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8

Photo Exhibition_ STEVE McCURRY 스티브 맥커리






몇년 전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사진전에 다녀온 뒤 썼던 글이 남아있었다.
첨부한 사진은 네셔널지오그래픽에 표지로 실렸던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라는 제목의 사진이라고 한다. 사진전 안내 책자의 표지에 실렸던 사진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땐, '소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너무 순수해 보인다'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그 눈동자를 계속 응시할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이 사진이 홍보되던 당시 '성난 눈동자'라는 단어를 써 알려져서인지, 성난 고양이의 눈망울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소녀의 눈동자를 보면 볼 수록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캔버스에 붓터치로 그린 그림들은 그래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사진전을 제대로 접해본 게 아마도 이 사진전이었던 것 같다. 이 사진전의 사진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사진 하나하나에 작가의 여러 감정들이 교차되어 나타났다. 사진을 보고나니 너무 진지해져서 좀 힘들기도 했다.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감정이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2014-04-27

시_ 후회- 권소연

'제대로 해본다는 것'
내가 내 삶에서 도전한 일들의 수가 중요하다기보다, 내가 도전한 그 일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사랑.
내가 만난 이성이 몇명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한 명을 만나도 얼마나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우리는 진정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는 걸까? 진정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걸까?

자본주의를 사랑하는데, 애써 그걸 진정한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가 진정한 사랑을 하는데, 방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본을 초월하여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이벤트의 크기 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라고 어느 누군가 했던 말에서 삶의 깊은 통찰을 느꼈었다. 사랑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느껴지는 온기, 사랑하는 당신을 안았을 때 느껴지는 무언의 마음들이 중요하다는 의미 아니었을런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애써 사랑을 증명하려해도 마음이 허전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은 아닐까?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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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해본 일이 많은 건 후회되지 않아.
제대로 해본 일이 없는 게 정말 후회돼."
어느 블로그에서 본,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후회를 가장 크게 하게 될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지 싶다.
"사랑을 많이 해보지 않은 것은 괜찮아.
하지만 제대로 사랑해 본 일이 없는 것은 정말 후회돼."


-권소연의 <<사랑은 한 줄의 고백으로 온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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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6

Arirang Literature Museum 아리랑문학관(Jung-rae Jo)


Jung-rae Jo 조정래
Arirang Literature Museum 아리랑문학관


조정래씨의 대하장편소설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렇게 3개가 있다. 그 중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책은 <<태백산맥>>이다. 과거에 지인이 외국에 나가 있을 당시 <<아리랑>>을 읽었던 느낌과 작가 '조정래'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 때를 계기로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에가 가게 되었다. 흔히 태백산맥문학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김제에도 아리랑 문학관이 있었던 것이었다. 기억이 맞다면 아직 '한강문학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태백산맥문학관(2008년 11월 개관)이 아리랑문학관( 2003년 5월 개관)보다 더 일찍 개관했다는 사실에 좀 놀랐었다. <<태백산맥>>(1989년 간행)이 <<아리랑>>(1995년 완결)보다 일찍 출간되었기에 태백산맥문학관이 먼저 설립된 걸로 추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랑문학관은 2층으로 되어있다






이 사진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익히 봐왔던 사진이다. 작가는 원고지에 소설을 쓰는데, 총3개의 대하장편소설을 썼던 원고지를 쌓아놓고 그 앞에서 작가는 손자와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 앞에 서있는 어린 아이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에 뜨거운 무엇이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행복한 기억이었기 때문 아닐런지...이 사진을 볼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너무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무릇 글을 쓰는 작가는 일반인보다는 펜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만년필 또는 전문가용의 필기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굳이 전문가용의 필기구를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함에서 자신만의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냈다. 오랜시간 글을 써야하기 때문에 만년필의 묵직한 무게감이 더러 글을 쓰는데 많은 방해를 줬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래서 가벼운 필기구를 찾은 결과 사진에서와 같은 일명 '세라믹 펜'을 사용했다. <<아리랑>>을 쓰면서 교체용 심을 약 500개 이상을 사용했다고 한다. 교체용 심의 경우도 약간씩 길이가 달라서 펜의 머리 부분으로 나오는 펜촉의 길이가 글을 쓰는데 거슬렸다는 작가의 말, 그리고 하나의 펜을 계속사용하다보니 펜의 이음새 부분에 금이 갔지만 새로운 펜을 쓰게되면 영감이 끊길 것 같아 금이 간 부분에 테이프를 여러번 두르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는 작가의 말을 들었을 때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이 링컨 초상화에는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 초상화는 너무 가했던 젊은시절의 작가가 직접 그려 사랑하는 여인(지금의 배우자)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와 그의 아내의 사랑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선물(Present)의 본질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한다. 더군다나 작가는 "지금까지 아내에게 해준 가장 큰 선물은?"이라는 어느 방송의 사회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내 전부를 다 준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이 초라하고,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런 작가의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지금의 아내가 보듬어 주었기에 자신이 지금에까지 올 수 있었다며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매우 감동을 주는 장면이다.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본질은 사랑이다. 돈이 아니라.


