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2

book 꼴- 허영만 지음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각각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좀더 유심히 볼 수 있게 안내해주는 것이 이 책인 것 같다. 어려운 한자로 설명된 게 아니라 친절히 그림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얼굴을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읽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나 요즘은 성형이 유행이다보니,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에 사람을 잘못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형으로는 바꾸기 힘든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마음'이라 생각하고, 어떻게하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급적 성형을 안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너무 터무니 없는 생각은 아니라는 걸 느끼기도 했다. 아무리 얼굴을 고친다하여도 그 본질적 마음의 바탕이 아름답지 않다면 성형으로 만든 아름다움은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늙는 게 당연한 것인데, 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심각히 고민하는 주제 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미디어(media)의 전략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 미디어에 비춰지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만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일생 전체를 지속해서 미디어의 프레임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사람들이 늙게 되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그 누군가에게로 미디어의 프레임이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미디어의 프레임은 그대로인데, 인간human만 계속해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그 프레임 속에서 대체되어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아름답게 늙어갈 것인가?'
이젠 이런 고민을 해야지 않을까? 나의 관점에선 이런 생각이 더 건강해 보인다. 그 옛날 세상을 평정했던 미남, 미인들의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았음을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늙어 죽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결국, 돈에 대한 탐욕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젊음'에 대한 탐욕까지도 인간의 마음을 갉아 먹고 있는 게 아닌지 좀 걱정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만화책 덕분에 인간에게 눈eyes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예전보다 더욱) 요즘 눈과 관련된 여러 수술들을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되었다. 그리고 스티브잡스Steve Jobs가 사람들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습관을 왜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book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 -스티븐 호킹 지음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가독성이 매우 떨어졌다. 그 이유인 즉, 가끔씩 접했던 과학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다보니 책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시선들이 신선했으며, 나에게 고민할 주제들을 많이 제시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면, 좀 더 스티븐 호킹과 교감하는데 있어서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이 책에서 스티븐 호킹은 우리가 겪는 현상들을 설명해줄 모형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모형으로 대체될 수 있는 건 M이론일 확률이 크다고 말한다. 여기서 확률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확실한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을 하면서도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말에 대한 논증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M이론에 대해 그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고 본다. M이론에 대한 구체적 설명의 부재(不在)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어떤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시선을 배우는 기회였다. 본질(本質)은 같은데, 그 본질(本質)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100% 확실한 답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계속해서 더 좋은 쪽으로 순항(順航)을 해야하는데 현실을 그러하지 못한 것만 보더라도...여러 분야들을 알면 알 수록 생각해야할 것들이 많아져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어느 한 곳의 전문적인 지식만을 쌓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의 앎을 실천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됐다. 100%에 근접하게 전문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70-80%정도의 지식을 다방면에서 쌓는 것 말이다.


2014-03-01

book 협동조합, 참 좋다 -김현대, 하종란, 차형석 지음





현재 세계적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의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
"거대 자본의 독과점언젠가 누군가 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자본주의는 이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협동조합, 더 큰 범위로 말하면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는 대표적으로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사회적경제는 사람human에 더욱 가치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주식회사의 경우는 자본을 많이 소유할 수록 그 주식회사에 대한 '권리'가 많이 주어진다. 하지만 권리가 많이 주어지는 만큼 '의무'는 각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다. 즉, 주식회사는 본질적으로 '자본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시위가 발생했었다. 우리 언론에서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 시위에는 상당한 군중심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지나친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을 하나의 소비성 물품 정도로 전락 시켰고, 돈money이면 다 된다는 식의 자본주의종교를 양산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 "신뢰 부족"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고 돈을 믿고 있다는 의미로 내가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종교에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경제시스템은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라는 큰 목차에 속하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를 견제하며 서로가 발전하는 양상으로 가지 않을까? (출자금 비율대로 의사결정권이 주어지는) 주식회사의 이익추구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이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협동조합'이 앞으로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대표적으로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에는 협동조합이라는 시스템이 견고하게 정착되어 지역사회에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는 시행 단계라 여러 거품과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긍정적 측면에서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한 진화의 단계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더욱 중심에 서고, 사회에 긍적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제 시스템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에 대한 많은 관심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본인부터 작은 실천에 옮겨야겠다.


book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 받은 이유는
아마도 책 제목이 <<피로사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에 의해 선택 받아졌으나
과연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조금은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 책은 많은 공부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철학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0여 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해가 안된 문장은 몇 번씩 다시 읽어가며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지금 '피로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과거 우리는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시대에 규율과 통제에 의한 
억압된 생활을 하며 어떤 권력을 가진 타자의 틀에 짜여진 삶을 부지런히 살아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규제와 억압이 상당 부분 사라진 
'자유'가 누려지는 사회라고 저자는 말한다. 

'규제-자유'라는 상반된 상황에 놓인 인간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그 '자유'로 인해 삶의 균형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후기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무한자유를 바탕으로한 
'성과사회'는 한 개인에게 '무한한 성과'를 요구하면서 
개인은 이제 권력을 가진 타자에 의해 착취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본인을 착취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과거에는 '해야 한다'가 주요한 구호였다면 
현재는 '하면된다'라는 무한 긍정 속에서 
한 개인은 타자와의 경쟁보다 더 강력해진.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끝도 보이지 않는 질주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결국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무엇을 버려야 하나?'라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어느 곳에 가치있게 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일과 휴식의 균형,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균형...

언젠가 실리콘밸리의 어느 기업에서
업무량이 많고, 힘들긴 하지만, 직원들의 가족들을 배려하는
기업문화에 대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구조가 긍정적인 측면으로 변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반면 한 개인이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나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낼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런지...


