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3

movie_ My Father's Emails 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년 전부터 자신의 역사를 담은 이메일을 딸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이메일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열리게 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딸은 아버지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 본다. 지난 시간에는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들이 딸과 형제들 그리고 어머니에게까지 자리 잡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서 그들은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은 무거웠다. 여느 영화처럼 좋은 결말을 기대해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편한 감정이 우리 삶의 진실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를 좀더 따뜻하게 하기엔 아버지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시간이 없었다. 냉정하게 출발점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단순히 관념상으로 긍정에 몰입하는 경우에는 어둠을 직면하지 못한데 대한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가 현재 어느 상황인지를 잘 살펴본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 SBS힐링캠프에서 양현석씨가 나와 했던 말을 듣다가 머리에 천둥벼락을 맞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전생-현생-환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생은 부모님이고, 현생은 나 자신, 그리고 환생은 내 자녀들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성공에만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성공의 본질도 어쩌면 그가 말한 삶에 대한 통찰과 맥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 꼭 생물학적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유아기와 어린시절, 그리고 청소년기에 자신의 삶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도 내가 현재에 있기 까지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초원에서 갓 태어난 얼룩말 새끼는 엄마의 자궁을 빠져나와 자연의 햇살을 맞음과 동시에 스스로 일어선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한다. 어찌됐든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한 인간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돌봄을 받은 그 환경을 제대로 직면하고, 긍정적이지 못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런지...

영화에서 인터뷰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어머니의 인터뷰,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있는 첫째 딸의 인터뷰... 첫째 딸이 자신이 낳은 아들과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관심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 이 모습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는 최대한 빨리 어둠을 직면하여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고, 대부분은 그 상황을 외면하고 피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삶이 쉬운 기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행복했던 사람은 계속 행복할 가능성이 높지만, 불행한 사람은 계속 불행하거나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이 말에 삶의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2014-12-06

poetry_ 비로소-고은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순간의 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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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를 놓았다"가 아니라 "노를 놓쳐버렸다"라는 섬세함에 반복해서 시를 읽게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노를 놓치게 됨으로써 "넓은 물"을 볼 수 있었다는 의미는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관통하는 통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시대는 개인에게 노 젓기만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잠시 노 젓기를 멈출 때는 피로한 몸을 쉬게할 시간 밖에 없는 듯하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짧은 거리를 가는 것이라면 그냥 노를 젓는 것이 별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먼 여정에서 각자의 노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자문하는 과정이 빠진다면 삶의 본질을 빗나가는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좋은 시를 만났다.


2014-11-30

movie_ Don Jon 돈 존




How many Woman know the masturbation number of times of the woman's boyfriend?


재미와 함께 작은 여운을 준 영화.

"사랑" 그리고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특히, 남자를 알고 싶은 여자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들에서 의외로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흥미와 함께 이야기를 잘 이끌어간다. 욕망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스토리의 힘에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쾌락적 욕망을 건드리는 주제의 내용이 아니라, 그 쾌락적 주제를 인간의 삶과 잘 엮어 냈다는 생각이 든다.

환상 속의 그 남자...그 여자...
현실이 미디어의 프레임에 갇혀 꾸며지는 과정에서 그 미디어를 보는 사람들은 현실을 왜곡하여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그 만큼 미디어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을 수록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호흡을 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닐런지...

종교(religion)와 사랑은 어떤 관계일까?
"종교에서의 사랑은 여러 사람을 등에 업을 수는 있지만, 단 한 사람을 업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던 어느 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습관적으로 이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사랑을 지금껏 해왔는가?... 종교(religion)는 여전히 인간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부분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힘을 키우는 듯하다.

사랑을 하는 두 연인이 보면 좋을 영화. 더 구체적으로는 어쩌면 남자를 알고 싶어하는 여자들에게 더 적합할 것 같다. 남자친구의 마스터베이션 주기를 알고 있는 여성들이 과연 얼마나될까?... 여성이 한 달에 한 번씩 치루는 신체적 변화 만큼이나 남성이 끓어오르는 쾌락과 욕망의 분출도 서로 이야기해야하지 않을까...


2014-11-23

movie_ Man of Vendetta 파괴된 사나이





한 인간의 삶이 순식간에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같으면서도 마치 상상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내용의 전개가 짜임새 없는 듯 한 느낌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이 영화 속에서 주어진 몇가지 단서들을 기억해 각자의 상상력으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가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8년동안 나 하루도 잊지 않고 생각하고 있었어?"라는 딸의 물음에 극 중 김명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사라진 딸에 대한 고통이 너무 커 김명민은 자기 자신을 망가 뜨렸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고개의 끄덕임'은 유괴된 딸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믿음에  대한 끄덕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믿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민하게 됐다.


2014-11-22

economy_ DEBT is to sell my soul to the devil. 부채는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파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에 대해 고민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채(Debt)는 자유와는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부채(Debt)와는 거리를 멀리 두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채(Debt)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요즘 느껴지는 분위기는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생계 때문에 부채를 져야만 하는 상황은 그렇다치더라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탐욕에 빠져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채(Debt)의 늪으로 달려가는  장면들이 종종 목격된다.

얼마 전, 오랜만에 최근 혼인을 한 지인을 만나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를 빨리 마친 지인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주식투자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니깐"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까지는 그다지 큰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는데, 그 다음으로 지인이 하는 말을 듣고는 침묵할 수가 없었다. 지인은 서슴없이 마이너스 통장에서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이었음에도 심각성이 느껴져 무거운 입을 열었다. "좀 위험한 투자 아닌가요? 지금 같은 과도기적 경기상황에서 가급적 주식투자는 피하시는 게... 그리고 내 돈이 아닌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한다는 게..." 이 말을 들은 지인은 '초심자의 행운'의 함정에 빠진듯 자신만의 투자 원칙이 있으시다면서 자신감을 보이셨다. 더군다나 지인은 최근 혼인을 하면서 신혼집 관련해서도 대출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지인은 이직을 생각하고 계셨다. 이름을 대면 대부분 알만한 기업에 다니시면서 쌓은 경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고 하셨다. 지인께서는 다른 이유를 대셨지만, 개인적으로 본질은 부채(Debt)였다는 생각이 든다. 주기적으로 나가야할 돈이 고정되어 있다보니 이직을 위해 잠시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고민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지인께서 식사를 대접해주시고 카페에서 차까지 대접해 주신다고하셔서 감사하긴 했지만, 부담스러워서 카페에서는 가장 싼 음료를 주문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빚을 진다는 것에 무감각해져버렸다. 부채(Debt)를 아무런 고민없이 떠 안는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하는 '자유'를 악마에게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빌린 돈으로 내가 원하는 물품을 소비하는 자유가 과연 얼마나 인간에게 충족감을 줄 수 있을까? 물품을 소비하고자하는 그 욕망은 본인의 욕망인가? 진정 본인의 욕망인가? 알면서도 하는 것과 모르면서 하는 것에는 엄연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 경제는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 가장 큰 핵탄두는 부동산... 부동산에서 파생된 부채가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최대한 부채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부채를 져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부채는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최대한 빨리 그 부채를 상환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결국 인간의 본성에는 탐욕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한 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이 글을 읽고 단 한 분이라도 좋은 영향을 받으셨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결국 벼랑 끝에 메달려 고통을 겪은 뒤에야 벼량 끝을 향하는 탐욕의 수레바퀴에서 뛰어 내릴 테니까... 어쩌랴 그게 인간인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신뢰하는 어느 경제전문가의 글을 인용한다.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잃지 않는 지혜를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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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현금 밖에는 추천할만한 자산이 없군요. 2013년까지는 현금>금>채권>주식 순이라 강연때마다 말씀드렸지만 이제부턴 현금밖에 없네요.부동산은 땅>전원주택>중소형 아파트>주상복합이었지만 현재는 부동산에 투자는 곱씹어보셔야할듯요.

출처: 어느 경제전문가 by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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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book_ Zorba the Greek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어 원제: 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이 고민의 주제는 인간의 전반적인 삶을 통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닌 오직 나의 내면에서 끓어오른 열정이 기본이 되어야한다. 그 열정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나의 깊은 내면을 직면해야할 필연성이 생긴다. 이는 나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초석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책은 그러한 삶의 고민의 과정에서 읽었을 때, 비로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눈에 보이는 제스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자신들의 내면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를(feeling) 자각할 수 있어야만 책의 글자들이 영혼이 되어 우리의 심장에 자유를 선물해 줄 것이다. 그만큼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 것이다. 정말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문화를 형성하고, 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정한 일반적인 도덕 또는 규범을 알고 있어야한다. 이런 사회구조의 틀이 인간의 순수한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자유'에 대해 세상에 외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주의자' 또는 '망상가'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를 외친 사람만이 현재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인식하여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나의 자유를 방해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열정을 각자의 내면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그런면에서 어쩌면 자유는 목표했던 '자유'라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여정 그 차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과연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물질적 자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궁극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일 것이고, 더 나아가 물질과 정신의 균형잡힌 자유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육체와 정신의 자유라고 바꿔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등한시하고 정신에만 몰입하면서 삶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섹스는 즐겁고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왜 억압되어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는 것이 되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삶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깊은 고민을 얼마만큼 했으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종교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어쩌면 잘 읽히지 않거나 그냥 읽힐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무언가에 얽매인 상태에서 책의 글을 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길 권하고 싶다. 얽매인 그것으로 인해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고자하는 진의가 오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인간의 삶이 보이지 않을까... 영화로도 만들어졌기에 영화도 봤는데,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잘 표현했다.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다시 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왜 고전(classic)이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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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문 중에서...]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성서에서 〈오늘 빛이 났도다〉라고 했더라면 사람들의 가슴은 그렇게 뛰지는 않았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 사상은 성스러워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세계를 정복할 리도 없었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의 사상은 한갓 정상적인 물리적 현상으로밖에는 기술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상상력(즉 우리의 영혼)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죽음의 겨울에서 태어난 빛은 아기가 되고 아기는 하느님이 되면서 20세기 동안 우리들의 영혼은 그 젖줄을 빨게 되었을 터였다.~

~조르바가 나를 돌아보았다.
「…두목, 당신은 믿으시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말? 믿어서 믿는 거요, 아니면 공연히 그래 보는 거요?」
「조르바, 그건 어려운 문젠데요. 믿는다고도 할 수 없고 안 믿는다고도 할 수 없겠는걸요. 당신은 어때요?」
「나도 믿는다고는 할 수 없겠어요. 죽을 때까지 그럴 겁니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나는 감동했다는 듯이 몸을 떨거나 웃어서 믿는 척했지요. 나이 들어 턱에 수염이 날 때쯤엔 그런 이야기를 무시했고 비웃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지금, 나이를 먹은 지금… 나이 먹으면 대가리가 물렁물렁해지는 걸까요, 두목.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믿기 시작했어요. 사람이란 참 요상한 거야!」~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예술이란 사실은 마법의 주문…. 예술은 우리의 오장 육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살인적인 힘을 충동질한다. 필사적으로 살인과 파괴와 증오와 타락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술은 달콤한 노래로 다시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다.~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지구의 네 가지 얼굴, 생자필멸(生者必滅), 이 모든 사실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조여 왔다. 해오라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여자가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서요?」
「아! 그거 풀렸어요.」 조르바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여자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다. 품질이 좀 떨어질 뿐이지요. 여자란 지갑을 보면 돌아 버립니다. 착 달라붙어 자유고 뭐고, 옜다 모르겠다, 모조리 남자에게 주어 버립니다. 왜? 마음 한구석에서 지갑이 반짝거리니까요.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에이, 이따위 이야기는 집어치웁시다.」~

