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30

Uber Review 우버 이용후기





Uber is a venture-funded startup and transportation network company based in San Francisco, California, that makes mobile apps that connect passengers with drivers of vehicles for hire and ridesharing services.
[Reference: http://en.wikipedia.org/wiki/Uber_(company) ]


UBER는 간단하게 말해서 Transportation(운송)에서의 새로운 서비스라고 말할 수 있다.
UBER서비스는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운송수단과 그 운송수단을 이용할 사람을 연결해주는 연결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각 나라마다의 법률과 문화 등 여러가지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이 힘들의 충돌이 커보인다는 생각에 UBER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됐다. UBER가 한국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UBER를 직접 이용할 기회를 가졌다.


UBER의 차별화

현재 한국에서는 고급승용차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양복을 입은 기사님께서 승하차 시에 직접 문을 열어 주신다. 차량에 생수가 구비되어 있다. 이미 등록된 카드로 자동결제가 이뤄진다. 그래서인지 일반택시 이용요금보다 약2배 가량이 비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 정도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이용하면 될테니. 그리고 차량에 탑승한 뒤에 승차한 차량의 위치가 Uber App상에서 계속 보여지기 때문에 늦은 밤에 안전하게 귀가하려는 목적에도 적합할 수 있겠다. 기념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Uber 차량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승장소

UBER는 현재 서울에서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출발지점이 서울의 번화가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광화문, 이태원, 강남을 중심으로 UBER의 차량이 스마트폰에서 검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pp을 작동하여 지도를 활성화 시키면 현재 Uber차량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출발지점이 서울 번화가로 한정되어 있지만, 도착장소는 어디든 가능하다고 기사님이 말씀해주셨다(기사님께 궁금한 사항을 여쭤봤음). 심지어는 (농담인지 모르지만) 서울 번화가에서 탑승하고 부산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Uber 크레딧

처음 UBER에 등록할 때 "할인코드"를 입력하면 "Uber 크레딧"이라는 포인트가 제공되어 결제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Uber크레딧이 자연스럽게 UBER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이 글을 쓰는 목적도 어쩌면 그런 동기가 부여된 측면도 있다). 이미 UBER에 등록되어 "할인코드"가 있는 사용자가 주위 지인에게 소개를 하게되면 그 지인이 UBER에 처음 등록할 때 소개한 사람의 "할인코드"를 입력하면 처음 등록한 사람, 그리고 소개한 사람에게도 "Uber 크레딧"이 제공되는 구조이다. 현재는 10,000-20,000원 정도의 Uber 크레딧이 제공되기 때문에 서울에서 적당한 거리를 이동할 때 한 번쯤 이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대략 10Km를 이동하는데, 처음 가입시 받은 Uber 크레딧 약10,000원을 사용해서 실제 결제한 금액은 약2,000원 정도였다. 참고로 이용한 차량은 Mercedes Benz S350 이었다.


처음 UBER에 가입할 때는 (모바일이 아닌) 웹Web에서 등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할인코드"입력하는 부분을 순간 지나쳐서 "Uber 크레딧"을 지급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UBER를 이용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다면 첨부해 드리는 할인코드를 가입시 입력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ttps://www.uber.com/


book_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도법 지음





언젠가 불교종단에서 어떤 직책을 놓고 스님들끼리 무력투쟁을 벌이던 모습이 미디어의 화면에 나왔던 적이있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법정 스님이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던 것 같았다. 아마 싯타르타도 그런 모습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종종 종교가 사회 속에 세습화 되면서 긍정적이지 못한 역할을 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매우 씁쓸하다. 비단 불교에서만의 문제의식은 아닐 듯 싶다. 종교가 인간과 사회 속에서 본질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왜곡될 수록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지 않을런지...

그런 사건이 있은 후 'MBC네버엔딩스토리'라는 프로그램에서 도법 스님을 인터뷰했던 것을 우연히 봤던 적이있다. 인터뷰를 통해 도법스님은 지금의 불교종단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말했다. 그리고 스님은 그 문제점들을 자기 자신부터 반성하기 위해 *탁발을 하면서 전국을 걷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탁발: [명사]<불교> 도를 닦는 중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 가장 간단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 당시부터 행하였다. ≒행걸.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멘토를 만나면 멘토를 죽여라."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는 이 말은 결국 타자에게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로 들린다.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는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물론,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내신 분들이 얻었던 지혜까지 죽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지혜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해서 적절하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강한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언젠가 석희의 100분 토론에서 종교인 과세논란에 대해 2주에 걸쳐 토론했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종교에 너무 지나치게 돈(money)이 개입되면서 종교는 종교 본연의 목적을 상실했고, 세습화되면서 그 세습화의 타당성을 찾기 위해 분주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종교든 그 종교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면 결말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진정 종교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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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밝히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루거나 회피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존재의 이유와 가치의 문제이다.~

~경험해 온 것들을 종합, 검토한 후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버릴 것은 단호히 버리는 싯다르타의 태도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승가와 계율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형성된 것이므로 당시의 사회배경과의 관계를 살펴야만 그 뜻한 바가 제대로 드러나게 될 것임은 평범한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출가수행의 목적을 잘못 인식하여 청정수행을 명분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와 사악함을 방관하고 회피하는 비겁함을 당연시해 왔다. 이것은 수행자들의 불행이다.~

~ 존재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끝없는 허무요, 고통이다. 존재 이유를 밝히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삶만이 진정 인간적이고도 행복한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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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8

movie_ V for VENDETTA 브이 포 벤데타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사회 또는 국가가 만들어진다. 거대한 사회가 원만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회에 속해있는 각 개인들이 지켜줘야할 적절한 규범들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엔 한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것을 기본으로 그 다양성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가 긍정적으로 살아 숨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사회와 국가를 유지해야한다는 목적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다양성과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규범을 통해 통제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극중 V의 대사는 깊게 숙고할 가치가 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ir government. Government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V의 이 말에는 국가가 본질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한 것을 개인들에게 일깨워주는 듯하다. 다양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국가는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국가가 무너지면 개인들이 무너진다는 공포를 조성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새로운 국가를 원하면 기존의 국가가 무너진다는 것을 두려워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니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하는 것 아닐런지...




