충돌이 커보인다는 생각에 UBER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됐다. UBER가 한국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UBER를 직접 이용할 기회를 가졌다.


UBER의 차별화

현재 한국에서는 고급승용차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양복을 입은 기사님께서 승하차 시에 직접 문을 열어 주신다. 차량에 생수가 구비되어 있다. 이미 등록된 카드로 자동결제가 이뤄진다. 그래서인지 일반택시 이용요금보다 약2배 가량이 비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 정도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이용하면 될테니. 그리고 차량에 탑승한 뒤에 승차한 차량의 위치가 Uber App상에서 계속 보여지기 때문에 늦은 밤에 안전하게 귀가하려는 목적에도 적합할 수 있겠다. 기념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Uber 차량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승장소

UBER는 현재 서울에서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출발지점이 서울의 번화가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광화문, 이태원, 강남을 중심으로 UBER의 차량이 스마트폰에서 검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pp을 작동하여 지도를 활성화 시키면 현재 Uber차량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출발지점이 서울 번화가로 한정되어 있지만, 도착장소는 어디든 가능하다고 기사님이 말씀해주셨다(기사님께 궁금한 사항을 여쭤봤음). 심지어는 (농담인지 모르지만) 서울 번화가에서 탑승하고 부산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Uber 크레딧

처음 UBER에 등록할 때 "할인코드"를 입력하면 "Uber 크레딧"이라는 포인트가 제공되어 결제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Uber크레딧이 자연스럽게 UBER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이 글을 쓰는 목적도 어쩌면 그런 동기가 부여된 측면도 있다). 이미 UBER에 등록되어 "할인코드"가 있는 사용자가 주위 지인에게 소개를 하게되면 그 지인이 UBER에 처음 등록할 때 소개한 사람의 "할인코드"를 입력하면 처음 등록한 사람, 그리고 소개한 사람에게도 "Uber 크레딧"이 제공되는 구조이다. 현재는 10,000-20,000원 정도의 Uber 크레딧이 제공되기 때문에 서울에서 적당한 거리를 이동할 때 한 번쯤 이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대략 10Km를 이동하는데, 처음 가입시 받은 Uber 크레딧 약10,000원을 사용해서 실제 결제한 금액은 약2,000원 정도였다. 참고로 이용한 차량은 Mercedes Benz S350 이었다.


처음 UBER에 가입할 때는 (모바일이 아닌) 웹Web에서 등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할인코드"입력하는 부분을 순간 지나쳐서 "Uber 크레딧"을 지급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UBER를 이용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다면 첨부해 드리는 할인코드를 가입시 입력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ttps://www.uber.com/


book_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도법 지음





언젠가 불교종단에서 어떤 직책을 놓고 스님들끼리 무력투쟁을 벌이던 모습이 미디어의 화면에 나왔던 적이있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법정 스님이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던 것 같았다. 아마 싯타르타도 그런 모습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종종 종교가 사회 속에 세습화 되면서 긍정적이지 못한 역할을 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매우 씁쓸하다. 비단 불교에서만의 문제의식은 아닐 듯 싶다. 종교가 인간과 사회 속에서 본질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왜곡될 수록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지 않을런지...

그런 사건이 있은 후 'MBC네버엔딩스토리'라는 프로그램에서 도법 스님을 인터뷰했던 것을 우연히 봤던 적이있다. 인터뷰를 통해 도법스님은 지금의 불교종단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말했다. 그리고 스님은 그 문제점들을 자기 자신부터 반성하기 위해 *탁발을 하면서 전국을 걷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탁발: [명사]<불교> 도를 닦는 중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 가장 간단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 당시부터 행하였다. ≒행걸.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멘토를 만나면 멘토를 죽여라."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는 이 말은 결국 타자에게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로 들린다.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는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물론,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내신 분들이 얻었던 지혜까지 죽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지혜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해서 적절하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강한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언젠가 석희의 100분 토론에서 종교인 과세논란에 대해 2주에 걸쳐 토론했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종교에 너무 지나치게 돈(money)이 개입되면서 종교는 종교 본연의 목적을 상실했고, 세습화되면서 그 세습화의 타당성을 찾기 위해 분주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종교든 그 종교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면 결말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진정 종교란 무엇일까?


