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9

Are you an idealist? 너 이상주의자냐?

"너 이상주의자냐? (Are you an idealist)"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말이 있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너 이상주의자냐?'라는 물음 덕분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었고, 너무 많은 고민의 시간으로 인해 수 차례의 위기를 겪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 세상이 정상이 아닌 것인지...여전히 그 때를 생각하면 뭔가 허전한 아쉬움이 휘몰아친다.

어느 날 가깝게 알고 지낸 동기를 만나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만나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에는 아름다운 이성에 대한 주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동기는 최근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기가 아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어딘가에 가서 쾌락을 즐긴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때가 늦은 저녁이 되어가는 중이었던지 이 동기는 그 즐거움을 내게도 권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그 당시 개인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런 위기 상황에서 정신과 몸을 올바르게 해야한다는 삶의 원칙을 나 자신과는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기에게 물었다. "너에게 그런 권유를 했던 사람은 네가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 있어?" 동기가 대답했다.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사람은 너에게 왜 그런 권유를 한거야?" 그 때의 정황상 이 물음부터는 더 이상 진지하게 물음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쉬운 마음에 동기에게 "차라리 여자친구에게 니가 느끼는 본능의 감정들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여자친구와 잘 상의해서 해결하는 건 어때?" 라고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했었다.

'삶을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 때부터는 실수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 당시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갔다. 동기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동기는 삶에서 한 번의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다시 동기를 만나게 됐다. 개인적인 생각에 내심 동기가 과거의 실수들을 반성하고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직업을 얻기도 했으니 좋은 가치관만 정립이 된다면 더욱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쉽게도 동기는 내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얻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머리가 더 복잡했던 것은 나도 알고 있는 몇몇 선배들이 동기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인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고 해도 흔한 말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라면 결국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게 맞는 것일텐데,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동기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너와의 인연을 끊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너에게 이야기를 할거야. 아마 니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상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아끼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너이기에 친구로서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진짜 친구라면 친구가 듣기 싫은 말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 동기의 눈빛은 떨렸다. 그 떨림은 긴장된 떨림이 아니라 '이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도 진지한거야?'라는 눈빛이었다.

조용히 동기에게 물었다. "지금 니 여자친구가 너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니?" "모르지, 알면 안돼지."라고 동기는 대답했다. "그러데 넌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야?"라는 물음에 동기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곤 더욱 진지한 어조로 동기에 마지막 발언을 했다. "너는 여자친구에게 신뢰를 저버렸어......" 이 말에 동기의 반응을 보고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기와의 인연은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기는 내 말에 "그럼 너 지금까지 나랑 이야기할 때 니 마음 속으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거야?"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동기와 나는 급하게 헤어졌다. 서로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 뒤로 동기와의 연락은 거의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애써 내가 먼저 동기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와 혼인을 한다는...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동기에 전화가 또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동기에 대한 애정은 멀어진지 오래였다. 그가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다고하여도 더 이상 가까워지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거웠고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 청소하시는 분들있지? 내가 쓰레기를 버려줘야 그걸 치워서 돈을 버는 사람이 생기는 거지" 더욱이 동기의 이 말을 듣고 사소한 말 속에서 나와 심각히 가치관이 다르다는 자각을 하고 단호히 절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됐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만 내가 아쉬웠던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주변 사람들도 다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관 없이 하는 행동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어느 누군가의 그 말이 생각난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세상이 정상이 아닌 것인지...여전히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그 고민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얻은 문장..."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기회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동기의 생각들이 좀 더 긍정적인 가치관들로 변화되길 간절히 바라고 기대한다. 그 때가 되어서는 또 다시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2014-07-18

book_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손철주 지음





감상, 미술시장, 작가, 작품, 우리 것...

대략 위의 주제들로 내용을 분류해서 짧은 호흡으로 천천히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편집된 책이다. 그래서인지 바쁜 시간 중간에도 조금씩 읽으며 예술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들에 대한 내용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일반인이 친근하고 재미있게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예술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들도 적절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한층 더 흥미롭게 예술에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어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예술이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야할 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진흙탕 속에 숨겨진 진주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는 구체적인 서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이면 속에 작가의 영감을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기교가 아니라 작가가 온전히 느끼는 영혼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을 깊게 사유하여 통섭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런지... 그 응집된 영혼을 한 폭의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예술가들은 정신적 고통을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많이 감당하고, 또 그것을 뛰어 넘어야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가의 본질인지도...