[첨부: 책 내용 중 괜찮았던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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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그러나 후기근대의 자아는 완전히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죽음의 기술로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주고 지속의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할 종교도 이제 그 시효가 다 되었다.~

~여기서 니체가 표명하는 것은 바로 사색적 삶의 부활이다. 이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저 긍정하는 수동적인 자기 개방이 아니다. 사색적 삶은 오히려 몰려오는, 또는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며, 시선을 외부의 자극에 내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 조종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 행위를 통해 사색적 삶은 어떤 활동과잉보다도 더 활동적으로 된다. 실상 활동과잉은 다름 아닌 정신적 탈진의 증상일 뿐이다.~
~니체가 말한 "중단하는 본능"이 없다면 행동은 안절부절 못하는 과잉활동적 반응과 해소 작용으로 흩어져버릴 것이다. 순수한 활동성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연장할 뿐이다. 진정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중단의 부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머뭇거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단, 막간, 막간의 시간이 아주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 {활동적 인간의 주된 결함}이라는 아포리즘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보통 고차적 활동을 하는 법이 없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 돌이 구르듯이 활동적인 사람들도 기계적인 어리석음에 걸맞게 굴러간다."~

~사회의 긍정성이 증가하면서 불안이나 슬픔처럼 부정성에 바탕을 둔 감정, 즉 부정적 감정도 약화된다. 사유 자체가 "항체와 자연적 면역성으로 이루어진 그물"이라면, 부정성의 부재는 사유를 계산으로 변질시킬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뇌보다 더 빨리 계산할 수 있고 엄청난 데이터를 조금도 토해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컴퓨터에 어떤 종류의 이질성도 들어설 여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긍정기계이다.~
~세계의 전면적 긍정화는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헤겔에 따르면 부정성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생동하는 상태로 지탱해주는 것이다.~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 힘 없이 오직 무언가를 지각할 수 있는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떤 "정신성"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무언가 생각할 힘 밖에 없다면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대상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기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 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무위nicht-zu의 부정성은 사색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예컨대 참선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들이닥쳐 오는 것에서 스스로를 해방함으로써 무위의 순수한 부정성, 즉 공空에 도달하려 한다. 그것은 극도로 능동적인 과정이며 수동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참선은 자기 안에서 어떤 주권적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연습, 중심이 되고자 하는 연습이다. 이에 반해 긍정적 힘만을 지닌 사람은 대상에 완전히 내맡겨진 신세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활동과잉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형태의 행위로서 어떤 자유로운 행동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그것은 긍정적 힘의 일방적 절대화가 낳은 결과이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 그는 타자의 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명령하는 타자의 부정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타자로부터의 자유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오늘날 성과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적 장애의 원인이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심적 억압과 부인의 부정성을 전제한다. 프로이트가 강조하는 것처럼 무의식과 심적억압은 "매우 커다란 상관성"을 지닌다. 하지만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으로 이런 병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울증은 초자아와 같은 지배기관에서 오는 억압Repression의 결과가 아니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억압된 심리적 내용을 간접적으로 암시해줄 프로이트적 "전이"도 일어나지 않는다.~

@@~슬픔은 강렬한 리비도가 투여된 대상의 상실과 함께 일어난다. 슬퍼하는 자는 전적으로 사랑하는 타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후기근대의 자아는 리비도적 에너지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에게 사용한다.  그렇게 쓰고 남은 리비도는 계속 늘어나는 연락처와 일시적 관계에 배분되고 흩어진다. 매우 약한 리비도를 타자에게서 빼내어 새로운 대상에 투여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길고 고통스러운 "애도 작업"은 불필요하다. 소셜 네트워크 속의 "친구들"은 마치 상품처럼 전시된 자아에게 주의를 선사함으로서 자아 감정을 높여주는 소비자의 구실을 할 따름이다.~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규율사회가 변함없는 정체성에 의존했다면, 성과주의적 후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개인 사이의 경쟁 자체가 아니고 경쟁의 자기 관계적 성격이다. 그로 인해 경쟁은 절대적 경쟁으로 첨예화된다. 즉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어떤 예속적 본성을 지닌 주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긍정화하고 해방시켜 프로젝트가 된다. 하지만 주체(예속)에서 프로젝트로의 전환으로 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자에 의한 강제가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로 대체될 따름이다.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Burnout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탄환임이 드러난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성과주체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로우며 그것에 의해 노동을 강요당하지도, 착취의 희생자가 되지도 않는다. 성과주체는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적 지배기구의 소멸은 강제구조의 제거로 이어지지 않고, 다만 자유와 강제의 통합을 가져올 뿐이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착취한다. 자기 착취는 기만적인 자유의 느낌을 동반하는 한에서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욱 가속화된 발전을 위해 타자에 의한 착취에서 자기 착취로 전환한다. 이러한 역설적 자유로 인해 성과주체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주인이자 노예가 된다. 자유와 폭력이 하나가 된다.~

