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9

movie_ The Giver 더 기버





영화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해준 영화.

평화롭고 균형(Balance)잡힌 사회를 위해 인간의 감정(Emotion)이 제어되는 삶을 살다가 다시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불행과 슬픔이 교차하는 감정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내용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기계가 인간의 일(Works)을 대체하고 있는 지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무엇일까?... 감정...Emotion...

예전에는 간혹 식사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러지 않고 있다. 식사할 때는 그냥 식사를 하면서 내 입속에서 춤추는 음식들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내 입속에서 어떤 맛과 느낌이 느껴지는지 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부터...

느낀다는 것...느끼지 못한다는 것...
현재 우리의 감정이 점차 메마르는 건, 어쩌면 우리 삶의 패턴이 상당히 빨라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떼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 게 사치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느끼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지금이지만, 언젠가 다시 느끼기 위한 삶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의 일관적인 구조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을 제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을 매일 사람들이 맞는 주사(injection)로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 주사(injection)을 맞지 않는 선택을 하게되면서 인간은 인간의 본질일 수 있는 감정(emotion)을 되찾게 되는...그리고 사회가 만든 규범의 틀을 깨고 나오는지도 모른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오듯이...


movie_ 12 Monkeys; 12 몽키즈





과거에 추천을 받아서 기억하고 있던 영화였는데, 최근 지인께서 이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지인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별반 다르지 않게 내 경우도 제대로 이해가 되진 않았다. 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파편화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난 뒤 파편화된 조각들을 맞추는 고민의 시간들은 즐거웠다. SF영화라 어느 정도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들이 있지만, 그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꾸는 꿈(Dream)이 현실(Reality)이 될 가능성...그리고 흔히 사회에서 '정신이상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생각(Think)들이 현실(Reality)이 될 가능성... 꿈과 정신이상자들의 생각이 완벽하게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이 인간과 사회에 던지는 위기의 메시지는 간과되어선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꿈(Dream)이 현실일 수도 있고,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정상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의 구조에서 용인되지 않는다하여 그것을 비정상으로 구분짓는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부정적 요소들을 수정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엎질러진 물을 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의 위치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미래 언젠가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지금(Now)' 미래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깨어있어야함을 이 영화가 넌지시 일러주는 건 아닐런지...

기억에 남는 대사...
"영화는 변하지 않았다.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변해서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도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4-09-23

movie_ DIVERGENT 다이버전트




About TRUE FREEDOM this movie may talk.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 처럼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거대한 틀(Frame)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상당히 짜임새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인 자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적당한 액션과 놀랄만한 이야기의 구성이 곳곳에 담겨있었다.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이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2014년04월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날 즈음에 개봉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물음에 이분법적인 논리구조를 이용해서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때는 이타적인 마음이 우러나오기도하고, 어떤 때는 이타심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욕구가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다양한 감정과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인간을 한 가지 틀(Frame) 속에 가두려는 경향이 강한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한 개인을 통제할 수 있고, 더 넓게는 모든 군중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제어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질 수 있기에... 이러한 부분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현재로써는) 인간은 '자율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인간은 지금까지 얻지 못했던 '자율성'의 범위를 감당하기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곳에 소속하기를 바라고, 그 소속된 공간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현재로써는)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율성'을 끊임없이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던져주는 것 같다.

영화에는 적절하게 액션이 가미돼 있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철학적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중 여자주인공(트리스)이 5개의 분파 중 자신이 앞으로 살고 싶은 분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부모라는 틀(Frame)을 과감히 뛰어넘는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의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체화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모님의 틀(Frame)을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과 부모님의 가치관이 비슷한 경우는 운이 정말 좋은 경우인 것 같다.