결국 예술가는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또는 알에서 깨어나려는 몸부림, 그리고 매미가 허물을 벗는 치열한 과정을 살아내는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의 영감에 교감할 수 있는 통찰과 직관이 중요한 것 같았다. 어쩌면 예술은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직면하여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조력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온전히 느끼는 진정한 자유...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한문 세대가 아닌 분들의 경우에 책을 매끄럽게 읽기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장이 쉽게 읽히지 않다보니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든다. 그렇다하여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반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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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뱀을 보고 뱀보다 긴 시를 쓴다면 그게 바로 췌사요 사족이다. 그래서 예술은 군소리를 싫어한다. 압축을 계명으로 삼는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이 그려야 할 대상에다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진정 대가는 남이 제 작품을 흉내 내는 걸 겁내 지레 대비책을 마련하진 않는다. 그는 도무지 베낄 수 없는 작품, 감히 넘보지 못할 작품을 만든다.~

~잠깐 우리 주변의 작가를 돌아볼 일이다. 비평계와 언론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거나 대중의 몹쓸 손가락질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작가는 없는지. 멀리 가고 오래 남는 이름은 악평 속에 자란다.~

~삶의 극단으로까지 치솟은 광기는 곧 예술이다. 언제나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을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

~요체는 바로 상상력에 달려 있다. 풀빵기계보다 더 잘 뽑아내는 기능인 화가는 잠시 돌아봐도 수두룩하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작가들의 상상력 고갈이고 그것이 우리를 갑갑하게 한다.~

~노골적인 동성애, 소수민족의 핏대 높은 정치 구호, 그리고 섹스, 섹스, 섹스...... 그러나 반세기가 넘지 않아 그런 작품들도 어느새 고급 미술관의 도도한 장식품이 될 것이다. 그게 미술이 굴러온 역사다. 정작 미술인이 꿰뚫어 봐야 할 것은 아무리 메스꺼운 주제나 메시지라도 종내 작품화시켜버리는 후기산업사회 미술관의 가공할 만한 포식과 왕성한 소화력의 정체일 것이다.~

~깃털은 모여 새털이 되지만, 점이 모여 우리네 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화단을 지배하고 있는 선은......? 낱낱이 찢기고 신경질적인, 그래서 숨넘어가듯 거친 표정이다. 깃털 하나를 들고 새라고 우기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서양 초상화가 귀족이나 신흥 부르주아의 산물이었다면 동양은 조금 다른 길에 있었다.~~동양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전신(傳神)', 즉 정신을 전달하는 법이었다.~

~작가 개개인의 작품에서 발견하고자 애써야 할 것은 그림의 표면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본질이다.~

~모방이든 인용이든, 살아남은 작품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니까. 또 그 뚝심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게 됐으니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의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게 미술시장의 특성이기도하다.~

~세계적으로 꼽히는 유명 미술관들도 안품, 즉 가짜 그림에 녹아나 망신살 뻗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체 누두는 맘대로, 그러나 남자 누드를 여자가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부터다. 그것도 통째 허용되진 않았다.~

~유통되지 않는 밀실의 작품이란 정작 작가가 버린 자식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피카소만큼 풍성한 화제와 질퍽한 소문 속에 뒤섞여 산 예술가도 드물다.~~위대한 예술가의 야누스적 이면은 그것대로 그가 남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상기해보라.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죄와 벌'의 작가가 미성년 여자아이를 꼬드겨 데리고 놀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의 도박벽은 또 얼마나 지독했는지...... 자신의 아내를 지상 최대의 악처로 기록되도록 부추긴 소크라테스를 보라. 철학자의 철학적인 삶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예화는 수두룩하다.~

~미술관에 들렀을 땐 작품 아래에 붙은 이름표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감동의 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누구 작품인지 몰랐기 때문에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결코 고전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현대인의 인식 근본을 시각에 두고 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창작품을 남기고 싶은가, 작가들이여. 그러면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하라. 그 이치에 기반한 자신의 뜻을 세워라. 그리하여 자신이 끝까지 정진해야 할 것은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바로 나만의 육성을 갈고 닦는 일이다.~

~도덕적으로 떳떳한 권력은 미술이 미술답게 성장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자유민주주의가 두려운 나라일수록 인간의 표현 욕구를 보안법으로 억누르는 게 상례로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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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 Demian 데미안