===============
<본문 중>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밝히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루거나 회피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존재의 이유와 가치의 문제이다.~

~경험해 온 것들을 종합, 검토한 후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버릴 것은 단호히 버리는 싯다르타의 태도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승가와 계율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형성된 것이므로 당시의 사회배경과의 관계를 살펴야만 그 뜻한 바가 제대로 드러나게 될 것임은 평범한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출가수행의 목적을 잘못 인식하여 청정수행을 명분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와 사악함을 방관하고 회피하는 비겁함을 당연시해 왔다. 이것은 수행자들의 불행이다.~

~ 존재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끝없는 허무요, 고통이다. 존재 이유를 밝히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삶만이 진정 인간적이고도 행복한 삶이다. ~

==============


2014-06-28

movie_ V for VENDETTA 브이 포 벤데타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사회 또는 국가가 만들어진다. 거대한 사회가 원만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회에 속해있는 각 개인들이 지켜줘야할 적절한 규범들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엔 한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것을 기본으로 그 다양성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가 긍정적으로 살아 숨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사회와 국가를 유지해야한다는 목적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다양성과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규범을 통해 통제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극중 V의 대사는 깊게 숙고할 가치가 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ir government. Government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V의 이 말에는 국가가 본질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한 것을 개인들에게 일깨워주는 듯하다. 다양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국가는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국가가 무너지면 개인들이 무너진다는 공포를 조성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새로운 국가를 원하면 기존의 국가가 무너진다는 것을 두려워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니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하는 것 아닐런지...




V의 가면 뒤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국가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장 총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이 말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영화에서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4-06-27

movie_ A Girl at My Door 도희야





the Fact and the Truth may not be the same. Nevertheless It is important to hold the string of the truth.

fact(사실)와 진실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진실"의 끈을 잡고 있는 것에 대한 중요함.

극중 배두나씨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점은 Fact와 진실이 엇갈릴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경찰이라함은 사회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하며 그로인해 타인에게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의무 때문에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경찰이기에 앞서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출발점에 대해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2L생수병에 물이 아닌 소주가 담겨있었다는 것이 이런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Fact는 생수병인데, 진실은 소주...

극중 도희는 어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았다. 자신은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자신과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참 영민한 소녀... 어른들은 어린괴물이 되어버린 도희에 의해 Fact와 "진실"의 연결지점을 잘못 짚게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도희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위해 Fact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Fact가 꼭 "진실"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린 도희가 어릴적 받았던 상처에 있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는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까... 결국 그 상처들은 진심이 담긴 사랑이 치유했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랑이 보편적인 사회의 요구일 수 있는 이성적 관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먼저 사랑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이 여자 또는 남자였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런지...

요즘들어 자주 생각하는 단어가 "사랑"이다. (두루 여러사람을 사랑하는 것-종교적 관점의 사랑) 말고 진정 내 모든 것을 주고싶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대해서... 어쩌면 이 영화에서도 이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랑이 부재한 가정에서 자란 한 소녀. 이 소녀가 겪어야할 고통은 "진실"의 영역에 속하지만, 소녀의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 고통이 보이지 않다보니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한다. 소녀가 겪었던 고통이 수년간 쌓이고 굳어져 고름이 되어 터졌을 때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실"과 "fact"를 제대로 인지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괜찮은 영화다.
여러 삶의 여러 고민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든다.
이야기의 완성도도 높다는 생각이 든다.


2014-06-25

movie_ Phone booth 폰부스






과거 이 영화를 본 기억을 되살려 보니 '공중전화(Phone Booth) 안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정도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땐 긴장감 뿐만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었다. '어디선가 나를 감시하는 눈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되었으니...

인간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까지도 건드리다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던 영화. 마치 내가 그 상황에 처한 것 처럼 상상을 하면서 보니, 주인공이 느끼는 긴장감에 어느 순간 동화되어 버렸다.