V의 가면 뒤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국가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장 총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이 말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영화에서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4-06-27

movie_ A Girl at My Door 도희야





the Fact and the Truth may not be the same. Nevertheless It is important to hold the string of the truth.

fact(사실)와 진실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진실"의 끈을 잡고 있는 것에 대한 중요함.

극중 배두나씨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점은 Fact와 진실이 엇갈릴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경찰이라함은 사회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하며 그로인해 타인에게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의무 때문에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경찰이기에 앞서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출발점에 대해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2L생수병에 물이 아닌 소주가 담겨있었다는 것이 이런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Fact는 생수병인데, 진실은 소주...

극중 도희는 어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았다. 자신은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자신과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참 영민한 소녀... 어른들은 어린괴물이 되어버린 도희에 의해 Fact와 "진실"의 연결지점을 잘못 짚게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도희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위해 Fact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Fact가 꼭 "진실"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린 도희가 어릴적 받았던 상처에 있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는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까... 결국 그 상처들은 진심이 담긴 사랑이 치유했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랑이 보편적인 사회의 요구일 수 있는 이성적 관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먼저 사랑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이 여자 또는 남자였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런지...

요즘들어 자주 생각하는 단어가 "사랑"이다. (두루 여러사람을 사랑하는 것-종교적 관점의 사랑) 말고 진정 내 모든 것을 주고싶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대해서... 어쩌면 이 영화에서도 이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랑이 부재한 가정에서 자란 한 소녀. 이 소녀가 겪어야할 고통은 "진실"의 영역에 속하지만, 소녀의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 고통이 보이지 않다보니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한다. 소녀가 겪었던 고통이 수년간 쌓이고 굳어져 고름이 되어 터졌을 때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실"과 "fact"를 제대로 인지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괜찮은 영화다.
여러 삶의 여러 고민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든다.
이야기의 완성도도 높다는 생각이 든다.


2014-06-25

movie_ Phone booth 폰부스






과거 이 영화를 본 기억을 되살려 보니 '공중전화(Phone Booth) 안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정도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땐 긴장감 뿐만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었다. '어디선가 나를 감시하는 눈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되었으니...

인간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까지도 건드리다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던 영화. 마치 내가 그 상황에 처한 것 처럼 상상을 하면서 보니, 주인공이 느끼는 긴장감에 어느 순간 동화되어 버렸다.


2014-06-24

story_ (3)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까?- 부모의 뒷모습2

결국 C는 S에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더욱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도 '부모님의 뒷모습'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S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채 C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C는 S가 이야기 듣는 태도에 감동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S님께 제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어느 두 가정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가정은 부모님이 서로를 아껴주고, 위기가 왔을 때는 서로 힘이 되어 지혜롭게 위기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고, 다른 한 가정은 부모가 매번 다투고,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이미 답은 나와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을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S는 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처음에 말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죠"

C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생각에는 상당한 착오가 있어요. '어린시절에 행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나중에도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지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계속 불행하게 살거나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그러니 이것을 안다면,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과거에 행복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수 백배, 수천 배의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흔히 우리는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미 우리 삶이 행복하다면 굳이 "행복하세요"라고 입이 닳도록 반복할 필요가 없을텐데, 현실에서 실현이 어려우니 구호화되어 반복적으로 외치고만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 채 더 많은 노력도 없이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했던 사람이 해야할 노력과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해야할 노력에 엄연히 큰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를일이다. 불행했던 사람은 어쩌면 "행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노력하기 앞서서 가야할 길이 상당히 멀고 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고 먼 여정을 떠나는 것과 그걸 모른 채 좌충우돌하는 것과는 상당히 큰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낼 것 같다.

점점 S는 우리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C의 구체적인 설명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은 어땠는지 생각해봤다. S의 남편은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밖에 나가 돈만 버는데 집중한 게 아니라 집에와 남는 시간이 있을 때면 아이들을 돌봐줬고, 아이들 기저귀도 손수 갈아주었던 사람이었다. 그 때는 이런 남편의 행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몰랐는데, C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S는 남편에 대해 애뜻한 감정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소설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린 아들과 산책을 할 때, 아들은 저만치에 혼자 떨어져 걷고 아내와만 손을 잡고 걸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난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거의 확언하건데, 이 아이는 잘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어느 강연에서 말한 적도 있는데, 이 분의 이 말에도 상당한 통찰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이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라고 말한 것만 보아도 이 연사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큰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것은 논리적으로 수치화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간과한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보면, 욕설을 너무 지나치게 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욕설 뿐만아니라 매사 불평과 불만 그리고 냉소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개인적으로 이는 그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그 사람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욕설을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의 영향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를 보며 부모는 "왜 그리 욕을 하니?"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만난 어느 초등학생이 이런 말을했던 적이 있다. "제 친구는 너무 욕을 많이해요." "그럼 너는 그 친구처럼 욕을 안해?"라고 물으니 녀석의 대답에 얼음이 됐다. "욕이요? 별로요. 왜 욕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물었다. "너 부모님이 서로 싸우실 때 욕 안하시니?" 이에 대한 녀석의 대답은 더 대단했다. "부모님 안 싸우시는데요. 그리고 욕을 하시는 적을 본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놓치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으신지...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부모님"이 되는 건 쉬운 게 아닌지도 모른다.