Lecture_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출간기념 토론회






(과거에 작성한 글을 수정)

사회과학 분야에서 <<88만원세대>>- 우석훈 지음_이 약10만부 정도 팔렸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자가 그 후속 작품으로 출간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출간기념 토론회에 다녀왔었다. 이 당시에는 잠시 여유를 갖고 삶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려 노력하던 시기였기에 괜찮다 싶은 강연은 찾아다니면서 들었다.


대략 250석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150여명 정도 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홍보 부족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호응이 없을 줄은 몰랐다. 자리가 꽉 차서 혹시라도 강연을 보지 못할까봐 일찍 강연회장에 도착했었는데, 그 예상이 빗나갔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도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했는지 모른다. 대부분 '여유'와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핵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의 정적...그러나 핵폭발이 일어난 후는 처참하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마치 핵폭발이 일어나기전 정적의 시간이 아닐지......그래서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뭔가 준비를 해야한다는 경각심이 들기도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른다. 여전히 그 불안감은 살아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듯하다.

예정 시간은 저녁9시30분에 끝내는 것이었는데, 10시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 만큼 열띤 토론회였다. 저자를 비롯한 여러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청년들이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혼자 잘 산다고 지금의 여러 문제들이 본질적으로 해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어려운 문제들이지만, 한 걸음씩이라도 내 디딜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

2014-04-25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지금껏 열정을 가지고 해왔던 일들을 등져야 한다는 것이...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게 현명한 걸까? 아니면 여러 상황들을 깊게 생각해서 그만두는 게 지혜로운 선택일까?

정말 어려운 문제다.
각 상황들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엮여 있기 때문에...

그만두느냐, 아니면 끝까지 붙드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그토록 다다르고 싶어하는 그 목적지가 진정 나에게 의미있는 목적지인지에 대한 숙고가 아닐까? 끝까지 붙들기로 결정했다면 최선을 다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반면 그만 둔다는 결정을 했을 때는 자문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고난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최선을 다했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서자.'......


이 부분에서 또 다시 의문이 들게 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어느 소설가께서 매우 의미있는 대답을 내 놓으셨다.

"너 자신이 감동할 만큼 노력했는가?"

개인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라면 자신이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어렵겠지만...그래도 힘을 내어 한 걸음씩 내 딛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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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상,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던 끈을 '나, 이제 그만 할래' 하고 놓아버리면 그 순간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 같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포기의 고통'은 더욱 깊고 오래갔다.~


[출처: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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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4

movie_ The True taste Show 트루맛쇼(2011)






우리는 제대로된 음식(Food)을 먹고 있는 것일까?

내가 먹는 음식의 맛(Taste)은 내가 느낀 것인가, 미디어가 내게 훈련 시킨 맛인가?

여러 미디어를 통한 광고(Advertisement)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위의 의문들에 대해 이 영화는 다큐 형식으로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이 다큐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흔히 '맛집'이라 불리는 음식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Food)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어쩌면 음식(Food만 제대로 잘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의 기초를 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적절한 운동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고...

음식(Food)과 관련된 시스템이 바뀌어야할 텐데,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각자 개인이 변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음식(Food)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유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movie_ 태백산맥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이하고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일어나고, 그 후 베트남전쟁이 끝나는 30여년 동안 동아시아는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영화가 원작소설('태백산맥'- 조정래 지음)을 대신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역사와 관련된 책에서 본 글 귀가 여전히 메모에 남아있었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4-04-23

art_ Against the Sculptural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





(과거에 작성한 글을 현재 관점에서 재수정)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지인을 통해 예술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그림들을 주로 감상하다가 예술의 다른 영역에도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각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캔버스가 2차원의 예술세계라면 조각은 3차원의 풍부한 입체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돌덩어리에서 새로운 예술작품을 탄생 시켰다는 이야기에서 조각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조각작품들에서는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들이 들었다. 그림이 2차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명암과 원근법 등의 기술을 사용했다면, 조각은 실제 눈 앞에 실물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전시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마도 아래 첨부한 작품인 것 같다( 아직까지도 저장되어 있는 걸 보니).
척박한 돌틈 사이에서 새싹이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또 틀을 깨고 나오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으로도 느껴진다.
이런 저런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지금 봐도 느낌은 새롭다.