자신의 내면에 직면하는 것... 이 영화에서는 모든 걸 걷어치우고 자기 자신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직면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큰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액션을 즐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굳이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철학적 내용들로 인해 머리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여성분들이 보시면 어느 정도는 즐거운 느낌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극중 여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삶을 혁신하고 개척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2014-09-19

book 요한복음강해- 김용옥 지음





완독한 책은 아니다. 대신 이 책을 교재로 한 강의(Lecture)는 모두 들었다. 아쉽게도 강연은 완강을 하지 못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의 막바지에 와서 중단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Religion)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Religion)에 대해 필연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이런 과정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종교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영어를 더욱 심도있게 공부하기 위해 이 책과 강의를 선택했었다. 이 책은 영문성경(RSV) 원문을 바탕으로 그 원문을 해석하고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첨가하는 방식이었다.

강연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성경이 해석되는 시대적 배경들을 고려해서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의 중요함~" 에 대해 저자가 언급한 부분이었다. 수 천년 전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성경의 글귀 자체를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본질적 의미를 유지한 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영어공부와 함께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조금이나마 기독교(특히 개신교)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된 가치관 보다는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바랐던 본질적인 것들과 사람들이 현재 예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여전히 종교(Religion)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다. 신이 있는가? 신이 없는가? 의 논의를 떠나서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호흡해 왔는지,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종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간과 함께 할지 궁금해진다.


2014-09-04

book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고도원 지음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굳이 45가지로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5가지 이외의 것들도 있겠으나 아마도 저자는 정리에 정리를 반복하여 45가지로 요약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저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한 행동들의 본질적인 부분을 독자들이 간파해내길 저자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당장 부모님을 위해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은 각자가 서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본질을 담아 부모님과의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궁극의 도착점일 것이다.

"시간은 부모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 자주 담소를 나누던 선임이 반복해서 말했었다. 결국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기에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할 '죽음' 덕분에 인간의 짧지만 긴 인생이 빛날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좋은 뒷모습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와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와는 상반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좀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흔히 '효孝'라고 하는 가치관을 개인의 판단이 아닌 사회구조가 한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던지고 싶다.

부모와 자식간에 얽힌 상처들을 서로 치유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의 부재가 상처를 더 깊게 하는 것은 아닐지...

각각의 주제들이 짧은 호흡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고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을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밝은 빛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을 각자의 상황에서 실천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치려고 한다.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며, 가족 자체가 축복~"
개인적으로 이 말에는 인간 삶의 본질과 통찰이 깊게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을 대부분은 그냥 스쳐지나간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상당히 안타깝다.



책에서 소개된 45가지 중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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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것 챙겨드리기

- 엄마 앞에서 어리광 피우기
- 전화 자주 걸기, 가능하면 하루 한 번씩
-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기
- 마음이 들어 있는 건강식품 챙겨드리기
- 부모님의 종교 행사에 참가하기
- 부모님 손에 내 손을 마주 대보기
- 맛있게 먹고 "더 주세요!"말하기
- 무조건 '잘 된다'고 말씀드리기
- 부모님이랑 노래 불러보기
- 부모님 건강이 최고
- 생신은 꼭 챙겨드리기
- 학교나 회사 구경시켜드리기
- 소문난 맛집에 모시고 가기
- 노부모와의 대화법 익히기
- 하루라도 건강하실 때 모시고 여행 다니기
- 함께 공연 보러 가기
- 부모님 댁에 들를 때마다 구석구석 살펴드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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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movie_ Coco Before Chanel 코코샤넬




After all, what does the human want to get by buying the luxury consumption?