~조르바는 껄껄 웃었다.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때 조르바가 고개를 들더니 감정을 밖으로 내쏟았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그는 이런 말로 쏟아 내었다.
「두목!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부정, 부정, 부정입니다! 나는 이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암, 나 조르바, 벌레 같은 놈, 굼벵이 같은 놈이지만 어림없고말고! 왜 젊은것은 죽고 늙은것들은 살아야 하나요? 왜 어린것들이 죽습니까! 아들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이름이 디미트리였지요) 나는 이걸 세 살 때 잃었습니다. 그래요… 나는 이 생각만 하면 절대로, 절대로 하느님을 용서할 수 없어요, 아시겠어요? 내 죽는 날 하느님이 내 앞에 광대뼈를 내밀면, 그리고 그 작자가 진짜 하느님이라면, 부끄러운 꼴 좀 볼 거예요. 그래요. 하느님은 이 조르바, 이 굼벵이 같은 놈의 눈앞에 나타난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동안 죽어 가는 여자는 베개 밑을 뒤지며 무엇인가 미친 듯이 찾고 있었다.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는지 여자는 트렁크에서 흰 뼈로 만든 십자가를 꺼내어 베개 밑에 넣어 두었던 모양이었다. 십자가는 오랫동안 부인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으로 몇 년 동안이나 다 떨어진 슈미즈, 벨벳, 그리고 누더기 같은 옷가지와 함께 트렁크 밑에 들어 있던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결정적인 병에 걸렸을 때만 듣는 약이라는 듯이, 먹고 마시며 사랑하며 재미를 볼 동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약이라는 듯이 여자는 그리스도를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

 ~「두목,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따사로운 밤공기 속에서 그윽하면서도 진지했다. 「…만물은 각기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떨렸다.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나는 가장 단순한 질문,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받은 셈이었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모르신다!」 조르바의 둥근 눈이 놀라움으로 열리면서 소리쳤다. 내가 춤출 줄 모른다고 고백했을 때와 표정이 똑같았다. 그는 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책에 쓰인 건 인간의 혼미(昏迷)에 관한 겁니다. 조르바, 인간의 혼미야말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있답니다.」
「인간의 혼미 좋아하시네.」 그가 실망했는지 발을 구르며 내뱉듯이 말했다. ~

~조르바의 침묵 때문에, 영원한 것이지만 필경은 역시 하릴없을 터인 질문이 다시 한 번 내 내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한 번 내 가슴은 고뇌로 가득했다.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얼마 후 그는 말을 계속했다.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뼈다귀에 가죽을 입힌 이 조르바 말입니다)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늙은것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자, 유식한 양반, 이 이야기는 하고 넘어갑시다.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진짜 여자에게는… 잘 들어 두시오,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건강하시오, 두목! 행운의 신은 눈이 멀었다고들 그럽디다.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무작정 사람들에게 달려간다나…. 그걸 맞은 사람을 우리는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요. 에라 모르겠다, 행운이란 게 무슨 빌어먹을 놈의 것인지! 우리는 행운 같은 거 별로 바라지 않죠, 두목? 어때요?」
「바라지 않지요. 조르바, 건강하고 봅시다….」~

~「나,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조르바의 필사적인 애정에 당황하고 말았다.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

~「…두목, 주무실 시간이군요. 칸디아행 배를 잡으려면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잘 자시오!」
「졸리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우리가 함께 지내는 마지막 밤이니까.」
「그러니 후딱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뒤집으며 소리쳤다. 「…맺고 끊는 데가 있어야지요. 남자가 담배와 술과 노름을 끊을 때처럼. 그리스 영웅. 그러니까 팔리카리처럼 말이오.
우리 아버지가 진짜 팔리카리였습니다.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 양반이 숨만 쉬어도 날아가 버려요. 그 양반 팔꿈치에도 못 미칩니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 입에 늘 오르내리는 고대 그리스 사람과 비슷했지요. 손을 잡으면 부서지도록 잡아 버립니다. 나는 이렇게 두런두런 이야기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울부짖지 않으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양반 입에서 사람 말 같은 말이 나올 때는 드물었지요.
악덕이란 악덕은 두루 갖춘 이 양반도 자를 때는 칼로 베듯이 잘라 버립니다. 한 가지 예를 들지요. 이 양반은 담배를 굴뚝같이 피워 댔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밭을 갈러 들로 나갔어요. 나가서 밭둑에 기대고 일 시작하기 전에 한 대 피울 요량으로 담배를 찾는답시고 쌈지를 찾으러 혁대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는데, 어럽쇼, 쌈지를 꺼내고 보니 비어 있더란 말입니다. 집에서 나오면서 담배 집어넣는 걸 깜빡 잊어버린 거지요.
 이 양반은 불같이 화를 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을로 내달았지요. 아시겠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이성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이래서 나는 늘 사람이란 참 묘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양반은 걸음을 멈추었대요. 부끄러워진 거예요. 쌈지를 꺼내어 이로 갈가리 물어 찢고 땅바닥에 팽개친 다음 침을 팍 뱉었다나. 〈더럽다, 더러워! 이 더러운 놈의 화냥것!〉 이랬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담배를 입술에 대지 않았어요.
두목, 진짜 사내란 건 이런 게 아닐까요, 잘 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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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0

story_ Why did not write the name of the your graduating university? 왜 졸업한 대학교 이름을 적지 않으셨죠?

인성(가명)은 젊음의 열정을 모두 분출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젊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해보는 것이 젊음이 가지는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인성은 구직과 관련한 지원서에서 그것들을 실천했다. 오래된 예전부터 사회는 수직적 구조에서 회사에 필요한 인원에 대한 채용공고를 내고, 채용공고를 본 구직자들이 지원서를 제출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여기서 단순히 수직적 구조의 채용이 아니라 '수평적'관점에서의 채용도 미래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성은 여러 기업들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수시채용 및 상시채용'하는 곳에 지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더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혁신과 창조는 어쩌면 현재의 지원서(이력서 및 자기소개서)의 형식에서 이뤄져야지 않을까 생각한 인성은 가장 본질적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양식을 구상하게 된다. 물론, 채용공고에서 '자유양식'의 지원서를 받는 기업에 제출하는 지원서에 한해서 말이다. 이미 미래의 패러디임의 본질을 통찰했다고 생각한 몇몇 기업에 지원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가장 핵심은 지원서에 직무와 관련없는 개인정보는 적지 않았다. 최소한의 정보만 담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름, 나이, 이메일주소, 연락처만 적었다. 흔히 지원서에 담았던 사진, 졸업학교 등의 정보는 담지 않았던 것이다.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성은 '실패를 두려워말자, 일단 지원해보고 인연이 안되면 안되는 것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주변에서는 냉소적이었던 반응들을 뒤로한채 몇몇 기업들에 지원서를 보냈다. 어느 정도 사회구조상 실패를 예측하긴 했지만, 그 강도가 상당히 심하다는 것을 인성은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지치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런 순간순간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작은 희망의 불빛들이 인성의 꺼져가는 열정에 불을 되살려 주었다. '대부분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힘든 것이구나. 그래도 한 번 밖에 없는 내 삶을 정말 소중히 살기 위해선 이런 실천이 필요하다.' 인성이 이렇게 신념을 가졌던 것은 아마도 지난 과거 스펙보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통해 통찰과 지혜를 얻고자했던 인성의 노력들이 보이지 않게 인성의 가슴 속에서 작은 희망들을 탄생 시켰던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인성은 '자유'가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려는 삶의 목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성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ㅇ인성씨 전화인가요?" "예"
"저희는 oo회사 입니다. ㅇ인성씨의 지원서의 서류가 통과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인성은 기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덤덤한 척하려했지만, 내면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진정 좋은 회사(Good Company)가 한국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예민한 탓이었을까?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그 다음의 음성이 담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알아채는 순간 인성은 이 회사가 그다지 Good Company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데 인성씨, 이력서에 '대학교 졸업'이라고만 나와있지 '대학교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서요. 어느 대학교를 졸업하셨나요?" "예, ㅇㅇ대학교 졸업했습니다."
"아예, 그럼 알겠습니다. 그럼 면접날 뵙겠습니다."

인성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아마도 이 회사는 인연이 되진 않을 것 같다. 뭐, 그래도 만나서 이야기는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인성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인성이 예상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질문(Question) 몇개만 들어봤는데, 이 회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 아쉬움을 느끼게 했던 질문은 서류합격 전화를 했을 때, 인성에게 했던 질문을 또 했다는 것이었다.

"oo대학교면 서울에서 좋은 대학교일텐데, 왜 지원서류에 대학교 이름을 적지 않으셨나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인성은 대답했다. "물론 지원자가 졸업한 학교가 어느 정도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이야기(story)들을 적었고, 그 이야기들에 '삶의 본질'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들으시고 불러주시는 회사와 인연을 맺고 싶었습니다."

순간 면접장은 정적이 흘렀다. 인성은 면접장에서 무조건적인 '을'의 입장에서 대답해야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들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겉으로는 혁신과 창조를 외치는 수 많은 기업들에게 외치고 싶었던 마음을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성은 이 회사와 인연을 맺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감했다. 그래서였을까? 면접 마지막 부분에서 회사에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라는 면접관에게 질문을 했다.

"이 회사의 경영철학은 무엇인가요?"
아쉽게도 이 회사는 인성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미 면접의 초반부에서 이 회사는 과거의 사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지금 회사가 분주하다고 인성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두고 보더라도, '경영철학'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본질적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인간의 삶이 100년 가까이 밖에 안 되는 삶이라해도, 그 시간 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야지 않을까? 시대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를 선택한 것일까? 세상이 이상한 것인가? 내가 이상한 것인가?'... 인성은 쉽지 않은 삶의 기호들 속에서 방향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겉과 속이 다른 그 어떤 존재들에 대해 아쉬운 감정을 느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지 않을런지...


2014-11-19

movie_ Inception 인셉션






잠을 자다가 꾸는 꿈(dream)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한 점이 새롭기는 했지만, 뭔가 구성이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꿈, 그 꿈의 꿈, 그 꿈의 꿈의 꿈... 이렇게 단계화된 꿈 속을 들어가서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좀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재는 참신하고 재미있었을지 몰라도 내용 구성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어떤 즉면에서 시나리오를 쓴 사람의 세상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강요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흔히 논리구조가 맞는다는 이유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소통을 못하는 경우처럼... 어쩌면 전문지식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느낌도 받았다.

이야기의 소재는 정말 참신하고 흥미로웠지만, 구성이 조금은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영화.


2014-11-18

movie_ Moss 이끼





이 영화를 보면서 '물이 고이면 썩는다'라는 말이 생각났었다. 무엇이든 고착되어 변화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서서히 부패한다는 의미가 떠올랐기 때문에. 고인 물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이 영화가 슬쩍 알려주는 듯하다. '인간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 그 물음 중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주목하게 하는 영화.

