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와 관련된 내용
어디선가 본 글인데, 다시 봐도 깊게 읽게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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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들녀석이 이기와 이타에 대해 묻길래, 이기가 우선이라 답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고요. 다만 자신의 본능(원초자아)을 나라고 믿느냐, 이성(초자아)을 나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본능을 사랑하면 금수가 되고 이성적 자아를 사랑하면 사람이 되는데, 전자는 마약이나 술, 담배와 방탕함으로 자신을 망치지만, 후자는 자신에게 학습과 성찰의 기회를 선물하며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면 나의 발전을 가로막고 병들게하는 행위를 할리가 없고, 뒤쳐지고 무력한 자신을 그대로 방치할리가 없다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를 위해 무엇인가 존귀한 선물을 하게된다고요.
그렇게 진짜 나를 사랑하면 나를 있게한 부모, 나에게 기회를 준 사회, 함께하는 국가, 나아가서는 인류애적 사랑의 념이 생기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부터 배운다고...
유가가 살아남은 것은 '수신'에서 출발한 탓이고, 묵가가 사라진 것은 먼저 나에서 출발하지 않고 '나와 타인을 같이 여기라'는 겸애를 내세운 탓인데,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답했습니다.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가끔 생각합니다.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와 이웃을 동일시하라는 초월성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지, 나를 제대로 사랑하면서 그 마음을 넓혀나가는 현실성이 우선인지...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이에게 이 말을 하면서 스스로 돌아보았더니, 저 역시 어제하루 돼지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더군요. '바람직한 자기애'를 가지는 것도 '맹목적 이타'만큼이나 어려운 일 같습니다. 우리는 이순간 사랑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애'의 가치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완전치 않기 때문에, 빗나간 이성에 복무할 가능성 때문일 겁니다. 빗나간 이성은 소아적 독선과 아집으로 이어지므로 늘 앞선 분들의 언행을 경청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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