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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book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 지음(시집)
'kbs 책 읽는 밤'에 김경주 시인이 출연한 것을 보고 그의 시집을 한장 한장 넘겼었다. 함축된 언어 탓일까? 내 경우에는 읽으면 읽을 수록 난해함의 절정을 맛볼 수 있었다. '조금씩 더 전진하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계속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음에도 읽고난 뒤 내 머리속은 온통 새하얀 연꽃속으로 '오리무중!'을 외치며 더욱 혼란스러워졌었다. 그 당시 그 만큼 감수성이 메말라 있었고, 시를 자주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인이 생각하는 방식이 좀 이상한가?' 시를 감상하며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TV에 출연한 저자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이었고, 나름 개성있고 멋있었다. 외면의 이상함이 아닌 내면에서 나와 엄청나게 달랐던 것이었다. 서로가 너무나도 다르니 내가 시를 감상하는 내내 저자의 생각에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몇 지인들에게도 이 시집을 선물했는데, 모두가 한결 같이 난해했다고 말했다. 지인들의 후기 덕분에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안도하긴 했지만, 왜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는지는 의문이었다. 잠깐이라도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기 위한 감성을 얻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 두 편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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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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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
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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