긴 호흡으로 읽어야할 책.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해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시대의 청춘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생각의 지평을 좀 더 넓히고 더 높게 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청춘에게만 필요한 책이겠는가?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서 삶을 살아내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에게도 오아이스의 상쾌함을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다만,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분들에게는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복잡해지고 빨라지는 인간들의 생활 속에서 인간은 갈수록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의 이상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성(sex)이란 무엇인가?' 등의 물음들을 자기 자신에게 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살아서 숨을 쉬고 있긴 하지만 내면 속에서 꿈틀대는 마음은 제대로 호흡하기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중요한 지점에 서있는 것일지도 ...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자신과 직면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작게는 가정에서 받은 부모의 영향, 크게는 사회 속에서 무의식 중에 자신에게 주입된 규범과 고정관념들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라고... 진정 내 의지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봐야했다. 그런 측면에서 싱클레어는 독실한 종교적 분위기의 집안에서 유년기에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면 시간이 흐를 수록 그런 가정환경이 자신의 삶을 구속시키고 지나치게 억제하고 있다는 자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도 이런 내용에 대해 우회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종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종교와 인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사람들과 모여있을 때 한 순간의 외로움이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그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또 다른 외로움의 감정들... 고독 속에서 나의 내면과 직면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더욱 강해지는 자신을 만들어야할 시점이 아닐지...왜냐하면 결국 자신의 문제는 온전히 자신이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해결책을 자신들이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어쩌면 작은 실마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하는 게 아닐까?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적절히 받으면서...

고전의 힘.
세월의 힘을 견뎌낸 고전은 어쩌면 우리 인간 삶의 본질들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 읽히고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정작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의미일지도...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만 끝나면 책을 읽은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 속에 빠졌다가 깊은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하는 필연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야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진정 자신의 내면과 직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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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한테 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원하지.~

~용기와 나름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늘 몹시 무시무시하거든.~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어떤 사람이나 그렇듯이, 천천히 눈뜨는 성(性)에 대한 감정이 나에게도 하나의 적이자 파괴자로, 금기로, 유혹과 죄악으로 들이닥쳤다.~~거의 모든 부모들처럼 우리 부모님들도 말없이 덮어두며 눈뜨는 생명의 충동을 모른 척하였다. 그들은 다만 다함없는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현실을 부인하며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위선적으로 되어가는 어린이의 세계 속에 좀더 머무르려는 나의 절망적인 시도들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바로 사람들이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기리면서도, 생명이 거기에 근거하는 성생활은 간단히 묵살하고 어쩌면 악마의 일이며 죄악이라고 선언하는 거야!~~그러니까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 예배도 가져야 해.~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그러니까 압락사스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신이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음악이 몹시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이지 않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도덕적인 것에는 늘 시달렸거든요.~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사랑하는 힘과 창조력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자네는 그렇다고 모두를, 저기 거리를 걸어다니는 두 발 달린 것 모두를, 그들이 똑바로 걷고 새끼를 아홉 달 뱃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거나 양, 버러지거나 거머리인 줄은 아시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미들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벌들인지! 자아,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 그러나 각자가 그 가능성들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이 되는 거라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그 음악은 번번이 기분 좋았고 나로 하여금 더욱더 영혼의 목소리들을 인정할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이란 없어져 버리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들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보세.~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스승들로부터 갈라놓는 걸음을 떼어야 한다. 누구든 고독의 혹독함을 조금은 느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잘 견딜 수 없어 다시 밑으로 기어든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는 유럽의 정신과 이 시대의 징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나 연합과 패거리짓기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어디서도 자유와 사랑은 없다고 그가 말했다. 대학생 서클과 노래 동호인 모임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의 이 모든 공동체는 두려움에서, 무서움에서, 당황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런 공동체는 내부가 상해 있고 낡고 와해가 임박해 있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 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 버린다.~

~난 꽤 정확하게 꿈들을 구분하지. 내 자신의 영혼 속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꿈들과, 다른 꿈들, 매우 드물지만 온 인류의 운명이 그 가운데서 암시되는 꿈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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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비행기를 타고 온 야구공


얼마 전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다. 식사를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그 동안의 안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마침 최근에 주변의 지인 분들을 만나면 선물했던 책이 남아 있어서 후배에게도 책을 선물로 건넸다.

