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0

book_THE END OF WORK 노동의 종말- Jeremy Rifkin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제러미 리프킨 Jeremy Rifkin 지음
Copyright 1996 by Minumsa Publishing Co., Ltd.
Original English language edition Copy right 1995 by Jeremy Rifkin



지금은 2015년도, <<노동의 종말>>이 출간된 해는 1995년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을 기억하며 이 책을 읽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이야기하는 '지식'을 바탕으로하는 '전문가'와 관련한 업무에 대해서는 20년이라는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암기된 지식으로 실생활에서 활용하던 것을 어느새 컴퓨터라는 녀석이 대체하고 있는 게 2015년 '현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노동시장에 대해 궁금한 분들과 더불어 '일work'이라는 주제에 관심있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다만, 저자가 다소 미래를 부정적인 논조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미래의 부정성을 독자들의 '의지'로 굳건하게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저자가 바라보는 미래노동시장의 모습은 미래를 준비한 사람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책을 덮으며 들었던 생각은 사회가 일반 개개인에 주입한 (타인의 시선에서의) 좋은 직업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직업을 선택해야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다. 앞으로 나와 우리가 맞이 하게될 미래는 어느 정도 '본질적'인 흐름은 예측가능할지 몰라도 그 변화의 속도는 과거와 매우 다르게 빨라질 것이기에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고개를 내민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work,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일work!'
이 물음을 필연적으로 던져야하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가 아닐까싶다. 더욱더 인간 본연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널려있다. 마트의 무인계산대는 점점 늘어나는 동시에 계산원의 고용률은 줄어든다. 주차장의 주차시스템은 벌써 컴퓨터시스템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일본에서는 여러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로봇이 고객들에게 기본적인 안내를 해준다. 무인자동차가 등장해서 여러 실험을 하고 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컴퓨터가 기사를 작성한다.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과거의 누적데이터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결과물을 산출한다. 도서관 도서 대출시스템도 자동화가 이뤄졌다....등등. 이런 여러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자본가와 기업의 입장에서는 굳이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여 회사를 운영해야할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동조합을 세우지 않으면서 24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흐름의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또 다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기계가 인간의 일work을 대체하면서 무방비 상태로 시장에 나와버린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일work은 비숙련노동일 가능성이 높다. 미래에 발전할 산업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교육이 필요한데, 무방비상태로 시장에 방출되어버린 노동력이 미래산업과 관련된 시장에 투입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제3부문으로써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에 대한 정부의 정책지원과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여러 세제혜택을 기반으로 정부가 어떤 복지정책을 입안하여 실행해야할지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심성에 내재된 선과 악을 놓고 봤을 때, 미래가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 군중의 힘이 모아져 협업과 공존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개인의 삶을 놓고 봤을 때, 현실을 냉혹하게 직면할 필요를 느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전제를 놓고 보았을 때,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야하는 것은 사회가 준 기회에 대한 응당의 의무이다. 이런 의무를 기억하며 좀 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한다면 고민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고, 또한 실행의 연속성 상에서 삶을 살아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누군가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행복...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가치가 더욱 커질 것 같다.
과거의 문명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시간(Time)의 부족으로 삶을 성찰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또한 현재의 경제적인 여러 문제들이 혼재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은 사치로 느껴질지 모른다. 부채에 허덕이며 본인과 가족의 삶까지 끌려가는 어두운 미래가 연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열심히 사는 것으론 앞으로의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 그 '열심'이라는 피와 땀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노력은 '성실성'에서는 긍정적일지 모르지만, 인간을 무의식중에 기계화적 존재로 전락시켜버릴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발전한 농업혁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경작의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유전자를 재배합하여 새로운 농산물을 만들어내는 GMO식품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학기술이 인간이 먹는 음식(Food)에 까지 영역을 넓혀 창조력을 발휘하는 게 긍정적인지에 대한 고민이 드는 게 사실이다. 생협의 식재료를 자주 이용하는 본인으로서는 인간이 먹는 음식들에 대해 가볍게 대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일 먹는다. 매일 먹는 음식에 중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작은'문제가 있게되면, 그 매일 섭취하는 음식으로 인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과연 우리는 어떤 노동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기계(컴퓨터)가 쉽게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하며 실행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미래에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 특히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동진(가명)은 얼마 전 20대 초반의 여성인 예주(가명)씨와 잠시 대화를 했다.