[ 류제형 JeHyeong RYU/ Breath 1/FRP,WOOD,자동차도료/58x65x82cm/2008 ]

[사진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사이트]


movie_ CHLOE 클로이





"꽃이 활짝 피었는가?"

우리에게 사랑은 영원불멸의 지속가능한 것이 아닌, 1년에 한 번피는 꽃처럼 꽃봉오리가 찬란한 햇살을 머금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만개해봤는지에 대한 짧은 경험의 '영원성'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은 넘어서려는 욕심과 탐욕을 내고 있는 건 아닐런지... 시간이 흐르면 늙는 게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러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젊음을 잡아두려는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욕심을 넘어 '지나친 탐욕'이 아닐까?...아름답게 늙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여성들이 자신의 겉모습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건 그만큼 여성이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결국, 여성은 자기 본연의 내면에 직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회 속의 여러 타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인의 시선을 외면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타인의 시선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아닐런지... 여기엔 미디어(Media)가 상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대중에게 끼치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에 나오는 아리따운 여성들도 결국은 늙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에는 아름다움이 계속해서 대체되고 있다. 마치 마술상자처럼 미디어에선 '젊음'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늙음'을 망각의 늪에 가둬두고 대중에게 '젊음'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원숙미가 느껴지지만, 여성의 경우는 그와는 다른 삶을 겪는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몸에 장식을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을 보면, 그만큼 나를 떠나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장식으로나마 대체하려는 여성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혼인을 한 여성은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게 되고 이런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사랑하는 남녀가 오랜시간을 사랑하게 되면서 매너리즘에 휩싸이게 되고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소통이 단절되고 의심과 불안이 증폭되게 되었을 때...그 때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할 수도 있음을 이 영화는 일러주고 있다...진정한 사랑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괜찮은 영화였다.
사랑, 섹스, 믿음...등등의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2014-04-22

movie_ The Adjustment Bureau 조정국(컨트롤러)





나의 행동이 과연 나의 주체성으로 행해진 것인가?
나의 습관은 내가 선택하여 형성되어진 것인가?
프레임(Frame)에 갇혀 살면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영화를 본 뒤 불편하게, 반복적으로 스치던 생각들이었다. 습관이라는 것도 어쩌면 아주 어릴적 환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쌓여 시간이 흐른 뒤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전적으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하는 아이의 경우에는 부모에게 받은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이 그 아이의 일생을 규정지을 수도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어떤 직면의 태도를 가져야할지 심사숙고해야하지 않을까? 말랑말랑한 찰흙은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재창조된다. 하지만 그 말랑한 찰흙은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져 다른 새로운 무언가로 재탄생하기가 참으로 힘들게 된다. 이런 이치가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혁신하기 위한 정말로 힘든 그 과정을 어떤 열정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까? ... 사랑 ...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그 용기가 틀(Frame)에 갇혀 있는 삶에 새로운 희망을 선물해 준다는 것. 이 영화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에게 해준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이라고 사회자가 묻자 어느 소설가는 "내 전부를 다 준 것"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내 전부를 다 준다는 건 내 생명까지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선물한다는 것인데, 실행에 옮기기 상당히 힘든 만큼 그 소설가의 대답에는 삶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진정한 사랑'의 영역에까지 깊게 들어와 있음을 느꼈다.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이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인지, 부모나 사회가 만든 틀(Frame)에 의해서인지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노력하면 되기 때문에... 하지만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면 출발을 도대체 어디서해야할지는 오리무중이 아닐런지......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어디로 가야할지 불안해 하던 옛날, 신의 힘에 의해 인간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인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미가 아닐런지...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극중 멧데이먼은 자신의 기억이 모두 지워질 위험을 감당하며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진한 키스를 한다. 그 순간 멧데이먼을 억압했던 구조는 깨지게 되고 '자유'를 얻는다. 나를 억압하는 것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응시하고 직면하여 그걸 디딤돌 삼아 더 높은 자유를 향해 도약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장자>>에 나오는 대붕이라는 새가 생각난다...

괜찮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