2014-06-22

movie_ Blue Is the Warmest Color 가장 따뜻한 색, 블루


La Vie d'Adèle
Blue Is the Warmest Color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야기의 주내용이 동성애(레즈비언)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본질은 아닌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정체성"..."자기성찰"..."자기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소녀는 자신과는 어쩌면 다른 소녀를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토해내려고 애쓴다. 토해내려는 것이 무언지도 제대로 모른채 이 소녀는 방황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이 소녀의 방황에 대해 소녀에게만 책임을 묻기가 난감하다. 어쩌면 이 소녀의 방황은 너무 오랜 세월동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큰 이유일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녀(아델)는 '사랑'에서도 미숙함을 보이게 된다. 물론, 소녀의 나이가 극중에서 어린 것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소녀는 '외로움'과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 했다. 그래서 소녀는 몹시도 혼란스러워했는지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이 소녀는 방황하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하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은 혁신하기 힘들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엠마는 자신의 작품을 유명한 갤러리에 전시하게된다. 이미 남남이 되어버린 아델은 엠마의 전시회에 찾아온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아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엠마와의 추억에 의지한 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엠마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아델은 그런 엠마에 의지한 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으로서 만나 서로 사랑하길 엠마는 원했지만, 아델은 그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 그리고 사회가 만든 틀을 깨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되어 혁신한다는 건 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러함에도 끊임없는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해서 늦을 수도 있지만, 인생을 장기적 안목에서 봤을 때 더 오래 더 멀리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혁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자신의 기억에는 거의 없는 어릴적 가정환경을 직면하는 것이 아닐런지...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숙고해야지 않을런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영향은 더욱 발전 시키고, 부정적인 영향은 최선을 다해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로부터 경제적,육체적으로 독립 했다고 진정 독립했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와는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부모의 그림자는 자식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동성애(레즈비언)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인데 의미있게 봤다.


2014-06-21

movie_ Rules of Dating 연애의 목적






한 남자의 무분별한 성적 욕망이 어떻게 한 여인에게 상처를 주는지를 그린 영화가 아닐런지... 진정한 사랑의 바탕 위에서 욕망하는 성적 쾌락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성적 욕망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인간의 역사에서 탐욕과 성욕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을 놓고 봤을 때, 우리의 삶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쉽게 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계속 비겁한 모습을 보인다. 그 비겁함들로 인해 거의 모든 것들을 잃고난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는데, 안타깝다기 보다는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영화에서만 다루기 위해 꾸며낸 상상 속의 이야기인지가 궁금해지는....




2014-06-18

book 스트레스 없는 재테크 10가지 습관- 김재영 지음





축구선수가 멋진 기술을 관중에서 선보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본기"일 것이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고급기술을 사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책도 이 맥락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투자법에 주목하기 보다는 먼저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말을 여러 문장에서 보이지 않게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식투자를 통해 몇 배의 수익을 얻는 것 뒤에는 그 만큼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 감당해야하는 위험(Risk)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주식투자에 앞서 은행의 정기예금을 통해서 복리의 위대함을 체험해 보라고 권한다. 주식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에는 조금이라도 위험이 존재하며, 그 위험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의 정기예금은 아무런 위험 없이 이자수익을 얻게 해준다.

여기서는 일반인과 부자의 생각을 잠시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1,000,000원(백만원)을 연5% 정기예금에 넣은 일반인의 경우와 1,000,000,000원(10억)을 연5%의 정기예금에 예금한 부자의 경우를 잠시 비교해보자. (세금계산은 생략하고) 일반인은 이자수익으로 50,000원을 얻게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자율의 중요성을 크게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액수다. 하지만 부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부자는 아무런 위험 없이 이자수익으로 50,000,000원(5천만원)을 얻게된다.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직장인의 연봉에 맞먹는 수익을 얻게되는 것이다. 이는 부자들이 왜 그토록 "이자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주식투자에서도 일반인과 부자의 투자 방식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투자원금의 수 십배를 기대하는 일반인들의 투자성향과는 다르게 부자들은 당시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이자율보다 조금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주식투자의 경우 은행 정기예금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때문에 부자들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안정적이면서 혹시라도 경제에 위기가 왔을 때에도 견뎌낼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는 말했었다. "본인이 100억 1000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경제를 바라보세요."라고...

'기본에 충실하라'라는 측면에서 이 책이 본질적으로 기본을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만한 경제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본에 충실히 경제 공부를 하고자한다면, 경제원론부터 시작해서 경제사, 화폐와 금융, 국제무역 등의 원론 서적을 공부해야할 것이다. 그 지식들이 바탕이 되어야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제현상들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인분이 재산을 관리하는 걸 어려워 하시는 듯하여 선물로 드렸던 책이기도 하다.


2014-06-17

movie_ Dead Poets Society 죽은 시인의 사회 (1989)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대사 중 하나는 아마도 카르페 디엠(carpe diem)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현재를 즐겨라'라고 이해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를 즐긴다는 의미보다는 '현재에 깨어있음' 또는 '현재에 최선을 다함'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일 이 세상에서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는 극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현재 내가 할수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닐런지...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잠시 유보하겠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목표로 상정한 미래의 어느 지점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가 원인이 되어 미래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에서는 틀에 아이들을 가두려는 교육에 일침을 가한다. 시(Poetry)를 감상하면서 시험을 위해 공부하다보니 시가 본질적으로 전달하고자하는 내용들을 상당부분 놓치는 일들이 발생한다.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노력은 시험에서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정말 중요한 이런 것들을 놓치고 있는 교육시스템에 냉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 사람.
당대적인 관점에서 이상하게 보인 사람이 미래에는 통찰(insight)을 겸비한 사람으로 주목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이상하긴 한데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이상함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타인과 비슷한 생각과 행동양식을 유지하는 사람이 과연 타인과 비교하여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낼 수 있을런지... 그보다는 일단은 타인들과의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는 이상한 생각과 행동들을 시도해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이상한 생각과 행동들에 대한 것.