~니체의 입장에서 그러한 인간은 주권적 인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노예로서 스스로 착취당하는 최후의 인간일 것이다. 에랭베르의 가정과는 반대로, 니체의 주권적 인간은 실은 탈진한 성과주체에 대한 문화비판적 대항 모델로서 여유로운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니체라면 활동과잉의 인간을 역겨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한 영혼"은 "평정"을 유지하고 "천천히 움직이"며, "지나친 활발함에 대해 거부감"을 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절대화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관심은 좋은 삶이 아니다. 이 경제는 더 많은 자본이 더 많은 삶을, 더 많은 삶의 능력을 낳을 거라는 환상을 자양분으로 발전한다.~~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생존의 히스테리에 밀려난다. 생물학적 생존의 과정으로 환원된 삶은 벌거벗은 생명이 된다. 삶을 감싸던 서사성은 완전히 벗겨졌고 삶은 생동성을 잃어버렸다. 생동성이란 단순한 생명력이나 건강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것이다. 건강에 대한 열광은 삶이 돈쪼가리처럼 벌거벗겨지고 어떤 서사적 내용도 어떤 가치도 갖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 밖에 없다. 이상적 가치의 상실 이후에 남은 것은 자아의 전시가치와 더불어 건강가치뿐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 의식을 지워버린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며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주석 부분)
~22)니체의 최후의 인간은 신의 죽음 이후 건강을 새로운 여신으로 선포한다. "[------] 사람들은 건강을 숭배한다. '우리는 건강을 발명했다.' 최후의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고 눈을 깜빡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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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뇌 이야기 -이시형 지음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에의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겠지만) 삶이 단편화되고 단순하게 스쳐지나치는데 익숙해지면서 인간의 뇌가 사고할 수 있는 영역과 깊이가 점점 좁아지며 얕아지고 있는 것 같다. 깊게 숙고하는 훈련을 할 수록 우리의 뇌가 처리해낼 수 있는 범위가 더욱 확대될 터인데, 현재는 분업화와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통섭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사실 관계만을 따지며 갑론을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지속되다보면 결국 인간은 생각하는 것(Thinking)을 이란 걸 잊고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왜 지금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지가 설명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뇌력혁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들이 많아서 저자의 다른 책을 찾다가 읽게된 책인데, 큰 도움은 받지 못했다. <<뇌력혁명>>만 제대로 읽어도 저자가 독자에게 하고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첨부: 본문 중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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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추천하고 싶은 식품으로 블루베리가 있다.~~대표적 효능은 항산화제 역할을 하여 뇌의 노화로 발생하는 치매를 예방해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안토시아닌 성분이 눈의 피로로 발생하는 육체적-정신적 피로와 야간 시력 장애, 시력 저하를 개선해준다고 한다.~~특히 눈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블루베리를 먹으면 좋다.~

~빌 게이츠는 "내 아이에게 컴퓨터를 사줄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척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기기들의 사용 시간이 많아지면 뇌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친다.~~우리는 스마트폰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메시지 때문에 항상 대기 상태가 된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항상 긴장 상태에 놓인다.~~이와 마찬가지고 우리가 매일 하는 걱정들도 생각을 집중시키고 지속적인 긴장상태를 만들어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하게 한다. 쓸데없는 걱정에 집중하다 보면 어이없게도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 안 좋은 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그러니 안절부절 노심초사하기보다는 행동으로 그 걱정거리를 날려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뇌는 새로운 것에 자극받기를 원한다.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방법은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옛말에 '학무지경(學無止境)'이라는 것이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뜻이다.~~어쩌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뇌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다면 머리에 담아두자.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또는 시간이 지난 후에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뜻밖에 수월히 풀릴 수도 있다.~~항상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있다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 수시로 답을 찾으려하게 된다.~

@@@~자신의 뇌와 재미있게 놀아본 적이 있는가?~~방법은 간단하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것, 엉뚱한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항상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마치 이룬것처럼 꿈꾸면 현실에서도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김 빠지는 상상도 있다. 어떤 사람은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생각에 돈 쓸 목록을 만들어 돈 쓰는 상상을 하기도 할 것이다.~~이런 상상은 한두 번 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이렇게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마냥 기다리는 상상의 시간은 줄여야 한다.~

~반복적으로 상상하면 뇌에서는 상상하는 내용이 굳어진다. 그러므로 상상하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 한다.~

@~아인슈타인도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라고 했다.~

@~뇌는 실제로 경험했던 사실과 상상으로 만든 허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건전하면서 긍정적이고 좋은 상상을 많이 해야 한다.~

~산책을 하면 뇌에 혈액과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하여 생각과 영감을 자유롭게 한다.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산책을 생활화하길 권한다.~

@~피곤하거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잠을 자는 동안에 아이디어를 얻어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자만심과 자신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자신감은 내가 자신이 있다는 느낌이다. 자만심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자랑하는 마음이다. 나 자신에게 느끼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마음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자신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는 한 한순간에 변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주 작은 노력이 모여서 어떤 결과를 만든다. 현재의 작은 노력들이 나를 차츰차츰 변화시키고,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에서 얻는 가상 경험도 중요하지만 직접 겪을 수 있는 실제 경험들은 뇌에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 된다.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경험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다양한 경험이 모여 내 생각을 한층 더 키우고 성장하게 한다.~

@@~아마 대부분 사람이 뇌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그 존재를 그냥 잊고 살아왔을 거라 짐작한다. 나도 뇌에 대해 알기 전에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현재까지 살아온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한다.~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눌 수 있어야 진정한 내 것이 된다. 교육학자 에드거 데일은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읽기만 하는 경우에 그 내용을 10퍼센트 정도 기억하고, 보고 들은 경우는 50퍼센트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가르쳤을 때는 기억하는 비율이 90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나는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 말에 더욱 공감이 간다.~

@@생각이 생각을 만든다. 항상 관심을 두고 생각하면 여러가지 정보를 접했을 때 관심사와 연관되는 정보를 가려낼 수 있고,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발전한다. 어떤 어려운 문제에 닥쳤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다 보면 갑자기 해결방법이 나타날 것이다.~

