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7

book_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박경철 지음






저자의 <<아름다운 동행 1권,2권>>을 과거에 읽으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상당히 깊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불행을 타인을 통해 간접 경험하면서 마음이 갑갑하면서 무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이 더 크게 일깨워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형식으로라도 그들의 차가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됐다. 누군가는 삶에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 게 우리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 불운을 누군가는 피해갔고, 누군가는 온 몸으로 맞으며 힘겨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불운을 피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바라봐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회에서 이룬 것은 전적으로 나의 노력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준 기회'가 나와 함께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무의식 중에 오지랖을 넓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힘겨워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숨이 나오는 건 왜일까... 게다가 마음이 아프다보니 몸이 아플 때가 종종 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아픔이 아니라 나의 심장을 어떻게든 건드려져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아픔들...그러나 어찌 그 분들의 아픔을 모두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아픔을 보는 것과 그 아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을테니...

이 책에 담겨있는 어느 소중한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가 또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아픔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직면하는 여러 장면들에 여러 미사여구를 덪붙이다보니 그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일상보다 더 돋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인간의 감동적인 삶들에는 눈물을 훔치면서 정작 나의 삶, 그리고 현실에서의 감동적인 장면에는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는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몇개의 문장들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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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일상이 단조롭다는 것만큼 지극한 행복의 경지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큰 걱정거리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는 고민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상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오히려 다른 그 무엇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양 오해하고,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아집과 질투, 시기와 증오, 그리고 반목을 거듭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나머지 생을 모르기 때문에 웃고 울고 화내며 살아간다. 신이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은 누구도 죽음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게 아닐까.~

~삶은 가혹하다. 운명은 주인의 삶을 따로 살피지 않는다. 운명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건, 그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증오했건, 그가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가졌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운명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잘살고 못 사는 거야 자기 책임이라지만, 그래도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돈이 없어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는 없어야 그래도 이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생명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망설임 없이 같이 손을 잡고 떠나기도 한다. 이런 사랑을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지.~

~진료실에 있다 보면 가정폭력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일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은 100분의 1도 안 되고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되기 쉽다.~

~우리는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세상의 드라마는 불륜으로 넘쳐나고 정작 사랑하고 지켜야 할 것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세상. 이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일까?~

~대개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조건과 외모를 보지만 동권 씨 커플은 그와는 달리 서로의 마음을 보고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애인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동권 씨가 꺼리는 눈치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경제 사정과 건강이 여의치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요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사랑을 말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서로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한 지 몇 달이면 결혼을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못 볼 원수라도 되는 양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만약 그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람이었다면 1년 이상이나 환자로 만나면서도 과연 알아보지 못했을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누군가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말했다. 이 말에 백번 천번 공감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와는 다른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아이가 보고 본받으며 자라는 것은 바로 부모의 뒷모습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나셨다. 그때 내 곁을 지켜준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빚을 졌다. 일가친척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그중에서 두 친구는 모든 사정을 다 알면서도 몇 년간 모은 적금을 깨고, 심지어 자신의 의사면허증을 담보로 빌린 돈을 내게 내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개원의가 되었다.~~그렇게 힘든 과정이 끝나갈 즈음 건강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심장 부정맥이 발생한 것이다.~~"심장을 갈아야 한다면 내 심장이라도 줄 테니까, 걱정 마라."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친구였다. 나는 두 친구와 나를 믿어준 5만 명의 환자들 덕분에 그렇게 고비를 넘겼고 또 생환에 성공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태(胎)가 '어머니'의 몸에 맺히기 전부터 이미 인연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 그리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 또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에서 비롯한 것이 아생(我生)인데, 그렇게 길고도 강고한 인연의 끈을 인간이 스스로 끊어버리고 독존(獨存)을 꿈꾼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보면 이런 인연의 관계망은 혈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우연들은 다시 얽히고설켜 내일의 나를 규정하는 필연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팔 다리가 없는 몸은 제대로 된 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노홍철 같은 개그맨이나, 안동의 고등어 간잽이 같은 사람들은 과거라면 어떤 대접을 받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인정받는 세상이 오고 있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존경받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저 아이들은 다르다. 저 아이들은 아직 진흙이다. 스스로 만들고 싶은 모양을 만들면 된다. 우리 시대처럼 누가 정해주는 대로가 아닌, 자기가 필요한 용도대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꽃병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대리 충족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꽃병이 되라고 요구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만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뭉개고 새로 빚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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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story_ The Depression of the Student 어느 대학생의 우울