지인의 추천으로 본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원작소설도 있다.


2014-06-16

movie_ Assault on Wall Street 월스트리트: 분노의 복수





작은 분노들이 모여 언젠가는 큰 분노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높은 산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구조를 제어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높은 산의 정상이 아닌 저 밑에 있는 산의 입구에서 정상을 바라보는 것은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기는 쉽지도 않을 뿐더러 정상을 향에 올라가느라 정신 없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이 이와 비슷한 모습은 아닐런지... 올라야할 산은 여러 종류의 형태로 다양한데, 고집스럽게 하나의 산만 오르려는 것은 아닌지...

평범한 시민이었던 한 남자가 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게 된다. 잔잔했던 호수에 벼락이 내리치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의(Justice)가 사라진 사회에 대한 일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경쟁과 긍정적인 욕망은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것이 임계점을 치고 올라 지나치게 되었을 때는 타인에게 큰 해악을 끼침은 물론 그 자신까지도 어둠의 삶 속에서 고통 받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이미 자본은 어마어마한 힘(Force)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우리 눈에 보이는 총, 칼의 위압감보다 더 큰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힘을 가진 사람들은 전체를 통제하려하고 통제 당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돈에 대한 욕망을 불태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movie_ A Dangerous Method 데인저러스 메소드





흥미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중간 중간에 야한 장면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역사적인 부분에서의 논쟁에 대한 내용이 전개되는 영화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한 장면도 그다지 큰 설레임을 주진 못하는 것 같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카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샤비나 슈필라인(Sabina Spielrein, 1885-1942)

이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의 정신(마음)을 각자가 어떻게 바라 보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이 논의는 어디까지나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서양 뿐만아니라 동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서양의 관점과 견주어가며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성적 욕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갈수록 금기들이 깨지고 있다할지라도 성(sex)이라는 영역에서의 금기가 어느 정도까지 깨어질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만큼 우리에게 성은 쉽게 공개하기 어려운 주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는한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그 동안 간과했을 수도 있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의 의지를 동반한 의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영향에 의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과 관련된 부분에서의 고민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할 것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동반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대부분이 당신이 아주 어릴적 기억에 없는 그 환경의 영향을 통해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것들은 어쩌면 '무의식'의 영역에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어 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것들의 누적이라면 행운일 것이지만, 긍정적이지 못한 것들의 누적이라면 상당히 굳은 마음을 먹고 그것들을 변화 시키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 자신을 변화 시키고 혁신 시키는 것의 출발점은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진행 중이다.


2014-06-15

book 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주역(周易)에 관심은 있는데, '해석상의 어려움'과 '분량의 어마함'이라는 이유로 읽기를 주저하시는 분들께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주석에 한자 음과 훈을 잘 해설해 놓아서 보기에 편하고, 주석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해석이 잘 되어있어서 그냥 한글만 읽어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다.

64가지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인가? 8가지의 경우의 수와 또 다른 8가지의 경우의 수가 만나게 되면 64가지의 경우의 수가 만들어지게 된다(8x8=64). 이 책에서는 이 64가지 경우의 수에 해당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올지에 대해 독자에게 실마리를 던져준다.

삶을 살다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위기를 겪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 위기를 딛고 더 높게 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는 그 위기로 인해 긍정적이지 못한 또 다른 위기를 겪는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상황을 운명에만 맡기는 것은 어쩌면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른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위기의 물줄기를 조금이라도 긍정의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런지... 운명일지도 모를 그것이 인간의 진심 어린 최선의 노력과 만나 작은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지...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엉망이 되어버리는 처절한 비애감에 빠진 시기였다. 어떻게든 그 위기를 딛고 더 높게 날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고, 책의 어느 한 구절에서 '올바름'과 '바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보고, 위기일 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정돈해야한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에 옮겼다. 그 '올바름'의 기준에 대해선 개인 각자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본질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대한 내용으로 수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큰 위기의 과정에서 만난 이 책이 많은 실마리들을 던져줬다. 결과적으로 그 위기를 슬기롭게 잘 이겨냈다.

주역(周易)의 방대한 내용을 이 책이 모두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약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의 내용을 통해 주역이 말하고자하는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자를 몰라도 친절하게 한글 해석이 돼어있기 때문에 읽고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2014-06-14

story_ (2)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까? - 부모의 뒷모습1

[......남편 분과의 사이는 어떠신가요?......]


C가 S에게 남편과 진정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은 이 말에는 우리 삶의 중요한 본질적인 부분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S는 C가 뜬금없이 아이들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남편과의 사랑에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이렇다.

" ~흔히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과 관련해서 단순히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아오는 것만이 교육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그건 본질은 놓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이가 배움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지혜를 함양하는 것도 교육의 목표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품성과 인격,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적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충만한가?에 대한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바탕이 견고하고 튼실해야 더 멀리갈 수 있고, 부수적으로 성적도 좋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C는 S에게 아이의 학교 등수보다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S에게 이야기했다. 이 대목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Mental)이라는 영역의 중요성에 대해 C는 매우 중요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C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갈수록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하는 부분들을 C는 건드리기 시작했다. "~S님 주변에도 자녀들을 두신 분들이 계시죠? 그런데 그 중 유독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들이 있을 거예요. 이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부부간의 사랑이 돈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이들 앞에서 사랑하는 척하는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니예요. 부부가 진정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느냐에 대해 말씀드리는 거예요. 누구나 '척'은 할 수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가 부모의 앞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착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생각해요. 앞모습이 아니라요...정말 중요한 부분이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부부가 있는데, 이 부부는 자녀들보다 부부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면 아이들 몰래 둘이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고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까지 빨리 그 냄새를 없애려고 분주했다고 한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과연 어떨까?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하나의 결과물을 소개하자면) 이 부부의 자녀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결과가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신들 몰래 맛있는 음식을 시켜드셨다는 사실에만 집중해서는 이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본질을 놓치는 것이 된다. 이 이야기의 본질은 부부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부가 서로를 진정 위해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뭐. 나 몰래 두 분만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게 서운하긴 하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정말 서로를 사랑하시는구나. 두 분이 서로를 아끼시느라 내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니 난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찾아야지.~' 어떤가? 지나친 억지 주장일까?


