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1

movie_ A Touch of Sin 천주정 天注定





인간의 내면 본질 속에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기'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과 나를 '구별짓기'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의 차별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식주에서 내가 입는 옷,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사는 집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나은 것들이기를 인간은 욕망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척도의 기준은 현재의 자본주의의 계산법을 빌려 그것이 얼마(How much)? 인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는 대부분 간과하는 맹점이 있는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것"에 대한 고민의 부재...

많이 가진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하는 인간의 탐욕을 영화에서는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더 가지려는 그 욕망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저도 지켜내지 못한 인간은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상에 그 울분을 터뜨린다. 그 분노가 눈에 보이지 않고, 얼마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쌓여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가지려는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들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여느 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분노가 쌓일 만큼 쌓여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예측했던 것보다 분노가 폭발하는 시점이 빨랐다. 이미 경고를 했지만 그 경고를 무겁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경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의 대상에 겨눈 총의 방아쇠가 거침없이 당겨진다. 분노의 대상과 협상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이미 수 십번 경고를 했기 때문인지도...

각자 서로 다른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연결되어 있었다. 더 가지려는 사람들은 이런 힘이 응집되는 것을 사전에 와해시키려는 노력을 할 것임은 당연한 것 같다. 모두가 다 잘 살수 있는데도 결국 인간의 탐욕이 이런 비극들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비극이 2가지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가진 비극, 너무 가지지 못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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