가끔씩 지나치며 눈인사를 하던 사이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듣게됐던 것이다. 동진은 평소 예주씨의 모습에서 지나칠 정도의 쾌활함과 웃음을 느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예주씨의 웃음을 통해 그 소녀를 소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겉은 쾌활해보였으나 예주씨의 눈망울은 웃음 뒤에 숨어 차가운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동진은 어렴풋하게 소녀의 이야기가 예측되긴 했으나 듣고 싶지 않은 충동에 몸부림쳤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들어봤자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진 않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독립해서 따로 혼자 살아요" 예주는 여전히 쾌활한 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이 부모에게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즐거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단하네요, 그 나이에 부모에게 독립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진정 예주씨는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사시는 듯하네요"라고 동진은 대답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예주의 대답에서부터 동진은 그녀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짙은 먹구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은 예주씨가 독립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셨나요?"라고 동지은 예주에게 물었다. 단순하게 상황을 나눠보면 (특별한 경우)부모님의 적극적인 응원과 긍정에 힘입어 독립을 한 경우에는 이 물음에 대해 소위 쿨한 대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보통 부모와 사이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각기 다양한 형태로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주씨의 대답에서 '독립'은 긍정성보다는 '부정성'이 내포되어 동진의 가슴을 울렸다. "그냥 집보다는 밖에 나와서 혼자 살고 싶었어요"라고 예주가 대답했다. 대답을 하는 예주의 표정과 어조에선 집이 싫어서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달려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로부터의 도피가 예주에게서 느껴졌던 것이다.

이 때까진 그 어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동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둠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 청춘이 독립을 했다면 분명 무언가를 하고자하는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동진은 한창 꽃을 피울 청춘인 그녀에게 "앞으로 뭐하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특히 신학을 깊게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예주는 말했다. 동진은 순간적으로 '심리학'보다는 '신학'이라는 단어가 예주씨가 더 중요시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신학'을 먼저 말하기 보단 '심리학'이라는 단어로 여러 대중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녀 나름의 방법을 동원한 듯했다.

'뭐지...이 이상한 느낌은... 신학을 공부하는 건 좋은데, 너무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 잠시 동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예주는 '심리학'보다는 '신학'이야기를 동진에게 하기 시작했다. "저는 책을 잘 안 읽는데요, 어느 날 성경을 읽으니 너무 잘 읽혀서 성경을 모두 읽었어요..." 예주는 동진을 신학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이며 청산유수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간 180도 달라진 예주의 눈망울을 보며 동진은 먹먹해지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예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주씨 부모님들도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신가요?" 동진이 예주에게 물었다. "아니요. 집에선 저만 믿고 있어요." 예주가 대답했다. "......그럼...종교적인 문제로 부모님들과의 의견차이가 좀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어요..."

이런 상황만을 놓고 봤을 땐, 단순히 가족간에 종교적인 다양성의 차이로 인해 이런 상황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곰곰이 잘 생각하여 그 이면을 바라보게 되면 단순하게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려하는 바로 그것이 중요한 이유로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행복...사랑...가족...

특별히 종교가 없다는 동진의 이야기를 들은 예주는 계속해서 자신이 믿고 있는 믿음을 동진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동진은 예주의 눈 속에 비친 사악한 그 무언가를 자신이 빼내주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동진이 처음 예주가 '삶의 주인으로 산다'라고 생각했던 게 틀렸던 것이다. 예주는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어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했고, 그녀 나름 찾았던 존재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존재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았다.

동진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학도 공부하면서 예술, 철학, 인문, 사회, 역사 등에 대해서도 같이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 신학만 공부하는 건 20대에 너무 한 곳만 향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사람들도 저에게 동진씨가 했던 이야기를 했어요..." 예주가 대답했다. 예주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한 이야기를 동진에게도 듣는 다는건 이미 예주씨의 귀에는 동진과 그 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만큼 아픔이 있었고, 그 만큼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입을 다물고 한 참 생각에 잠기던 동진은 예주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한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예주씨가 보아온 부모님들의 뒷모습은 어떠셨어요?" 마치 자신의 아픔을 알아봐달라 애절하게 눈빛을 보냈는데, 알아봐 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예주는 이야기 했다.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언니와 저 엄마가 함께 살고 있고 아버지는 가끔씩 저만 만나요... 언니는 어릴적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자주 봐서 지금은 아버지를 만나길 싫어해요. 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크게 아버지에 대한 나쁜 감정이 없어서 가끔씩 만나긴 해요. 그런데 과거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아버지가 이야기하지 말라해서 마음이 좋진 않아요..."

애써 웃는 그녀에게 동진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수 없었다. 이미 예주는 자신이 뛰어넘어야할 그 무엇이 무언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 무엇에 대한 절실한 믿음만 가지면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 믿음이 동진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예주씨 '진정한'사람을 만나 '사랑'을 해보는 건 어때요?" "별로에요. 저에게 오는 남자들을 향해 이미 철벽수비를 하고 있어요..." 동진은 더욱 무거워지는 가슴을 달래야만 했다.