(계속....)

classic_ THE FOUR SEASONS 사계- Antonio Vivaldi 비발디 (1678~1741)







과거, 학창 시절에 시험을 볼 때마다 시험 도입부에서 반복적으로 들리던 선율이 있었다. 바로 비발디의 '사계'라는 작품 중에서 나오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은 바로 그 부분만 반복적으로 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문맥의 흐름에서 그 선율을 들었느지에 따라 같은 리듬이어도 다른 감정을 몰고오지 않을까?

언젠가 지인분의 자녀들에게 익숙히 들었을 만한 '사계'의 일정 부분을 들려줬다. "어!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요."라며 아이들이 일제히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하며 집중했다. 반복적으로 들었던 음에서는 친숙함을 보이던 아이들은 그 이후에 나오는 익숙치 않은 음을 들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린 대부분 (이렇게 익숙한) 여기까지만 듣죠. 그 이후까지도 들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지 않을까요?"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아이들의 눈망울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으로 비발디 '사계'를 모두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은 여전히 뇌리를 자극한다. 몇번을 반복해 들어도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이 느껴졌었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아 가끔 대중가요에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고전으로 돌아오게 되는 듯하다. 인간의 본질적인 그 무엇을 건드리기 때문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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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레코드만 꼽아 보아도 화자노(로마 합주단, 1954년 녹음), 이 무지찌(F.아요/1959년 녹음), 매리너(성 마틴 아카데미, A. 러브데이/1970년 녹음), 라 쁘띠트 방드(S.쿠이켄/1979년 녹음), 그리고 카알 뮌힝거(슈투트가르트 실내 관현악단, 1951녹음)의 연주가 있다.~"

-출처: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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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AYO(펠릭스 아요)가 연주한 음반을 구입했었다. 음반을 구입했을 당시에는 비발디 사계에서 '겨울'을 연주한 부분이 좋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여름'이 더 듣기에 정겹다. 


[참고]
Vivaldi: Four seasons- I MUSICI

(Spring)
http://youtu.be/YRxB7ssENEk

(Summer)
http://youtu.be/9DWqyUsmxVE

(Autumn)
http://youtu.be/iWeLSSIIDds

(Winter)
http://youtu.be/vZ6BJfz1kow


2014-06-13

poetry_ 편지

편지


당신이 나를 생각하며 썼던
한 글자, 한 글자에서 당신을 느낍니다.

내 곁으로 무사히 온 것 만으로도
나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당신 자체가 내게 큰 선물입니다.
어디서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날까요?

진흙탕 속 진주를 알아보는 힘을 지닌 당신을...
어디가서 또 만날까요?

당신은 나의 태양입니다.


2014-06-12

book_ Comment je vois le monde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Albert Einstein 알버트 아인슈타인 지음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한 말과 쓴 글들로 구성되어있다. 번역상의 문제여서일까? 읽는 내내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책장을 넘긴 적이 많았다. 이해되는 페이지에 집중을 하면서 밑줄을 긋긴 했지만, 이해 안 가는 부분이 더 많았다.

책 내용중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book Secret 시크릿- Rhonda Byrne 론다 번 지음






"이 책만 읽는다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고,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과연 이 책 한 권으로 인생을 역전 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서 '~ 일주일 만에 끝내기', '~ 하루만에 정복하기'라는 제목을 가진 책들을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물론, '~만에 끝내기'라는 제목의 책이 막바지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요약서로서의 가치가 클 수는 있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에게 상술로써 소위 '대박'의 꿈을 꾸게해 자신들만의 수익을 챙기려는 지금의 세태에 대해서는 기분 좋게 바라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양서와 악서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해 오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이 책 하나로 자신의 행복을 갈구한다면 결과는 부정적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길 바라는 상황에서 우연히 감이 떨어지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 행운은 상당히 확률적으로 희소하다. 대신 직접 노력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가는 게 낫지 않을런지...

책을 읽을 때는 잠시동안 마치 무엇이라도 된 줄 알았는데, 책을 읽은 후에는 그 두근거림이 오래가지 않았다. 실제 삶에서 작은 것들을 실천해가면서 노력에 대한 작은 보상들을 받는 과정이 있다면 그 두근거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지속성... 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에대한 심혈을 기울인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을 구체화한 실제 삶에서의 실천도 필요하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을 때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평상 시에 하는 생각의 중요성을 다시금 기억나게 해줬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인간의 무의식에 존재하여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그렇다고하여 무턱댄 긍정은 어쩌면 독이 될 수 있음은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다. 현실을 냉정히 직시한 상태에서의 긍정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2014-06-11