처음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상당한 흥행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보기좋게 예측은 벗어났다. 명품을 소비하고, 명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샤넬(Chanel)이라는 브랜드의 가치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흥행되지 않아 조기종영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를 봤던 곳도 서울역사박물관 인근에 있는 작은극장이었다(그 당시 상영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처음, 우리가 명품이라 일컷는 제품들이 소비될 때는 그 명품을 만든 사람의 가치에 대한 동경, 또는 자신도 그런 사람과 같은 삶을 살고자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영문에서인지 자본주의시스템에서 언제부터인가 그 '가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제품을 소비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 욕망은 내가 타인과 구별짓기 되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증폭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 각자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보다 더 우월하다는 계층 나누기의 모습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명품들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다른 보편적인 제품들보다 미적가치가 뛰어난 물품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명품이라는 브랜드만 달고 제품으로 출시된다고 해서 뛰어난 제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명품을 구매하면서 인간이 결국 소비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토리의 구성이 조금은 빈약하다. 갑자기  개연성 없는 장면들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채 보여지는 느낌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겠지만, 내 경우엔 기승전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넬(Chanel)이라는 여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약간 지루한 면도 있었다.


2014-08-21

book 정신분석입문- 프로이트 지음

Vorlesungen Zur Einfuhrung in Die Psychoanalyse
by Sigmund Freud (Author)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라고는 하지만,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 의견들도 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생각들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기 전 가장 먼저 소화하고 넘어가야할 책이 바로 이 책<<정신분석입문>>인 것 같다. 프로이트의 많은 저서들을 읽기 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바탕을 튼튼하게 다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이 무의식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일정한 사실(fact)을 증명해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을 어떤 Text라는 도구를 이용해 표현해 내는 게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미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프로이트의 저작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준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정신'에 심각한 문제점들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정신과 관련된 문제들은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우리의 심신을 갉아 먹기 때문에 대부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병의 근본 원인이 될 것들은 아마도 "마음"과 연관된 여러 보이지 않는 부문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런 미래의 시대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책과의 인연은 행운이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책이 모든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무의식을 설명해 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좋은 실마리들을 던져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하더라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튼튼했던 몸은 어느 순간 정신이 겪고 있는 고난을 함께 겪을지도 모른다. 결국 몸과 마음이 끊임 없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과거가 눈에 보이는 몸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할지도...

프로이트가 아기가 자신의 손가락을 빨고, 어머니의 젖을 빠는 행위들이 일종의 성욕(리비도)의 표출이라고 언급한 그의 의견은 왠지 모르게 좀 더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생각들이 서양의 생각이라고 했을 때, 동양의 관점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도 함께 고찰해볼 필요성이 있다. 아마도 동양에서 인간의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불교의 '무의식'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2014-08-17

The GREED of the CAPITAL 자본의 탐욕

CAPITAL still seems hungry.

자본의 식욕은 그 한계를 외면한 채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최근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이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다.

가끔씩 대형마트를 이용한다.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중 마트의 직원으로 보이시는 몇 분의 등에 호소글이 쓰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달을 일하고도 100만원 받기가 힘들다.~"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기억이 틀릴 수도 있음).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구성된 노조와 회사 측과의 임금협상 등 여러 노동 조건과 관련해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또한 이미 매스컴에서도 드문드문 보도가 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호소글에 대한 맥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본은 왜 이렇게 까지 인간을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 게 되었을까? 직원들이 행복하면 그것이 바탕을 이루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회사에 더 큰 수익을 창출해 주지 않을까? 결국 직원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가치가 지금 당장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보다 못하는 소리인가? 직원들은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직원과 회사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러 생각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피어올랐다. 더 마음을 무겁게 했던 건, 이미 대형마트의 계산하는 시스템이 '무인계산대'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무인계산대'에는 소수의 직원 분께서 서 계시며 무인계산대를 이용하시는 고객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점점 이 '무인계산대'의 개수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오프라인의 은행 고객창구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인터넷뱅킹과 ATM기가 증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였다.