극 중 상반된 신념이 크게 부각된다. 간단히 말하면, 선과 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나친 순결주의를 주창하며 사람들에게 믿음을 전파하려던 유목형(허준호)의 생각이 본인에게는 통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죄의식을 느끼게 함으로써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했던 건 아닐까... 각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한 사람이 생각하는 삶의 양식에 맞추려다 보니 생겨나게 된 복잡함... 
지나친 우상화가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영화에서는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을 무의식의 영역에서 끄집어내어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있게 본 영화다.



2014-11-16

think_ the Idealist is the Realist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현재 우리는 "빠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빠름"의 문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생각(think)할 시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은 생각(think)한다는 것일텐데, 언제부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안타까운 건 생각할 여유가 있는 분들께서 그다지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생각하는(thinking) 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들이 많은 것 같다. 상상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는 생각의 주제들에 대해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주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 "원래 세상은 그런거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해버리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상당히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졌고, 그 고민의 깊이 또한 깊어졌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직면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인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 아닌 경우에는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나보다. 그냥 현재 사회의 틀(frame)을 깨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안주하는 경우들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떤 추상적인 실체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개념화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간단한 단어(word)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주의자가 설정한 목표(target)로 인해 이상주의자는 비로소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가 된다. 비록, 그 목표가 허황된 목표일지라도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현실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삶의 이상도 없이 주어진 사회시스템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려는 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능을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설정한 삶의 목표, 그리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내가 직면하고 뛰어 넘어야할 고난들... 그냥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인문학 체력 덕분인지 그냥 살고싶지는 않았다. 미래에 어떤 열매를 맺게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이 따뜻하게 요동치는 삶이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전히 그 다짐들을 어떤 일이 있어도 실천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깨닫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쉽다. 하지만 잡초와 돌덩이가 무성한 곳을 길로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강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내 열정이 향하는 목표가 제대로된 목표인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고민하여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민도 필요하다. 여전히 고민의 연속이고, 여전히 고독감 속에서 직면하는 것들은 익숙하지 않아 불안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들에 대한 생동감이 한 인간의 굳어져 있던 심장에 온기를 선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다름(difference)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이 하는 방법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름(difference)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마치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절대 지혜를 얻을 수 없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현실주의자(Realist)라는 말보다는 이상주의자(Idealist)가 여전히 듣기에 좋다. 남은 뭐라할지 모르지만, 이상주의자라는 말에는 현실주의자가 온전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단, 이상주의자가 그 이상을 실현해내기 위해 실천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필요할 것임은 당연하다.

2014-10-29

Contraception 피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 참고만 하면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사랑하는 연인이 남성과 여성인 경우 그리고 임신(pregnant)을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쾌락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란 측면에서 긍정될 수 있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다.

남녀가 섹스를 나누는 쾌락의 자유 뒤에는 '새로운 생명'이라는 책임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그렇다고 인간의 성적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억제하려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보인다. 어쩌면 임신은 신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임신을 원하지 않는 섹스의 경우에는 인간으로서 해야할 기본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치 않는 임신이 된 경우,
섹스하기 전 충분히 피임(contraception)을 했을 경우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오로지 욕망에만 몰입한 경우에는 상당히 다른 반응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런지... 더군다나 원하지 않은 임신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부정적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때문에 이상적인 관점에서 남성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피임(contraception)에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테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여성이 스스로 피임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피임(contraception)에 대해 필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청소년들이 이른 나이에 섹스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이 글의 본질은 아니다. 다만, 청소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섹스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인간이다 보니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연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에서 청소년들이 피임(contraception)하는 방법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할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피임 방법에 대해.
피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기에 여기서 소개하는 방법들은 참고만 하시면 될 것 같다. 참고로 소개하는 내용은 과거에 '구성애의 아우성'에서 알게된 것들임을 밝힌다. 어떤 남자 분들의 경우에 '체외사정'으로 피임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개인적인 생각에 조금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상대방 여성분을 진정 배려하고 있는지, 진정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체외사정'이 피임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사정하기 전에 나오는 쿠퍼액에도 정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피임은 아마도 '콘돔(condom)'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이 섹스를 하기 전 콘돔(condom)을 준비하는 것에는 상당히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 여성을 진정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상대방 여성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하는지를 알려주는 척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게다가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성적충동에너지를 상대방 여성을 위한 '존중'과 '배려'로 승화 시켰다는 점은 상당히 긍정적일 수 있다.

"여성은 365일이 가임기이다."
물론 가임기를 벗어난 기간은 임신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여성의 몸은 1년 365일 전체가 임신이 가능하다는 구성애씨의 조언은 남성이 상대방 여성이 가임기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콘돔(condom)을 준비해야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 특히나 여성의 가임기를 계산하는 방법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참고로 *생리주기가 규칙적인 여성의 경우에 계산이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보통 한달에 한 번씩하는 생리를 아예 안하거나 한 달에 2번하는 것 처럼 불규칙할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생리주기를 이용한 피임이 불확실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의 생리주기: 생리시작일~ 다음생리시작일(30일로 가정)
배란 예정일: 예정 생리 날짜에서 14일(2주) 전(before)
가임기간: "-5" ~[배란일]~ "+3" / 생리예정일에서 "-19일"과 "-11"일 사이
구체적 예: 생리시작일이 10/29일인 경우
              다음 생리 예정일(생리주기 30일 가정): 11/28일 (참고: 10월은 31일까지 있음)
              배란예정일: 11/14일 (11/28일 빼기 14일)
              가임기간: 11/9일-11/17일


이렇듯 '가임기간'에는  사랑을 나눌 때,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임신을 계획한 섹스가 아닌 경우에).

섹스는 인간에게 쾌락과 즐거움을 주는 긍정적인 감각이다. 다만, 여기에는 (임신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가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준비를 했는데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면 매우 희망적인 신의 뜻일 수도 있고...

결론, 섹스(sex)는 즐거움이라는 것.


2014-10-19

society_ Remember 2014-04-16 (in Gwanghwamun Square)




What a wonderful world.
The sky is very wonderful.



movie_ MONEYBALL 머니볼





야구(baseball)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좋을 영화. 그리고 야구와 자본주의(capitalism)간에 일어나는 이야기에 관심있는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 영화에서는 한 인간의 고독과 절망에 대해 번갈아가며 잔잔히 진행하다가, 고독과 불안을 딛고 일어선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브레드피트(Brad Pitt)는 사회가 주입한 것을 벗어 던지고 오로지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내려 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Oakland Athletics baseball team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더 큰 감동을 만들어 낸다. 넉넉하지 않은 구단의 자금 사정 속에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좋은 선수를 찾아낼 수 있는 지혜를 통해 Billy Beane이라는 구단 매니저는 점차 성장하게 된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때론 뜨겁게 달궈내는 듯하다. 어쩌면 Billy Beane은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또 다른 누군가는 되도록이면 덜 겪게 하고 싶은 마음을 실천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위축 '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한 때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위축'이라는 감정에 휘말리게 되면 본래의 실력을 내보일 수 없는 것. 어쩌면 '위축'은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같다. 나의 명성과 연봉이 나의 위치를 어느정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정작 자신의 내면을 돌볼 수 없을 것이고 동시에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자본주의(capitalism)의 사회 속에서 돈(money)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여러 부분에 개입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순간의 달콤함을 위해 돈(money)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먼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 영화에서는 이런 물음에 대해 관객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2014-10-18

think_ No Dream 꿈은 없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개인적으로 난감하다. 내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곤란하기 때문이다. 다만, 본질에 입각하여 추상적으로 꿈(dream)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꿈은 없다. 다만,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 최선의 노력이 삶의 본질을 향하게...

과거에 나름 꿈을 설정하고 열심히 달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삶은 내가 꿈꿨던 꿈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이른 나이에 내 삶에서 깨달은 것은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였다. 그렇다 보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현재에 충실하려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게 되었던 것 같다. 동시에 '인간의 삶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때 '현재'에 대한 중요성을 더 크게 깨달았던 것 같다.

미래에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데, 과연 미래의 내 모습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본다. 다만, 조심히 예측하자면, 내가 생각했던 삶의 본질적 가치관을 유지한 채 현재는 예측하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꿈을 향해 달려간다...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재를 살지 못할 가능성도 높지 않을런지.

그냥 난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자 한다.


2014-10-17

book_ Sparks of Genius 생각의 탄생- Robert S. Root-bernstein, Michele M. Root-bernstein


Sparks of Genius: The Thirteen Thinking Tools of the World's Most Creative People
-Robert S. Root-Bernstein, Michele M. Root-Bernstein-



통찰(insight), 직관(intuition), 혁신(innovation), 창조(creative) 등에 관심있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런데 책 자체가 혁신적이고 창조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역사적으로 창조와 혁신적인 삶을 살았던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점들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은 현재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책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결국 본질은 인간(human)인 것 같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다양할 뿐이지 그 다양성의 중심에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일까? 아마도 감정(feeling)을 느끼고 생각(thinking)하는 게 아닐런지. 이런 생각의 흐름에 다양한 분야의 물줄기가 융합되는 게 아닐런지. 그런면에서 본질을 놓친 채 뭔가를 해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혼란과 장애물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생각도구'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창조적인 사람들이 사용했던 13가지 생각도구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13가지 생각도구는 다음과 같다.

관찰(observing), 형상화(imaging), 추상화(abstracting), 패턴인식(recognizing pattern), 패턴형성(forming pattern), 유추(analogizing),몸으로 생각하기(body thinking), 감정이입(empathizing), 차원적 사고(dimensional thinking), 모형 만들기(modeling), 놀이(playing), 변형(transforming), 통합(synthesizing).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현혹되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을 볼수 있는 지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고민을 통해 답을 찾는 것보다는 어쩌면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실마리를 던져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 추상화(abstracting)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에서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화가가 추상적인 그림을 그릴 때 단순히 몽환적이면서 내용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구상을 하는 게 본질이 아니라 나타내려는 대상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빼고 가장 중요한 핵심과 본질만 남겨 두는 것이 추상화라고 저자는 책에서 언급했다. 단순히 그냥 막 그리고 채색한 그림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그리고 차원적 사고(dimensional thinking)에서는 대표적으로 2차원과 3차원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3차원적인 모습도 결국은 2차원에 표시된 것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2차원적인 컴퓨터의 모니터 속에 매몰되지 말고 실재적인 3차원적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게 노력하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또한 4차원과 5차원의 세계에 대해 생각의 고리를 이어갈 수 있는 상상력에 대해 소개된 부분도 의미 깊게 읽었다.

놀이(playing)에 대한 부분은 목차의 후반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른 생각도구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뒤로하고 초반에 먼저 살펴봤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율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 자율성에는 자연스럽게 놀이(playing)라는 즐거움이 포함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놀이(playing)의 가치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부족한 것 같다. 단순히 노는 것이 표면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놀이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에서 혁신과 창조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을 세워 노는 것도 이상하다. 그냥 노는 것이다. 일전에 지인 분 집에 갔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의 책상에 사람의 코를 데생한 종이가 놓여있었다. 아이에게 "이거 니가 그렸니?"라고 물으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린거야?"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내게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던졌다. "그냥요. 그냥 재미있어서요."