@@~사람은 이렇든 저렇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뇌가 계속해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은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 없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 없는 삶일 뿐이다. 어차피 무엇이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면 발전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디 가서 주눅이 들면 뇌도 같이 작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을 키우면 뇌도 저절로 커진다.~

@~미국 작가 얼 쇼리스는 빈곤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취재하던 중 자존감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빈곤은 밥과 돈의 문제를 떠나서 정신과 생각의 문제라는 것이다. 배고픔으로 당장 필요한 것은 밥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것이다.~~그 자존감의 회복시켜준 것은 바로 인문학 수업이었다. 인문학은 삶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일상을 자유롭고 새롭게 통찰할 수 있다. 그래서 자존감이 회복되면 삶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나에게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의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여러 가지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 하나에 집중할 때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

~이와 같은 실험을 보면 사람은 단어 몇 개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좋은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의식적으로 좋은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자신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거나 삶에 불만이 많다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생각해보고 종이에 적어보자. 만약 안 좋은 단어가 많다면 그 단어를 좋은 단어로 바꾸어 사용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거나 사용하는 말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결정짓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하는 셈이다.~

@~목표를 세울 때 막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우선 큰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를 세운다. 그렇게 하여 작은 목표를 조금씩 이루다 보면 큰 목표가 이뤄져 있을 것이다. 진행이 잘 되지 않을 때에도 계획한 것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마음도 열리고 뇌에서 목표를 받아들이게 된다.~

~똑같은 행동이나 반복된 연습으로 만들어진 기억을 절차 기억이라고 한다. 절차 기억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그 반대가 서술 기억이다. 예컨대 한국인이 모국어를 할 때는 절차 기억에 의하므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어를 구사할 때는 서술 기억에 의지해 문장을 의식적으로 생각해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말이 더딜 수 밖에 없다.~

@@~어렵고 복잡한 업무나 공부를 잘하려면 최소한의 연습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은 많은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 박사는 1만 시간이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매직넘버'라고 말한다.~~말콤 글래드웰도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했다.~

~사랑은 뇌를 변하게 한다.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애정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2007년 <SBS스페셜>에서 일과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의 마음, 중독에 빠지다'편이 방송됐다. 어떤 중독도 뇌 속에서의 반응은 같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자신을 해치게 된다.~

~흡연은 뇌를 지치고 황폐하게 한다. 뇌의 짧은 즐거움을 위해 몸을 깎아서 사용하므로 소중한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이다.~

~자기공명 영상기기 촬영을 통해 술 자체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해마를 손상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되었다. 사람들이 마음 아프고 슬픈 기억을 달래기 위해 마시는 술이 그때의 안 좋은 감정과 기억을 더 오래 지속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그러니 안 좋은 기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행동은 멈추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프고 슬픈 기억을 달래주는 방법이고 뇌 건강에도 훨씬 효과적이다.~

~그렇지만 젊다 해도 호기심이 없다면 노인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귀찮아지면 뇌도 같이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아이디어 상품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발견되었다. 많은 사람이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다른 시각으로 보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시선이 독특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느냐 아니면 그것에 관심을 두고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서 차이가 생긴다. 같은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숨겨진 새로운 부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옛말에 '등장 밑이 어둡다'고 했다. 이 속담과 마찬가지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행복은 너무나 당연시하며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부족한 부분만 보고 탓하느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보자.~

@~지금의 행복을 불행과 바꾸지 마라.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전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시절 매번의 행복들을 불행과 바꾸곤 했다.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는 일들도 불행한 생각에 덮이고 말았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즉, 실제로는 효과가 없는 약인데도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지금 먹는 약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나에게 안 좋을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많은 시간을 불행에 집중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행복에 더 집중하고 있다. 행복에 집중하는 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입에서 튀어나오는 투덜거림을 자제하는 것이었다.~~안 좋은 말은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 같지만, 귀를 통해서 나의 뇌로 다시 돌아온다.~~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일 먼저 듣는 것은 자신이다.~

@~링컨은 "인간이란, 자신이 행복해지려는 결심의 강도에 따라 그만큼 행복해질 수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행복을 먼 곳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고 가까운 곳을 먼저 보자. 멀리 있는 남의 행복만보느라 가까운 곳에 있는 자신의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보았으면 한다.~

~OECD가 2012년에 발표한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32위로 나타났다.~

@~건강과 뇌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다. 뇌의 노화를 촉진하고 호르몬 대사에 문제를 일으키며 긴장도가 높아져서 수면을 방해한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우울증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뇌는 행복했던 기억보다 불행하고 슬펐던 기억을 더 오래, 더 강하게 간직한다.~~불행한 기억은 대부분 감정이 들어간 기억이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어떤 경험을 하게 되면 사건은 해마에 감정은 편도체에 동시에 기억되는데, 불행한 기억은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더 오래간다.~

~여자는 시각적, 정서적인 정보를 기억하는 영역이 같고 남자는 두 영역이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여자는 정서와 함께 기억하기 때문에 남자보다 상대에 대한 서운한 생각을 더 오래 기억한다.~

@~물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전자 텍스트를 읽을 수도 있지만, 눈의 피로도 심하고 종이책의 느낌을 따라갈 수는 없다. 종이책의 아날로그적 느낌은 뇌를 자극하여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현대인은 인문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삶을 지혜롭게 꾸밀 수 있는 인문학에 관심을 둬야 한다.~