또 다른 이야기는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 어느 골목에 위치한 슈퍼가 최근에 문을 닫았다. 지인과 슈퍼를 지나다가 지인이 넌지시 "혹시 여기에 편의점 들어오는거 아닌가? 그러면 이거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동조를 하면서도 내심 대자본이 운영하는 편의점이 아닌 어느 개인이 운영하는 그 무엇이 들어오길 바랐다. 그런데 지인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대기업의 편의점이 입점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작은 몇평 남짓의 슈퍼자리에 대자본의 독주세력이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순식간에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쳐 눈 깜짝할 사이에 동네슈퍼가 사라지고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거대자본의 탐식은 진행 중인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자본의 횡포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더 놀라운 건 과거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총과 칼을 이용해 피를 보는 것이었다면, 이젠 (눈에 보이지 않는)거대자본의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어느 누군가가 누구에게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지를 명확히 알아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책임들은 어느 한 명에게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분산되는 특성이 있는 듯하다.

냉정히 말해선 비극의 극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비극인지를 인지해야 비극을 딛고 희망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여전히 거대자본은 배가 고픈가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보다도 일단 배고픔을 채우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대기업의 편의점들이 점점 늘어나는 측면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편의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또한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이미 미디어가 만든 습관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냥 동네슈퍼의 간판보다는 대기업 편의점의 간판이 무의식중에 자주 봐왔기에 더 선호할 가능성도 높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자본은 욕망하고 있는 듯하다.


2014-08-13

book_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인간의 역사를 바라볼 때, 단순히 연도 등을 외우는 것으로 역사에 접근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지루한 느낌이 든다. 현재 여러 곳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도 아마 이런 암기 위주의 교육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교육제도가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장면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왜 역사를 공부해야하나? 라는 물음보다. '인간의 삶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라는 물음이 이 책을 집어 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삶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모습이 뿌연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는 답답함과 불안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 벌어질 상황들에 적절히 '대응'할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해 이해해야할 필연성과 당위성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 너무 궁금했고, 그 과정 속에서 '역사'라는 거대한 산을 만난 것이다. 즉, 역사는 내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조력자라고 할 수 있겠다.

'지식'과 '지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식이 있어도 지혜를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으면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죠"라고 어느 누군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단순하게 지식을 암기할 수는 있지만, '지혜'는 단순히 암기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일 것이다. 결국 '지혜'는 글로 표현하여 전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지혜'의 중심에는 인간이 서 있지 않을까? 언젠가 문득 든 생각이다.

이 책에서는 아래의 5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욕망 (Desire)- 커피와 홍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
모더니즘 (Modernism)
제국주의 (Imperialism)
몬스터 (Monsters)-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 (Religions)-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재인식되는 중세/ 이슬람의 재인식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각 부문을 나누었을 뿐이지 5개의 주제들이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영역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욕망(Desire)'이라는 주제였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삶에서 '욕망'은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욕망이 '긍정'과 '부정'을 함께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나친 욕망은 파멸을 몰고 올 수도 있었지만, 적당한 욕망은 인간의 삶을 더욱 진보 시켰다. 이 때부터 생각은 더 깊어졌고,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전까진 흔히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욕망'하는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었다. 꼭 욕망이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그 욕망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큰 물줄기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주연으로 서있던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알지 못하면 역사의 물줄기의 방향과 힘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닐런지... 인간이라는 본질은 시대를 떠나서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집의 모양, 입는 옷, 먹는 음식들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지 그것들도 결국 본질적으로  '의식주'라는...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게 필요할 것이다.

종교(Religions)에 대해 다룬 부분도 상당히 의미있게 읽었다. 인간으로서 완벽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항상 예측을 빗나가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서 인간은 불안해한다. 그 불안을 종교로 대신하여 안정을 추구하는... 결국 종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전재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는 끊임없이 함께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는 종교와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미국이 종교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종교적이라는 사실...그리고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취임식에서 성경 위에 손을 올리고 선서를 하는 장면...' 등은 우리에게 종교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인간인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역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의 지속성에는 얼마만큼의 호기심이 있으냐의 문제일 것이고, 그 호기심은 타자로 부터 나온 호기심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현재 나 자신의 고민과 걱정부터 출발하면 언젠가는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다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고민과 걱정에 직면하는 열정만 있다면 언제가 되었든 역사는 필연적으로 거쳐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파편화된 지식들이 통섭되어 '지혜'로 재탄생하는 희열을 느꼈다. 그 동안에 고민했던 주제들의 갈피가 잡히는 쾌감을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인가를 알아서 좋았다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나 자신,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조금은 얻은 것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웠던 것은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저자가 쓴 글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누군가의 추천으로 책을 읽었다. 추천인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4-08-08

