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출간한 뒤,
장하준씨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기사가 너무 길어서 읽다가 좋은 부분을 발췌).
=====================
프레시안 : 옆에 두는 책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가?
장하준 : 한 포털사이트에서 내 서재를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5권을 꼽아서 소개했다. 일단 목록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새 the Galaxy)>(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권진아 옮김, 책세상 펴냄, 원서 : 1979년).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Imagined Communities)>(윤형숙 옮김, 나남 펴냄, 원서 : 1983년)
<광기, 패닉, 붕괴 : 금융 위기의 역사(Manias, Panics and Crashes :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찰스 킨들버거·로버트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굿모닝북스 펴냄, 원서 : 1978년)
<장자>(장자 지음, 오강남 엮고 옮김, 현암사 펴냄)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민음사 펴냄) / <백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목록을 봐도 알겠지만, 나는 직업 자체가 책을 읽는 것이다 보니 일을 안 할 때는 흥미 위주의 책을 즐긴다. 보통 때는 추리소설, 과학소설(SF) 등을 즐기지 심각한 책은 읽지 않는다. (추천한 5권 중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팬을 거느린 유명한 SF 소설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추리소설, SF 작가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장하준 : 추리소설은 당연히 애거서 크리스티가 여왕이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잘 알려진 존 르 카레의 작품도 즐겨 읽는다. 그밖에도 요즘 유럽은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할 것 없이 추리소설 르네상스다. 새로운 작품들이 나올 때마다 챙겨서 읽는 편이다.
SF는 사실 고전적인 의미의 작품보다는 최근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닐 게이먼, 닐 스티븐슨과 같은 작가의 SF 또 (어린이들이 읽는 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황금 나침반>의 필립 풀먼, <견인 도시 연대기 : 모털 엔진> 등을 쓴 필립 리브 의 소설도 즐기는 편이다. 러시아 작가 빅토르 플레빈(Victor Pelevin)의 작품도 즐겨서 읽는다.
(닐 게이먼, 닐 스티븐슨, 필립 풀먼, 필립 리브의 책은 국내에 몇 권이 소개가 되었다. 빅토르 플레빈의 작품은 1998년 <벌레처럼(The Life of Insects)>(책세상 펴냄), 2006년 <공포의 헬멧(The Helmet of Horror)>(문학동네 펴냄)이 국내에서 나왔다. 장하준 교수와 책 읽는 재미를 공유하고 싶은 이들은 지금 당장 검색창에 작가 이름을 쳐볼 것! <편집자>)
프레시안 : 이제 경제학 얘기를 해보자. 스스로 주류 경제학과는 선을 긋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지향하는 경제학 또 경제학자는 어떤 모습인가?
장하준 : 생산, 유통, 소비와 같은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류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 제도, 심리학도 알아야 한다. 또 철학, 도덕도 공부를 해서 아까 얘기했듯이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지를 놓고 나름의 세계관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최대한 광범위한 공부를 했을 때, 비로소 경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장하준 교수가 비판하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득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의 대학은 그런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는 중이다. 예를 들자면, 서울의 한 대학은 2009년부터 회계학을 전공을 불문하고 전교생이 듣는 교양 필수 과목으로 선정했다. 또 여러 대학에서 역사, 철학 등의 과목이 축소·폐지되는 상황이다.
장하준 : 회계학을 교양 필수 과목으로? 그런 일이 있었나? 사실 회계학을 배우는 게 꼭 나쁘지는 않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요즘에는 안 하지만) 예전에는 경제학과 학생은 모두 다 아주 기초 수준의 회계학을 배웠다. 사실 제일 좋은 건 회계학도 배우고 역사, 철학과 같은 여러 가지를 배우는 것인데….
생명과학자가 생명 현상을 연구할 때, 그것이 워낙에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DNA 분석도 필요하고, 실험실에서 온갖 실험도 하고, 생물을 해부도 하고, 고릴라 침팬지 옆에서 몇 달을 앉아 있기도 한다. 또 동물 행태를 가지고 수학 모델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이 모아져야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 현상이 워낙에 복잡하지 않나?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야 갑자기 주식 시장이 거품이 확 일었다 꺼지는 것도 알 수 있고, 또 하드웨어를 이해해야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할 수 있고, 수요-공급의 원리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경제 체제를 지향하느냐를 놓고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경제학은 종합 학문이 되어야 하고 또 경제학자는 그런 여러 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경제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한 가지 특화된 분야를 깊이 파기는 해야겠지만…. 항상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하준 : <23가지>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좌로는 마르크스부터 우로는 하이에크까지 그 사이의 많은 경제학자의 책을 읽고 배울 게 있으면 다 배우는 사람이다. 어떤 학파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고.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언급한 경제학자는 한 명, 한 명 다 배울 게 있는 이들이다.
다만 <23가지>에서 여러 차례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 시대 최후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정치학자로 출발했으나 행정학, 물리학,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등에 큰 공헌을 하고 마지막에는 인공지능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는지에 정통한 단 한 사람을 들라면 그것은 단연 허버트 사이먼이다. 사이먼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경제학은 현대적 기업, 더 나아가 현대 경제에 관한 우리의 이해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런 훌륭한 업적에 비하면 한국에 소개가 안 된 것 같아서 이 기회에 특별히 그를 언급한다.
프레시안 : 유독 신화가 많다. "학창 시절 천재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시간에 250쪽을 독파할 수 있는 독해력을 갖췄다"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어 원서로 11독하고 번역판으로 12독을 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1990년 27세 나이로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되었다" 등….
장하준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얘기는 역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동생(장하석)의 얘기인데 누군가 잘못 옮겨서 계속 내 얘기처럼 알려져 있는데…. 무협지 같은 얘기는 믿을 필요가 없다. 사실 나는 '천재과'라기보다는 '노력파'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공부하는 건 좋아해서 교수까지 되었지만.
[출처: 프레시안/ 2011년 1월경 기사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