그러자 후배는 "그다지 크진 않지만 저도 선물을 준비했어요. 근데 큰 건 아니예요." 선물은 그저 선물로 끝나는 법일텐데, 후배는 반복해서 '큰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애써 알리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였는지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후배가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후배의 가방에서는 작은 야구공 하나가 나왔다. "제가 최근에 미국에 가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가 선배 생각이 나서 하나 사왔어요."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포근함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가끔씩 SNS에 야구와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후배가 이 글들과 사진을 보고 나를 떠올린 듯 했다.

"세상에 큰 선물, 작은 선물은 없는 것 같아. 그 마음이 중요하지. 미국까지 가서 야구보느라 정신 없었을 텐데, 내가 생각나서 야구공을 선물할 생각을 했다니.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 라고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언젠가 철학 책을 읽다가 심각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선물'에 대한 주제에서 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물을 자본주의의 환단단위인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선물의 의미는 사라진다는 내용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선물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순간 그 선물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아니라 돈으로 대체 가능한 물건으로 전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의 기념일에 상당히 비싼 선물을 했을 경우, 본인의 기념일에 연인이 신문지로 만든 꽃을 선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물음에 온 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과연 종이로 만든 꽃을 진정한 선물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알테니까.)

자본주의 마저도 초월해버리는 선물의 아름다운 가치. 그래서인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미있는 선물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한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이라는 물음에 어느 소설가는 "내 전부를 다 준 것"이라는 대답을을 하셨다. 이 대답이 여전히 내게 큰 영감을 남긴 것 같다. 여전히 기억을 하고 있으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선물...

따뜻한 마음을 담아 야구공을 내게 선물한 후배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4-07-14

movie_ Scent of a Woman 여인의 향기 (1992 film)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

흔히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라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파치노가 어느 여인과 멋진 탱고를 함께 추는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탱고를 추는 장면이 영화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연애에 대해 다룬 영화는 아닌 듯하다. 연인간의 사랑보다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해 다뤘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영화가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아마도 불의의 사고로 장님이 되어버린 알파치노의 어둠을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한 청년이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장면이 깊은 인상은 남기기 때문이 아닐런지... 매번 바른 길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던 알파치노. 하지만 자신보다 한 참 나이도 어린 한 청년은 비록 힘들지언정 성실하고 순결하게 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한다. 한 청년의 진실되고 성실하고 올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신념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던 알파치노의 마음에 따뜻한 불씨를 옮긴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파치노가 청년을 대신해서 강당에 모인 여러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호소하는 문장 하나 하나가  너무나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가정환경이 불우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올바른 길에 대한 신념을 지켜냈다. 그런 청년의 진정성에 감동한 알파치노는 이 청년의 순결한 영혼이 세상에 끊임없이 빛을 비추길 대중을 향해 호소했던 것이다.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영화들에서는 이런 감동을 갈수록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수작이며 명작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에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 제목이 <여인의 향기>이다보니 영화의 내용이 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야한 장면은 전무하다. 대신 약간의 야한 농담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덕분에 힘을 얻었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


2014-07-11

movie_ A Touch of Sin 천주정 天注定





인간의 내면 본질 속에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기'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과 나를 '구별짓기'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의 차별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식주에서 내가 입는 옷,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사는 집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나은 것들이기를 인간은 욕망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척도의 기준은 현재의 자본주의의 계산법을 빌려 그것이 얼마(How much)? 인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는 대부분 간과하는 맹점이 있는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것"에 대한 고민의 부재...

많이 가진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하는 인간의 탐욕을 영화에서는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더 가지려는 그 욕망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저도 지켜내지 못한 인간은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상에 그 울분을 터뜨린다. 그 분노가 눈에 보이지 않고, 얼마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쌓여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가지려는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들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여느 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분노가 쌓일 만큼 쌓여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예측했던 것보다 분노가 폭발하는 시점이 빨랐다. 이미 경고를 했지만 그 경고를 무겁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경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의 대상에 겨눈 총의 방아쇠가 거침없이 당겨진다. 분노의 대상과 협상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이미 수 십번 경고를 했기 때문인지도...

각자 서로 다른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연결되어 있었다. 더 가지려는 사람들은 이런 힘이 응집되는 것을 사전에 와해시키려는 노력을 할 것임은 당연한 것 같다. 모두가 다 잘 살수 있는데도 결국 인간의 탐욕이 이런 비극들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비극이 2가지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가진 비극, 너무 가지지 못한 비극...