@~나는 30년 동안 전공서적 외에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독자 여러분은 조금 더 일찍 독서의 재미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 앞으로 학생들이 적절한 운동과 체육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사회성, 도덕성, 인간관계 개선 등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도덕성을 높여주면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고, 만족도가 높아지며,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되기에 좌절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IQ(Intelligence Quotient)지능지수, EQ(Emotional Intelligence)감성지수에 이어 PQ(Prefrontal Quotient)전전두지수도 등장했다. 전전두란 대뇌 전두엽의 앞부분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인격, 도덕성, 의지와 같은 고도의 추상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일본 훗카이도 대학 대학원 의학연구과 사와구치 도시유키 교수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뇌, 전두엽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IQ, EQ, PQ는 뇌의 각각 다른 특정 부분의 역할에 대해 수치화한 것이다. 지수가 높은 것이 좋다고 해서 특정 지수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뇌의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명언이 있다. 여기서 먼저 뇌를 바꾸는 노력을 한다면 생각, 행동, 습관, 인생, 운명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뇌를 바꾸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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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8

book 도마 위에 오른 밥상 -우석훈 지음





'음식만 제대로 먹어도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면서도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병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음식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병은 평소 우리의 습관들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습관들이 오랜시간 지속적으로 쌓이고 쌓여서 고통을 동반한 병을 데리고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의식주衣食住'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한다면 나는 단연코 '식食'을 택할 것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먹는 음식food이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 너무나도 중요한 음식들이 현재를 사는 사회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듯하다. 책에서도 저자는 상당히 냉철하게 현재 우리들의 음식문화와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개인적으로 직면해야만 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어제 내가 먹은 음식이 오늘 내 몸을 이루고,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이 내일의 내 몸을 이룬다." 누군가 말했었다. 상당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일까? 심각히 고민해야할 내용이었다. 더욱이 아이가 있는 부모님이라면 깊은 숙고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는 부모의 식습관을 따라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기름진 식사와 패스트푸드 등에 길들여진 어린이가 그 식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습관이 대부분은 부모님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라면 고민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어쩌면 사람들이 음식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사회가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며, 지나치게 경쟁위주의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냉정히 말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된 음식food을 먹고 있을까?'에대한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나 아이가 있으신 부모님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여성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음식과 관련된 시스템이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테니 개인이 먼저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몇군데의 생협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대부분의 식료품들을 애용하고 있다. 생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처음엔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알 수록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이다.


2014-02-27

fiction_ 내 재능과 경험에 대한 비평과 발산(2)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내가 삶을 보는 관점을 바뀌게 했다. 내일이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오늘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해줬다. 과거에 나에게 닥친 어둠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가슴 속에는 작은 희망을 품으며 어떻게든 그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때의 경험이 내게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느끼게 됐다. 나의 경험 속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휴식을 취해야 할 때 과감히 쉴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고민 덕분에 반복적으로 만나는 가족들이 과거엔 당연한 존재들로 여겨졌지만, 언제부턴가 가족 중 어느 누군가의 부재에 대해 고민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든 매 순간에서 삶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적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밤늦게 친구가 있는 병원에 달려갔을 때와 약60년의 삶을 사시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이모부의 시신을 장례식장의 안치실에서 직접 내 눈으로 바라봤을 때의 그 느낌들은 나에게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에 대한 소중함과 간절함을 느끼게 해줬다. 그 일련의 경험이 죽음(death)이라는 것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하게 해주었고, 현재도 그 고민은 지속되고 있다. 나의 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서일까? 나는 매일 일기를 쓰면서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저녁에 하루를 마감하며 일기를 쓸 때는 그래도 내가 오늘 하루 보람차게 살았음을 기록하며 마음이 충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쓴 일기장이 라면박스 한 개 정도에 가득 들어갈 정도이며, 내 인생에서 큰 장애물이 있었던 지난 4-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장에 그날의 경험과 생각을 적으며 나 자신에 직면했던 기록이 여전히 일기장에 남아있다. 나는 원래 글짓기에는 별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긴 시간동안 일기를 써오면서 조금씩 글 쓰는 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을 느꼈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에도 매력을 느꼈다. 현재는 블로그나 SNS를 통해 내 생각이나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 등을 글로 표현하면서 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 쓰는 연습을 더해서 앞으로 내 피와 땀으로 써낸 책을 출판하고 싶은 게 소망이다. 나의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싶은 충동을 일기를 쓸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국토대장정에 참여했다. 국토대장정은 대구유니버시아드경기장에서 고성통일전망대까지 약600km를 20박21일 동안 약140명의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144명의 사람들이 12명씩(남자6명/여자6명) 한 조를 이루어 같이 걸었다. 여러 사람과 모험을 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나의 남는 에너지를 주위사람들에게 전달해주면서 같이 힘을 내어 걷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들 중에서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형들의 시선에서는 나대는 녀석으로 눈 밖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6명의 남자 중 내가 가장 건강한 상태로 잘 걸었다. 처음엔 혼자서 건강히 잘 걷는 내 모습에 흡족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낙오하는 조원들을 보면서 ‘내가 건강한 건 나머지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쓰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을 하며 조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던 실수가 여전히 지금도 생각난다. 그 당시 내가 막내였고, 어떻게 손쓸 방법들이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내가 속한 조를 위해 더 최선을 다했어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나보다 체격도 건장한 형이 계속 낙오를 하면서 본대에서 쳐지는 것이었다. 그 형은 눈물을 흘리면서 본대를 따라 오기위해 애썼다. 나를 포함한 우리 조는 본인들도 걷기 힘든 상황에서 그 형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걷는 데만 열중했다. 급기야 그 형은 대장정이 중반에 들어설 때 조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장정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난 그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고, 남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이 그 형을 다독이며 “니가 그만두면 우리 조원들도 모두 그만 둔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완주하길 응원했다. 결국 포기를 하려던 그 형은 다시 걷기 시작했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대장정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내가 그때 본대와 떨어져서라도 그 형과 같이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그 형이 내게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대장정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서 본부에서 담화형식으로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걷느라 발바닥이 물집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 형은 옆에 있는 나에게 “나 좀 업어서 2층까지 데려다 줄 수 있겠어?”라고 부탁을 했다. 난 형의 말을 듣고 형을 업고 2층까지 업어다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즐겁지만 않은 것이 형을 도와주면서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에 대한 나의 실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형은 정말 힘들어서 내게 도움을 청한 건데, 나는 그런 형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무런 감정적 교감도 없이 단순히 형을 업어서 2층까지 데려다 준 것 밖에 없는 것이었다. 진정 아픔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를 그 때의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직접 아픔의 시간을 겪으면서 타인의 아픔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더욱 고민하기도 했다. 대장정을 하면서 사람은 안정되어있을 때 그 사람의 본질이 보이는 게 아니라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나온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위기 속에서 어느 한 사람이 조금만 힘을 내어 조원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모든 조원들이 더 힘차게 한발 한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각기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20박21일이라는 짧거나 길수도 있는 시간동안 동고동락하면서 혼자서 600km를 걷는 건 매우 힘들지만, 같이 손잡고 걷는 것은 덜 힘들다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대장정에서 배운 지혜를 통해 여러 사람과 함께 할 때 타인을 배려하는 것과 동시에 공동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조금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삶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고 타자가 있기 때문에 나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삶 속에서 나의 자존을 지켜내면서도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더욱 발전되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경험과 재능 덕분에 여러 사람을 이해하는 포용력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비판 받을만한 상황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비판에 앞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다보니 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해하는 마음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는 중간 역할을 잘 하는 것 같다. 또한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도시에서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보니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연결자(connector)의 역할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경험의 폭을 세계무대로 넓혀 동서양의 서로 다양한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능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열심히 배워둔 기본 수준의 일본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를 포괄하여 함께 공부할 예정이다. 즉,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 외국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해야할 당위성을 깨달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내 앞에 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해야할 당위성은 이미 내게 주어진 것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을 타고 나의 자유를 지켜내는 것을 바탕으로 세상에 긍정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그런 인재로서 내 삶을 살고 싶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길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 나가고 공정한 무대에서 서로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조금이나마 내가 도움이 되고 싶다.



