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8

story_ The Depression of the Student 어느 대학생의 우울

개인적으로 타인의 삶에 가급적 간섭하려하지 않았었다.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순간부터 나의 에너지들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더 깊게 들어가 상대의 아픈 마음을 손 잡아주려했을 때는 이상하게 몸이 아프다.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인지 섣부르게 타인의 삶에 끼어들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많은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지금 내가 건넨 작은 선의가 상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지금 상대방이 내 진심어린 도움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 나와의 마주침에서 느꼈던 내 선의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균형Balance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과정에서 남는 여유 시간을 가까운 지인들을 시작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순간 인간의 삶은 변화하기 때문에 내게 할애된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내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건네는 도움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갓 대학생이 된 지인을 만났을 때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중 내 뇌리를 쉽게 스쳐지나지 않는 말을 지인이 넌지시 이야기 했다. 무언가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흔들리던 눈망울에서는 뭔지 모르게 삶의 애환을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자신이 지금 힘들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지인은 내게 말하는 듯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지인이 삶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은 그 어떤 핑계들을 덮어버리고 내가 그에게 손을 내밀 게 했던 것 같다.

"~가끔씩 커터칼로 손목을 슬슬 긁어봐요...~"

지인에게 가정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무거운 상처를 주었을까? 아마도 삶의 주인이 되려는 몸부림 속에서 지인은 힘들어 했던 것 같았다. 그의 부모님은 가정불화를 일으키시지는 않았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얽혀있는 긴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또한 그것들을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했던 것 같았다. 더욱이 진정한 사랑에 대한 부재도 그의 삶에 더욱 묵직한 어둠을 가지고 왔는지도 모른다.

지인을 만났을 당시 나는 삶에서 자유로운 휴식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 전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도저히 이대로 살다간 안 될 것 같아서 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삶을 주체적고 자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몸 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갓 대학생이된 지인의 이야기가 아프게 심장을 조여왔고, 내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위한 실천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단언컨데, 그 당시 내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인의 애절한 눈빛의 의미를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지인은 겉은 멀쩡했지만, 마음이 상당히 치쳐있었다. 점점 그 상처들이 쌓였다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긍정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다. 지극히 내 관점에서 그는 상당한 위기 상황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지금 학교에서 수강하는 회계원리가 어렵다고 하니 일주일에 한 번씩 내가 있는 곳으로와서 나랑 같이 회계원리를 공부하지 않을래? 내가 회계원리 정도는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가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그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는 선택지를 내민 것이었다. 본인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그 변화는 큰 의미를 갖게되고 지속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지인은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승낙했다. 그 이후로 약2달간 지인과 만나 회계원리를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말이 회계원리 공부지 회계원리보다는 지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차츰 지인의 감정은 따뜻하고 밝게 변하기 시작했고 운 좋게 내가 회계원리를 가르쳐준 덕분에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고, 그 학기에는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난 단지 너에게 큰 숲만 볼 수 있게 해줬을 뿐이야. 결국은 니가 니 삶을 선택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얻은 것이지" 지인이 고맙다며 내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야기했다.

보람이라고 할까? 뿌듯함이라고 할까?
아마도 '자존감'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타인에게 내가 건넨 선의는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존감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 사람이 긍정을 볼 수 있는...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받은 선의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삶의 작은 희망들... 개인적으로 난 이 힘을 믿는다. 아무리 작은 선의라도 그 선의가 쌓이고 쌓여서 이 사회에 큰 희망과 긍정을 선물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 지인에게 건넸던 선의는 그 때로 끝나지 않았다. 지인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감탄하시며 내게 고마움을 표현해 주셨다. "네 덕분에 00이가 많이 환해졌어." 지인은 군대에 가서도 삶을 긍정했던 것으로 보였다. 군생활을 열심히 해서 포상휴가도 나왔었고, 가끔 휴가를 나오면 만났을 때 그가 하는 이야기들에서는 삶의 힘이 느껴졌다. 그냥 지인에게 고마웠다. 내 작은 선의를 잘 받아 더 큰 선의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지인에게 선의를 건네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내 삶에서 위기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게 시간이 없다하여도 소중한 삶을 마감하려는 꽃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그에게 햇볕과 시원한 물을 건네야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힘든 상황에서도 그의 손은 잡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좀 알겠다. 그 때의 판단과 행동이 참 잘했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을 일단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물론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선의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현재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희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 익숙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자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익숙함이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하는 소중한 것 아닐런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