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편적인 흐름만을 본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삶의 단편 속에 숨어있는 것들이 보고 싶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나의 무의식에서 발현된 삶에 대한 필연적
고민이었던 것 같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장면들을 나는 가급적 느리게 보고 싶었고, 그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싶었다. 특히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진지함’에 대한 강도는 더 깊어졌지만, ‘대학에 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고민하자.’며 고등학생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업에 충실했다. 그 와중에도 논어를 조금씩 공부하면서 철학을 통해 ‘진지함’에 대한 습관을 꾸준히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선생님께서 혼자
뭔가를 생각하는 나의 모습 때문인지 ‘0도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잠시 쉬고 있었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간절히 바라던 그런 삶이 쉽진 않았다. 대학에 들어오니 또 다시 취업 준비라는 끝도 없는 채찍질
속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대학생활과 취직준비를 하면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허둥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때도 어김없이 삶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이라도 계속 했다. 그러다 한계점에 다다랐다. 취업준비와 삶에 대한 성찰을 모두하기엔 내
힘에 벅찼던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앞만 보며 치열하게 달려온 내 삶에 휴식이 필요했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한 가치관과 지나온
삶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진지함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지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소외감이 긍정적인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나의 ‘진지함’이 긍정적이라면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긍정적이지 못하다면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취업은 좀 늦어져도 된다. 하지만 20대에 꼭 해야 할 삶에 대한 성찰을 먼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 때부터 삶을 더욱 ‘진지함’으로 직면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면서 그 동안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삶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내 나름의 가치관까지 가질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이 ‘진지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진지함에서도
어김없이 균형(balance)이 필요했다. 파편화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흐트러지게 놔두는 게 아니라 그 생각들을 알맞게 묶어주는 노력이 필요함을
고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지인에게 나의 단점에 대해 물으니 “생각이 많아서 그에 따라 행동이 느리다”라고 대답해 주었기에 고민을
하면서도 직관과 통찰을 통한 빠른 판단력과 행동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즉,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그 생각이 더욱 깊어지고 체계화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술, 철학, 역사, 인문, 사회, 과학
등등의 학문에까지 관심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특히나 평소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나는 어떤 정보를 취하고 버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오다
어느 날 어느 강연장의 연사가 한 말에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특히 예술에 관심을
가져라”라는 강연자의 말에 그 때부터 예술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는 차분히 예술(Art)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서양미술사와 동양 미술사로
대표되는 중국미술사에 대해 공부하고 틈틈이 여러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작품을 만드신 작가님 몇 분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는 서용선 작가의 <자화상>과
위에민쥔(중국 작가)의 작품들이다. 또한 고전음악인 서양의 클래식과 우리의 음악인 판소리를 들으며 내가 듣고 있는 소리에서 느껴지는 것들도
살펴보았다. 특히나 클래식을 듣다가 하루는 어느 드라마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이 내 귀에 들어오는 순간 내 마음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고, ‘이래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던 것이 구나!’라는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내가 괜찮게 본 작품들은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추천하면서
예술을 통해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같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끊임없이
예술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있다.
철학(Philosophy)은 과거에 단어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압감을 주었던 학문이었다. 하지만 동서양의 철학입문서를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파편화된 생각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그 생각을
응집할 수 있는지를 철학이 내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지금껏 내가 배운 여러 학문 중 단연 철학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성찰하는 것, 나와 타자와의 관계, 나와 국가와의 관계, 나와 세계와의 관계, 더 나아가 나와 우주와의 관계에서의 고민 등 그 동안 질서
없이 고민만 하던 내게 철학이 준 선물은 정말 값진 것이었기에 철학을 두려워하는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철학 공부를 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철학적 고민들 덕분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작은 힘을 주기도 했다. 지인 중 지나친 경쟁위주의 환경에서 자신들 돌보지 못하고 바쁘게만
살던 분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나도 모르게 커터 칼로 내 손목을 슬슬 긁어 봐요”라는 말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그 지인의 마음이 상당히 지쳐있고, 삶에 대한 긍정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때부터 2-3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지인을
만나 이야기도하고, 지인이 배우고 있는 회계원리를 카페에서 가르쳐주면서 서로의 마음이 손을 잡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후 시간이 흐른 뒤 그
지인의 부모님께서 내게 “너를 만난 뒤로 00가 많이 밝아졌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에 상당히 즐거운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험 또한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느린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진지함’이 내게는 큰 재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철학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나의 고민이 더욱 깊어 질 수 있었고, 실제 삶에서의
실행을 통해 내가 내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음을 느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기서 안주하는 것으론 안 된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삶에 대한 성찰과 깊은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History)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나의
역사를 살피면서 시작되었다. 내 부모님이 살아온 삶의 궤적, 내 부모님의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 동안에 우리 민족의 영혼이 처참히 찢겨지는 비극을 겪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역사적 환경을 이해하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우리의 선조들의 영혼에 깊게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단순히 문제만 맞추기 위해 국사공부를 열심히 했던 나의
학창 시절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때였다. 그 경험 덕분에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더욱이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내 가치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만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온전히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세계사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현재는 전반적인 숲을 보는 수준에 와있을 뿐이며, 앞으로 다각적인 부분에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결국 역사라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을 하고나니 ‘진지함’은 삶을 사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용차의 회계조작 의혹과 같은 사건이 이런 ‘진지함’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쌍용차를 회계감사(audit)하면서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했다면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사를 했던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한 것 같다. ‘나의
결정과 판단으로 인해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긍정적 삶을 사는 것’을 자신의 삶의 가치관으로 삼았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밝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지함’을 통해 예술, 철학,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의 학문에 관심을 가졌고, 부모님의 삶과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됐다. 그런 과정을 통해 통찰력과 직관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라면 나의 재능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타인과의 차이가 아닌 다름(difference)을 추구하는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문으로서 회계학과 관련된 배경지식이 있다.
기업의 재무상태를 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절차와 용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기본적인 재무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회계(Accounting)와 세법(Tax)의 기본적인 체계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세무 관련된 기초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실제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액으로 주식투자를 경험하면서 기업의 재무상태표를
읽어내는 훈련을 했고, 경제신문을 보면서 학문으로서의 경제적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또한 과거에 경제적 지식이 없어서
돈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셨던 부모님께 기본적인 경제 지식을 이야기해드리면서 나 또한 실생활에서 필요한 경제 지식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물경제를 공부하면서 회계 및 경제지식을 더욱 진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다른 학문과
연관되는 희한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단순히 경제관련 지식만 있다고 해서 시대의 경제적 흐름을 읽고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본질적으로 인문학(humanities)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경제라는 게 수학적으로 정규분포를 이루는 게 대부분일 수 있지만, 결국 큰 사건은 정규분포에 의한 예측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경험 덕분에 경제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말한 예술, 철학,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의 학문에 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의 자존과 자유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공부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현재는 ‘화폐와 금융’과 관련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있으며, 영어 공부도 더욱 열심해서 해외의 영문경제 기사도 원활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