(끝)


fiction_ 내 재능과 경험에 대한 비평과 발산(1)

삶의 단편적인 흐름만을 본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삶의 단편 속에 숨어있는 것들이 보고 싶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나의 무의식에서 발현된 삶에 대한 필연적 고민이었던 것 같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장면들을 나는 가급적 느리게 보고 싶었고, 그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싶었다. 특히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진지함’에 대한 강도는 더 깊어졌지만, ‘대학에 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고민하자.’며 고등학생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업에 충실했다. 그 와중에도 논어를 조금씩 공부하면서 철학을 통해 ‘진지함’에 대한 습관을 꾸준히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선생님께서 혼자 뭔가를 생각하는 나의 모습 때문인지 ‘0도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잠시 쉬고 있었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간절히 바라던 그런 삶이 쉽진 않았다. 대학에 들어오니 또 다시 취업 준비라는 끝도 없는 채찍질 속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대학생활과 취직준비를 하면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허둥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때도 어김없이 삶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이라도 계속 했다. 그러다 한계점에 다다랐다. 취업준비와 삶에 대한 성찰을 모두하기엔 내 힘에 벅찼던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앞만 보며 치열하게 달려온 내 삶에 휴식이 필요했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한 가치관과 지나온 삶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진지함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지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소외감이 긍정적인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나의 ‘진지함’이 긍정적이라면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긍정적이지 못하다면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취업은 좀 늦어져도 된다. 하지만 20대에 꼭 해야 할 삶에 대한 성찰을 먼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 때부터 삶을 더욱 ‘진지함’으로 직면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면서 그 동안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삶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내 나름의 가치관까지 가질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이 ‘진지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진지함에서도 어김없이 균형(balance)이 필요했다. 파편화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흐트러지게 놔두는 게 아니라 그 생각들을 알맞게 묶어주는 노력이 필요함을 고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지인에게 나의 단점에 대해 물으니 “생각이 많아서 그에 따라 행동이 느리다”라고 대답해 주었기에 고민을 하면서도 직관과 통찰을 통한 빠른 판단력과 행동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즉,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그 생각이 더욱 깊어지고 체계화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술, 철학, 역사, 인문, 사회, 과학 등등의 학문에까지 관심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특히나 평소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나는 어떤 정보를 취하고 버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오다 어느 날 어느 강연장의 연사가 한 말에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특히 예술에 관심을 가져라”라는 강연자의 말에 그 때부터 예술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는 차분히 예술(Art)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서양미술사와 동양 미술사로 대표되는 중국미술사에 대해 공부하고 틈틈이 여러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작품을 만드신 작가님 몇 분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는 서용선 작가의 <자화상>과 위에민쥔(중국 작가)의 작품들이다. 또한 고전음악인 서양의 클래식과 우리의 음악인 판소리를 들으며 내가 듣고 있는 소리에서 느껴지는 것들도 살펴보았다. 특히나 클래식을 듣다가 하루는 어느 드라마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이 내 귀에 들어오는 순간 내 마음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고, ‘이래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던 것이 구나!’라는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내가 괜찮게 본 작품들은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추천하면서 예술을 통해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같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끊임없이 예술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있다.