2014-06-24

story_ (3)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까?- 부모의 뒷모습2

결국 C는 S에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더욱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도 '부모님의 뒷모습'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S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채 C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C는 S가 이야기 듣는 태도에 감동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S님께 제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어느 두 가정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가정은 부모님이 서로를 아껴주고, 위기가 왔을 때는 서로 힘이 되어 지혜롭게 위기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고, 다른 한 가정은 부모가 매번 다투고,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이미 답은 나와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을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S는 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처음에 말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죠"

C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생각에는 상당한 착오가 있어요. '어린시절에 행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나중에도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지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계속 불행하게 살거나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그러니 이것을 안다면,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과거에 행복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수 백배, 수천 배의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흔히 우리는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미 우리 삶이 행복하다면 굳이 "행복하세요"라고 입이 닳도록 반복할 필요가 없을텐데, 현실에서 실현이 어려우니 구호화되어 반복적으로 외치고만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 채 더 많은 노력도 없이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했던 사람이 해야할 노력과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해야할 노력에 엄연히 큰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를일이다. 불행했던 사람은 어쩌면 "행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노력하기 앞서서 가야할 길이 상당히 멀고 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고 먼 여정을 떠나는 것과 그걸 모른 채 좌충우돌하는 것과는 상당히 큰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낼 것 같다.

점점 S는 우리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C의 구체적인 설명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은 어땠는지 생각해봤다. S의 남편은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밖에 나가 돈만 버는데 집중한 게 아니라 집에와 남는 시간이 있을 때면 아이들을 돌봐줬고, 아이들 기저귀도 손수 갈아주었던 사람이었다. 그 때는 이런 남편의 행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몰랐는데, C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S는 남편에 대해 애뜻한 감정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소설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린 아들과 산책을 할 때, 아들은 저만치에 혼자 떨어져 걷고 아내와만 손을 잡고 걸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난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거의 확언하건데, 이 아이는 잘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어느 강연에서 말한 적도 있는데, 이 분의 이 말에도 상당한 통찰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이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라고 말한 것만 보아도 이 연사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큰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것은 논리적으로 수치화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간과한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보면, 욕설을 너무 지나치게 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욕설 뿐만아니라 매사 불평과 불만 그리고 냉소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개인적으로 이는 그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그 사람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욕설을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의 영향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를 보며 부모는 "왜 그리 욕을 하니?"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만난 어느 초등학생이 이런 말을했던 적이 있다. "제 친구는 너무 욕을 많이해요." "그럼 너는 그 친구처럼 욕을 안해?"라고 물으니 녀석의 대답에 얼음이 됐다. "욕이요? 별로요. 왜 욕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물었다. "너 부모님이 서로 싸우실 때 욕 안하시니?" 이에 대한 녀석의 대답은 더 대단했다. "부모님 안 싸우시는데요. 그리고 욕을 하시는 적을 본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놓치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으신지...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부모님"이 되는 건 쉬운 게 아닌지도 모른다.


2014-06-22

movie_ Blue Is the Warmest Color 가장 따뜻한 색, 블루


La Vie d'Adèle
Blue Is the Warmest Color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야기의 주내용이 동성애(레즈비언)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본질은 아닌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정체성"..."자기성찰"..."자기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소녀는 자신과는 어쩌면 다른 소녀를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토해내려고 애쓴다. 토해내려는 것이 무언지도 제대로 모른채 이 소녀는 방황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이 소녀의 방황에 대해 소녀에게만 책임을 묻기가 난감하다. 어쩌면 이 소녀의 방황은 너무 오랜 세월동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큰 이유일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녀(아델)는 '사랑'에서도 미숙함을 보이게 된다. 물론, 소녀의 나이가 극중에서 어린 것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소녀는 '외로움'과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 했다. 그래서 소녀는 몹시도 혼란스러워했는지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이 소녀는 방황하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하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은 혁신하기 힘들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엠마는 자신의 작품을 유명한 갤러리에 전시하게된다. 이미 남남이 되어버린 아델은 엠마의 전시회에 찾아온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아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엠마와의 추억에 의지한 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엠마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아델은 그런 엠마에 의지한 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으로서 만나 서로 사랑하길 엠마는 원했지만, 아델은 그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 그리고 사회가 만든 틀을 깨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되어 혁신한다는 건 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러함에도 끊임없는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해서 늦을 수도 있지만, 인생을 장기적 안목에서 봤을 때 더 오래 더 멀리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혁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자신의 기억에는 거의 없는 어릴적 가정환경을 직면하는 것이 아닐런지...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숙고해야지 않을런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영향은 더욱 발전 시키고, 부정적인 영향은 최선을 다해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로부터 경제적,육체적으로 독립 했다고 진정 독립했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와는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부모의 그림자는 자식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동성애(레즈비언)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인데 의미있게 봤다.