book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 Sigmund Freud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성욕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느끼는 성욕의 매커니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되면 성욕을 어느 정도는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서점의 땅바닥에 앉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견주다가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을 선택했었다. 단순하게도 분량이 적은 책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성 발달을 통해 본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구조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 편의 논문은 1.성적도착 2.유아성애 3.사춘기의 재구성 으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이 논문 형식의 글을 그대로 해석해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더러있었지만, 이해되는 부분에 집중해서 읽어보면 성에 대해 좀 더 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성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book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옛날,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 <<중국 견문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그 당시 군생활을 하며 읽었던 책들은 죽어가는 감정을 살려주는 작은 불빛이었다. 지식에 중독이라도 된 환자처럼 여러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너무 지식에 목말라서 새벽에 모포 속에서 라이트로 책을 비추며 읽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편히 잠을 자도 될 듯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인지 내 삶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그 무엇에 대한 투쟁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중국 견문록>> 이후에도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등을 읽으며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는 저자가 직접 세계의 빈민국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꼈던 그 나라의 사정들을 적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주려 죽는 아이들......그리고 전쟁......저자는 이 책에서 W라는 구호단체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리라 다짐하고 있었고, 그 생각을 바로 행동에 옮겨 그 구호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2009년 8월경에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어떤 지인분을 만나 저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지인분께서 저자가 '지구를 몇 바퀴 돌았다'며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언급했다. 지구를 몇 바퀴 돌았는지에 대한 수치적 사실이 거짓이라면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구를 몇 바퀴 돌았다'는 사실이 정확한지의 여부가 중요한 사실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저자가 자신의 발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더 중요한 사실이 아닐까? 만약 이러한 것들이 거짓이라면 큰 비판을 받아야겠지만...


2014-06-08

story_ Why do honor to parents? 효도(孝道)는 왜 해야하는가?

"효도(孝道)는 왜 해야하는가? Why do honor to parents?"


이 의문에 어느 누구는 '당연한 걸 묻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의문에 공감하며 지금부터 써 내려갈 한 편의 이야기에 집중할 지도 모른다. 결국, 결론은 효도(孝道)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효도(孝道)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없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수동적으로 따라갔을 수도 있다는 것에 깊은 고민을 하게될 듯하다. 맹목적으로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그 이유를 알고 부모를 섬기는 것과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F는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렸는지도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직면했기 때문이다. 바로 '왜? 효도(孝道)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덕목을 F도 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느껴지는 이 의문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F는 서점에 갔다가 <<효경>>이라는 동양고전을 접하게 된다. 잠시 책 내용을 훑어보다가 그 동안 F의 머리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의 고리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왜?"라는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효경>>이라는 책에 쓰여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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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5

~효의 본질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에 있다
[은중경]에서는 "효孝"라는 개념을 "보은報恩"이라는 개념으로 바꾼다. 효와 보은은 어떻게 다른가? 앞서 말했듯이 효의 본질은 아래서부터 위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에 있다.

전술의 동아일보의 논설이 적확이 지적했듯이 유교의 [삼강행실도]류의 효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방향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보은"은 필연적으로 쌍방적이다. 보(報)가 있기 전에 반드시 은(恩)이 선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恩)이란 위로부터 아래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은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무량(無量)한 은혜이다. 따라서 [부모은중경]의 위대한 측면은 [삼강행실도]가 강요하는 복종의 윤리를 하해(河海)와도 같은 자비의 윤리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효경 한글역주>>- 김용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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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가 소개한 내용을 읽고 상당한 긴장을 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접했다는 점과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토네이도처럼 몰려왔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본디 효(孝)란 아래에서 위로의 무조건적인 공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위에 소개한 내용에서는 "효의 본질"을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내용을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부모 입장에서는 굳이 알고 싶지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지도 않은 내용일 확률이 높을 듯하다. 지금껏 알고 있는 효(孝)에 대한 덕목만으로도 부모 입장에서 긍정적인 혜택을 누리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효(孝)에 대한 그 과정의 구체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효(孝)를 행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부분은 자식이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는 효(孝)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하는 의무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효(孝)는 행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서의 효(孝)에서는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에 휩싸여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지금 소개하는 이야기도 어쩌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孝)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자하는데 의의를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 효(孝)의 본질이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이라고 했는지 다음 소개하는 공자와 맹무백의 대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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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93-194

맹무백과 공자의 효 담론

우리는 [논어]의 구절들을 아주 상식적으로,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식 속에 당연히 주어져 있는 평범한 사태로서 읽어버리고 말 수가 있다. 그런데 여기 첫 마디,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 孟武伯問孝"라는 말은 객관적인 사태의 기술로서는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왜 뜬구름 없이 갑자기 효를 묻는가? 효가 무엇이길래 공자에게 갑자기 던지는 질문의 대상이 되는가? 효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원초적 감정이고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저절로 느끼는 감성의 체계일 것이다. 결코 이성적 질문의 대상으로서 객관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라는 대 석학을 만났을 때 갑자기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는 사실은, 효가 이미 사회적 담론으로서, 즉 하나의 에피스팀(episteme)으로서 객관화되고 공론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무엇이었던가? :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일 뿐. 父母唯其病之憂."



"효를 물었다" 했을 때의 효는 분명 당시의 사회적 가치를 집결시킨 하나의 개념이다. 그런데 공자의 대답은 질문의 대상이 된 개념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행하고 있질 않다. 즉 그 개념의 구조에 대한 개념적 성찰이 전혀 없다. 그리고 효라는 개념에 관하여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방향"에 관한 복종이나 의무의 냄새가 전혀 없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을 말했을 뿐이다(불교의 은恩이나 기독교의 카리스마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것은 개념적 성찰이나 설명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느낌"일 뿐이다. 여기에 바로 공자의 위대성이 있고 인간을 바라보는 그 원초적 도덕성의 진실성이 있다. 이러한 공자의 느낌에 대해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운운할 수는 없다. 라캉의 "미끄러짐"(시니피앙에 대해 시니피에가 즉각적으로 부착되지 않으며 인간의 언어는 시니피앙의 연속일 뿐이다. 시니피에는 무의식의 담론 속으로 미끄러져 숨어버릴 뿐이다)을 운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욕망과 좌절과 갈망이 범벅이 된 인간의 갈등구조가 아닌 것이다. [논어]에서 이미 담론화되고 있는 효를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서 형상화하여 그것을 보편적 통치이념으로서 만들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 [효경]이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언제 그러한 작업을 감행하였을까?