개인적으로 타인의 삶에 가급적 간섭하려하지 않았었다.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순간부터 나의 에너지들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더 깊게 들어가 상대의 아픈 마음을 손 잡아주려했을 때는 이상하게 몸이 아프다.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인지 섣부르게 타인의 삶에 끼어들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많은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지금 내가 건넨 작은 선의가 상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지금 상대방이 내 진심어린 도움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 나와의 마주침에서 느꼈던 내 선의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균형Balance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과정에서 남는 여유 시간을 가까운 지인들을 시작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순간 인간의 삶은 변화하기 때문에 내게 할애된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내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건네는 도움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갓 대학생이 된 지인을 만났을 때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중 내 뇌리를 쉽게 스쳐지나지 않는 말을 지인이 넌지시 이야기 했다. 무언가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흔들리던 눈망울에서는 뭔지 모르게 삶의 애환을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자신이 지금 힘들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지인은 내게 말하는 듯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지인이 삶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은 그 어떤 핑계들을 덮어버리고 내가 그에게 손을 내밀 게 했던 것 같다.

"~가끔씩 커터칼로 손목을 슬슬 긁어봐요...~"

지인에게 가정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무거운 상처를 주었을까? 아마도 삶의 주인이 되려는 몸부림 속에서 지인은 힘들어 했던 것 같았다. 그의 부모님은 가정불화를 일으키시지는 않았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얽혀있는 긴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또한 그것들을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했던 것 같았다. 더욱이 진정한 사랑에 대한 부재도 그의 삶에 더욱 묵직한 어둠을 가지고 왔는지도 모른다.

지인을 만났을 당시 나는 삶에서 자유로운 휴식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 전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도저히 이대로 살다간 안 될 것 같아서 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삶을 주체적고 자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몸 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갓 대학생이된 지인의 이야기가 아프게 심장을 조여왔고, 내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위한 실천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단언컨데, 그 당시 내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인의 애절한 눈빛의 의미를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지인은 겉은 멀쩡했지만, 마음이 상당히 치쳐있었다. 점점 그 상처들이 쌓였다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긍정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다. 지극히 내 관점에서 그는 상당한 위기 상황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지금 학교에서 수강하는 회계원리가 어렵다고 하니 일주일에 한 번씩 내가 있는 곳으로와서 나랑 같이 회계원리를 공부하지 않을래? 내가 회계원리 정도는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가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그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는 선택지를 내민 것이었다. 본인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그 변화는 큰 의미를 갖게되고 지속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지인은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승낙했다. 그 이후로 약2달간 지인과 만나 회계원리를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말이 회계원리 공부지 회계원리보다는 지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차츰 지인의 감정은 따뜻하고 밝게 변하기 시작했고 운 좋게 내가 회계원리를 가르쳐준 덕분에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고, 그 학기에는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난 단지 너에게 큰 숲만 볼 수 있게 해줬을 뿐이야. 결국은 니가 니 삶을 선택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얻은 것이지" 지인이 고맙다며 내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야기했다.

보람이라고 할까? 뿌듯함이라고 할까?
아마도 '자존감'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타인에게 내가 건넨 선의는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존감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 사람이 긍정을 볼 수 있는...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받은 선의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삶의 작은 희망들... 개인적으로 난 이 힘을 믿는다. 아무리 작은 선의라도 그 선의가 쌓이고 쌓여서 이 사회에 큰 희망과 긍정을 선물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 지인에게 건넸던 선의는 그 때로 끝나지 않았다. 지인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감탄하시며 내게 고마움을 표현해 주셨다. "네 덕분에 00이가 많이 환해졌어." 지인은 군대에 가서도 삶을 긍정했던 것으로 보였다. 군생활을 열심히 해서 포상휴가도 나왔었고, 가끔 휴가를 나오면 만났을 때 그가 하는 이야기들에서는 삶의 힘이 느껴졌다. 그냥 지인에게 고마웠다. 내 작은 선의를 잘 받아 더 큰 선의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지인에게 선의를 건네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내 삶에서 위기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게 시간이 없다하여도 소중한 삶을 마감하려는 꽃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그에게 햇볕과 시원한 물을 건네야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힘든 상황에서도 그의 손은 잡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좀 알겠다. 그 때의 판단과 행동이 참 잘했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을 일단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물론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선의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현재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희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 익숙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자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익숙함이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하는 소중한 것 아닐런지...