2014-06-21

movie_ Rules of Dating 연애의 목적






한 남자의 무분별한 성적 욕망이 어떻게 한 여인에게 상처를 주는지를 그린 영화가 아닐런지... 진정한 사랑의 바탕 위에서 욕망하는 성적 쾌락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성적 욕망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인간의 역사에서 탐욕과 성욕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을 놓고 봤을 때, 우리의 삶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쉽게 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계속 비겁한 모습을 보인다. 그 비겁함들로 인해 거의 모든 것들을 잃고난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는데, 안타깝다기 보다는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영화에서만 다루기 위해 꾸며낸 상상 속의 이야기인지가 궁금해지는....




2014-06-18

book 스트레스 없는 재테크 10가지 습관- 김재영 지음





축구선수가 멋진 기술을 관중에서 선보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본기"일 것이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고급기술을 사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책도 이 맥락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투자법에 주목하기 보다는 먼저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말을 여러 문장에서 보이지 않게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식투자를 통해 몇 배의 수익을 얻는 것 뒤에는 그 만큼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 감당해야하는 위험(Risk)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주식투자에 앞서 은행의 정기예금을 통해서 복리의 위대함을 체험해 보라고 권한다. 주식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에는 조금이라도 위험이 존재하며, 그 위험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의 정기예금은 아무런 위험 없이 이자수익을 얻게 해준다.

여기서는 일반인과 부자의 생각을 잠시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1,000,000원(백만원)을 연5% 정기예금에 넣은 일반인의 경우와 1,000,000,000원(10억)을 연5%의 정기예금에 예금한 부자의 경우를 잠시 비교해보자. (세금계산은 생략하고) 일반인은 이자수익으로 50,000원을 얻게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자율의 중요성을 크게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액수다. 하지만 부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부자는 아무런 위험 없이 이자수익으로 50,000,000원(5천만원)을 얻게된다.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직장인의 연봉에 맞먹는 수익을 얻게되는 것이다. 이는 부자들이 왜 그토록 "이자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주식투자에서도 일반인과 부자의 투자 방식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투자원금의 수 십배를 기대하는 일반인들의 투자성향과는 다르게 부자들은 당시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이자율보다 조금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주식투자의 경우 은행 정기예금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때문에 부자들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안정적이면서 혹시라도 경제에 위기가 왔을 때에도 견뎌낼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는 말했었다. "본인이 100억 1000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경제를 바라보세요."라고...

'기본에 충실하라'라는 측면에서 이 책이 본질적으로 기본을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만한 경제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본에 충실히 경제 공부를 하고자한다면, 경제원론부터 시작해서 경제사, 화폐와 금융, 국제무역 등의 원론 서적을 공부해야할 것이다. 그 지식들이 바탕이 되어야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제현상들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인분이 재산을 관리하는 걸 어려워 하시는 듯하여 선물로 드렸던 책이기도 하다.


2014-06-17

movie_ Dead Poets Society 죽은 시인의 사회 (1989)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대사 중 하나는 아마도 카르페 디엠(carpe diem)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현재를 즐겨라'라고 이해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를 즐긴다는 의미보다는 '현재에 깨어있음' 또는 '현재에 최선을 다함'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일 이 세상에서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는 극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현재 내가 할수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닐런지...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잠시 유보하겠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목표로 상정한 미래의 어느 지점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가 원인이 되어 미래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에서는 틀에 아이들을 가두려는 교육에 일침을 가한다. 시(Poetry)를 감상하면서 시험을 위해 공부하다보니 시가 본질적으로 전달하고자하는 내용들을 상당부분 놓치는 일들이 발생한다.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노력은 시험에서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정말 중요한 이런 것들을 놓치고 있는 교육시스템에 냉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 사람.
당대적인 관점에서 이상하게 보인 사람이 미래에는 통찰(insight)을 겸비한 사람으로 주목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이상하긴 한데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이상함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타인과 비슷한 생각과 행동양식을 유지하는 사람이 과연 타인과 비교하여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낼 수 있을런지... 그보다는 일단은 타인들과의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는 이상한 생각과 행동들을 시도해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이상한 생각과 행동들에 대한 것.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원작소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