변형(transforming)은 어떤 통찰과 영감을 한 가지 방법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 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탄생하게 된다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통합(synthesizing)은 나머지 12가지의 생각도구들을 아우르는 '궁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생각도구들을 서로 잘 융합하는 과정에서의 얻게되는 지혜는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이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혁신과 창조적 삶에 대해 읽어나가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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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중요한 부분 발췌

<관찰 observing>

@~예리한 관찰자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정보를 활용한다.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sublimity of the mundane',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형상화 imaging>

~셋째, 예술을 하라. 그러나 음악이나 춤, 회화나 요리에 관한 것을 '배우기만' 하지 말라. 직접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쓰고, 음식을 만들어보라.~
~마지막으로 내면의 눈, 귀, 코, 촉감과 몸감각을 사용할 구실과 기회를 만들어라.~~다른 기술도 그렇지만 이것을 일관성 있고 끊임없이 연습할 때 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보다 빠르게 만들어낼 수가 있다.~


<추상화 abstracting>

@~이처럼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그러나 추상화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게 왜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은 문제해결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해야 복잡한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단순한 개념들을 알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현실을 무시하면서 추상화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어떤 예술가에게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패턴인식 recognizing pattern>

~분야를 막론하고 걸출한 사람들의 다수가 퍼즐 중독자이거나 퍼즐 게임 개발자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거나 놀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자면 상당한 인내력이 요구된다.~


<패턴형성 forming pattern>

~서구음악의 모든 것들은 수학적 패턴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부족음악인 경우에는 어떤 선율이나 어떤 마디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 작곡가들이 작곡한 음악은 악보로 쓴 뒤에야 연주할 수 있다. 우리가 듣는 선율과 패턴은 사전에 계획되고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음악은 순간적인 신명 속에서 연주자들이 협력하여 만든다.~
~아프리카 토속음악의 다리듬구조는 혁신적인 미국 흑인음악에 영향을 주었으며, 랙타임, 재즈, 스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조의 천재성을 모태로 발아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가장 단순한 작업의 결과로 엄청난 복잡성과 의외의 경이로움을 찾을 수 있다.~

~단순한 요소들이 결합해서 복잡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패턴형성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이다.~~패턴형성에서 인상적인 것은 결합되는 요소들의 복잡성이 아니라 그 결합방식의 교묘함과 의외성이다.~

~패턴창조기술을 배우는 것은 모든 분야와 교과과정에서 혁신의 열쇠가 된다.~


<유추 analogizing>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유추analogy와 닮음similarity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들 사이에 기능적으로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유추'라는 용어를 비교에만 한정하고 있다. 한편 닮음이란 색이나 형태처럼 관찰에 근거한, 사물들 사이의 유사점을 말한다.~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것은 가장 위대하고 정교한 패턴제작자에게서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라고 에셔는 말하고 있다. 뒤이어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바흐는 내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투명하고 논리적인 언어와도 같은 그의 음악은 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도안을 완성시켜주었다."~

@~기능과 목적이라는 숨은 실체를 찾아낼 때 우리는 '단계적으로' 세상과 자아의 의미를 자각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한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몸으로 생각하기 body thinking>

~우리들은 과도하게 머리만 쓰는 경향이 있어서 몸이 먼저 일의 처리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생각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이 불려나오는 순간이 바로 '몸의 상상력body imagination'이 작동하는 때다.~

~잰슨스는 난독증이 심했기 때문에 문제를 풀 때 기호로 된 수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공간으로 환치해 내적인 몸의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마음과 몸은 하나다.~~고유수용감각적 사고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물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까지 확대된다.~


<감정이입 empathizing>

~저명한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람이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이라고 본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서 그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리학자들 역시 통찰을 얻기 위해 연기와 감정이입에 의존한다.~

~예술가들 역시 '유기체적인 느낌feeling for the organism'에 의지한다.~

~문학 역시 감정이입에 접근하는 또 다른 통로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통찰은 사람의 심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모든 사례들은 우리가 '자신'이 아니고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가장 완벽한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차원적 사고 dimensional thinking>

@~3차원적 물체를 2차원적 표면으로 옮기는 투영법의 발달은 르네상스시대에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투영법은 원근법의 발명에서 직접 연유한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 생리적인 시간, 정신적인 시간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단초로 하면 어떤 생각이라도 가능해진다.~~한 가지는 확실하다. 시간의 차원에 대한 활용과 통제는 아직도 진화 중이라는 것.~

~20세기에 들어서야 3차원 예술작품들이 시간과 공간 속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폭넓은 쓰임새에도 불구하고 차원적으로 생각하는 훈련과정은 실제의 제도권 교육에서는 거의 완전히 배제되어 왔다.~

~과학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공학, 상품제조, 일상생활에서도 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이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이 기술에 정통한 사람들의 훈련과정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교육개혁가 프리드리히 프뢰벨은 모형 만들기와 3차원적 사고를 교육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측면으로 여기고 이를 적극 옹호했다.~


<모형 만들기 modeling>

@~모형만들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 책에서 다루어온 많은 '생각도구'들보다 상위에 있는 한편, 그것들에 의존하고 있는 생각도구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모형은 '추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모형의 한계를 아는 것은 그것의 적절한 용도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컴퓨터로 만든 모형과 형체를 갖춘 모형이 '생각도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컴퓨터 그래픽은 2차원이다. 물론 3차원 영상을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3차원을 단지 머릿속에서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운동감각적-촉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같지 않다.~

@~정지궤도위성의 개념을 생각해낸 SF작가 아서C.클라크는 "오늘날 사람들이 컴퓨터화면을 들여다보는 교육만 받고 있을 뿐 진짜 금속을 만져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태도는 미래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클라크의 이 견해에 많은 공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오직 모형을 만든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이 행위를 통해서 이해력과 제어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아이디어나 기능이 무엇인가, 그리고 모든 세부를 재구성하기 위해 모형제작자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이다. 상상력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지 못한 모형은 아무것도 아니다.~


<놀이 playing>

~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족할 뿐, 거기엔 어떤 분명한 목적이나 목적을 설정하는 동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놀이는 단순히 즐기는 것, 즉 어떤 부담이나 책임감을 크게 느끼지 않고 그저 무엇인가 하거나 만드는 즐거움의 추구 아니던가?~

@~악기연습을 단지 악보 연주에만 국한시키려는 부모나 교사들에게 가르침이 되는 교훈이 여기에 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공부한다는 것은 음을 재생하는 것 이상의 것이고 음악을 창조한다는 것은 음악적 관습이나 당대의 취향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놀기'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지 간에 우리는 표준적인 행동과 사고와 지각의 습성을 깨뜨려야 한다.~

@~놀이는 상징화되기 이전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직관, 쾌락을 선사하는데,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창조적인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창안자가 될 수 있다.~


<변형 transforming>

~라에톨리 발자국의 발견과 해석의 과정은 창조적 상상의 정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리키와 그녀의 팀원들은 놀았고, 관찰했고, 패턴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패턴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내 차원적 사고를 했으며, 몸의 움직임을 상상했고, 역할을 연기했고, 패턴을 만들고, 유추하고, 모형을 만들었다.~~분명한 것은 이때 한 가지 생각도구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변형적 사고의 힘이란 그것이 음악, 유전자, 전신, 시, 수학 등 서로 상이한 분야를 연결해주는 메타패턴을 드러내준다는 데 있다.~

@~이제 이런 변형작업은 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분야의 자료들은 그래프나 여타의 시각적 이미지들로 전환되고 있다. 신문, 잡지나 TV뉴스는 이런 '변형'된 자료들로 넘쳐난다.~

@~어떤 정서나 생각, 자료를 변형하는 일은 결코 동일해질 수 없기 때문에 변형과정은 클레의 경우처럼 예기치 않은 발견을 낳을 수 있다. 그 결과 변형적 사고는 숱한 창조적 인물들이 의식적으로 채택하는 전략이 되고 있다.~

@~변형적 사고를 하면 또 다른 혜택이 주어진다.~~다양한 방식으로 배운 기술과 개념이 특정한 문제를 중심으로 학습해서 얻은 생각보다 폭넓게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변형적 사고는 특정 영역에 치우친 사고보다 더 가치 있는 통찰을 낳는다. 사람들의 재주와 능력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단일한 생각을 다양하게 변형 시킬 때 단 한 가지 공식으로만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연관을 맺게 된다.~


<통합 synthesizing>

~서구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예술가들 중에는 이러한 공감각적인 자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우리는 어떤 체험이 공감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에 비로소 진정 자신을 잊고 그것(체험)과 일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연극이나 오페라, 예술영화가 어떻게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말해줄 뿐 아니라 록 콘서트나 MTV, 상업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대해서도 설명해준다.~

@~화가인 오토 피에네Otto Piene 역시 그와 비슷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마음은 몸이고, 몸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둘을 별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다재다능한 건축가, 공학자, 교육자였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이러한 통합의 정신을 가지고 바우하우스 이념의 터를 닦았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미술작품들은 물질적 세계, 지적 세계, 정신적 세계의 법칙들을 동시에 구현한다." 그가 믿는 바에 따르면 진정한 학습이란 통합을 목표로 지성과 육체와 정신을 연마하는 것이다.
 @현대생활과 교육에 남겨진 과제는 시와 물리학, 미술과 화학, 음악과 생물학, 무용과 사회학, 그리고 기타 가능한 모든 미학적 지식과 분석적 지식을 재통합해서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느끼고자 하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명화다. 논리는 미술판화처럼 찍혀나온 이미지다. 물론 그 목적과 재료는 다르다. @그러나 예술과 과학과 기술 간의 연계성은 르네상스시대만큼이나 오늘날에도 강력하다. 20세기가 이룩한 진보를 이해하려면 먼저 수학적 계산과 논리적 구축, 패턴, 시각 이미지, 예술용 소재를 써서 전자적인 발명을 하는 기술적인 과정 간의 연계성을 이해해야 하며 다양한 생각도구들을 엮어서 의외의 (사고의) 연쇄사슬을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에 흥분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다음 단계의 통합을 꿈꿀 수 있다.~

@~우리에게는 통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혁신의 기법이란 항상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다양한 방법론을 가진다. 따라서 미래는 우리가 앎의 방법 모두를 통합해서 통합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전인을 길러내는 통합교육>

@~창조적인 사람들의 감정과 이성을 들여다본 결과, 우리는 상상력이 생각도구의 숙달과 종합지적인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길러지고 연마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현재의 교육에서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양과목 중에서 예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상상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다양한 생각도구들을 연마하는 최선의, 때로는 유일한 연습법이기 때문이다.~

~셋째,~~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든 학생들은 과학이나 인문학, 수학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철저하게 예술을 공부해야 한다.~~@예술에서 활용하는 상상의 도구들은 인문학과 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 과목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 전체를 위해서도 예술은 옹호되어야 한다.~

@~이 사례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고 '전인全人' 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대한 관심사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 공헌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개척자요, 보편주의자였다. 그들은 전문가의 영역들 사이에 다리를 놓았으며 제각각 떨어져 있는 지식의 제반 분야를 통합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려 했으며 박식가가 됨으로써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했다.~

@~박식가polymath라는 말은 "많이 알다" 혹은 "정말 아는"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단어는 흔히 백과사전적으로 많이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여기서 박식가를 도락주의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도락주의자들은 그저 오락이나 즐거움만을 위해 새로운 지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박식가는 중요한 단계에서 지식활동을 제어할 줄 알고 지식들 간의 근본적인 연관성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오랜 관찰결과를 보면, 혁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지식활동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활동에 필요한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생각의 탄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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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movie_ The Zero Theorem 제로법칙의 비밀





영화 <12 몽키즈>의 감독인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의 작품. <12 몽키즈>에서 받은 느낌이 떠올라서 보게된 영화. 다시 또 봐야겠다는 기억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별다른 재미없이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떤 실마리가 담긴 단서들이 이해되는 순간마다 지루했던 장면들이 의미(meaning)를 되찾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난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요소들이 은근히 흥미를 유발시키는 재주를 부린다. 영화와 관객의 입장에서 서로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영화가 던져주는 '생각의 주제'들에 대해 개인 각자의 다양한 삶의 관점들을 바탕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인 듯하다. 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답인걸까?...