철학(Philosophy)은 과거에 단어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압감을 주었던 학문이었다. 하지만 동서양의 철학입문서를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파편화된 생각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그 생각을 응집할 수 있는지를 철학이 내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지금껏 내가 배운 여러 학문 중 단연 철학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성찰하는 것, 나와 타자와의 관계, 나와 국가와의 관계, 나와 세계와의 관계, 더 나아가 나와 우주와의 관계에서의 고민 등 그 동안 질서 없이 고민만 하던 내게 철학이 준 선물은 정말 값진 것이었기에 철학을 두려워하는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철학 공부를 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철학적 고민들 덕분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작은 힘을 주기도 했다. 지인 중 지나친 경쟁위주의 환경에서 자신들 돌보지 못하고 바쁘게만 살던 분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나도 모르게 커터 칼로 내 손목을 슬슬 긁어 봐요”라는 말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그 지인의 마음이 상당히 지쳐있고, 삶에 대한 긍정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때부터 2-3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지인을 만나 이야기도하고, 지인이 배우고 있는 회계원리를 카페에서 가르쳐주면서 서로의 마음이 손을 잡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후 시간이 흐른 뒤 그 지인의 부모님께서 내게 “너를 만난 뒤로 00가 많이 밝아졌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에 상당히 즐거운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험 또한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느린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진지함’이 내게는 큰 재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철학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나의 고민이 더욱 깊어 질 수 있었고, 실제 삶에서의 실행을 통해 내가 내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음을 느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기서 안주하는 것으론 안 된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삶에 대한 성찰과 깊은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History)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나의 역사를 살피면서 시작되었다. 내 부모님이 살아온 삶의 궤적, 내 부모님의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 동안에 우리 민족의 영혼이 처참히 찢겨지는 비극을 겪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역사적 환경을 이해하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우리의 선조들의 영혼에 깊게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단순히 문제만 맞추기 위해 국사공부를 열심히 했던 나의 학창 시절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때였다. 그 경험 덕분에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더욱이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내 가치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만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온전히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세계사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현재는 전반적인 숲을 보는 수준에 와있을 뿐이며, 앞으로 다각적인 부분에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결국 역사라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을 하고나니 ‘진지함’은 삶을 사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용차의 회계조작 의혹과 같은 사건이 이런 ‘진지함’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쌍용차를 회계감사(audit)하면서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했다면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사를 했던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한 것 같다. ‘나의 결정과 판단으로 인해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긍정적 삶을 사는 것’을 자신의 삶의 가치관으로 삼았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밝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지함’을 통해 예술, 철학,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의 학문에 관심을 가졌고, 부모님의 삶과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됐다. 그런 과정을 통해 통찰력과 직관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라면 나의 재능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타인과의 차이가 아닌 다름(difference)을 추구하는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문으로서 회계학과 관련된 배경지식이 있다. 기업의 재무상태를 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절차와 용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기본적인 재무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회계(Accounting)와 세법(Tax)의 기본적인 체계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세무 관련된 기초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실제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액으로 주식투자를 경험하면서 기업의 재무상태표를 읽어내는 훈련을 했고, 경제신문을 보면서 학문으로서의 경제적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또한 과거에 경제적 지식이 없어서 돈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셨던 부모님께 기본적인 경제 지식을 이야기해드리면서 나 또한 실생활에서 필요한 경제 지식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물경제를 공부하면서 회계 및 경제지식을 더욱 진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다른 학문과 연관되는 희한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단순히 경제관련 지식만 있다고 해서 시대의 경제적 흐름을 읽고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본질적으로 인문학(humanities)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경제라는 게 수학적으로 정규분포를 이루는 게 대부분일 수 있지만, 결국 큰 사건은 정규분포에 의한 예측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경험 덕분에 경제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말한 예술, 철학,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의 학문에 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의 자존과 자유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공부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현재는 ‘화폐와 금융’과 관련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있으며, 영어 공부도 더욱 열심해서 해외의 영문경제 기사도 원활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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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 찌라시: 위험한 소문





사실Fact와 진실은 다를 수도 있다.

어느 남자가 카페에서 여인을 만나고 있는 그 장면은 사실Fact이다. 하지만 그 사실fact에 약간의 살을 붙여 '서로 연인관계이다'라고 말한다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두 남녀는 단순히 일때문에 만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증명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가 이 부분을 수정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본질이 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비밀이 진실을 이기는 순간 우리는..."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몇년 전부터 내 귀에 자주 들렸던 단어는 "수평적네트워크"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은 수직적네트워크였고, 내가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식의 치열한 경쟁위주의 패러다임에서 이제는 '나 혼자의 천 걸음이 아니라, 천 명이 서로 손을 잡고 내딛는 한 걸음'이 더욱 중요해진 패러다임의 시대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는 다른 요인들 중에서도 IT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과거 TIME지의 표지에는 컴퓨터 모니터에 "YOU"라는 글자가 덩그러니 쓰여있던 적이있었다. 상당히 고민을 한 뒤에야 '나도 세계적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극중 김강우씨의 손가락을 하나씩 뒤로 꺾는 장면이 있다.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온 건 아니었지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반복적인 자극 덕문이었을까? 손가락을 못쓰게 하려는 그 장면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는지, 영화 말미에서 드러남을 느꼈다. 급기야 김강우씨는 마지막에 모든 손가락이 뒤로 꺾이는 상황에 놓이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 모든 손가락을 꺾을 수는 있겠지만, 꺾지 못하는 게 있다"라고...어쩌면 그 꺾지 못하는 큰 힘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한다.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흩어져있는 그 힘들이 한 곳에 모여 견고히 뭉치게 되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되는 것이다. 마치 아주 작은 희망이 모여 큰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오늘 1페이지를 읽으면 언젠가는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이 올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한다면 마지막 장을 넘기며 느끼는 희열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을 보고 눈이 이끌렸고, 예고편을 본 뒤 왠지모르게 이 영화는 꼭 봐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본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 괜찮게 본 영화였다. 영화 중간중간에 코믹적인 부분도 적절히 넣어놔서 잘못하면 불안에 떨며 볼 수도 있을 영화를 조금은 온순하게 만들어 마음 졸이지 않고 조금은 편하게 볼 수 있었다.