"제 생각이 틀릴수도 있지만, 제가 예주씨에게 한 마디 해드려도 될까요?" "예, 해주세요"
"아마 계속 힘들거예요. 아마...행복해지기 어려울거예요. 행복해지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할 거예요..." 동진은 예주씨가 상황에 직면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예주씨가 뛰어넘어야할 그 녀석이 어떤 존재인지 바라보게 해주고 싶었다.

"제가 예주씨 손등을 살짝 만져도 될까요?" 동진은 이야기했다. "예"
동진은 예주씨의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적당한 고통을 느낄 정도로 꼬집자 예주씨가 그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주씨 지금 고통이 느껴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동진은 마지막 물음을 예주에게 던지며 언제가 될진 모르는 작별을 고했다.

떠나는 예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굳게 입술은 다문 동진은 예주씨가 '삶의 주인'으로 살길 응원했다.


2015-07-07

Thinkings 생각들


-각기 다양한 사람들, 그런 다양성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분위기...그러나 그 다양성에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의가 필요한지도... 그런데 어디까지 존중되어야할 다양성인지 균형 잡기가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I have been studying Humanities, Art, Philosophy, History, Classical Literature, Science of  ICT. Especially, I think  that Art is important.

-Start ups emphasis innovative and creation. But the slogan may reflect the complex. Truly, do they want innovative and creation?

-What is the Mob Psychology?

-Balance of the good and the evil. Does the good only survive? Does the evil only survive? What is the good and the evil?


돈을 대하는 태도

"옛날에는 100만원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언젠가 어떤 분께서 몇 천원하는 물건을 구매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현재에 존재하는 인간이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은 '현재'가 '과거'보다 못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분의 '과거'에 대한 추억은 종종 돈을 가볍게 여겼다는 표현으로 반복되었다. 아무리 과거가 화려했을지라도 '현재'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그다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할 때는 미래를 대비하여 적당량을 저장하고, 나중에 경제적 문제가 생겼을 때 과거에 비축해둔 자금을 사용하는 게 장기적인 인생 설계에서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상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미래에 각자의 삶을 집중하는 것도 주의해야할 것이다.

'돈이 많다고 펑펑 쓰면 안되겠구나...어쩌면 경제적으로 풍족할 때 더 조심히 돈을 써야겠구나...'라는 생각... 타인의 불행을 통해 삶을 배우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선지 과거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에 더욱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쓸 때는 부자의 마음이 아니라, 빈자의 마음을 염두에 두고 돈을 써야 별 탈이 없다.~"

대한민국 경제에 밀려오는 먹구름을 염두에 둔다면,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2015-06-27

think_Flowers are shouting 꽃들이 외치고 있다.





이 순간!

어느 봄날.
저녁에 길을 걷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얀 꽃이 가로등이 되어 길을 비추고 있는 듯 했다.

'내가 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인가?'
놓치려다 잡은 안도감이 느껴졌고, 그 동안의 삶들을 다시금 반추해봤다.
꽃을 보고 가슴이 뛰는 삶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비록 꽃과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 지라도
꽃을 보고 내 감정이 요동쳐야 한다.


인간이 가진 소중한 것은 어쩌면 '느낀다는 것'아닐까?
오감과 육감이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 당시의 생활에 변화를 주게되었다.
고심 끝에 결정하고 또 다른 모험을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삶.
내 직관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민감하게 느끼는 삶.
꿈이라고 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삶을 살아내려고 한다.

인문학체력이 나를 변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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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외치고 있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빨리 사무실을 나와 항복하라.~"

[출처: 어느 누군가의 sns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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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화장





괜찮은 영화다.
'사랑'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된다.
애써 보기 싫을지 모를 인간의 내면을 직면하게 해주는 것 같다.
보면서 마음이 무겁긴 했지만, 그 무게만큼 삶에 직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은 동음이의어의 방식을 사용하여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크게 흥행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영화보다 더 심하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영화에 설정된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험난하겠지만...



society_외국인이 한국정치에 대해 물었다.

어느 날 외국인이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한국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인데, 수업 과제로 몇가지 설문을 해도 괜찮겠냐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정치 관련된 내용만 아니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내 생각을 꽤뚫어 봤는지 약점을 파고 들었다.

"대통령이 갖춰야할 자질 중 가장 우선시 돼야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대통령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 중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개그콘서트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민상토론"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아마 '민상토론'의 느낌으로 설문에 대답했던 것 같다.