"~The saddest aspect of mankind need to believe in a God, or to put it another way, a purpose greater than this life, is that it makes this life meaningless. You see, this is all just a way station on the road to promised eternity. The reason I chose you~"    [reference: dialogue of the film]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은 신을 믿어야 한다는 거네. 다른 말로 하자면 현세 삶보다 내세(來世)에 의미를 두는거지. 그게 지금의 삶을 의미없게 만들지.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영원(永遠) 전의 정거장 정도로만 보는 거지.~"


영화에서 나오는 위의 대사는 주인공이 칩거하는 장소(place)와 어울려 인간과 종교(religion)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미래시점에 상상력을 버무린 영화이지만, 눈에 보이는 여러 미래시점적 표현도구들의 이면에는 인간이라는 본질적 주제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런지... 수 많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던 이유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 영원성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이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서로 연결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긴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공허함은 어쩌면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 속에서 피어나는 고민과 배움의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고 즐겁다.


2014-10-01

Pay Special ATTENTION, When you hear the stories of successful people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주의할 점

사회적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대중을 향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중요한 부분"들이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 "중요한 부분"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자신에 제대로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나라는 한 개인이 소속된 어느 울타리 속이 아니라, 그 울타리를 걷어내고 오로지 나 자신과 치열하게 직면해보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이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더니 지금 이 위치에 오게됐습니다.~" 흔히 사회적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패턴으로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기에는 너무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사회적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어머니의 몸 속에 있을 때부터 어떤 환경의 영향 속에 있었고,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자랐는지에 대한... 어쩌면 행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어릴 적에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경우, 지혜롭게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것 같다. 그럼 어머니의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어두운 영향을 받은 분들은 위기 상황을 어떻게 딛고 일어설까? 겉으로는 비슷한 위기(risk)상황으로 보이지만, 그 위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그 위기(risk)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는 시간과 노력도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니 미디어가 아무리 성공한 사람들을 연단에 세우고 '여러분들도 이 사람처럼 열심히 살면 이렇게 될 수 있어요'라고 채찍질을 한다고 해서 수긍하고 그냥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결론지으면 위험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제각기 다양성을 품에 안고 태어나 다양한 삶의 주름을 경험하는 인생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부정적 의미의 공동체인 '전체주의' 속에 소중한 자신의 삶을 희석 시키지 않는 게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실마리를 던져주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부모님은 연단에 서있는 사람의 부모님과 같지 않잖아요.


여기서 잠시 성공(success)의 의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단순히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를 얻는 것만이 진정한 성공(true success)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성공의 본바탕에는 사람으로서 응당 가져야할 인격과 품성을 갖추고 삶의 행복에 대한 지혜를 배우는 과정에서 어쩌면 사회적 지위가 따라오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본질적인 것들이 바탕을 이루지 못해서인지 흔히 사회적으로 지위는 얻었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쉽게 넘어지는 경우들을 자주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노력해서 사회적 기준의 성공을 얻는다해도 결국 본질적 바탕이 흔들리게 된다면 불행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성공(true success)을 위해 가장 먼저 첫발을 내디뎌야할 곳은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각자가 서있는 위치는 다른다. 그 위치가 어디인지 직시하고 거기서부터 치열하게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마라톤 경기를 하는데, 발목에 1kg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다면 가장 먼저 그 모래주머니와 작별할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게 최우선 아닐까? 모래주머니를 찬 채 너무 힘겹게 먼 인생 길을 가다 지쳐 쓰러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진정 성공한 분들의 강연을 들으면 매번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주제가 있는 것 같다. 진정 성공한 분들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보이지 않는 유산'으로 전달하려 한다. 이 '보이지 않는 유산'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물론, 최선을 다하는 삶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따로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 이 사실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특히나 사회가 대중에게 무의식중에 강요한 효(孝)에 대한 덕목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효(孝)는 자식이 부모님을 일방적으로 공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부모님이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 것에 대한 은혜의 보답으로 효(孝)가행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도 효(孝)를 강요하는 것 같다. 본디 효(孝)는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게 본질일텐데...

물론, 결론적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긍정적인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에게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받은 분들에게도 효(孝)를 강요하는 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차라리 효(孝)를 강요하기 보단 "~본인을 위해 부모와의 관계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런지... 어쩌면 이런 말조차도 상처를 줄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는...그리고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에서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느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2014-09-29

movie_ The Giver 더 기버





영화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해준 영화.

평화롭고 균형(Balance)잡힌 사회를 위해 인간의 감정(Emotion)이 제어되는 삶을 살다가 다시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불행과 슬픔이 교차하는 감정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내용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기계가 인간의 일(Works)을 대체하고 있는 지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무엇일까?... 감정...Emotion...

예전에는 간혹 식사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러지 않고 있다. 식사할 때는 그냥 식사를 하면서 내 입속에서 춤추는 음식들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내 입속에서 어떤 맛과 느낌이 느껴지는지 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부터...

느낀다는 것...느끼지 못한다는 것...
현재 우리의 감정이 점차 메마르는 건, 어쩌면 우리 삶의 패턴이 상당히 빨라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떼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 게 사치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느끼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지금이지만, 언젠가 다시 느끼기 위한 삶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의 일관적인 구조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을 제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을 매일 사람들이 맞는 주사(injection)로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 주사(injection)을 맞지 않는 선택을 하게되면서 인간은 인간의 본질일 수 있는 감정(emotion)을 되찾게 되는...그리고 사회가 만든 규범의 틀을 깨고 나오는지도 모른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오듯이...


movie_ 12 Monkeys; 12 몽키즈





과거에 추천을 받아서 기억하고 있던 영화였는데, 최근 지인께서 이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지인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별반 다르지 않게 내 경우도 제대로 이해가 되진 않았다. 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파편화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난 뒤 파편화된 조각들을 맞추는 고민의 시간들은 즐거웠다. SF영화라 어느 정도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들이 있지만, 그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꾸는 꿈(Dream)이 현실(Reality)이 될 가능성...그리고 흔히 사회에서 '정신이상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생각(Think)들이 현실(Reality)이 될 가능성... 꿈과 정신이상자들의 생각이 완벽하게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이 인간과 사회에 던지는 위기의 메시지는 간과되어선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꿈(Dream)이 현실일 수도 있고,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정상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의 구조에서 용인되지 않는다하여 그것을 비정상으로 구분짓는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부정적 요소들을 수정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엎질러진 물을 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의 위치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미래 언젠가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지금(Now)' 미래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깨어있어야함을 이 영화가 넌지시 일러주는 건 아닐런지...

기억에 남는 대사...
"영화는 변하지 않았다.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변해서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도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4-09-23

movie_ DIVERGENT 다이버전트




About TRUE FREEDOM this movie may talk.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 처럼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거대한 틀(Frame)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상당히 짜임새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인 자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적당한 액션과 놀랄만한 이야기의 구성이 곳곳에 담겨있었다.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이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2014년04월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날 즈음에 개봉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물음에 이분법적인 논리구조를 이용해서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때는 이타적인 마음이 우러나오기도하고, 어떤 때는 이타심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욕구가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다양한 감정과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인간을 한 가지 틀(Frame) 속에 가두려는 경향이 강한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한 개인을 통제할 수 있고, 더 넓게는 모든 군중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제어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질 수 있기에... 이러한 부분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현재로써는) 인간은 '자율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인간은 지금까지 얻지 못했던 '자율성'의 범위를 감당하기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곳에 소속하기를 바라고, 그 소속된 공간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현재로써는)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율성'을 끊임없이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던져주는 것 같다.

영화에는 적절하게 액션이 가미돼 있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철학적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중 여자주인공(트리스)이 5개의 분파 중 자신이 앞으로 살고 싶은 분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부모라는 틀(Frame)을 과감히 뛰어넘는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의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체화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모님의 틀(Frame)을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과 부모님의 가치관이 비슷한 경우는 운이 정말 좋은 경우인 것 같다.

자신의 내면에 직면하는 것... 이 영화에서는 모든 걸 걷어치우고 자기 자신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직면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큰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액션을 즐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굳이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철학적 내용들로 인해 머리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여성분들이 보시면 어느 정도는 즐거운 느낌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극중 여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삶을 혁신하고 개척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2014-09-19

book 요한복음강해- 김용옥 지음





완독한 책은 아니다. 대신 이 책을 교재로 한 강의(Lecture)는 모두 들었다. 아쉽게도 강연은 완강을 하지 못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의 막바지에 와서 중단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Religion)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Religion)에 대해 필연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이런 과정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종교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영어를 더욱 심도있게 공부하기 위해 이 책과 강의를 선택했었다. 이 책은 영문성경(RSV) 원문을 바탕으로 그 원문을 해석하고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첨가하는 방식이었다.

강연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성경이 해석되는 시대적 배경들을 고려해서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의 중요함~" 에 대해 저자가 언급한 부분이었다. 수 천년 전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성경의 글귀 자체를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본질적 의미를 유지한 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영어공부와 함께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조금이나마 기독교(특히 개신교)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된 가치관 보다는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바랐던 본질적인 것들과 사람들이 현재 예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여전히 종교(Religion)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다. 신이 있는가? 신이 없는가? 의 논의를 떠나서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호흡해 왔는지,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종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간과 함께 할지 궁금해진다.


2014-09-04

book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고도원 지음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굳이 45가지로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5가지 이외의 것들도 있겠으나 아마도 저자는 정리에 정리를 반복하여 45가지로 요약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저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한 행동들의 본질적인 부분을 독자들이 간파해내길 저자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당장 부모님을 위해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은 각자가 서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본질을 담아 부모님과의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궁극의 도착점일 것이다.

"시간은 부모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 자주 담소를 나누던 선임이 반복해서 말했었다. 결국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기에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할 '죽음' 덕분에 인간의 짧지만 긴 인생이 빛날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좋은 뒷모습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와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와는 상반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좀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흔히 '효孝'라고 하는 가치관을 개인의 판단이 아닌 사회구조가 한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던지고 싶다.

부모와 자식간에 얽힌 상처들을 서로 치유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의 부재가 상처를 더 깊게 하는 것은 아닐지...

각각의 주제들이 짧은 호흡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고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을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밝은 빛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을 각자의 상황에서 실천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치려고 한다.
"~가족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며, 가족 자체가 축복~"
개인적으로 이 말에는 인간 삶의 본질과 통찰이 깊게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을 대부분은 그냥 스쳐지나간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상당히 안타깝다.