2014-07-25

어느 철학자의 변명

일전에 어느 철학자의 강연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걸 봤던 적이 있다. '삶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쓴 저자의 책을 소개하면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연사의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강연은 상당히 의미있었고 우리들의 삶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거우면서도 긍정적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오프라인에 참석했던 여러 사람들의 질문들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안타까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아쉽게도 개인적인 생각에 질문들 중에는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무 형식에만 얽매인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장면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보통신 기술의 힘을 빌려 SNS망을 이용해서 직접 질문을 했다. 내용을 줄인다고 했지만, 질문의 길이가 예상보다 더 길어져서 난감했다.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개인적으로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진정한 자유에 대해 고민한다면 결국은 우리가 무의식 중에 가정에서 부모에게 받은 영향과 사회가 강압적으로 강요한 것들을 뛰어 넘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받은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사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혹시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구체적으로 필요한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질문의 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신 연사님이 대답을 하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저도 뭐...부모랑 사이가 안 좋아서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전적으로 개인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답변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인간으로 그 힘들이 수렴하는 것은 아닐런지...

Giving My ALL to The LOVE 내 전부를 다 준 것

'그래!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을 주기위해 노력하는 거야!'

A는 사랑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A가 인간의 삶에서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신뢰하고 진정 사랑하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들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철학을 공부한 영향 때문에 A는 그런 결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에게 유럽여행 선물을 해드려도 될까요?" A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선물을 하면서도 그녀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A가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가려고 모아 둔 돈 아니었어?"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A에게 대답했다. "당신은 유럽에 친구가 있어서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난 그냥 여행 가려고만 생각하고 모안둔 돈이니 당신이 다녀오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선물이야" A는 뭔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A에게 느껴진 밋밋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A는 어느 강연에서 '사랑'에 대해 어느 철학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랑은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줄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예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배가 고픈데, 빵 하나가 있을 때 그 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넬 수 있느냐는 것이죠.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빵을 건네는 건 어느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먹을 빵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A는 철학자가 했던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현실에서 사랑하는 그녀에게 행동으로 보이고자 노력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과 '노력한다는 것'에서 A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추스려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돈이면 내가 ~를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순간 순간 A의 앞 길을 가로 막았다. 굳이 A가 여행 경비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의 돈이면 또 다른 자본주의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A는 아직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끊임 없이 사랑을 방해하는 잠념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A는  때론 힘들어하기도 때론 어느 이윤지 모르게 행복해하며 짧지만 긴긴 고민의 시간을 견뎌내야했다.

A는 자신의 소유물에 어느 정도의 집착을 하고 있었고, A가 사랑하는 그녀는 잠깐의 망설임과 안타까움을 느끼다가 A의 선물을 받았다. 여기서 느껴지는 간극은 무엇일까? 정말 미묘하게 느껴지는 그 간극은 이렇다. A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A는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꽤 어린 나이에 직시했다. 그 때부터 A의 고민과 걱정에는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가 깊게 자리 잡게 된다. A는 이 삶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 까지 삶에 직면하려는 노력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A와 너무나 다르게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여인이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의 눈에 A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꽤나 희한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A가 자신에게 처한 삶의 상황을 승화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A는 어느 철학자가 말한 '사랑'에 대한 것을 행동에 옮기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A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눈으로 본 유럽의 풍경은 내가 보는 것이 될 것이고, 당신이 느낀 유럽도 내가 느낀 유럽일 거예요. 여행을 다녀온 당신의 눈과 손을 잡으면 마치 나도 유럽에 다녀온 느낌을 받을 테니까요."

그렇게 그녀는 약 2주동안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무사히 A에게로 돌아왔다. "A를 위해서 그다지 큰 선물을 사오진 못했어......" 그녀가 안타까운 시선을 A에게 보내며 말했다. A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당신이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게 내 앞에 있다는 게 큰 선물이예요."

내 전부를 다 준다는 것...
사랑에 대한 의미있는 통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4-07-19

Are you an idealist? 너 이상주의자냐?