출처: <<효경 한글역주>>- 김용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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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효(孝)는 본질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주었던 헌신과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심각한 질문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내 부모는 나에게 그런 사랑과 헌신으로 나를 돌봐주지 않았다. 그러니 나에게 효(孝)를 강요할 순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과연 비판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물음이다. 어쩌면 지금 나이드신 부모 세대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위와 같은 생각을할까봐 두려워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정말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 상처를 직면해야할 것임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효(孝)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채, 그냥 살고 있는 삶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부모님 두 분이 서로를 사랑하시고, 서로를 아껴주는 가정에서 자란 분들은 효(孝)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을 헌신과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은혜의 보답은 굳이 사회가 강요하지 않아도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 두 분이 서로를 사랑하시지도 않고, 서로를 아껴주시지도 않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격렬한 다툼을 하시고, 심지어 부모라는 권력을 쥐고 자신의 자녀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를 준 가정에서 자란 자녀는 과연 사회가 윤리적 덕목으로 외치는 효(孝)에 대해 과연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사회 통념이 '부모에게 잘해야한다'라고 하니 행동으로야 옮기겠지만, 겉으로는 부모를 공경하면서도 마음에선 항상 딜레마에 빠져있다면 그 효(孝)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여러분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경우 노력을 해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엔 상당히 쉽지 않아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죠. 그러니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행복하게 자란 사람보다 수 천배, 수 만배의 노력을 해야할 거예요.~"

상당히 의미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행복'하기가 어려웠으면 '행복'에 대한 구호가 여기저기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겠는가? 어쩌면 '행복'이라는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 이야기의 결말이 효(孝)에 대한 긍정성으로 끝나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이에 대해  F는 어느 누군가의 말을 인용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랍니다. 앞모습이 아닙니다. 아이 앞에서는 온갖 좋은 말들을 하면서 막상 등을 돌렸을 때는 술을 마시고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거나 부부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는 바로 부모의 그런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의미 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아이는 부모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자랍니다.~"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 이야기였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상당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 아이는 부모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자신의 부모들을 닮고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내가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삼았던 부모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보여지고 있다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얼마나 끊질긴 인연으로 엮여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부정했던 자신의 부모와 육체적으로 독립을 하여 떨어져 있다고하여 어릴적부터 누적되었던 부모의 뒷모습에서 그 자녀가 쉽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부분이 정말 무서운 부분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부모를 닮아갔던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 측면이든, 부정적 측면이었든지 간에...... 그래서인지 어떤 분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습관들이 6대-7대를 간다는 말은 허황된 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할 것이고, 어떻게 앞으로 생각하고 행동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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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8

~하나님이야말로 인간에게 효자, 가정윤리의 연속성

우리가 일상적 체험을 가지고 말한다 하더라도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한다 한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미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를 구가하는 발랄한 생명을 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보호하고, 또 그의 불안정한 판단에 대해 달관된 눈으로 가슴 아프게 쳐다보는 아버지-엄마의 인욕과 사랑(愛惜)의 깊은 심정이야말로 자식이 다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자식이 또 다시 부모의 입장이 되어 그러한 심정을 깨닫게 될 때 가정윤리의 연속성이 성립한다. 그 연속성의 도덕성을 우리가 효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복종적 효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효를 설파한 또 하나의 흐름을 우리는 바로 [부모은중경]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효경 한글역주>>- 김용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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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뒷모습을 나의 자녀들이 보게될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 하는 뒷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배울 것이고, 그 자녀가 낳은 아이들도 그것을 그대로 따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아이를 낳지 않는 분에게는 크게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 더군다나 혼인을 하지 않으려는 분에게는 해당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가정을 만들 마음이 없다면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만 다스리면 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정을 만들어 자녀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에서 큰 문제들이 발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혼인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한 아이의 부모로서 자녀들을 키울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주변의 이야기에 자신의 소중한 삶을 맞춰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이런 선택에서부터 한 개인의 운명적인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그다지 부모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란 분들께서 그러함에도 부모님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내려고 노력해야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 뒷모습을 나의 자녀가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움이 아니더라도 본인을 위해서 효(孝)를 행하는 것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본인의 마음을 좀더 긍정적으로 치유하고 또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비록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불행이 대를 이어 내 자식과 손자, 손녀에게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계속 불행을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함에도 끊임없는 긍정을 향한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야 좋을 듯하다.

F가 다음으로 소개한 내용은, 실제의 삶에서 부모님에게 어떻게 효(孝)를 행할것인가? 에 대한 것이다. 이 내용에서도 상당한 자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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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36-137

~효는 평상의 장이 으뜸, 그러나 포상을 위해서는 극화되기 마련

그러나 효가 발현되는 가장 중요한 장(場)은 삶의 평상시이다. 일상적 평온함 속에서 은은히 꾸준하게 발현되는 효야말로 가장 위대한 효인 것이다. 그러나 평상적 효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구나 [삼강행실도]류의 효는 그 포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포상을 통하여 백성들의 가치관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위대한 효는 포상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타인에게 모범으로 내걸 수 있는, 그러니까 타인의 주목을 끌만한 드라마가 없다. 따라서 효의 상황이 점점 극화되게 마련이다. 일상이 아닌 이변(異變) - 재해(災害) - 우환(憂患), 생사의 기로와 같은 극적 상황이 설정되고, 그 극적 상황에 대처하는 효자들의 극적 희생이 그 예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도가 폐하여지니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나니깐 큰 위선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화하니깐 효도와 자비가 생겨났다.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가슴에 새겨보고 또 새겨볼 만한 명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효를 포상하면 효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효를 포상의 대상으로 삼고자하면 효는 위선이 되거나 불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이러한 철인 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출처: <<효경 한글역주>>- 김용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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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도 마음에 울림을 준다.
효(孝)를 포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 효(孝)는 사라지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상황에서 "큰 위기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평상시"에서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효(孝)를 포상의 대상으로하고, 미디어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하기 위해선 뭔가 특별한 것을 필요로 하다보니 평상시의 효(孝)가 등한시 되고, 극화된 효(孝)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닐런지...이런 극화된 효(孝)의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본 여러 사람들은 영향을 받게 되고...