책에서 소개된 45가지 중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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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것 챙겨드리기

- 엄마 앞에서 어리광 피우기
- 전화 자주 걸기, 가능하면 하루 한 번씩
-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기
- 마음이 들어 있는 건강식품 챙겨드리기
- 부모님의 종교 행사에 참가하기
- 부모님 손에 내 손을 마주 대보기
- 맛있게 먹고 "더 주세요!"말하기
- 무조건 '잘 된다'고 말씀드리기
- 부모님이랑 노래 불러보기
- 부모님 건강이 최고
- 생신은 꼭 챙겨드리기
- 학교나 회사 구경시켜드리기
- 소문난 맛집에 모시고 가기
- 노부모와의 대화법 익히기
- 하루라도 건강하실 때 모시고 여행 다니기
- 함께 공연 보러 가기
- 부모님 댁에 들를 때마다 구석구석 살펴드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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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movie_ Coco Before Chanel 코코샤넬




After all, what does the human want to get by buying the luxury consumption?

처음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상당한 흥행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보기좋게 예측은 벗어났다. 명품을 소비하고, 명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샤넬(Chanel)이라는 브랜드의 가치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흥행되지 않아 조기종영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를 봤던 곳도 서울역사박물관 인근에 있는 작은극장이었다(그 당시 상영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처음, 우리가 명품이라 일컷는 제품들이 소비될 때는 그 명품을 만든 사람의 가치에 대한 동경, 또는 자신도 그런 사람과 같은 삶을 살고자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영문에서인지 자본주의시스템에서 언제부터인가 그 '가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제품을 소비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 욕망은 내가 타인과 구별짓기 되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증폭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 각자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보다 더 우월하다는 계층 나누기의 모습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명품들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다른 보편적인 제품들보다 미적가치가 뛰어난 물품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명품이라는 브랜드만 달고 제품으로 출시된다고 해서 뛰어난 제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명품을 구매하면서 인간이 결국 소비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토리의 구성이 조금은 빈약하다. 갑자기  개연성 없는 장면들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채 보여지는 느낌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겠지만, 내 경우엔 기승전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넬(Chanel)이라는 여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약간 지루한 면도 있었다.


2014-08-21

book 정신분석입문- 프로이트 지음

Vorlesungen Zur Einfuhrung in Die Psychoanalyse
by Sigmund Freud (Author)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라고는 하지만,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 의견들도 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생각들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기 전 가장 먼저 소화하고 넘어가야할 책이 바로 이 책<<정신분석입문>>인 것 같다. 프로이트의 많은 저서들을 읽기 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바탕을 튼튼하게 다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이 무의식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일정한 사실(fact)을 증명해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을 어떤 Text라는 도구를 이용해 표현해 내는 게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미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프로이트의 저작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준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정신'에 심각한 문제점들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정신과 관련된 문제들은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우리의 심신을 갉아 먹기 때문에 대부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병의 근본 원인이 될 것들은 아마도 "마음"과 연관된 여러 보이지 않는 부문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런 미래의 시대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책과의 인연은 행운이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책이 모든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무의식을 설명해 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좋은 실마리들을 던져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하더라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튼튼했던 몸은 어느 순간 정신이 겪고 있는 고난을 함께 겪을지도 모른다. 결국 몸과 마음이 끊임 없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과거가 눈에 보이는 몸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할지도...

프로이트가 아기가 자신의 손가락을 빨고, 어머니의 젖을 빠는 행위들이 일종의 성욕(리비도)의 표출이라고 언급한 그의 의견은 왠지 모르게 좀 더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생각들이 서양의 생각이라고 했을 때, 동양의 관점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도 함께 고찰해볼 필요성이 있다. 아마도 동양에서 인간의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불교의 '무의식'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2014-08-17

The GREED of the CAPITAL 자본의 탐욕

CAPITAL still seems hungry.

자본의 식욕은 그 한계를 외면한 채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최근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이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다.

가끔씩 대형마트를 이용한다.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중 마트의 직원으로 보이시는 몇 분의 등에 호소글이 쓰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달을 일하고도 100만원 받기가 힘들다.~"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기억이 틀릴 수도 있음).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구성된 노조와 회사 측과의 임금협상 등 여러 노동 조건과 관련해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또한 이미 매스컴에서도 드문드문 보도가 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호소글에 대한 맥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본은 왜 이렇게 까지 인간을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 게 되었을까? 직원들이 행복하면 그것이 바탕을 이루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회사에 더 큰 수익을 창출해 주지 않을까? 결국 직원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가치가 지금 당장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보다 못하는 소리인가? 직원들은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직원과 회사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러 생각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피어올랐다. 더 마음을 무겁게 했던 건, 이미 대형마트의 계산하는 시스템이 '무인계산대'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무인계산대'에는 소수의 직원 분께서 서 계시며 무인계산대를 이용하시는 고객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점점 이 '무인계산대'의 개수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오프라인의 은행 고객창구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인터넷뱅킹과 ATM기가 증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였다.

또 다른 이야기는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 어느 골목에 위치한 슈퍼가 최근에 문을 닫았다. 지인과 슈퍼를 지나다가 지인이 넌지시 "혹시 여기에 편의점 들어오는거 아닌가? 그러면 이거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동조를 하면서도 내심 대자본이 운영하는 편의점이 아닌 어느 개인이 운영하는 그 무엇이 들어오길 바랐다. 그런데 지인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대기업의 편의점이 입점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작은 몇평 남짓의 슈퍼자리에 대자본의 독주세력이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순식간에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쳐 눈 깜짝할 사이에 동네슈퍼가 사라지고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거대자본의 탐식은 진행 중인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자본의 횡포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더 놀라운 건 과거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총과 칼을 이용해 피를 보는 것이었다면, 이젠 (눈에 보이지 않는)거대자본의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어느 누군가가 누구에게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지를 명확히 알아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책임들은 어느 한 명에게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분산되는 특성이 있는 듯하다.

냉정히 말해선 비극의 극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비극인지를 인지해야 비극을 딛고 희망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여전히 거대자본은 배가 고픈가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보다도 일단 배고픔을 채우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대기업의 편의점들이 점점 늘어나는 측면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편의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또한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이미 미디어가 만든 습관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냥 동네슈퍼의 간판보다는 대기업 편의점의 간판이 무의식중에 자주 봐왔기에 더 선호할 가능성도 높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자본은 욕망하고 있는 듯하다.


2014-08-13

book_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인간의 역사를 바라볼 때, 단순히 연도 등을 외우는 것으로 역사에 접근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지루한 느낌이 든다. 현재 여러 곳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도 아마 이런 암기 위주의 교육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교육제도가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장면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왜 역사를 공부해야하나? 라는 물음보다. '인간의 삶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라는 물음이 이 책을 집어 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삶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모습이 뿌연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는 답답함과 불안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 벌어질 상황들에 적절히 '대응'할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해 이해해야할 필연성과 당위성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 너무 궁금했고, 그 과정 속에서 '역사'라는 거대한 산을 만난 것이다. 즉, 역사는 내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조력자라고 할 수 있겠다.

'지식'과 '지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식이 있어도 지혜를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으면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죠"라고 어느 누군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단순하게 지식을 암기할 수는 있지만, '지혜'는 단순히 암기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일 것이다. 결국 '지혜'는 글로 표현하여 전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지혜'의 중심에는 인간이 서 있지 않을까? 언젠가 문득 든 생각이다.

이 책에서는 아래의 5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욕망 (Desire)- 커피와 홍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
모더니즘 (Modernism)
제국주의 (Imperialism)
몬스터 (Monsters)-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 (Religions)-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재인식되는 중세/ 이슬람의 재인식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각 부문을 나누었을 뿐이지 5개의 주제들이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영역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욕망(Desire)'이라는 주제였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삶에서 '욕망'은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욕망이 '긍정'과 '부정'을 함께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나친 욕망은 파멸을 몰고 올 수도 있었지만, 적당한 욕망은 인간의 삶을 더욱 진보 시켰다. 이 때부터 생각은 더 깊어졌고,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전까진 흔히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욕망'하는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었다. 꼭 욕망이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그 욕망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큰 물줄기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주연으로 서있던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알지 못하면 역사의 물줄기의 방향과 힘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닐런지... 인간이라는 본질은 시대를 떠나서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집의 모양, 입는 옷, 먹는 음식들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지 그것들도 결국 본질적으로  '의식주'라는...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게 필요할 것이다.

종교(Religions)에 대해 다룬 부분도 상당히 의미있게 읽었다. 인간으로서 완벽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항상 예측을 빗나가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서 인간은 불안해한다. 그 불안을 종교로 대신하여 안정을 추구하는... 결국 종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전재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는 끊임없이 함께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는 종교와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미국이 종교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종교적이라는 사실...그리고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취임식에서 성경 위에 손을 올리고 선서를 하는 장면...' 등은 우리에게 종교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인간인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역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의 지속성에는 얼마만큼의 호기심이 있으냐의 문제일 것이고, 그 호기심은 타자로 부터 나온 호기심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현재 나 자신의 고민과 걱정부터 출발하면 언젠가는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다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고민과 걱정에 직면하는 열정만 있다면 언제가 되었든 역사는 필연적으로 거쳐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파편화된 지식들이 통섭되어 '지혜'로 재탄생하는 희열을 느꼈다. 그 동안에 고민했던 주제들의 갈피가 잡히는 쾌감을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인가를 알아서 좋았다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나 자신,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조금은 얻은 것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웠던 것은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저자가 쓴 글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누군가의 추천으로 책을 읽었다. 추천인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4-08-08

잊혀졌던 군대 후임

먼 훗날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것에는 두개의 상반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좋은 기억으로 인한 그리움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기억으로 인한 분노일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좋을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인연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연.
우연...필연...
만나서 반가워요.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얼마 전 좋은 의미로 나를 기억하고 있던 분을 만나면서 든 생각.


어느 날 지인들을 만나러 어느 카페에 갔다. 지인 중 한 분이 사시는 동네에 2-3번 정도 방문 한 적이 있었는데, 갈 때마다 같은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날도 그 카페에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카페 카운터에 계시는 사장님이 슬금슬금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 은연 중에 느껴졌다.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내 쪽 테이블로 조심스럽게 걸어오시더니 조용히 이야기하셨다. "저기... 혹시...제가 아는 분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군 생활 어디서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군 생활하면서 크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지만, 왠지모르게 불길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옆에 있는 지인분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여서 불안감은 극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차분한 척 하며 입을 열었다. "군생활은 00에서 했어요." 내 말을 듣더니 사장님은 자신의 직감이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기쁨에서였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혹시 00사단 00중대 0소대에서 근무 하시지 않았나요?" 사장님이 약간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갈 때 나로서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현상이지? 자주 오지도 않는 동네, 그리고 자주 오지도 않던 카페에서 과거에 내가 만났던 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그랬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곳에서 나도 군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사장님의 얼굴을 한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사장님과 비슷한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000이라고 모르시겠어요? 000병장님 분대 분대원이었는데..."

사장님에게 미안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막 전입해 왔을 때 곧 전역을 앞둔 병장이셨으니까요." 사장님이 이해해줘서 그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같은 소대도 아니고, 같은 소대의 그것도 같은 분대의 분대원을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가 어디있나?'라며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사장님 말씀대로 난 그 당시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었고, 사장님은 군대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두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갓 전입한 이등병이었던 것이다.

사장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잘해드렸나요?"