"너 이상주의자냐? (Are you an idealist)"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말이 있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너 이상주의자냐?'라는 물음 덕분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었고, 너무 많은 고민의 시간으로 인해 수 차례의 위기를 겪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 세상이 정상이 아닌 것인지...여전히 그 때를 생각하면 뭔가 허전한 아쉬움이 휘몰아친다.

어느 날 가깝게 알고 지낸 동기를 만나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만나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에는 아름다운 이성에 대한 주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동기는 최근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기가 아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어딘가에 가서 쾌락을 즐긴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때가 늦은 저녁이 되어가는 중이었던지 이 동기는 그 즐거움을 내게도 권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그 당시 개인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런 위기 상황에서 정신과 몸을 올바르게 해야한다는 삶의 원칙을 나 자신과는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기에게 물었다. "너에게 그런 권유를 했던 사람은 네가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 있어?" 동기가 대답했다.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사람은 너에게 왜 그런 권유를 한거야?" 그 때의 정황상 이 물음부터는 더 이상 진지하게 물음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쉬운 마음에 동기에게 "차라리 여자친구에게 니가 느끼는 본능의 감정들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여자친구와 잘 상의해서 해결하는 건 어때?" 라고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했었다.

'삶을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 때부터는 실수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 당시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갔다. 동기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동기는 삶에서 한 번의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다시 동기를 만나게 됐다. 개인적인 생각에 내심 동기가 과거의 실수들을 반성하고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직업을 얻기도 했으니 좋은 가치관만 정립이 된다면 더욱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쉽게도 동기는 내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얻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머리가 더 복잡했던 것은 나도 알고 있는 몇몇 선배들이 동기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인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고 해도 흔한 말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라면 결국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게 맞는 것일텐데,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동기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너와의 인연을 끊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너에게 이야기를 할거야. 아마 니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상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아끼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너이기에 친구로서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진짜 친구라면 친구가 듣기 싫은 말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 동기의 눈빛은 떨렸다. 그 떨림은 긴장된 떨림이 아니라 '이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도 진지한거야?'라는 눈빛이었다.

조용히 동기에게 물었다. "지금 니 여자친구가 너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니?" "모르지, 알면 안돼지."라고 동기는 대답했다. "그러데 넌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야?"라는 물음에 동기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곤 더욱 진지한 어조로 동기에 마지막 발언을 했다. "너는 여자친구에게 신뢰를 저버렸어......" 이 말에 동기의 반응을 보고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기와의 인연은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기는 내 말에 "그럼 너 지금까지 나랑 이야기할 때 니 마음 속으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거야?"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동기와 나는 급하게 헤어졌다. 서로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 뒤로 동기와의 연락은 거의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애써 내가 먼저 동기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와 혼인을 한다는...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동기에 전화가 또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동기에 대한 애정은 멀어진지 오래였다. 그가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다고하여도 더 이상 가까워지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거웠고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 청소하시는 분들있지? 내가 쓰레기를 버려줘야 그걸 치워서 돈을 버는 사람이 생기는 거지" 더욱이 동기의 이 말을 듣고 사소한 말 속에서 나와 심각히 가치관이 다르다는 자각을 하고 단호히 절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됐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만 내가 아쉬웠던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주변 사람들도 다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관 없이 하는 행동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어느 누군가의 그 말이 생각난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세상이 정상이 아닌 것인지...여전히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그 고민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얻은 문장..."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기회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동기의 생각들이 좀 더 긍정적인 가치관들로 변화되길 간절히 바라고 기대한다. 그 때가 되어서는 또 다시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2014-07-18

book_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손철주 지음





감상, 미술시장, 작가, 작품, 우리 것...

대략 위의 주제들로 내용을 분류해서 짧은 호흡으로 천천히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편집된 책이다. 그래서인지 바쁜 시간 중간에도 조금씩 읽으며 예술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들에 대한 내용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일반인이 친근하고 재미있게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예술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들도 적절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한층 더 흥미롭게 예술에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어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예술이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야할 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진흙탕 속에 숨겨진 진주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는 구체적인 서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이면 속에 작가의 영감을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기교가 아니라 작가가 온전히 느끼는 영혼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을 깊게 사유하여 통섭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런지... 그 응집된 영혼을 한 폭의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예술가들은 정신적 고통을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많이 감당하고, 또 그것을 뛰어 넘어야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가의 본질인지도...