국민의 분노를 최대한 분산 시킴으로 인해 그 힘은 파편하 된다. 하지만, 이미 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 국민의 분노가 어느 순간 응집되고 합해지면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힘이 된다는 사실. 냉정히 지금의 대한민국은 상당히 어려운 시기이다. 여러 곳에서 수 많은 사건과 사고 그리고 어두운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만을 탓하며 개인으로서 해야할 일을 등한시 하는 것도 주의해야할 것 같다. 어쩌면 이 부분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사회가 변화하는 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키는 건 더 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깨어있는 개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한국의 정치도 긍정을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을 것이다.


movie_카트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이라는 것이 지켜져야하지 않을까?
인간에 대한 기본.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어쩌면 나 또한 그들처럼 아픔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보면, 어느 순간부터 "무인계산대"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목격한다. 계산원의 일을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 않아 찾아올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또한 앞으로는 카트를 밀며 장을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등의 IT기기로 장을 보면 로봇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장 본 물건을 내 앞에 대령할지도 모른다(해외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런 현상이 과연 마트에서만 벌어질 미래의 모습일까? 아마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전방위 적으로 변화가 진행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론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본질'적으로 무언가가 변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 느낌... 그러나 그 어둠을 딛고 일어나야하는 게 인간의 삶인지도 모른다.


2015-06-19

book_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김성근 지음





'본질'은 "사람"

저자가 야구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같이 야구하는 제자들의 "꿈"과 "미래". 즉,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본인도 이 부분에 공감한다. 결국 어떤 일이든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사람'을 중심에 둬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에 '인간 김성근'에 대해 더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언론에 비춰지던 그의 언행들의 깊은 의미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책 곳곳에 제자들이 저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실어 놓은 부분도 있으니 참고하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야구경기장에서 '야구를 보는 것'과 직접 '야구를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둘 사이에는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차이가 숨어있는 것 같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멋진 동작 하나하나에는 일반인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피와 땀이 서려있다는 것을 책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취미로 캐치볼을 하는 것과는 엄연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야구 선수는 말그대로 '야구'자체가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게도 '야구'를 통해 각 선수들은 자본주의에서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놀이'와 '일'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추측컨데 놀이로서의 캐치볼은 재미있을 수 있지만, 직업으로서 야구를 하는 것에는 놀이만큼의 즐거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야구가 정말 재미있는 경우라면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돈까지 버니 일석이조이겠지만, 저자의 책을 통해 선수들이 흘리는 땀을 읽으면서 진정 야구를 사랑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물론, 정말 야구가 천직인 선수는 행운을 거머쥔 것일테고...

'진정성'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 리더에게 바라는 것은 어쩌면 '진정성'아닐까?
그 '진정성'에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공감'능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선수들을 생각하고 나를 희생(또는 헌신)하는 리더의 언행이라면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염두에 뒀을 때, 그 리더는 충분히 따르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이런 리더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런 리더가 소수이다보니 그들은 사회에서 더 빛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 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저자의 '가족'들은 어땠을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여러사람을 내 등에 업게 되면 '진정 사랑하는 한 사람'을 내 등에 업지 못한다."
지금의 김성근 감독께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독님이 가는 길을 응원해준 '가족'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 김성근님께서 한화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2015년 한화의 야구경기는 승패를 떠나 한화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다. 물론 과거의 성적과는 매우 다르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진정한 리더'에 대해 정말 깊게 고민하게 된다.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면 따랐던 시대가 저물고, '따르고 싶은 리더'를 따르는 시대가 이미 우리 삶에 와 있음을 느낀다.



2015-06-17

movie_42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가 된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써, 영화 제목의 "42"는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의 등번호였다고 한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는 등번호 "42"번은 전 구단 영구 결번이며, 매년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은연 중 인간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에 대한 차별이 무섭게도 영겁의 세월을 지나면서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불평등 구조가 인간의 역사에 어떤 긍적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한편으론 허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 타인들에게 모두 같은 방식으로의 존경을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다양한 인간들이 군집된 사회에서 인간답지 못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인간과 인간이 서로간에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인도 그에 대한 고민의 내용이 아직 정리되어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사람들을 만나며 계속 개선해 나가고 있다. 쉽지는 않다.

처음 가는 길에 대한 역경.
흑인으로서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생각과 실천을 하게한 원동력을 내게 선물했다.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인격적 모독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그의 '의지'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가 있었기에 현재 메이저 리그에는 인종을 초월한 다양한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는 생각에...

흥미보다는 깊은 감동을 선물해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