전역을 한지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에서 지우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어느 날 야외로 훈련을 나갔을 때 주특기 교육을 하는 중에 분대원들이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나태해졌다는 판단에 고함을 지르고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가급적 분대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군대에서 최소한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분대원들이 책임을 지고 잘 해주길 바랐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아 한 번인가 상당히 크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두려워한 그 기억을 이등병이었던 사장님은 더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장님에게 조심스래 물어봤던 것이다.

"갓 전입한 저에게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잘 해주셨어요."
다행이었다. 지인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 당할 상황은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다행이네요. 제가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사장님에게 남아있어서..."라고 미소지으며 사장님에게 말했다.
옆에 있던 지인분들도 상당히 놀란 눈으로 사장님과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인 분들과 이야기하는 중이어서 사장님과는 더 길게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대신 가지고 있던 책 한 권을 사장님에게 만난 기념으로 선물해 드렸다. 좋은 기억으로 만난 기념. 그리고 나를 잊지않고 기억해 준 감사함을 담아 책의 속표지에 간단한 인사말을 적었다.

놀랐다. 나를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 상대방이 나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써 기억해내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애써 기억한 뒤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거셨으니... 개인적으로 작은 희망을 느꼈다. 내 자존감을 지키고, 내 본질을 지켜 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때 당시에 나는 고민이 많았고, 내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엇던 상황으로 기억된다. 혼자서 삶에 대한 여행을 하고 있는 와중에 따뜻한 인연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랬으니 나에게는 감사할 일이 생겼던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2014-08-07

book_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박경철 지음






저자의 <<아름다운 동행 1권,2권>>을 과거에 읽으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상당히 깊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불행을 타인을 통해 간접 경험하면서 마음이 갑갑하면서 무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이 더 크게 일깨워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형식으로라도 그들의 차가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됐다. 누군가는 삶에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 게 우리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 불운을 누군가는 피해갔고, 누군가는 온 몸으로 맞으며 힘겨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불운을 피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바라봐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회에서 이룬 것은 전적으로 나의 노력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준 기회'가 나와 함께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무의식 중에 오지랖을 넓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힘겨워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숨이 나오는 건 왜일까... 게다가 마음이 아프다보니 몸이 아플 때가 종종 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아픔이 아니라 나의 심장을 어떻게든 건드려져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아픔들...그러나 어찌 그 분들의 아픔을 모두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아픔을 보는 것과 그 아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을테니...

이 책에 담겨있는 어느 소중한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가 또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아픔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직면하는 여러 장면들에 여러 미사여구를 덪붙이다보니 그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일상보다 더 돋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인간의 감동적인 삶들에는 눈물을 훔치면서 정작 나의 삶, 그리고 현실에서의 감동적인 장면에는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는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몇개의 문장들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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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일상이 단조롭다는 것만큼 지극한 행복의 경지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큰 걱정거리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는 고민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상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오히려 다른 그 무엇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양 오해하고,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아집과 질투, 시기와 증오, 그리고 반목을 거듭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나머지 생을 모르기 때문에 웃고 울고 화내며 살아간다. 신이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은 누구도 죽음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게 아닐까.~

~삶은 가혹하다. 운명은 주인의 삶을 따로 살피지 않는다. 운명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건, 그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증오했건, 그가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가졌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운명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잘살고 못 사는 거야 자기 책임이라지만, 그래도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돈이 없어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는 없어야 그래도 이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생명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망설임 없이 같이 손을 잡고 떠나기도 한다. 이런 사랑을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지.~

~진료실에 있다 보면 가정폭력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일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은 100분의 1도 안 되고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되기 쉽다.~

~우리는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세상의 드라마는 불륜으로 넘쳐나고 정작 사랑하고 지켜야 할 것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세상. 이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일까?~

~대개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조건과 외모를 보지만 동권 씨 커플은 그와는 달리 서로의 마음을 보고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애인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동권 씨가 꺼리는 눈치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경제 사정과 건강이 여의치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요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사랑을 말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서로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한 지 몇 달이면 결혼을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못 볼 원수라도 되는 양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만약 그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람이었다면 1년 이상이나 환자로 만나면서도 과연 알아보지 못했을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누군가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말했다. 이 말에 백번 천번 공감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와는 다른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아이가 보고 본받으며 자라는 것은 바로 부모의 뒷모습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나셨다. 그때 내 곁을 지켜준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빚을 졌다. 일가친척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그중에서 두 친구는 모든 사정을 다 알면서도 몇 년간 모은 적금을 깨고, 심지어 자신의 의사면허증을 담보로 빌린 돈을 내게 내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개원의가 되었다.~~그렇게 힘든 과정이 끝나갈 즈음 건강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심장 부정맥이 발생한 것이다.~~"심장을 갈아야 한다면 내 심장이라도 줄 테니까, 걱정 마라."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친구였다. 나는 두 친구와 나를 믿어준 5만 명의 환자들 덕분에 그렇게 고비를 넘겼고 또 생환에 성공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태(胎)가 '어머니'의 몸에 맺히기 전부터 이미 인연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 그리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 또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에서 비롯한 것이 아생(我生)인데, 그렇게 길고도 강고한 인연의 끈을 인간이 스스로 끊어버리고 독존(獨存)을 꿈꾼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보면 이런 인연의 관계망은 혈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우연들은 다시 얽히고설켜 내일의 나를 규정하는 필연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팔 다리가 없는 몸은 제대로 된 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노홍철 같은 개그맨이나, 안동의 고등어 간잽이 같은 사람들은 과거라면 어떤 대접을 받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인정받는 세상이 오고 있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존경받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저 아이들은 다르다. 저 아이들은 아직 진흙이다. 스스로 만들고 싶은 모양을 만들면 된다. 우리 시대처럼 누가 정해주는 대로가 아닌, 자기가 필요한 용도대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꽃병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대리 충족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꽃병이 되라고 요구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만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뭉개고 새로 빚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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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story_ The Depression of the Student 어느 대학생의 우울

개인적으로 타인의 삶에 가급적 간섭하려하지 않았었다.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순간부터 나의 에너지들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더 깊게 들어가 상대의 아픈 마음을 손 잡아주려했을 때는 이상하게 몸이 아프다.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인지 섣부르게 타인의 삶에 끼어들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많은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지금 내가 건넨 작은 선의가 상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지금 상대방이 내 진심어린 도움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 나와의 마주침에서 느꼈던 내 선의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균형Balance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과정에서 남는 여유 시간을 가까운 지인들을 시작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순간 인간의 삶은 변화하기 때문에 내게 할애된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내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건네는 도움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갓 대학생이 된 지인을 만났을 때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중 내 뇌리를 쉽게 스쳐지나지 않는 말을 지인이 넌지시 이야기 했다. 무언가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흔들리던 눈망울에서는 뭔지 모르게 삶의 애환을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자신이 지금 힘들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지인은 내게 말하는 듯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지인이 삶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은 그 어떤 핑계들을 덮어버리고 내가 그에게 손을 내밀 게 했던 것 같다.

"~가끔씩 커터칼로 손목을 슬슬 긁어봐요...~"

지인에게 가정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무거운 상처를 주었을까? 아마도 삶의 주인이 되려는 몸부림 속에서 지인은 힘들어 했던 것 같았다. 그의 부모님은 가정불화를 일으키시지는 않았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얽혀있는 긴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또한 그것들을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했던 것 같았다. 더욱이 진정한 사랑에 대한 부재도 그의 삶에 더욱 묵직한 어둠을 가지고 왔는지도 모른다.

지인을 만났을 당시 나는 삶에서 자유로운 휴식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 전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도저히 이대로 살다간 안 될 것 같아서 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삶을 주체적고 자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몸 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갓 대학생이된 지인의 이야기가 아프게 심장을 조여왔고, 내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위한 실천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단언컨데, 그 당시 내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인의 애절한 눈빛의 의미를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지인은 겉은 멀쩡했지만, 마음이 상당히 치쳐있었다. 점점 그 상처들이 쌓였다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긍정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다. 지극히 내 관점에서 그는 상당한 위기 상황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지금 학교에서 수강하는 회계원리가 어렵다고 하니 일주일에 한 번씩 내가 있는 곳으로와서 나랑 같이 회계원리를 공부하지 않을래? 내가 회계원리 정도는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가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그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는 선택지를 내민 것이었다. 본인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그 변화는 큰 의미를 갖게되고 지속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지인은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승낙했다. 그 이후로 약2달간 지인과 만나 회계원리를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말이 회계원리 공부지 회계원리보다는 지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차츰 지인의 감정은 따뜻하고 밝게 변하기 시작했고 운 좋게 내가 회계원리를 가르쳐준 덕분에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고, 그 학기에는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난 단지 너에게 큰 숲만 볼 수 있게 해줬을 뿐이야. 결국은 니가 니 삶을 선택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얻은 것이지" 지인이 고맙다며 내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야기했다.

보람이라고 할까? 뿌듯함이라고 할까?
아마도 '자존감'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타인에게 내가 건넨 선의는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존감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 사람이 긍정을 볼 수 있는...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받은 선의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삶의 작은 희망들... 개인적으로 난 이 힘을 믿는다. 아무리 작은 선의라도 그 선의가 쌓이고 쌓여서 이 사회에 큰 희망과 긍정을 선물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 지인에게 건넸던 선의는 그 때로 끝나지 않았다. 지인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감탄하시며 내게 고마움을 표현해 주셨다. "네 덕분에 00이가 많이 환해졌어." 지인은 군대에 가서도 삶을 긍정했던 것으로 보였다. 군생활을 열심히 해서 포상휴가도 나왔었고, 가끔 휴가를 나오면 만났을 때 그가 하는 이야기들에서는 삶의 힘이 느껴졌다. 그냥 지인에게 고마웠다. 내 작은 선의를 잘 받아 더 큰 선의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지인에게 선의를 건네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내 삶에서 위기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게 시간이 없다하여도 소중한 삶을 마감하려는 꽃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그에게 햇볕과 시원한 물을 건네야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힘든 상황에서도 그의 손은 잡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좀 알겠다. 그 때의 판단과 행동이 참 잘했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을 일단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물론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선의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현재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희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 익숙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자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익숙함이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하는 소중한 것 아닐런지...


2014-07-25

어느 철학자의 변명

일전에 어느 철학자의 강연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걸 봤던 적이 있다. '삶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쓴 저자의 책을 소개하면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연사의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강연은 상당히 의미있었고 우리들의 삶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거우면서도 긍정적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오프라인에 참석했던 여러 사람들의 질문들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안타까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아쉽게도 개인적인 생각에 질문들 중에는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무 형식에만 얽매인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장면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보통신 기술의 힘을 빌려 SNS망을 이용해서 직접 질문을 했다. 내용을 줄인다고 했지만, 질문의 길이가 예상보다 더 길어져서 난감했다.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개인적으로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진정한 자유에 대해 고민한다면 결국은 우리가 무의식 중에 가정에서 부모에게 받은 영향과 사회가 강압적으로 강요한 것들을 뛰어 넘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받은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사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혹시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구체적으로 필요한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질문의 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신 연사님이 대답을 하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저도 뭐...부모랑 사이가 안 좋아서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전적으로 개인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답변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인간으로 그 힘들이 수렴하는 것은 아닐런지...

Giving My ALL to The LOVE 내 전부를 다 준 것

'그래!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을 주기위해 노력하는 거야!'