결국 예술가는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또는 알에서 깨어나려는 몸부림, 그리고 매미가 허물을 벗는 치열한 과정을 살아내는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의 영감에 교감할 수 있는 통찰과 직관이 중요한 것 같았다. 어쩌면 예술은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직면하여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조력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온전히 느끼는 진정한 자유...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한문 세대가 아닌 분들의 경우에 책을 매끄럽게 읽기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장이 쉽게 읽히지 않다보니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든다. 그렇다하여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반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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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뱀을 보고 뱀보다 긴 시를 쓴다면 그게 바로 췌사요 사족이다. 그래서 예술은 군소리를 싫어한다. 압축을 계명으로 삼는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이 그려야 할 대상에다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진정 대가는 남이 제 작품을 흉내 내는 걸 겁내 지레 대비책을 마련하진 않는다. 그는 도무지 베낄 수 없는 작품, 감히 넘보지 못할 작품을 만든다.~

~잠깐 우리 주변의 작가를 돌아볼 일이다. 비평계와 언론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거나 대중의 몹쓸 손가락질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작가는 없는지. 멀리 가고 오래 남는 이름은 악평 속에 자란다.~

~삶의 극단으로까지 치솟은 광기는 곧 예술이다. 언제나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을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

~요체는 바로 상상력에 달려 있다. 풀빵기계보다 더 잘 뽑아내는 기능인 화가는 잠시 돌아봐도 수두룩하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작가들의 상상력 고갈이고 그것이 우리를 갑갑하게 한다.~

~노골적인 동성애, 소수민족의 핏대 높은 정치 구호, 그리고 섹스, 섹스, 섹스...... 그러나 반세기가 넘지 않아 그런 작품들도 어느새 고급 미술관의 도도한 장식품이 될 것이다. 그게 미술이 굴러온 역사다. 정작 미술인이 꿰뚫어 봐야 할 것은 아무리 메스꺼운 주제나 메시지라도 종내 작품화시켜버리는 후기산업사회 미술관의 가공할 만한 포식과 왕성한 소화력의 정체일 것이다.~

~깃털은 모여 새털이 되지만, 점이 모여 우리네 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화단을 지배하고 있는 선은......? 낱낱이 찢기고 신경질적인, 그래서 숨넘어가듯 거친 표정이다. 깃털 하나를 들고 새라고 우기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서양 초상화가 귀족이나 신흥 부르주아의 산물이었다면 동양은 조금 다른 길에 있었다.~~동양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전신(傳神)', 즉 정신을 전달하는 법이었다.~

~작가 개개인의 작품에서 발견하고자 애써야 할 것은 그림의 표면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본질이다.~

~모방이든 인용이든, 살아남은 작품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니까. 또 그 뚝심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게 됐으니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의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게 미술시장의 특성이기도하다.~

~세계적으로 꼽히는 유명 미술관들도 안품, 즉 가짜 그림에 녹아나 망신살 뻗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체 누두는 맘대로, 그러나 남자 누드를 여자가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부터다. 그것도 통째 허용되진 않았다.~

~유통되지 않는 밀실의 작품이란 정작 작가가 버린 자식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피카소만큼 풍성한 화제와 질퍽한 소문 속에 뒤섞여 산 예술가도 드물다.~~위대한 예술가의 야누스적 이면은 그것대로 그가 남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상기해보라.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죄와 벌'의 작가가 미성년 여자아이를 꼬드겨 데리고 놀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의 도박벽은 또 얼마나 지독했는지...... 자신의 아내를 지상 최대의 악처로 기록되도록 부추긴 소크라테스를 보라. 철학자의 철학적인 삶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예화는 수두룩하다.~

~미술관에 들렀을 땐 작품 아래에 붙은 이름표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감동의 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누구 작품인지 몰랐기 때문에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결코 고전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현대인의 인식 근본을 시각에 두고 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창작품을 남기고 싶은가, 작가들이여. 그러면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하라. 그 이치에 기반한 자신의 뜻을 세워라. 그리하여 자신이 끝까지 정진해야 할 것은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바로 나만의 육성을 갈고 닦는 일이다.~

~도덕적으로 떳떳한 권력은 미술이 미술답게 성장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자유민주주의가 두려운 나라일수록 인간의 표현 욕구를 보안법으로 억누르는 게 상례로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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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 Demian 데미안