2014-07-10

movie_ Identity 아이덴티티





지인의 추천을 받고 본 영화였다. 개봉 후 시간이 꽤 지난 영화였지만 여전히 이 영화의 생명력은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은 기술진보의 영향으로 변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가상의 세계인지 주의를 기울이며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까지 여운을 깊게 남기는 영화였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앞으로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을 분들께서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세상에 하나의 우주를 탄생 시키는 것이며, 그 생명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상당히 크게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리 많은 부모께서 자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런지...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어릴적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잠깐 언급된다. 그러나 잠깐 언급된다하여 그냥 지나칠 부분은 아닌 듯하다.

삶의 본질에 대해 넌지시 일러주는 듯한 영화다.
적극 추천한다.


우리 부부가 잘 지내야.

얼마 전 어느 부부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혼인하니 좋아요?"라고 물으니 아내 분께서 "장단점이 있죠"라고  말씀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씀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요. 각자의 부모님들보다 우리 부부가 더 중요하다고요. 우리 부부가 잘 지내야 각자의 부모님들에게도 효도를 한다고요."

대부분의 부부는 혼인과 동시에 본인들이 주연이기를 내려놓고, 조연이 되는지도 모른다. 조연이 되면서 부부의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가족구성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주인공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특히 한국의 혼인문화에서는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부부의 모습이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아내 분께서 하신 말씀을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한다. 아마도 이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새로운 우주의 탄생 막바지에서 새 생명이 빛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만, 이 부부는 서로를 다독이며 그 슬픔과 위기를 잘 견뎌내면서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다음에 태어날 생명은 건강히 세상에서 빛을 보길 간절히 응원하고 싶다.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부부의 뒷모습에 가슴이 훈훈했던 기억.


2014-07-08

독서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결국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 인간은 목표점을 상실한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변화 속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할까? 꽤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주제였다. 이에 대한 실천으로 다양한 분야의 양서들을 읽고 사유하면서 그것들을 직간접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름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른 여러 방법도 있겠지만) '독서'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쌓아온 긍정적인 독서 습관은 아이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좋은 동반자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복잡하게만 보이는 현상들의 본질을 볼수 있는 통찰(insight)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은 독서를 할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은 입시준비로 시간적 제약을 받고 있으며, 청년들은 취업 준비에 독서할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무엇이 우리 삶에서 더욱 중요한가? 에 대한 물음이 부재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아닐런지...

이에 대해 의미 있는 강연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사는 청중의 질문에 확답을 주지 않는다. 연사의 말에서 연사가 본질적으로 하고자하는 말을 청중이 알아채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강연 도중에 연사가 했던 의미있는 말이 기억난다.

"여기 계신 청중들 중에 오늘 제 말을 듣고 단 한 분이라도 깨우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는 자기 자신을 혁신하는데, 많은 한계들이 있다. 본인 스스로의 노력과 타인의 도움이 함께할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대혁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변화들이 언젠가는 큰 변화가 될 씨앗이자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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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취업 준비생이 어느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독서를 하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현재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연사는 대답했다)

"~원래는 그 자체에 대한 답변으로 2시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짧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은 구슬을 꿰는 재능을 가져야하는데,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구슬을 가지는 것만 교육 받아왔어요.~~ 그것을 엮어나가야하는 지혜의 시대가 올겁니다. 지식과 지혜는 틀린거죠. 지식을 가진 자는 절대로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혜를 가진 자는 지식을 쉽게 익힐 수가 있죠.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해서 내가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혜를 쌓는 노력을 해야합니다.~이렇게 밖에 답을 못드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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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통찰(insight)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저 대화에는 상당한 의미들이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대부분 알고는 있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그만큼 큰 차이가 있다.


movie_ Handphone 핸드폰





국민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적시적소에 지인들과 바로 연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편한 물건이다. 하지만, 과연 편하기만 한지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 뒤에는 매번 단점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장점에만 몰입한 나머지 중요하면서 위험할 수도 있는 단점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라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해 왔던 휴대전화의 단점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내 몸의 일부처럼 붙어다니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물론 상당부분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휴대전화에 종속되었을 수도 있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휴대전화에서 더욱 진화한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쥐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인간의 삶에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스마트폰의 장점 뒤에 숨은 단점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맹목적인 긍정'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영화의 스토리 구성이 좀 빈약하다. 핸드폰에 모든 초점을 맞춰서 스토리를 구성했다면 좋았을 텐데, 복수극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느낌이었다. 휴대폰이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영화<Echelon Conspiracy 
기프트>와 함께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