잊혀졌던 군대 후임

먼 훗날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것에는 두개의 상반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좋은 기억으로 인한 그리움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기억으로 인한 분노일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좋을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인연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연.
우연...필연...
만나서 반가워요.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얼마 전 좋은 의미로 나를 기억하고 있던 분을 만나면서 든 생각.


어느 날 지인들을 만나러 어느 카페에 갔다. 지인 중 한 분이 사시는 동네에 2-3번 정도 방문 한 적이 있었는데, 갈 때마다 같은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날도 그 카페에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카페 카운터에 계시는 사장님이 슬금슬금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 은연 중에 느껴졌다.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내 쪽 테이블로 조심스럽게 걸어오시더니 조용히 이야기하셨다. "저기... 혹시...제가 아는 분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군 생활 어디서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군 생활하면서 크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지만, 왠지모르게 불길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옆에 있는 지인분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여서 불안감은 극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차분한 척 하며 입을 열었다. "군생활은 00에서 했어요." 내 말을 듣더니 사장님은 자신의 직감이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기쁨에서였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혹시 00사단 00중대 0소대에서 근무 하시지 않았나요?" 사장님이 약간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갈 때 나로서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현상이지? 자주 오지도 않는 동네, 그리고 자주 오지도 않던 카페에서 과거에 내가 만났던 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그랬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곳에서 나도 군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사장님의 얼굴을 한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사장님과 비슷한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000이라고 모르시겠어요? 000병장님 분대 분대원이었는데..."

사장님에게 미안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막 전입해 왔을 때 곧 전역을 앞둔 병장이셨으니까요." 사장님이 이해해줘서 그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같은 소대도 아니고, 같은 소대의 그것도 같은 분대의 분대원을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가 어디있나?'라며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사장님 말씀대로 난 그 당시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었고, 사장님은 군대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두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갓 전입한 이등병이었던 것이다.

사장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잘해드렸나요?"

전역을 한지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에서 지우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어느 날 야외로 훈련을 나갔을 때 주특기 교육을 하는 중에 분대원들이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나태해졌다는 판단에 고함을 지르고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가급적 분대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군대에서 최소한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분대원들이 책임을 지고 잘 해주길 바랐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아 한 번인가 상당히 크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두려워한 그 기억을 이등병이었던 사장님은 더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장님에게 조심스래 물어봤던 것이다.

"갓 전입한 저에게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잘 해주셨어요."
다행이었다. 지인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 당할 상황은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다행이네요. 제가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사장님에게 남아있어서..."라고 미소지으며 사장님에게 말했다.
옆에 있던 지인분들도 상당히 놀란 눈으로 사장님과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인 분들과 이야기하는 중이어서 사장님과는 더 길게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대신 가지고 있던 책 한 권을 사장님에게 만난 기념으로 선물해 드렸다. 좋은 기억으로 만난 기념. 그리고 나를 잊지않고 기억해 준 감사함을 담아 책의 속표지에 간단한 인사말을 적었다.

놀랐다. 나를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 상대방이 나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써 기억해내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애써 기억한 뒤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거셨으니... 개인적으로 작은 희망을 느꼈다. 내 자존감을 지키고, 내 본질을 지켜 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때 당시에 나는 고민이 많았고, 내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엇던 상황으로 기억된다. 혼자서 삶에 대한 여행을 하고 있는 와중에 따뜻한 인연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랬으니 나에게는 감사할 일이 생겼던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