긴 호흡으로 읽어야할 책.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해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시대의 청춘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생각의 지평을 좀 더 넓히고 더 높게 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청춘에게만 필요한 책이겠는가?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서 삶을 살아내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에게도 오아이스의 상쾌함을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다만,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분들에게는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복잡해지고 빨라지는 인간들의 생활 속에서 인간은 갈수록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의 이상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성(sex)이란 무엇인가?' 등의 물음들을 자기 자신에게 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살아서 숨을 쉬고 있긴 하지만 내면 속에서 꿈틀대는 마음은 제대로 호흡하기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중요한 지점에 서있는 것일지도 ...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자신과 직면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작게는 가정에서 받은 부모의 영향, 크게는 사회 속에서 무의식 중에 자신에게 주입된 규범과 고정관념들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라고... 진정 내 의지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봐야했다. 그런 측면에서 싱클레어는 독실한 종교적 분위기의 집안에서 유년기에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면 시간이 흐를 수록 그런 가정환경이 자신의 삶을 구속시키고 지나치게 억제하고 있다는 자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도 이런 내용에 대해 우회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종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종교와 인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사람들과 모여있을 때 한 순간의 외로움이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그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또 다른 외로움의 감정들... 고독 속에서 나의 내면과 직면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더욱 강해지는 자신을 만들어야할 시점이 아닐지...왜냐하면 결국 자신의 문제는 온전히 자신이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해결책을 자신들이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어쩌면 작은 실마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하는 게 아닐까?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적절히 받으면서...

고전의 힘.
세월의 힘을 견뎌낸 고전은 어쩌면 우리 인간 삶의 본질들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 읽히고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정작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의미일지도...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만 끝나면 책을 읽은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 속에 빠졌다가 깊은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하는 필연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야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진정 자신의 내면과 직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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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한테 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원하지.~

~용기와 나름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늘 몹시 무시무시하거든.~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어떤 사람이나 그렇듯이, 천천히 눈뜨는 성(性)에 대한 감정이 나에게도 하나의 적이자 파괴자로, 금기로, 유혹과 죄악으로 들이닥쳤다.~~거의 모든 부모들처럼 우리 부모님들도 말없이 덮어두며 눈뜨는 생명의 충동을 모른 척하였다. 그들은 다만 다함없는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현실을 부인하며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위선적으로 되어가는 어린이의 세계 속에 좀더 머무르려는 나의 절망적인 시도들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바로 사람들이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기리면서도, 생명이 거기에 근거하는 성생활은 간단히 묵살하고 어쩌면 악마의 일이며 죄악이라고 선언하는 거야!~~그러니까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 예배도 가져야 해.~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그러니까 압락사스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신이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음악이 몹시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이지 않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도덕적인 것에는 늘 시달렸거든요.~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사랑하는 힘과 창조력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자네는 그렇다고 모두를, 저기 거리를 걸어다니는 두 발 달린 것 모두를, 그들이 똑바로 걷고 새끼를 아홉 달 뱃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거나 양, 버러지거나 거머리인 줄은 아시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미들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벌들인지! 자아,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 그러나 각자가 그 가능성들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이 되는 거라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그 음악은 번번이 기분 좋았고 나로 하여금 더욱더 영혼의 목소리들을 인정할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이란 없어져 버리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들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보세.~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스승들로부터 갈라놓는 걸음을 떼어야 한다. 누구든 고독의 혹독함을 조금은 느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잘 견딜 수 없어 다시 밑으로 기어든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는 유럽의 정신과 이 시대의 징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나 연합과 패거리짓기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어디서도 자유와 사랑은 없다고 그가 말했다. 대학생 서클과 노래 동호인 모임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의 이 모든 공동체는 두려움에서, 무서움에서, 당황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런 공동체는 내부가 상해 있고 낡고 와해가 임박해 있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 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 버린다.~

~난 꽤 정확하게 꿈들을 구분하지. 내 자신의 영혼 속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꿈들과, 다른 꿈들, 매우 드물지만 온 인류의 운명이 그 가운데서 암시되는 꿈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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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비행기를 타고 온 야구공


얼마 전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다. 식사를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그 동안의 안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마침 최근에 주변의 지인 분들을 만나면 선물했던 책이 남아 있어서 후배에게도 책을 선물로 건넸다.