fiction_ 어떻게 살 것인가?(4)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전부를 다 줄 수 있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금은 자본주의가 사랑의 영역을 심각한 속도로 갉아 먹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서의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돈보다 더 중요한 인간과 인간사이의 신뢰(trust)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 안정이 돼야 사랑도 한다.’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본주의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부분이 충족이 되어야만 사랑의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안정만으론 부족한 것 같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랑에 대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사랑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내가 가진 경제적 넉넉함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어떤 선물을 할 때, 어떤 선물과도 비교되지 않는 선물은 뭘까?’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결국 이 물음 속에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선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내 전부를 다 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면 내가 이 삶을 마감하는 그 날에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전부를 다 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려는 노력이 어느 순간 쌓이면 큰 혁신으로 내 삶 속에 녹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진정한 사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여인을 위해 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것’ 돈보다 더 중요한 나의 생명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로 남기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나는 내 삶에서 크나큰 성공을 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진정한 사랑을 갉아 먹고 있는 지금, 사회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심성에 들어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진정성을 담아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리고 사회시스템이 두 남녀의 사랑에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간섭하고 방해하는지의 본질을 보려는 노력을 통해 나의 사랑이 유지될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사랑에 대한 자본주의의 간섭뿐만 아니라, 가부장적인 우리나라의 문화도 상당부분 진정한 사랑을 하는데,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항상 조연이 아닌 주연이어야 한다. 서로 연애할 때는 서로 관계된 사람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주연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혼인을 하게 되면 두 남녀가 어느 순간 주연에서 조연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주인공이 되게 노력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은혜만 헤아릴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부모님 보다는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앞서 말한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대부분 내가 사랑하는 사람 편에 설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선 혼인하기 전에는 부모님을 더욱 생각하고, 혼인을 하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연애와 혼인은 다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연애와 혼인이 같다’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왜 연애와 혼인이 달라야 하는가? 내가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을 연애할 사람, 혼인할 사람으로 구분지어 놓고 한 번 밖에 없는 내 삶을 ‘이것은 연애’, ‘이것은 혼인’이라 구분 지으며 진정성 없이 살아가야 할까? 연애와 혼인으로 개념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 되게 사랑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떨어져있는 게 너무 싫어서 혼인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이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고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여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아내의 부모님에게 감사하게 되고, 이렇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내 부모님께 감사하게 되고……. 하는 이런 삶의 흐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더욱 진정성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서로 소통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소통의 연장선에서 남성으로서 여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았다. 특히나 청춘의 열정이 타오르던 젊은 시절에 심각히 고민한 주제가 있었다. 바로 성욕(sexual desire)에 대한 것이었다. 단순히 사회 도덕적 규범에 의해 내 행동이 규제되는 것보다는 왜 그런 도덕적 삶이 요구되는지의 맥락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사회가 금기시 하는 것에 대해선 더욱 욕망이 타오르기 때문에 성욕을 억제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왜(why)?라는 물음을 통해 전체적인 숲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몸에 대해 공부했고, 지금은 <세계풍속사>라는 책을 읽으며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내 전부를 다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과 작은 실천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실천할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내 목숨을 바칠 정도의 사랑이라는 극적인 상황만을 설정하기 보다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사랑의 진정성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은 내가 목숨을 걸 정도로 큰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날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겪게 되는 그 삶에서 내 사랑의 진정성을 실천하는 삶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큰 것부터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작지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내 삶에서 실천할 것이다. 많이 들었던 고사성어지만 그것이 중요한 걸 깨닫고 실천하는 가정이 많지는 않다보니 사회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의 출발선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만큼 인간에게 환경은 매우 중요하게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직간접적으로 내가 경험해본 결과 상당히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좋은 학벌과 좋은 직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바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의 어릴 적 무의식(unconscious) 속에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들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치유하여 나의 자녀에게는 그 아픔이 대를 이어 전달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내 부모님의 역사를 이해하고 사회가 규정지은 효(孝)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역사와 철학적 맥락을 살펴 그 맹점을 발견하고 내가 생각하는 효(孝)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한다. 이미 과거에 이런 과정을 내 나름의 노력으로 실천하면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좁은 범위지만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가 깨달은 것들에 대해 알리면서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중이다. 내가 내 삶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자유로는 부족한 것 같다. 나의 근본을 이루는 가정이라는 곳이 어느 정도 튼튼한 바탕이 이뤄지지 않아 있다면, 내가 사회적 기준에서 성공한다한들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나의 상황에 주어진 과제가 무언지 찾아내고 그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라야 나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 같다. 그 중 ‘가정의 행복’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하게 되는 삶의 고민일 확률이 많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제부터 나의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날 내가 고뇌했던 경험들은 앞으로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힘찬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내 삶이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