작은 것들이 쌓여 큰 것을 이룬다.
작은 효(孝)가 쌓여 큰 효(孝)를 이루는 것은 아닐까?

바로 지금!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효(孝)를 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거창한 효(孝)부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효(孝)를 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작은 것들이 쌓여 궁극엔 큰 열매가 맺혀지는 건 아닐런지...


book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지음





삶을 알고 싶으면 배낭여행을 해보세요.

과거에 한비야씨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강연회에서 했던 말이다

과거에 약600km를 약20일 동안 오로지 도보로 걷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초반에 짐을 꾸리면서 배낭에 불필요한 것까지 이것저것 집어 넣었다가 하루 만에 필요 없는 짐을 하나라도 더 빼내는데 혈안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배낭에서 불필요한 짐을 빼내면서 진정 인간이 살아가는데 불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심사숙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이라는 먼 여행길을 떠나는데, 배낭이 무거우면 오랜 시간동안 먼 거리를 걸어가는 건 꽤나 힘든 일인 듯하다.

우리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인생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 짐이 짊어질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들일까? 너무나도 불필요한 짐의 무게 때문에 얼마가지 않아 지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인생을 장거리 마라톤으로 봤을 때 정말 필요한 짐만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직접 10km 마라톤을 뛰면서 내 몸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없애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는데, 42.195km를 뛰면서는 그런 충동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 이런 생각의 본질이 인간의 삶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아마도 도보여행을 준비하려는데, 마땅히 방법을 잘 몰라서 미루기만 했던 분들에게 정말 유용할 것이다. 맨 뒷장에는 준비물이며 도보여행 시 주의할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그다지 소장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소장하는 순간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2의 한비야가 아니라, 여러분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보세요.라고 강연회에서 한비야씨가 말 했던 것처럼 창의력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2014-06-01

Think about BitCoin.

What do you think about Future of Bitcoin?


Bitcoin have the positive influence for the global economy.
However, I have something to concern about the Satoshi Nakamoto.

Why have he(she/they) not appear yet?
Recently, I saw the newspaper about guess of Satoshi Nakamoto.

If he(she/they) appear(s) and explain(s) the BitCoin, ecosystem of the BitCoin could be activation.

Latest, America reported that Bitcoin is property(not currency)


story_ Yeild seat to the mother 엄마에게 자리 양보해라

여유가 준 선물인까? 아니면 불필요한 오지랖과 망상일까?
언제부턴가 인간의 삶 속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심지어 사소한 것들 마저도 놓치지 않고 응시하게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중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보게되는 여러 장면들에서 인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한 무리의 가족이 지하철에 탑승하는 걸 보게됐다. 부모님과 자녀 2명으로 기억된다. 때마침 좌석이 한 개 비어있었다. 그걸 본 아이는 재빨리 걸어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버지로 보이는 분 께서 "엄마에게 자리 양보해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그대로 계속 앉아서 갔다.

이와 비슷한 상황인데,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게된 경우도 있었다.
부모님과 자녀1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이 때도 때마침 좌석이 1개가 비어있었다. 이 때 아버지가 자녀에게 "여기 앉아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위에 소개한 두 상황은 얼핏보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상황을 응시하게 되면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먼 미래에는 상당히 다른 상황들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해보이는 두 상황은 엄연히 큰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한 번 생각해보자.
아버지가 자녀에게 "엄마에게 양보해라"라고 말했던 가정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녀들보다 더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버지가 어머니 대신 자녀에게 자리에 앉게한 가정은 아버지가 어머니보다는 자녀를 더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가정을 이룬 부부가 아닐까? 그 부부가 서로 사랑을 해서 아이들이 태어났을 것이고...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공든 탑은 언제라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부부의 사랑이 더 우선시 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앞모습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그늘 아래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의 가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더 행복하게 자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아이는 냉혹하게도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 혹여라도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만 그토록 바라던 행복의 문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한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웠으면 여전히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말들이 여전히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행복"이라는 구호는 컴플렉스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앞모습이 아니라......


book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지음





예전에 이 책을 읽으며 좋은 부분을 워드로 정리해 두었었다. 그렇게 잊혀지나 싶었는데, 법정 스님이 세상과 작별을 고할 시점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고 직접 구입해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은 책에서 받은 느낌은 과거와 사뭇 달랐다. 삶에 직면했기에 얻은 값진 지혜들 덕분에 책의 여러 구절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는 말이 설득력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위기라고 생각되었던 상황들이 잘 견뎌낸 뒤 시간이 흐르면서 기회로 탈바꿈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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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72-173

뒷모습


늘 가까이 있어도

눈 속의 눈으로 보이는,

눈을 감을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모습이

뒷모습이다.

이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이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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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18-119

존재 지향적인 삶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오늘을 마음껏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관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 질서 앞에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이므로.

물소리에 귀를 모으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깨우쳐 주는
소리 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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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미안해 -박진영 지음



이 책과의 인연은 군대에서 맺어졌다.
너덜너덜해진 초판본 책이 내무실에 있길래 무심코 읽었었다.

생각과 가치가 불완전한 20대였던 저자의 생각들이 담겨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상황들과 어울릴만한 주제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하고 개성있는 그의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저자가 섹스에 대해 우리 사회에 던진 이야기들은 상당히 큰 화제를 몰고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섹스에 대한 농담식 담론이 아닌 '사랑이 전제된 섹스'라는 주제로 그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무 여자에게나 야하진 않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는 야합니다"라는 그의 발언도 중요한 맥락인 것 같다.

그다지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