그러자 후배는 "그다지 크진 않지만 저도 선물을 준비했어요. 근데 큰 건 아니예요." 선물은 그저 선물로 끝나는 법일텐데, 후배는 반복해서 '큰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애써 알리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였는지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후배가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후배의 가방에서는 작은 야구공 하나가 나왔다. "제가 최근에 미국에 가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가 선배 생각이 나서 하나 사왔어요."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포근함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가끔씩 SNS에 야구와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후배가 이 글들과 사진을 보고 나를 떠올린 듯 했다.

"세상에 큰 선물, 작은 선물은 없는 것 같아. 그 마음이 중요하지. 미국까지 가서 야구보느라 정신 없었을 텐데, 내가 생각나서 야구공을 선물할 생각을 했다니.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 라고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언젠가 철학 책을 읽다가 심각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선물'에 대한 주제에서 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물을 자본주의의 환단단위인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선물의 의미는 사라진다는 내용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선물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순간 그 선물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아니라 돈으로 대체 가능한 물건으로 전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의 기념일에 상당히 비싼 선물을 했을 경우, 본인의 기념일에 연인이 신문지로 만든 꽃을 선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물음에 온 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과연 종이로 만든 꽃을 진정한 선물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알테니까.)

자본주의 마저도 초월해버리는 선물의 아름다운 가치. 그래서인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미있는 선물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한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이라는 물음에 어느 소설가는 "내 전부를 다 준 것"이라는 대답을을 하셨다. 이 대답이 여전히 내게 큰 영감을 남긴 것 같다. 여전히 기억을 하고 있으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선물...

따뜻한 마음을 담아 야구공을 내게 선물한 후배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4-07-14

movie_ Scent of a Woman 여인의 향기 (1992 film)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

흔히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라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파치노가 어느 여인과 멋진 탱고를 함께 추는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탱고를 추는 장면이 영화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연애에 대해 다룬 영화는 아닌 듯하다. 연인간의 사랑보다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해 다뤘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영화가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아마도 불의의 사고로 장님이 되어버린 알파치노의 어둠을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한 청년이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장면이 깊은 인상은 남기기 때문이 아닐런지... 매번 바른 길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던 알파치노. 하지만 자신보다 한 참 나이도 어린 한 청년은 비록 힘들지언정 성실하고 순결하게 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한다. 한 청년의 진실되고 성실하고 올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신념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던 알파치노의 마음에 따뜻한 불씨를 옮긴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파치노가 청년을 대신해서 강당에 모인 여러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호소하는 문장 하나 하나가  너무나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가정환경이 불우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올바른 길에 대한 신념을 지켜냈다. 그런 청년의 진정성에 감동한 알파치노는 이 청년의 순결한 영혼이 세상에 끊임없이 빛을 비추길 대중을 향해 호소했던 것이다.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영화들에서는 이런 감동을 갈수록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수작이며 명작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에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 제목이 <여인의 향기>이다보니 영화의 내용이 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야한 장면은 전무하다. 대신 약간의 야한 농담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덕분에 힘을 얻었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


2014-07-11

movie_ A Touch of Sin 천주정 天注定





인간의 내면 본질 속에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기'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과 나를 '구별짓기'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의 차별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식주에서 내가 입는 옷,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사는 집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나은 것들이기를 인간은 욕망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척도의 기준은 현재의 자본주의의 계산법을 빌려 그것이 얼마(How much)? 인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는 대부분 간과하는 맹점이 있는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것"에 대한 고민의 부재...

많이 가진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하는 인간의 탐욕을 영화에서는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더 가지려는 그 욕망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저도 지켜내지 못한 인간은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상에 그 울분을 터뜨린다. 그 분노가 눈에 보이지 않고, 얼마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쌓여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가지려는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들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여느 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분노가 쌓일 만큼 쌓여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예측했던 것보다 분노가 폭발하는 시점이 빨랐다. 이미 경고를 했지만 그 경고를 무겁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경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의 대상에 겨눈 총의 방아쇠가 거침없이 당겨진다. 분노의 대상과 협상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이미 수 십번 경고를 했기 때문인지도...

각자 서로 다른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연결되어 있었다. 더 가지려는 사람들은 이런 힘이 응집되는 것을 사전에 와해시키려는 노력을 할 것임은 당연한 것 같다. 모두가 다 잘 살수 있는데도 결국 인간의 탐욕이 이런 비극들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비극이 2가지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가진 비극, 너무 가지지 못한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