A는 사랑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A가 인간의 삶에서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신뢰하고 진정 사랑하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들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철학을 공부한 영향 때문에 A는 그런 결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에게 유럽여행 선물을 해드려도 될까요?" A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선물을 하면서도 그녀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A가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가려고 모아 둔 돈 아니었어?"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A에게 대답했다. "당신은 유럽에 친구가 있어서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난 그냥 여행 가려고만 생각하고 모안둔 돈이니 당신이 다녀오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선물이야" A는 뭔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A에게 느껴진 밋밋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A는 어느 강연에서 '사랑'에 대해 어느 철학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랑은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줄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예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배가 고픈데, 빵 하나가 있을 때 그 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넬 수 있느냐는 것이죠.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빵을 건네는 건 어느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먹을 빵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A는 철학자가 했던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현실에서 사랑하는 그녀에게 행동으로 보이고자 노력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과 '노력한다는 것'에서 A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추스려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돈이면 내가 ~를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순간 순간 A의 앞 길을 가로 막았다. 굳이 A가 여행 경비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의 돈이면 또 다른 자본주의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A는 아직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끊임 없이 사랑을 방해하는 잠념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A는  때론 힘들어하기도 때론 어느 이윤지 모르게 행복해하며 짧지만 긴긴 고민의 시간을 견뎌내야했다.

A는 자신의 소유물에 어느 정도의 집착을 하고 있었고, A가 사랑하는 그녀는 잠깐의 망설임과 안타까움을 느끼다가 A의 선물을 받았다. 여기서 느껴지는 간극은 무엇일까? 정말 미묘하게 느껴지는 그 간극은 이렇다. A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A는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꽤 어린 나이에 직시했다. 그 때부터 A의 고민과 걱정에는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가 깊게 자리 잡게 된다. A는 이 삶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 까지 삶에 직면하려는 노력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A와 너무나 다르게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여인이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의 눈에 A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꽤나 희한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A가 자신에게 처한 삶의 상황을 승화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A는 어느 철학자가 말한 '사랑'에 대한 것을 행동에 옮기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A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눈으로 본 유럽의 풍경은 내가 보는 것이 될 것이고, 당신이 느낀 유럽도 내가 느낀 유럽일 거예요. 여행을 다녀온 당신의 눈과 손을 잡으면 마치 나도 유럽에 다녀온 느낌을 받을 테니까요."

그렇게 그녀는 약 2주동안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무사히 A에게로 돌아왔다. "A를 위해서 그다지 큰 선물을 사오진 못했어......" 그녀가 안타까운 시선을 A에게 보내며 말했다. A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당신이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게 내 앞에 있다는 게 큰 선물이예요."

내 전부를 다 준다는 것...
사랑에 대한 의미있는 통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4-07-19

Are you an idealist? 너 이상주의자냐?

"너 이상주의자냐? (Are you an idealist)"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말이 있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너 이상주의자냐?'라는 물음 덕분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었고, 너무 많은 고민의 시간으로 인해 수 차례의 위기를 겪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 세상이 정상이 아닌 것인지...여전히 그 때를 생각하면 뭔가 허전한 아쉬움이 휘몰아친다.

어느 날 가깝게 알고 지낸 동기를 만나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만나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에는 아름다운 이성에 대한 주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동기는 최근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기가 아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어딘가에 가서 쾌락을 즐긴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때가 늦은 저녁이 되어가는 중이었던지 이 동기는 그 즐거움을 내게도 권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그 당시 개인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런 위기 상황에서 정신과 몸을 올바르게 해야한다는 삶의 원칙을 나 자신과는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기에게 물었다. "너에게 그런 권유를 했던 사람은 네가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 있어?" 동기가 대답했다.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사람은 너에게 왜 그런 권유를 한거야?" 그 때의 정황상 이 물음부터는 더 이상 진지하게 물음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쉬운 마음에 동기에게 "차라리 여자친구에게 니가 느끼는 본능의 감정들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여자친구와 잘 상의해서 해결하는 건 어때?" 라고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했었다.

'삶을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 때부터는 실수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 당시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갔다. 동기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동기는 삶에서 한 번의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다시 동기를 만나게 됐다. 개인적인 생각에 내심 동기가 과거의 실수들을 반성하고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직업을 얻기도 했으니 좋은 가치관만 정립이 된다면 더욱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쉽게도 동기는 내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얻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머리가 더 복잡했던 것은 나도 알고 있는 몇몇 선배들이 동기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인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고 해도 흔한 말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라면 결국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게 맞는 것일텐데,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동기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너와의 인연을 끊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너에게 이야기를 할거야. 아마 니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상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아끼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너이기에 친구로서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진짜 친구라면 친구가 듣기 싫은 말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 동기의 눈빛은 떨렸다. 그 떨림은 긴장된 떨림이 아니라 '이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도 진지한거야?'라는 눈빛이었다.

조용히 동기에게 물었다. "지금 니 여자친구가 너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니?" "모르지, 알면 안돼지."라고 동기는 대답했다. "그러데 넌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야?"라는 물음에 동기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곤 더욱 진지한 어조로 동기에 마지막 발언을 했다. "너는 여자친구에게 신뢰를 저버렸어......" 이 말에 동기의 반응을 보고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기와의 인연은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기는 내 말에 "그럼 너 지금까지 나랑 이야기할 때 니 마음 속으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거야?"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동기와 나는 급하게 헤어졌다. 서로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 뒤로 동기와의 연락은 거의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애써 내가 먼저 동기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와 혼인을 한다는...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동기에 전화가 또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동기에 대한 애정은 멀어진지 오래였다. 그가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다고하여도 더 이상 가까워지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거웠고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 청소하시는 분들있지? 내가 쓰레기를 버려줘야 그걸 치워서 돈을 버는 사람이 생기는 거지" 더욱이 동기의 이 말을 듣고 사소한 말 속에서 나와 심각히 가치관이 다르다는 자각을 하고 단호히 절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됐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만 내가 아쉬웠던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주변 사람들도 다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관 없이 하는 행동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어느 누군가의 그 말이 생각난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세상이 정상이 아닌 것인지...여전히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그 고민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얻은 문장..."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기회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동기의 생각들이 좀 더 긍정적인 가치관들로 변화되길 간절히 바라고 기대한다. 그 때가 되어서는 또 다시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2014-07-18

book_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손철주 지음





감상, 미술시장, 작가, 작품, 우리 것...

대략 위의 주제들로 내용을 분류해서 짧은 호흡으로 천천히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편집된 책이다. 그래서인지 바쁜 시간 중간에도 조금씩 읽으며 예술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들에 대한 내용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일반인이 친근하고 재미있게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예술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들도 적절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한층 더 흥미롭게 예술에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어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예술이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야할 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진흙탕 속에 숨겨진 진주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는 구체적인 서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이면 속에 작가의 영감을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기교가 아니라 작가가 온전히 느끼는 영혼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을 깊게 사유하여 통섭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런지... 그 응집된 영혼을 한 폭의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예술가들은 정신적 고통을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많이 감당하고, 또 그것을 뛰어 넘어야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가의 본질인지도...

결국 예술가는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또는 알에서 깨어나려는 몸부림, 그리고 매미가 허물을 벗는 치열한 과정을 살아내는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의 영감에 교감할 수 있는 통찰과 직관이 중요한 것 같았다. 어쩌면 예술은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직면하여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조력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온전히 느끼는 진정한 자유...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한문 세대가 아닌 분들의 경우에 책을 매끄럽게 읽기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장이 쉽게 읽히지 않다보니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든다. 그렇다하여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반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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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뱀을 보고 뱀보다 긴 시를 쓴다면 그게 바로 췌사요 사족이다. 그래서 예술은 군소리를 싫어한다. 압축을 계명으로 삼는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이 그려야 할 대상에다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진정 대가는 남이 제 작품을 흉내 내는 걸 겁내 지레 대비책을 마련하진 않는다. 그는 도무지 베낄 수 없는 작품, 감히 넘보지 못할 작품을 만든다.~

~잠깐 우리 주변의 작가를 돌아볼 일이다. 비평계와 언론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거나 대중의 몹쓸 손가락질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작가는 없는지. 멀리 가고 오래 남는 이름은 악평 속에 자란다.~

~삶의 극단으로까지 치솟은 광기는 곧 예술이다. 언제나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을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

~요체는 바로 상상력에 달려 있다. 풀빵기계보다 더 잘 뽑아내는 기능인 화가는 잠시 돌아봐도 수두룩하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작가들의 상상력 고갈이고 그것이 우리를 갑갑하게 한다.~

~노골적인 동성애, 소수민족의 핏대 높은 정치 구호, 그리고 섹스, 섹스, 섹스...... 그러나 반세기가 넘지 않아 그런 작품들도 어느새 고급 미술관의 도도한 장식품이 될 것이다. 그게 미술이 굴러온 역사다. 정작 미술인이 꿰뚫어 봐야 할 것은 아무리 메스꺼운 주제나 메시지라도 종내 작품화시켜버리는 후기산업사회 미술관의 가공할 만한 포식과 왕성한 소화력의 정체일 것이다.~

~깃털은 모여 새털이 되지만, 점이 모여 우리네 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화단을 지배하고 있는 선은......? 낱낱이 찢기고 신경질적인, 그래서 숨넘어가듯 거친 표정이다. 깃털 하나를 들고 새라고 우기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서양 초상화가 귀족이나 신흥 부르주아의 산물이었다면 동양은 조금 다른 길에 있었다.~~동양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전신(傳神)', 즉 정신을 전달하는 법이었다.~

~작가 개개인의 작품에서 발견하고자 애써야 할 것은 그림의 표면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본질이다.~

~모방이든 인용이든, 살아남은 작품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니까. 또 그 뚝심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게 됐으니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의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게 미술시장의 특성이기도하다.~

~세계적으로 꼽히는 유명 미술관들도 안품, 즉 가짜 그림에 녹아나 망신살 뻗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체 누두는 맘대로, 그러나 남자 누드를 여자가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부터다. 그것도 통째 허용되진 않았다.~

~유통되지 않는 밀실의 작품이란 정작 작가가 버린 자식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피카소만큼 풍성한 화제와 질퍽한 소문 속에 뒤섞여 산 예술가도 드물다.~~위대한 예술가의 야누스적 이면은 그것대로 그가 남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상기해보라.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죄와 벌'의 작가가 미성년 여자아이를 꼬드겨 데리고 놀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의 도박벽은 또 얼마나 지독했는지...... 자신의 아내를 지상 최대의 악처로 기록되도록 부추긴 소크라테스를 보라. 철학자의 철학적인 삶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예화는 수두룩하다.~

~미술관에 들렀을 땐 작품 아래에 붙은 이름표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감동의 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누구 작품인지 몰랐기 때문에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결코 고전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현대인의 인식 근본을 시각에 두고 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창작품을 남기고 싶은가, 작가들이여. 그러면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하라. 그 이치에 기반한 자신의 뜻을 세워라. 그리하여 자신이 끝까지 정진해야 할 것은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바로 나만의 육성을 갈고 닦는 일이다.~

~도덕적으로 떳떳한 권력은 미술이 미술답게 성장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자유민주주의가 두려운 나라일수록 인간의 표현 욕구를 보안법으로 억누르는 게 상례로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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